<연중 제31주간 금요일 강론>(2023. 11. 10. 금)(루카 16,1-8)
(성 대 레오 교황 학자 기념일)
복음
<이 세상의 자녀들이 저희끼리 거래하는 데에는 빛의 자녀들보다 영리하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6,1-8
그때에 1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부자가 집사를 두었는데, 이 집사가 자기의 재산을 낭비한다는 말을 듣고,
2 그를 불러 말하였다.
‘자네 소문이 들리는데 무슨 소린가? 집사 일을 청산하게.
자네는 더 이상 집사 노릇을 할 수 없네.’
3 그러자 집사는 속으로 말하였다.
‘주인이 내게서 집사 자리를 빼앗으려고 하니 어떻게 하지?
땅을 파자니 힘에 부치고 빌어먹자니 창피한 노릇이다. 4 옳지, 이렇게 하자.
내가 집사 자리에서 밀려나면
사람들이 나를 저희 집으로 맞아들이게 해야지.’
5 그래서 그는 주인에게 빚진 사람들을 하나씩 불러 첫 사람에게 물었다.
‘내 주인에게 얼마를 빚졌소?’
6 그가 ‘기름 백 항아리요.’ 하자,
집사가 그에게 ‘당신의 빚 문서를 받으시오.
그리고 얼른 앉아 쉰이라고 적으시오.’ 하고 말하였다.
7 이어서 다른 사람에게 ‘당신은 얼마를 빚졌소?’ 하고 물었다.
그가 ‘밀 백 섬이오.’ 하자,
집사가 그에게 ‘당신의 빚 문서를 받아 여든이라고 적으시오.’ 하고 말하였다.
8 주인은 그 불의한 집사를 칭찬하였다. 그가 영리하게 대처하였기 때문이다.
사실 이 세상의 자녀들이 저희끼리 거래하는 데에는
빛의 자녀들보다 영리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약은 집사의 비유』
“어떤 부자가 집사를 두었는데, 이 집사가 자기의 재산을
낭비한다는 말을 듣고, 그를 불러 말하였다. ‘자네 소문이
들리는데 무슨 소린가? 집사 일을 청산하게.
자네는 더 이상 집사 노릇을 할 수 없네.’(루카 16,1ㄴ-2)”
여기서 ‘집사’는 주인이 맡긴 재산을 관리하는 사람입니다.
집사가 주인의 재산을 낭비한다는 말은, 재산 관리를 잘못해서
주인에게 손해를 입혔다는 뜻인데, 주인의 재산을 ‘횡령’한 일도
있을 것입니다.
‘말을 듣고’ 라는 말과 ‘소문이 들리는데’ 라는 말만 보면
주인이 ‘소문’만 듣고서 집사를 해고했다고 생각하기가 쉬운데,
아마도 누군가가 주인에게 집사의 비리와 부정을 알렸을 것이고,
그래서 주인은 정확한 상황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주인이 집사를 해고한 것은 막연한 소문을 근거로 한 일이
아니라, 직접 확인한 사실을 근거로 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집사 일을 청산하라는 주인의 말은,
가지고 있는 장부를 정리해서 제출하라는 뜻입니다.
집사를 해고하는 것은 확정된 일이지만,
그를 곧바로 쫓아낸 것은 아니고, 정리할 시간을 준 것입니다.
이것은 12장의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와 비슷한 상황입니다.
“하느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루카 12,20)”
하느님께서는 어리석은 부자의 목숨을 곧바로 되찾아 가신 것이
아니라, ‘오늘 밤에’ 되찾아 갈 것이라고 예고하셨습니다.
그가 회개할 수 있도록 몇 시간의 여유를 주신 것입니다.
‘약은 집사의 비유’에서 주인이 집사에게 장부를 정리할 시간을
준 것도, 잘못한 일을 바로잡을 시간을 준 것입니다.
잘못한 일을 바로잡으면 해고가 취소될까?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에서, 그 부자가 회개한다고 해서 그의
목숨을 되찾아 가겠다는 하느님의 말씀이 취소되지 않는 것처럼,
집사를 해고한 일도 취소되지는 않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만일에 집사가 주인에게 앙심을 품고,
잘못한 일을 바로잡기를 거부한다면?
그러면 해고로 그치지 않고 감옥에 갇히게 될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잠시 맡기신 재산과 같습니다.
‘나’는(우리는) 주님이신 하느님께서 맡기신 인생이라는 재산을
관리하는 집사입니다.
그리고 언제든지 하느님께서 장부를 정리해서 제출하라고
명령하시면, 그대로 순종해야 합니다.
인류 전체의 일로 생각하면, 그 시점은 ‘최후의 심판 날’이고,
각 개인의 경우에는, 지상에서의 삶을 마치는 임종 때입니다.
그런데 실제 현실을 보면 갑자기 임종을 맞이해서
아무것도 정리하지 못하고 이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렇다면 인생의 장부를 정리할 시간은, 즉 회개하고
잘못을 바로잡을 시간은 ‘지금’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자 집사는 속으로 말하였다. ‘주인이 내게서 집사 자리를
빼앗으려고 하니 어떻게 하지? 땅을 파자니 힘에 부치고
빌어먹자니 창피한 노릇이다. 옳지, 이렇게 하자. 내가 집사
자리에서 밀려나면 사람들이 나를 저희 집으로 맞아들이게
해야지.’ 그래서 그는 주인에게 빚진 사람들을 하나씩 불러
첫 사람에게 물었다. ‘내 주인에게 얼마를 빚졌소?’ 그가 ‘기름
백 항아리요.’ 하자, 집사가 그에게 ‘당신의 빚 문서를 받으시오.
그리고 얼른 앉아 쉰이라고 적으시오.’ 하고 말하였다. ......
주인은 그 불의한 집사를 칭찬하였다. 그가 영리하게 대처하였기
때문이다. 사실 이 세상의 자녀들이 저희끼리 거래하는 데에는
빛의 자녀들보다 영리하다(루카 16,3-6.8).”
이 상황을 겉으로만 보면, 잘못한 일을 바로잡기는커녕
더 큰 잘못을 저지르는 것으로 보일 수 있는데,
집사가 자기 잘못을 정말로 바로잡으려는 의도로
한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이자’에 관한 율법이 신명기에 있습니다.
“너희는 동족에게 이자를 받고 꾸어 주어서는 안 된다.
돈에 대한 이자든 곡식에 대한 이자든, 그 밖에 이자가 나올 수
있는 것은 모두 마찬가지다. 이방인에게는 이자를 받고 꾸어
주어도 되지만, 너희 동족에게는 이자를 받고 꾸어 주어서는
안 된다(신명 23,20-21ㄱ).”
빚진 사람들 입장에서는 ‘주인에게’ 빚을 진 것이지만,
사람들에게 무엇인가를 꾸어주고 다시 그 빚을 받아내는 일은
모두 집사가 했을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집사는 주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자기 마음대로
이자를 받았을 것이고, 그것을 자기가 차지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해고 통보를 받자, 받은 이자를 돌려주고
사람들의 인심을 사려고 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의 진짜 목적은 해고된 다음에 먹고살 길을 찾는
것이지만, 그래도 어떻든 잘못한 일을 바로잡은 것은
사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빚진 사람들은 이자를 내지 않게 되어서 좋아했을 것이고,
주인은 율법을 잘 지키는 사람이라는 명예를 얻게 되었을
것이고, 집사는 먹고살 길을 찾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인이 왜 집사를 칭찬했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더 큰 잘못을 저지르는 집사를 칭찬할 주인은 없습니다.
잘했으니까 칭찬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말씀하신 이유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세속 사람들은 어떤 위기가 다가오면 자기들 나름대로 신속하고
영리하게 대처한다. 그런데 신앙인이라고 자처하는 너희는
종말이 다가오는데도 대비하는 모습이 왜 이렇게 굼뜨냐?”
우리가 인생을 마치고 하느님 앞으로 가는 일은,
해고당하는 일이 아니라 임무 완수를 보고 드리는 일입니다.
그때가 되었을 때, 우리는 바오로 사도처럼 “나는 훌륭히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2티모 4,7).” 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까?
[출처] 연중 제31주간 금요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