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9일부터 토스카나-돌로미티-오스트리아 음악도시들을 6월 13일까지 둘러 보았는데 가장 큰 기대를 걸었던 돌로미티 부분을 아홉 편으로 마치고 이제 시간을 되돌려 토스카나 첫 편이다. 본격적으로 토스카나를 돌아보기 전 밀라노~코모 호수 얘기부터 풀어 놓는다.
다시 한번 얘기하자면 지난해 8월 여행 계획을 세우고 일단 인천~밀라노, 빈~인천 왕복 항공권을 일인당 85만원(수수료까지 포함)에 결제했고 지난해 12월까지 모든 숙소 예약을 마치고, 버스와 열차 등을 최대한 사전 예약해 부부가 600만원 안팎에 16박 17일 일정을 소화했다. 서두르는 자에게 복 있으라.
지난 5월 29일 밀라노 국제공항에 도착한 것이 밤 10시를 넘어서였다. 짐 찾는 데 생각보다 시간이 걸렸고 입국 수속 줄이 엄청 길어 공항 6번 출구 나와 밀라노 반호프(중앙역) 가는 셔틀 버스 타는 곳으로 나왔더니 밤 11시를 조금 넘겼다. 일인당 5유로씩 받았다.
반호프에 도착해 조금 헤매고 숙소 43스테이션 호텔에 짐을 푸니 자정이 가까웠다. 간단히 샤워하고 잠에 떨어져 다음날 아침 조식을 먹자마자 짐 챙겨놓고(다음날 아침 일어나자마자 피렌체로 이동할 예정) 중앙역으로 나갔다.
이날은 우리 부부가 결혼한 지 27년 되는 날이었다. 집친구는 몇해 전 친구들과 코모 호수를 돌아본 결과 바레나가 가장 볼 만하다며 이곳을 첫 목적지로 잡았다. 결과적으로 최상의 선택이었다.
밀라노 중앙역에서 바레나 가는 10시 20분 열차를 탔다. 6.7유로씩. 역에 들어서는 모든 이들이 한곳을 바라보고 있어 눈길을 끌었다. 왜? 우리네와 달리 플랫폼이 수시로 바뀌어 승객들은 늘 전광판을 주시하게 된다. 집친구는 이곳에서 전광판에 안내된 플랫폼이 출발 직전에 갑자기 바뀐 것을 뒤늦게 알아채는 바람에 열차를 놓친 기억을 누누이 강조했다. 신기했다. 이렇게 여행을 어떻게 하지, 걱정이 밀려왔는데 금세 적응돼 발차 시간 직전까지 플랫폼을 확인하고 짐을 끌어 이동하는 적응력을 보였다.
바레나 역에 내리니 가파른 산사면 쪽은 사이프러스 나무들이 하늘을 찌를 듯 서 있고 호숫가에 마을이 있다. 선착장부터 들러 건너편 벨라지오 가는 배를 9.2유로씩에 예약했다. 집친구는 호수의 남쪽 끝에 있는 코모를 굳이 가볼 필요 없으니 벨라지오 건너갔다가 다시 돌아와 이곳에서 밀라노행 열차 타는 방법도 있는데 어떻게 할래, 물었는데 난 그런 얘기 제대로 듣지도 않고 당연히 코모 가야지, 했다.
바레나는 작고 앙증맞았다. 선착장 바로 옆에서 설산이 바라보인다. 시계를 로마 시대로 돌려놓은 듯 호숫가를 빙 둘러 산책길이 조성돼 있다. 호숫가를 따라 고급 빌라와 성채 비스무리한 가옥들이 늘어서 있다. 집친구는 밀라노 호텔에서 한 블로거의 사진들을 보여줬다. 모나스테로 빌라다. 바로 옆에도 무슨 빌라가 있었는데 그곳보다 조금 큰 듯했다.
입장료 6유로씩에 캐슬 안을 돌아보고 5유로인가를 더 내면 작은 박물관도 관람할 수 있었는데 우리는 캐슬 안만 돌기로 했다. 우리가 로마인이 돼 이런 호사를 누리는구나 싶었다. 사이프러스 등 침엽수가 빼곡하고 장미 넝쿨, 여기에 조각상들이 너무도 음전하게 배치돼 있다. 사방이 인스타그램 사진을 찍을 포인트다. 우리는 아주 끝까지 가볼 요량이었는데 공사 중이라 마지막 구간은 갈 수가 없었다. 한 시간쯤 호수를 완상하며 걸었다. 만족도 최고, 코모 호수를 찾는 이들에게 강추한다.
모나스테로 빌라를 빠져나와 선착장 쪽으로 향하다 출출해 밥을 먹기로 했다. 호숫가를 조망하며 조금 비쌀 것 같은 레스토랑에 앉았다. 보통 같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결혼기념일이지 않은가? 55.5유로(자릿세 4유로, 타글리오리니 카카오(초콜릿 색깔 파스타) 16유로, 라바레요(생선 요리) 19유로, 커피 2유로, 카푸치노 3유로, 맥주 6유로, 와인 5.5유로) 맛있었다. 타글리오리니는 일품이었다.
예약한 오후 2시 30분 벨라지오로 떠나는 배에 몸을 실었다. 사람 인 자를 쓴다면 획의 삐침이 시작되는 지점이 벨라지오다. 바레나와 별다를 게 없지만 조금 더 화려했다. 골목 곳곳에 젤라토 가게마다 사람이 북적였다. 골목들이 너무 예쁘다. 우리는 산 등성이를 넘어 반대편 더 예쁜 골목도 가봤다. 벨라지오 앞동네보다 이 뒤쪽 동네가 요트를 즐기는 부유층들이 사는 곳 같았다.
오후 6시 30분이 넘어도 해가 중천이다. 6시 50분 코모 들어가는 배를 14.8유로씩에 끊어 탔다. 한국인 승객이 제법 있다. 코모에 도착하니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데다 마라톤 대회까지 열려 복작댄다. 괜히 왔다 싶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코모에서 밀라노 들어가는 버스는 4.8유로, 밀라노 어디 쯤에 내려 중앙역 가는 지하철 1.5유로씩에 타고 돌아오니 밤 9시 반이 가까웠다. 점심이 든든했던 데다 이동하느라 먹을 참도 없어 조금 허기가 밀려왔다. 이 시간에 문 연 식당이 있을까 싶었는데 호텔 옆에 중동계인지 모를 인간들의 식당에 제법 손님들이 많았다. 횡재하는 기분으로 피자 하나만 시켜도 되냐고 물었더니 아무 문제 없단다. 17유로(생수 1유로, 자릿세 4유로, 피자 7유로, 환타 5유로) 냈는데 기대하지 않았던 피자가 맛도 좋고 둘이 나눠 먹어도 충분할 만큼 반전이었다. 물론 자릿세의 횡포를 절감했지만 말이다.
사실 떠나기 전 밀라노 오페라 극장에서 공연 보려고 예약 사이트를 열심히 들락거렸으나 모차르트의 초기 오페라 이도메네는 이날 공연하지 않았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일찍 돌아와 오페라 관람했을 것이다. 밀라노 어떤 전철역 근처의 분수, 성곽의 네온 쇼를 본 것에 만족하고 밀라노 대성당에 밤 늦게 복작거리는 인파를 구경한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27주년 결혼기념일 괜찮은 하루였다며 둘이 손 꼬옥 붙잡고 잠을 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