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문제해결 및 고용안정성을 강화하는 법안부터 우선적으로 마련해야
경실련의 검토 결과 새누리당의 개정안은 노사정 합의를 진전시키기 보다는 합의가 가진 기본정신을 훼손하며, 한국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으로 판단한다. 이에 경실련은 다음과 같은 의견서를 오늘(12일) 국회에 제출했다.
비정규직 계약기간 4년 연장은 ‘한번 비정규직은 영원한 비정규직’ 상태로 만드는 법안이다. 개정안은 35세 이상 비정규직 노동자의 고용안정성 제고를 목적으로 계약기간을 본인 자유의사에 따라 기존 2년에서 4년까지 연장할 수 있게 하고 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노동자의 의사보다 사용자의 의지에 의해 계약연장이 결정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의 비정규직 비율은 2013년 22.4%로 OECD국가 중 5위를 기록하였다. 특히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비율은 1년 후 11.1%, 3년 후 22.4%로 OECD 회원국 평균인 53.8%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비정규직문제 완화를 위해서는 정규직전환을 유인하거나, 동일노동에 대한 적정대우를 보장할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지만 개정안은 계약기간만 연장하고 있다. 합법적으로 비정규직을 벗어날 수 없는 기간이 길어져 비정규직의 수는 지금보다 더욱 증가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합의문에는 비정규․파견 근로자 등의 고용안정 및 규제합리화를 위하여 관련 당사자를 참여시켜 공동실태조사, 전문가 의견수렴 등을 진행하고, 합의사항은 정기국회 법안의결시 반영하기로 하였음에도 새누리당은 아무런 절차도 거치지 않고 개정안을 발의하여 절차적 정당성을 상실하고 말았다.
뿌리기술 분야 파견근로 허용은 제조업 분야 전반에 파견근로를 확산시켜 제조업 역량을 저하시킬 것이다. 기존 파견법 제5조 제1항은 제조업 직접생산공정업무에 대한 파견근로를 금지하고 있다. 개정안은 예외조항을 확대하여 뿌리기술 활용업무 및 뿌리기술에 활용되는 장비제조업무에까지 파견근로를 확대한다. 뿌리산업은 주조․금형․용접․표면처리․소성가공․열처리 등 제조업의 근간을 이루는 공정기술을 활용한 사업으로서 자동차·조선·항공·IT 등 산업에 폭넓게 적용된다. 적용범위가 넓은 뿌리산업에 파견직을 허용하면 제조업 직접생산공정업무에 파견근로를 금지하는 제5조 제1항을 무력화할 수 있다.
불법파견과 위장도급은 반드시 근절되어야 하는 사안이나 최근 보도에 따르면 고용노동부가 2015년 점검한 사업장 1,008개소 중 53.3%에 해당하는 538개소가 파견법을 위반하였다. 이처럼 불법파견이 만연한 상태에서 합법파견까지 대폭 허용된다면 파견근로는 제조업 전반으로 확산될 것이다. 제조업 파견노동은 단기적으로 기업에게 비용절감 효과를 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잦은 인원교체로 인해 생산성을 하락시키고, 산업안전조치 미흡으로 인해 사고발생 가능성은 증가시킬 것이다. 결국 불황에 빠진 국내 제조업 역량은 더욱 저하되어 중국 등 경쟁국과의 경쟁에서 도태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고용보험법 개정안은 힘없는 저임금·청년 노동자를 희생하여 고용보험재정을 보전하고는 보장성을 높였다고 생색내려는 꼼수법안이다. 개정안은 구직급여 지급수준을 실직 전 평균임금의 50%에서 60%로 인상하고, 지급기간은 ‘90~240일’에서 ‘120~270일’로 연장하여 표면적으로는 보장성을 강화했다. 그러나 구직급여일액 하한액을 최저기초일액에 100분의 80을 곱한 금액으로 하여 기존보다 인하하였으며, 이직일 이전 24개월간 피보험기간이 270일 이상을 충족해야만 수급이 가능하도록 수급요건을 강화하였다. 이로서 고용보험제도가 가장 우선적으로 보호해야하는 저임금·단기계약노동자, 특히 단기 알바직을 전전하는 다수의 청년노동자가 수급범위에서 제외되거나 더 어려운 처지에 놓일 상황이 되었다.
그리고 실효성 있는 청년고용 확대 방안이 마련되지 못했음에도 2013년 기준 수급자가 120,486명이나 되는 조기재취업수당 제도를 폐지시킨 점도 문제이다. 개정안이 입법되면 구직자들의 재취업 동기부여를 약화시켜 청년고용 활성화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특별연장근로는 비정상적으로 운영되어온 근무시간의 정상화를 유예하는 것이다. 기존 근로기준법 하에서 근무시간은 주당 40시간, 연장근로 12시간 외에 휴일근로 16시간을 인정하여 총 68시간이었다. 주 68시간이라는 살인적인 근무시간이 가능했던 것은 일주일을 5일로 계산하고 휴일근로를 연장근로에 포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합의문은 실 근로시간 단축을 위하여 1주일을 7일로 규정하고 휴일근로시간을 연장근로시간에 포함하여 주당 근로시간이 52시간이 되도록 규정하였다.
하지만 개정안은 합의문의 내용을 따르면서도 2023년까지 1주일간 8시간씩의 특별연장근로를 허용하여 주당 근로시간을 60시간으로 만들었다. 개정안은 특별연장근로를 근로자대표와의 서면합의에 따라 실시하도록 하고 있지만 대부분 사업장에는 노조가 조직되어있지 않아 사용자의 의지에 따라 일방적으로 결정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근무시간이 비정상적으로 운영되어 온 점을 감안했을 때 특별연장근로는 급작스런 노동시간 단축에 대한 보완책이라기보다 비정상적으로 운영되어온 근무시간의 정상화를 유예하는 조치일 뿐이다. 노동시간단축 후퇴로 고질적인 노동문화개선도 늦어지게 될 것이며, 일자리나누기를 위한 신규일자리 발생효과도 미약해 질 것이다.
이번 개정안의 기초가 되는 합의문의 “합의이행 및 확산 항목”에 따르면 ‘본 합의사항을 구체화하는데 필요한 사항 등은 추가 논의’하기로 하였다. 또한 주요 쟁점사항에 대해 ‘정부가 일방적으로 추진하지 않음’을 추가로 명시하였다. 이는 합의문이 지속적인 협의와 일방적인 정책추진에 대한 견제를 기본정신으로 삼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새누리당은 합의문의 잉크도 마르기 전에 아무런 협의나 사회적 논의도 거치지 않고 개정안을 소속의원 전원 명의로 발의하여 입법을 밀어붙였다. 이는 명백하게 합의문의 기본정신을 위배하는 것이며 노사정 합의를 노동개혁을 위한 들러리로 전락시키는 것이다. 경실련은 개정안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사항을 요구하는 바이다.
첫째, 새누리당은 개정안 상정과정과 내용상에 문제가 있었음을 시인하고 국민 앞에 사과해야하며, 합의문의 원칙에 기초한 대안법안이 새로이 발의되도록 적극 협조해야 한다. 앞서 지적하였듯이 개정안은 비정규직과 파견직을 확대하고, 고용보험의 사회안전망 역할과 구직자들의 재취업 동기부여를 약화시키며, 고질적인 근로문화 개선을 유예하는 등 노동환경을 악화시키고, 한국경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판단된다. 문제조항들은 대안법안에서 반드시 삭제되어야 하며, 삭제조항은 모두 원점에서 합의절차 준수를 전제로 재논의 해야 한다.
둘째, 비정규직 문제를 완화하기 위한 구체적 방안이 논의되어야 한다. 우선적으로 합의문에 추가논의과제로 되어 있는 비정규직 사용제한·차별신청대리권·비정규직 퇴직급여 등에 대하여 논의의 장을 마련하여 조속한 시일 내에 실효성 있는 법안을 마련해야 한다. 경실련은 비정규직 문제 논의의 기본원칙으로 ① 더 이상의 고용형태 분절과 비정규직 양산을 억제하고, ② 기간제 노동자·파견노동자·특수고용형태 노동자 등 모든 노동자가 노동자성을 인정받고 보호받으며 고용안정을 기하며, ③ 동일한 노동을 수행하는 근로자가 차별받지 않을 실효적인 개선방안을 마련할 것 등을 제시한다.
셋째, 국회차원에서 고용안정성을 제고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제 정부는 합의문 도출과정에서 핵심쟁점사항으로 떠올랐던 일반해고와 취업규칙변경요건 완화를 가이드라인이나 지침으로서 연내에 도입을 추진할 예정이다. 만일 정부의 의지대로 두 사항이 시행될 경우 노동자들의 고용안정성은 크게 저해될 것이다. 일반해고와 취업규칙변경요건 완화는 반드시 저지되어야 하나, 만에 하나 강행될 것을 대비하여 국회차원에서 고용안정성을 강화할 수 있는 법안을 반드시 마련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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