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 연합뉴스 2012-11-15
<프로필> 장더장 中상무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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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베이=연합뉴스) 류성무 특파원 = 조선어(북한어)가 유창한 중국 내 대표적인 '북한통'이다.
장더장(張德江, Zhang Dejiang·66)은 중국 옌볜(延邊)조선족자치주에 있는 옌볜대학에서 조선어를 전공한 뒤 평양의 김일성종합대학 경제학과에서 유학 생활을 했다. 그가 출세 가도를 달린 것도 조선어를 공부한 인연 때문이라는 평가가 있다.
장쩌민(江澤民)이 총서기 취임 이듬해인 1990년 첫 해외 여행지로 북한을 선택했고, 이 방북 일정을 수행한 것이 계기가 돼 장쩌민이 이끄는 상하이방(上海幇)의 '성골' 구성원으로 자리 잡았다.
장더장은 북한에서 유창한 이북 사투리를 구사해 장쩌민의 호감을 샀다. 당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대학 후배인 장더장에 대한 관심을 장쩌민에게 직접 부탁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일의 생전 방중 때도 영접을 도맡았다.
그는 장쩌민 수행 방북 직후 옌볜조선족자치주 서기와 지린(吉林)성 당서기로 중용됐다.
장쩌민의 각별한 관심 탓에 '장쩌민의 아들'이라는 의미의 '장더장(江德張)'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지금도 장쩌민을 보필하는 일에는 누구보다 열심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지린성 당서기에 이어 저장(浙江), 광둥(廣東)성 당서기로 잇따라 영전했다. 일각에서는 올해 초 터진 보시라이(薄熙來) 사건의 최대 수혜자가 장더장이라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보시라이 사건 직후 부총리와 충칭(重慶) 당서기직을 겸임해 어수선해진 충칭을 빠르게 안정시킨 것이 상무위원 진입의 발판이 됐다는 것이다.
공직 생활과정에 시련도 있었다. 광둥 당서기 시절인 2000년대 초반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사태가 터지면서 초기 대응실패 등의 책임을 추궁당해 정치적으로 퇴출당할 뻔한 위기를 맞기도 했다.
광둥 당서기 재직시절 각종 농민 시위 등에 대한 무장 진압 등으로도 악명이 높았다.
지난해 7월 저장성 원저우(溫州) 고속철도 사고 때는 장더장이 교통 분야를 총괄하는 부총리 신분이어서 구설에 올랐다.
북한과의 인연 탓에 장더장이 앞으로 한반도 관련 문제에 대해 큰 목소리를 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다음은 주요 경력.
▲1946년 랴오닝(遼寧)성 타이안(台安) 출생 ▲1990년 옌볜조선족자치주 서기 ▲1995년 지린성 서기 ▲1998년 저장성 서기 ▲2002년 광둥성 서기 ▲2008년 부총리 ▲2012년 부총리 겸 충칭시 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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