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사전 설명 없이 이런 말을 들으면 보통 사람들은 뭘 생각할까?
경험상 사람들은 보통 대일 밴드, 혹은 칼라 밴드를 생각한다. 그리고 약간 국어공부를 많이 한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밴드라는 건 하는 게 아니라 붙이는거야! 바보녀석.."
그리고 '리허설' , 혹은 '무대' 뒤에 '밴드'라는 말을 다시 붙이면 '아!' 하는 말과 함께 '딴따라!!' 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보통 같은 나이대에서는 그나마 폼이라도 나지만 말을 듣는 연령대가 높아질 수록 '딴따라' 라는 말에는 무시, 그리고 한심하듯 바라보는 눈빛이 뒤따른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은 아니다. 80년대 후반, 아니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밴드라는 것은 공부를 포기한 사람들이나 하는 짓, 혹은 사회분위기 파악 못하고 하는 딴따라짓, 또는 캬바레 등에서 반주하는 사람들을 뜻했으니 말이다.
시대가 변했다고 해도 우리나라에서 음악을 한다는 것은 여러 면에서 곱게 봐지는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음악을 업으로 삼지 않는 한에서는 정말로 완고하지 않은 부모라고 하면 대부분 자식이 대학에 다닐 때 밴드에서 악기를 배우고 어설프게나마 몇번의 공연을 하는 것을 눈감아준다. 어떤 부모님들은 적지 않은 돈을 들여 자식들에게 기타나 베이스, 혹은 드럼까지도 사주곤 한다. 우리 나라 중,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에 스쿨 밴드가 우후죽순 생겨나기 시작한 것은 90년대 중반 이후로 생각된다. 여전히 좋은 환경은 아니지만 어쨌든 그만큼 밴드를 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밴드라는 것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생겨나는 것은 기분좋은 일이다.
그리고 성진대학교 소극장에서는 생겨난지는 얼마 안되었지만 실력있는 신입생들의 영입으로 학교내에서 최고의 실력을 가진 락밴드로 부상한 밴드 '개츠비' 가 내일의 정기공연을 대비해서 한참 리허설 중이다.
2. 개츠비
딜레이를 잔뜩 건 일렉 기타 사운드가 아직 텅 빈 공연장에 울려퍼진다. 한참 솔로중인 기타리스트의 피킹이 힘에 넘친다. 다소 박자는 맞지 않는 듯하지만 역시 드러머의 리듬 키핑도 힘차게 기타와 보조를 맞추고 있다. 세컨 기타는 배킹을 하면서 주변을 돌아보고 있다. 뭔가를 생각하는 듯 자꾸 솔로중인 기타를 바라보고 있는 키가 큰 베이시스트는 밴드 내에서 가장 잘생긴 듯 하다. 신나게 연주하는 다른 네명과 달리 보컬은 길게 이어지는 기타 솔로가 지겹다는 듯이 마이크선을 길게 빼며 무대에서 내려와 맨 앞 객석에 앉는다.
"보컬리스트 무대로 올라가주세요. 하울링납니다."
같은 나이의 무대 엔지니어가 아래로 내려온 보컬을 지적하며 무대로 올라가길 권한다. 음향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보컬은 자신의 마이크가 메인스피커 쪽으로 향해 있는 것도 모르고 막 엔지니어를 향해 화를 내려고 하는 참이다. 혼자 무안해져서 무대로 올라간 보컬은 기타솔로가 끝난 줄도 모르고 괜히 열심히 연주하고 있는 베이시스트의 머리를 한대 친다.
"박자좀 맞춰 박자! 에잇~"
"윽...이게 미쳤나. 노래 안부르냐?"
보컬의 입에서 다시 노래가 흘러나온다. 내일의 공연을 의식한 듯 언뜻 봐도 대충 부르고 있는 것이 눈에 띈다. 다른 멤버들의 눈이 보컬의 등을 향한다. 곱지 않은 시선을 의식한 듯 보컬이 그들을 바라보며 미소를 짓는 듯 하더니...두손으로 브이를 그린다.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나머지 멤버들은 그냥 연주에만 열중한다. 다시 엔지니어의 말이 보컬의 귀에 들려온다.
"보컬...컨디션 조절하는 건 좋은데 믹서 밸런스를 맞춰야 되니까 되도록이면 공연때처럼 좀 불러주세요."
표정이 바뀌면서 짜증을 내는 보컬...마이크를 빙글빙글 돌리자 다시 시끄러운 하울링이 공연장을 가득 채운다. 놀라서 마이크를 바로잡은 채 크게 노래부르는 보컬...갑자기 힘조절을 잘못한 탓에 그만 고음부에서 삑사리가 나고 말았다. 뒤에서 다른 멤버들이 킥킥대며 웃는다.
마지막 곡 Rising force가 투기타의 화려한 라스트로 끝을 맺고(원래는 키보드와 기타의 앙상블이지만 오늘 키보드가 오지 않았다.) 그날의 리허설은 끝이 났다. 벌써 시간은 저녁 9시가 넘어 있었다. 두 팀은 신입생 팀으로 세 곡, 두 팀이 다섯곡씩 구성된 이번 정기공연은 97년 개츠비가 생겨난 이후 가장 실력이 좋은 팀들로 구성되었고 교내에서 인지도도 높아진 터라 선배들에게나 공연을 준비하는 자신들에게나 여러 방향으로 기대가 높았다.
리허설을 마친 그들은 각자 아무데나 걸터앉았다. 리허설을 마친 네 팀 중에서 방금 리허설을 마친 팀 다섯 명은 무대에 둥그렇게 모여앉아 기타는 앰프를 만지고 있고 나머지는 엔지니어가 틀어주는 다른 팀의 리허설 곡을 모니터링하고 있다. 방금까지 베이스를 만지고 있던 영식이 입을 연다.
"아움...계속 리허설만 했더니 배고프네...근데 철승아...아까 스탠드인 라인 박자 안맞었던거...알지? 넌 왜이렇게 투베이스는 잘밟는 놈이 진짜 기본박에서 박자가 나가냐.."
"에휴...뭐 하루이틀도 아니고...그냥 공연만 잘 마치면 되지 뭐..어차피 그곡은 기타니까.."
앰프를 만지고 있는 퍼스트기타 수민을 향해 보컬 석수가 말한다. 머리를 긁적이던 드러머철승은 주머니를 뒤적이며 메트로놈을 꺼내 이어폰을 끼고 박자를 맞추기 시작한다.
"쿵쿵짝..쿵짝쿵짝...에고...메트로놈으로 맞춰볼땐 맞는데..."
"흠...대충 이큐는 맞는데...왜이렇게 중음이 센거야..."
다른 사람들의 말을 한귀로 흘리며 앰프를 만지던 수민이 고개를 갸웃한다. 메인스피커에서는 자신들 전 팀의 곡이 흘러나오고 있다. 앰프에서 떨어진 수민은 멀리 하우스에서 녹음된 곡들을 틀며 쉬고 있는 엔지니어 성진을 향해 크게 소리지른다.
"성진아! 어차피 지금 틀고있는 팀애들 다 갔으니까 우리 곡이나 좀 틀어줘! 기타소리가 좀 이상하게 뽑히는 거 같애!"
잠이라도 자고 있는지 성진은 의자에 길게 누워 움직이지 않고 있다. 그것을 보고 다시 좀더 앰프를 만지작거리던 수민은 나오던 음악이 완전히 멈추자 짜증난다는 투로 그에게 걸어간다. 나머지 멤버들은 여전히 잡담을 주고받고 있다.
"우리땐 안이랬는데 말이야..."
메트로놈으로 한참 박자를 맞추던 철승이 석수의 말에 귀에서 이어폰을 뺀다.
"뭐가?"
"빙신아 넌 박자나 맞추고 있어.."
"호...내가 말을 안해서 그렇지 너 음정은 맞는줄알어? 클라이막스에서 고음처리도 어설픈 놈이 왜 괜히 남은 트집잡고 난리야."
"이자식...난 어디까지나 리허설을 고려한 컨디션 조절이었단 말이다!"
"허허...웃기네. 담배나 좀 끄고 이야기하지?"
둘의 소모적인 대화를 듣던 영식이 석수의 이야기를 잇는다.
"진짜 우리땐 안이랬는데....어떻게 선배들이 리허설하고 있는데 1학년들이 다 가버릴 수가 있냐.."
"그러게 말이야...짜증밖에 안난다...에고..."
"딴건 다 좋은데...보컬이 뭐 1학년한테 딸리니...애들이 선배들을 우습게 볼수밖에 없지~"
약올리는 듯한 철승의 말에 석수가 발끈한다.
"아 시끄러! 내일 보여주면 될꺼 아니야. 내가 언제 공연끝나고 욕먹은적 있어?"
"칭찬받은 적도 없잖아~ 헤헤."
"어쭈구리? 그러는 너는 칭찬받은 적 있냐!"
둘은 팀에서 가장 친한 사이지만 항상 으르렁대는 사이기도 하다. 그들이 그렇게 친해지고 그러면서도 서로 할말 안할 말 다하게 된 계기는 아마도 그들이 오늘 오지 않은 키보드까지 합쳐 여섯명의 팀 구성원 중에서 가장 실력이 떨어지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석수는 밴드의 얼굴인 보컬이기도 하지만 액션 빼고는 딱히 보컬로서 눈에 띌 만한 재능이 없는 녀석이었고 철승도 잘하는건 어설프게 드럼 시작하면서부터 배운 투베이스 뿐 기본적인 박자감이 많이 떨어지는 드러머였다.
한마디로 자기들이 1학년 2학기때 만들어진 이후 2학년 1학기인 지금까지 1년 가까이 계속되어진 팀에서 둘다 나머지 팀원들의 실력 때문에 어떻게든 끌려가고는 있지만 자신들 실력 이상의 곡들로 인해 많이 힘들어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나저나...진짜 유진이 오늘 안왔네..."
걱정스러운 듯 기타를 만지작거리면서 입을 여는 세컨기타 병채...솔로가 뛰어나지만 배킹이 약한 퍼스트기타 수민에게 솔로는 거의 내주지만 그러면서도 베이시스트 영식과 함께 언제나 밴드의 사운드를 든든히 받쳐주는 개츠비 내 리듬기타의 최강자였다.
"에휴..나도 몰라...그렇다고 진짜 안오는건 또 뭐냐."
"그나저나 어떻게 되는거야. 내일 공연은..."
베이스를 닦던 영식이 석수와 철승의 말에 고개를 들며 조용히 말한다.
"키보드 없으면 없는대로 대충 때워야지...뭘 어떻게되긴 어떻게 돼...이상한 소리 하지말고..조용히 좀 하면 안돼?"
영식의 조용하면서도 단호한 말에 석수와 철승은 썰렁해진다. 병채는 그들을 바라보다 습관대로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무대에서 내려가 하우스를 향해 걸어가고 있는 수민이 보였다. 엔지니어 성진은 뭘 하고 있는 건지 하우스에 엎드려 있다. 수민이 아까 크게 불렀던 것 같은데...아마 잠이라도 자느라 못들었나보다. 사실 공연 때에는 연주하는 사람들도 피곤하지만 가장 피곤한 사람은 시스템을 설치하고 음향을 보는 엔지니어이다. 공연 사운드가 안좋았다거나 시끄러운 하울링이 많이 들렸다거나 하는 것은 대부분 연주자들의 잘못인 경우가 많은데도 사람들은 곧잘 엔지니어 탓을 많이 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수민은 천천히 성진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아까부터 멈추지 않고 울려오던 모니터링용 엠피3는 자신들의 바로 전 팀 곡이 끝난 뒤 멈춰 있었다. 병채는 그런 수민을 바라보았다. 뭐가 문제인지 병채의 마음속에서 이상한 불안감이 몰려왔다.
시간은 저녁 9시 45분을 향해 가고 있었다.
3. 모니터링
"야! 야! 박성진! 일어나! 뭐하는거야. 집에 가서자!"
한참동안 믹서와 옆에 놓인 컴퓨터를 이것저것 뜯어보고 있던 수민은 아무래도 녹음된 mp3를 어떻게 트는지 알 수 없는지 집에가서 자라는 핑계로 엎드려 있는 성진을 깨우고 있다. 한참동안 깨워도 일어나지 않던 성진이 눈을 비비며 부시시한 모습으로 일어난다.
"으응? 하암...내가 언제 잤지..."
"피곤하면 집에 가서 자야지 임마...어제 밤새도록 뭘했길래 하루종일 굴러다니냐?"
"아...이것저것 준비 좀 하느라고...그동안 운전면허 시험 때문에 공연준비를 제대로 못했거든..."
수민은 성진을 보았다. 언제나 부시시한 눈빛이고 뭐가 그렇게도 자신감이 없는지 매일 허리를 숙이고 다니는 성진이지만 지독한 스트레스를 받는 엔지니어치고는 항상 성격좋고 착한 녀석이다. 또한 대학생치고는 공연 음향을 보는 능력도 뛰어난 편이어서 몇몇 업체에 원서를 내놓은 지금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도 들었다. 자신도 기타를 좋아하지만 업으로 삼을 생각은 없었다. 따라서 자신이 원하는 음악을 향해 한걸음한걸음 옮겨가고 있는 성진이 부러울 때도 있었지만 가끔은 시기심이 들 때도 있었다. 그렇지만 언제나 이녀석의 좋다못해 바보같은 성격을 볼 때면 그런 마음은 눈녹듯 사라지곤 했었다.
"그나저나말이야...우리 모니터링 mp3...녹음 안됐냐?"
"응? 됐는데..어...꺼졌네..."
계속 공연장에 울려퍼지던 음악이 꺼진 뒤 20분 정도가 지났다. 무대에 있는 조명 뿐이라 그다지 밝다고만은 할 수 없는 공연장은 무대에서의 멤버들의 잡담과 하우스에서의 수민과 성진의 대화를 제외하면 지나치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의 정적에 싸여 있었다.
"음...너무 조용하다. 무대로 가서 기다려. 그나저나 아까 니 기타소리 좀 무겁더라?"
"엉...그래서 너한테 아까 나오던거 끄고 우리거 틀어달라고 말했는데 자고 있더라구...앰프좀 다시 만지다 보니까 아예 꺼졌길래 너한테 온거야. 자고 있다니..."
"알았어. 가서 기다려..."
수민은 무대로 돌아온다. 그런 그들을 계속 바라보고 있던 병채가 수민에게 말을 건다.
"뭐래? 왜잤대?"
"어제 밀린 공연준비하느라 잠을 설쳤다는데..."
"엔지니어가 연주하는 것도 아니고 공연준비하느라 잠 설칠건 뭔데?"
불만스러운 듯한 석수의 말에 영식이 대답한다.
"엔지니어도 이곡저곡 들어보고 하우스에서 어떻게 조절해야될지 생각해야 될꺼 아니야. 너는 보컬이 뭘믿고 그렇게 무식하냐?"
"쳇...노래만 잘하면 되지..."
"노래도 못하니까 문제지..."
"뭣!"
비꼬는 듯한 철승의 말에 다시 석수가 발끈한다. 멀리서 성진의 소리가 들려온다.
"다됐으니까 이제 들어봐. 잠자서 미안!"
대화를 멈춘 그들은 조용히 나오는 자신들의 첫곡 스탠드 인 라인에 귀를 기울인다. 힘찬 기타리프와 드럼의 심벌소리와 함께 시작되는 곡이다. 키보드 부분은 병채가 쳤다. 첫부분은 그다지 나쁘지 않지만 역시나 약간 무거운 기타소리에 수민이 귀를 기울인다. 그때...
~~~삐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
"으윽!"
연주하면서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시끄러운 하울링 소리가 울려온다. 귀를 찢어버릴 듯 파고들어오는 시끄러운 소리에 다섯명의 멤버 모두 두손으로 귀를 틀어막는다. 영식이 소리쳤다.
"뭐야 이거! 성진아! 왜이래!"
"어....이거 왜이래...아까 석수가 낸 하울링 아냐?"
"아 이런 등신새끼! 하여튼 도움이 안돼!"
철승의 고함소리에 석수가 소리질렀다.
"어쨌든간에 왜이래! 좀 어떻게 해봐! 그러고보니까 이거 내가 한거 아니야! 아까 내가 객석으로 내려왔을 땐 기타솔로중이었단 말이야!"
석수가 낸 하울링이 녹음된 것 같지는 않다. 그럼에도 어디서 새어들어왔는지 모를 하울링이 계속 공연장에 울려퍼졌다. 당황한 성진은 엠피3를 껐지만 아무래도 메인 시스템으로 연결된 스피커 사이에 피드백이 걸렸는지 하울링은 끊기지 않고 계속 울려퍼질 뿐 아니라 점점 커져가고 있다.
~~~~삐이이이이이익~~~~~~
"뭐야 이거! 왜이래!"
성진은 마스터볼륨을 0으로 조절하고 믹서의 모든 게인을 최소한도로 조절했다. 그렇지만 망할놈의 하울링은 끊기지 않고 계속되었다. 아무래도 메인스피커와 모니터스피커 사이의 피드백이 원인이라고 생각한 성진은 무대로 달려가 파워앰프의 스위치를 내려버렸다.
~~~~~삐이이이이이
하울링이 멈췄다. 한숨을 내쉬며 무대에 있던 멤버들은 귀를 틀어막고 있던 손을 천천히 내렸다. 아까까지 계속 시끄러운 소리가 귀를 파고들고 있었던 터라 멍한 그들의 귀에 아직까지 삑삑거리는 하울링의 환청이 들려오는 듯 했다. 석수가 날카롭게 소리질렀다.
"왜이래! 엔지니어가 이따위로 시스템 관리해도 되는거야!"
"엔지니어 잘못이 아니야. 연주중에 이상한 신호가 잡혀들어가서 저장되면 재생중에 그런 소리가 날 수도 있어."
영식이 석수에게 말했다. 베이스를 맡고 있던 영식은 베이스 실력이 뛰어날 뿐 아니라 여러 모로 음악에 대한 지식이 쌓여 있었고 어느 정도 음향지식도 가지고 있었다. 석수와는 대조적인 인물이라고 볼 수 있었다.
어쨌든 아까까지 공연장을 가득 채우고 있던 하울링이 멈춰 있었고 영식이 석수를 달랜 이후 아무도 말을 꺼내고 있지 않았던 터라 공연장은 암흑같은 적막뿐이었다. 성진은 뭐가 잘못됐는지 보기 위해 다시 하우스로 돌아가 열심히 컴퓨터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병채는 시계를 보았다. 시간은 벌써 10시 11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슬슬 집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하며 병채는 스탠드에 세워져 있던 기타를 집어들었다. 기타를 들면서 고개를 드는 병채앞에 누군가 서있었다. 깜짝 놀라며 고개를 드는 병채, 눈앞에는 아까 소리를 질렀다가 역시나 무안만 당했던 석수가 서있었다.
"뭐야 임마. 기타드는게 불만이냐? 집에 안가냐?"
"저...저기....말이야...."
"뭐야..."
의아하게 여긴 병채가 고개를 들어 석수의 눈을 보았다. 아까까지와 달리 석수의 눈빛이 이상하다.
"뭐야...왜이래?"
"이상한...소리...안들리냐?"
"무슨 이상한 소리?"
"잘들어봐....젠장...."
병채는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정말 어디에선가 이상한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까의 하울링과도 비슷한 소리였지만 약간 더 낮았다. 스피커는 껐는데 왜? 점차 소리가 커져가고 있었다. 그 소리는...
........흐흐흐흐흐흑...으흐흐흐흐흐흐흐...
어디선가 울려오는 희미한 알 수 없는 여자의 흐느낌...병채의 가슴 속에서도 스멀스멀 알 수 없는 공포감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석수를 바라보았다. 석수의 눈빛역시 떨리고 있었다. 다른 멤버들도 그 소리를 눈치채기 시작한 것 같다. 하나 둘 자리에서 일어나는 다섯 명의 멤버들..
"이게..무슨 소리야..."
"성..성진아! 시스템이 무슨 문제있어?"
시스템상의 문제가 아닐까 하고 영식이 엔지니어에게 소리질렀다. 다른 멤버들의 눈도 성진을 향했다. 성진은...그자리에 쓰러져 있었다. 아까처럼 잠을 자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예 하우스 옆에 쓰러져 기절해 있었다. 그의 입에 물려 있는 게거품이 부글거리며 그들의 눈앞으로 다가오는 듯했다.
그들의 눈에 기절한 성진이 비춰지는 순간 희미하게 들려오던 흐느낌이 그들에게 갑자기 입체적으로 다가왔다.
...흐흐흐흐흐흐흐흐흐....흐흐..히히히..히히히...끼히히히히히히.......
기하급수적으로 커져서 아까의 하울링처럼 그들의 귓속을 파고드는 울음 소리는 어느 순간부터 갑자기 끔찍한 웃음 소리로 변하였다. 견딜 수 없는 날카로운 소리에 귀를 막으면서도 경악으로 눈을 크게 뜨는 그들의 눈에 객석 맨 뒷편에서 천천히 형체를 갖추어가는 어떤 모습이 보였다. 흐릿한 중에서도 그것의 끔찍함은 그들의 뇌리에 깊게깊게 각인되어가고 있었다.
길게 풀어헤친 머리를 앞으로 숙인 채 두 손을 앞으로 내밀고 있는 어떤 여자의 모습...그리고 누렇게 변해버린 채 조금씩 붉은 점이 찍혀 있는 원피스...그 형체가 뚜렷해짐과 동시에 아까의 하울링과 비교도 할 수 없는 엄청난 소리가 그들의 귀를 강타했다.
.....캬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으악!"
모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끔찍한 웃음소리가 미친 듯이 귓속을 헤집고 있었고...완전히 형체를 갖춘 그것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객석에서 그들에게 손을 내민 채 고개를 숙이고 천천히 다가오고 있는 여자의 모습이 보였다...하나하나 고개를 떨구며 정신을 잃어 갔다. 수민이 쓰러지고 마지막까지 정신을 차리고 있던 영식의 눈에 무대 앞까지 다가와 천천히 다리를 올리는 여자의 젖은 머리카락이 보였다.
첫댓글 혹시 impellitteri 의 "stand in line"..??제일 좋아하는 노래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