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1월 24일 토요일 정자리에 있는 할아버님의 묘역에서 시제가 있었습니다.
시제에 참가하는 제관중 매년 보는 같은 얼굴들을 보면서 이분들이 내년, 후년에도 계속 건강한 모습으로 참가하여야 할텐데...하는 걱정이 됩니다.
올해는 예년에 비해 참가자는 많지 않았지만 그래도 주변에 사는 젊은 청장년층이 몇명 참가하여
보기 좋았던것 같습니다.
사진으로나마 조상님의 음덕을 기려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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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제 시작입니다. 초헌관을 맡으신 분은 현남면 노인회장이신 병록님이시며 분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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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헌입니다. 좌우집사에는 가두둑댁 병도님과 짐송골댁 재환님(등보이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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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축입니다. 축문은 가두둑댁 병도님이 읽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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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헌입니다. 아헌은 달래댁 병주님이 하고 계십니다.
달래댁에서는 매년 토지를 임대하는 대신 시제 음식을 준비하여 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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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헌입니다. 종헌관은 2008~2009년도 영동종친회장으로 선임되신 병덕님이 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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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헌 후에 진설된 제물을 찍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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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시입니다. 수저를 걷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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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제가 끝나고 음복 준비를 하고 계시는 아주머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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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복시간 입니다.
예년에 비해 참석자가 많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같은 시간 열리는 작은새말댁 28세 휘 하시(夏時)공 시제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그래도 50대 이하의 청장년층이라고 할수 있는 길환. 유철. 재석. 철환 등 몇몇 분이 나와서 그나마 위안이 조금 됩니다.
봄가을 시제철이 되면 몇일에 한번씩 시제가 열립니다.
사실 죽리에 사는 분들이 아니고 직장에 다니고 원거리에 있는 분들은 참가하기가 수월하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우리 죽동파의 중흥조라 할 수 있는 할아버님 시제가 너무 초라한게 아닌가 하는 마음을 계속 지울 수 없었습니다.
총무를 수십년 맡아온 병도님의 말씀으로는 과거에는 죽리에서 열리는 시제중 가장 참석자도 많으며(보통 100명 정도는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제수도 어마어마하게 차렸다고 합니다. 이 할아버님 시제에는 어린 아이들 까지 묘소에 몰려와 요란을 피우곤 했는데 아마 마을 전체가 축제의 공간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아무리 바쁘고 시간이 없더라도 주말에 열리는 시제에 한두번은 참가하여 후손된 도리를 다하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같은날 28세 가선대부 휘 하시(夏時)공 시제와 문중에서 수백년간 봉사하여 오고 있는 이참사공에 대한 시제가 있었습니다.
<외손 봉사하는 이참사공에 대한 유래는 선조자료의 이참사공편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