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뉴욕 9.11테러 폭발 추모공원
아주 큰 비극의 현장에 왔다. 2월 스산한 날씨에 스산한 풍경이 눈앞에 있다. 9월 11일 441m와 445m 두 개의 빌딩이 폭격을 맞아 사라진 것이다. 사망자 3600명, 실종자 몇 천명 그들의 슬픔이 고여 눈물로 흐른다. 그 빌딩이 있었던 곳에 거대한 사각틀을 마련해 좋고 그들의 이름도 난간에 새겨좋고 물이 흘러 지하로 내려간다.하얀 날개의 천사 빌딩도 있다.그 건물은 지하철 역인데 천사가 죽은자들의 영혼을 데리고 지하로 간다는 형상으로 건설된 건물이다. 남쪽 빌딩과 북쪽 빌딩 두 곳에 공원이 있다. 여기서는 웃거나 V자 승리 표시를 하며 사진 찍으면 절대 안 된다. 추모해야 된다. 20분 간격으로 폭격 당했다. 왜 폭격을 못 막았는지 의문이며 아직도 논란 중이란다. 그날 그 빌딩에 근무하는 유대인들은 출근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것도 이상한 일이란다. 지금은 테러가 나면 뉴저지로 금래 이동하도록 설계 되었단다. 그 당시 주변 건물 등 모두 무너지고 쓰러졌는데 남쪽 건물 곁의 나무 두그루가 죽지 않고 살았단다. 이식 보존해서 지금도 살았단다. 안내도가 북쪽 빌딩 자리 근처에 있다. 지금 보는 것 역시 북쪽 빌딩이 있던 곳이다.
9·11 테러는 2001년 9월 11일 미국 뉴욕의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과 워싱턴의 국방부 건물인 펜타곤에 벌어진 항공기 자살 테러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3000명이 넘는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미국이 본토 공격을 당한 것은 역사상 처음이다. 미국 안보 정책의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계기가 됐다. '미국의 역사는 9·11 테러 전후로 나뉜다'는 말도 나온다. 2001년 9월 11일 오전 아메리칸 에어라인 11 AA11편과 유나이티드 항공 175 UA175편, 이 두대의 여객기가 세계무역센터 건물과 충돌했다. 이 두 비행기는 각각 오전 7시 59분과 8시 14분 보스턴을 출발해 로스앤젤레스로 향하는 비행기로, 대륙 횡단에 필요한 연료를 가득 탑재하고 있었다. AA11편은 8시 14분께 5명의 납치범에게 납치당했다. 이들은 손칼로 승무원을 위협하기 시작했고 이들은 저항하던 일부 승무원과 이스라엘 특수부대 소속 남자 승객을 칼로 찌른 뒤 호신용 최루가스를 일등석과 비즈니스석에 뿌려댔다. 이후 조종사를 살해하고 조종석을 장악했다. 8시 42~46분 납치된 UA175편도 비슷한 방식으로 납치된 것으로 알려졌다. 보스턴 항로 관제센터는 AA11편이 항로에서 벗어나자 고도를 높이고 항로로 복귀할 것을 지시했으나 응답이 없었다. 그러다 납치범들이 내보낸 "아무도 움직이지 마라. 움직이면 너희들과 비행기가 위험해질 것이다. 공항으로 돌아가는 중이니 걱정말라"는 기내 방송이 실수로 관제센터로 전해졌고, 관제센터는 8시 37분 북미방공사령부에 피랍사실을 보고했다. 사령부는 전투기 2대를 출격시켜 '중간 차단'을 지시했으나 이미 비행기는 세계무역센터 직전에 있었다. AA11편은 오전 8시 46분 세계무역센터 북쪽 건물의 93층과 99층 사이에 충돌했다. 승무원과 탑승객 전원, 테러범 제외한 87명이 사망했다. 이어 9시 3분 UA175편이 북쪽 건물의 77층과 85층 사이로 충돌했다. 두번째 충돌 당시 첫번째 사고를 보도하기 위해 방송사 카메라들이 세계무역센터를 촬영하고 있는 상황이었고 CNN 등 방송 채널을 통해 UA175편의 충격적인 충돌 현장은 전세계에 생생하게 중계됐다. 언론사들은 첫번째 충돌까지만 해도 끔찍한 항공 사고 정도로 보도했으나, 두번째 충돌로 계획적인 테러임이 명확해졌다. 여객기가 건물에 충돌하자 10만 리터 가량의 항공유가 타면서 격렬한 화재가 발생했다. 충돌 지점보다 상층에 있던 사람들은 계단이 붕괴되어 대피로를 찾지 못했고 수많은 이들이 열기와 연기를 못이겨 건물에서 뛰어내렸다. 이러한 상황도 카메라를 통해 생중계됐다. 오전 9시 59분 세계무역센터 남쪽 건물이 먼저 무너졌다. 이어 10시 28분 북쪽 건물이 완전히 붕괴되고 이 잔해에 맞아 47층 높이인 세계무역센터 부속건물인 제7세계 무역센터 빌딩이 오후 5시 20분 33초경 붕괴됐다. 이외에도 주변의 다른 건물들도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당시 수많은 소방대원과 의료진이 세계무역센터로 모여 수십층을 걸어 올라가 영웅적인 구조활동을 벌였다. 그러나 이들 중 많은 수가 화재와 소음 등으로 붕괴 전 "건물이 붕괴되니 대피하라"는 무전을 듣지 못했고 343명이 목숨을 잃었다. 미 국방부 건물인 워싱턴 D.C.의 펜타곤에도 비행기가 충돌했다. 이날 8시 20분 워싱턴에서 출발해 로스앤젤레스로 향했던 아메리칸 에어라인 항공 77편은 8시 54분 항로를 180도 바꾸어 다시 워싱턴으로 향했다. 9시 3분 세계무역센터 남쪽 건물에 두번째 항공기가 부딪히고, 대규모 테러가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음에도, 연방항공당국은 36분이나 AA77편의 항로 이탈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9시 32분에야 항공당국은 펜타곤 주변으로 접근하고 있는 항공기를 발견했고, 비행기는 펜타곤 주위를 맴돌며 고도를 낮추다 9시 37분 46초경 워싱턴의 국방부 건물과 충돌했다. 충돌했을 때 비행속도는 시속 850km 이상이었고, 본체가 건물의 기둥을 부수어 대폭발을 일으켰다. 다행히 펜타곤은 낮고 넓은 특유의 구조와 테러에 대비한 구조적 설계 덕분에 비행기에 직접 부딪힌 피격 구간만 붕괴되었을 뿐 옆 구간의 연쇄 붕괴로는 이어지지 않아 피해가 적었다. 충돌로 펜타곤 직원 125명이 숨지고 항공기에 탑승한 64명이 사망했다. 유나이티드 항공 93편도 납치됐다. 이 비행기를 납치한 테러범들은 워싱턴 D.C.의 국회의사당을 목표로 한 것으로 추정된다. 승객들은 납치범들 몰래 가족들과의 연락을 시도했고 이 비행기가 자살 테러를 목적으로 납치된 것을 알아차렸다. 결국 승객들이 저항해 조종간을 빼앗으려 하다 10시 3분 11초경 피츠버그 동남쪽에 추락했다. 승객 전원이 사망했고 이들은 추가 피해를 막은 영웅으로 존경을 받고 있다. 이 테러로 세계무역센터에서는 26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죽었고 펜타곤에서는 125명이 죽었다. 4대의 항공기에 탑승한 승객 총 256명 전원이 사망했다. 뉴욕 소방관 343명, 뉴욕 경찰 84명, 뉴욕 항만국 직원 23명이 현장에서 사망했다. 이것은 미국 역사상 최악의 공격으로 꼽히며, 총 인명 피해 3130명은 진주만 공습의 사망자 2330명보다도 800명이 더 많다. 테러 직후 역사상 처음으로 미국의 전체 영공이 봉쇄됐다. 당시 미국 영공을 비행중이던 4200여 대의 모든 비행기를 강제로 착륙시키고 미국을 오가는 모든 국제 항공선도 차단됐다. 바다에서도 뉴욕항이 봉쇄됐고, 여객선과 화물선이 대피한 뒤 항공모항 전단이 입항했다. 전국에 비상휴교령이 내려졌다. FBI는 9.11 테러의 배후에 테러 단체 알 카에다를 지휘하는 오사마 빈 라덴이 있다고 발표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재벌 2세 출신인 빈 라덴은 1979년 알 카에다을 설립하고 1988년 무장조직으로 재정비했다. 그는 계속 미국에 대한 성전을 촉구했고, 알카에다는 1996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미국인을 대상으로 한 트럭 폭탄테러 사건, 1998년 케냐와 탄자니아의 미국 대사관 동시 폭탄테러 사건 등을 일으켰다. 1998년 사우디아라비아가 미국의 압박에 그의 시민권을 박탈한 이후 탈레반 정부의 보호 아래 아프가니스탄에 은신했다. 오사마 빈 라덴은 거듭 9·11 테러가 자신들의 소행이 아니라고 주장해왔으나 2004년 10월 알자지라 방송을 통해 인정하고 자신이 직접 19명에게 공중납치를 지시했다고 밝혔다. 그는 1982년 6월 이스라엘 공군의 폭격으로 베이루트 고층 빌딩이 붕괴하고 무고한 희생자가 발생하는 상황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밝혔다. 테러 이후 오바마 빈 라덴은 은신하며 10년 간 미국 FBI, CIA의 추적을 따돌렸다. 빈 라덴은 파키스탄 북서부 아보타바드 내 한 시설물에 은신해 있던 오사마 빈 라덴은 미군 특수부대에 의해 사살됐다. 2011년 5월 1일 오바마 대통령은 "미군 공격에 의해 오사마 빈 라덴이 사망했다"라고 공식 발표했다. 이렇게 죽음과 죽음이 이어지는 참혹한 비극의 사건이 막을 내렸지만 어찌 그날을 잊겠는가.
주변에는 높은 빌딩들이 오롯하다. 뉴욕 도심에서, 유람선에서 보았던 우람한 건물들이다. 다시 복구하기도 하고, 다시 건설하기도 하고, 여전히 고층 빌딩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을 삼킨 건물은 온데간데 없는데 그날처럼 처연하게 자리한 빌딩들이 슬픈 공간을 메우고 있다. 바라보는 이방인의 눈도 서러운데, 그날을 본 이곳 시민들은 얼마나 서러울까. 공원 한쪽에는 눈이 하얗게 쌓여 슬픔을 더해준다. 바람도 볼을 차갑게 스친다. 저 분들만큼 추울까 싶어 모두 잠잠하다. 가족들은 꽃 헌화하기도 하고 숙연한 분위기로 추모 기념공원을 맴돌고 있다. 나 역시 그들의 명복을 빌었다. 다시는 지구상에서 이런 비극이 없기를 간절히 빌었다.
추모공원 주변 빌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