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계에 이런 말이 있다. ‘폼은 일시적이지만, 클래스는 영원하다.’ 리버풀을 위대한 축구클럽으로 이끈 위대한 감독 빌 샹클리가 남긴 말이다.
리버풀이 축구계를 호령하던 시기, 캐딜락 역시 자동차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그 정점은 엘도라도. 당대 최고 스타로 꼽히는 엘비스 프레슬리가 선택한 차였으니, 당시 캐딜락 위상을 짐작케 한다.
이후 부침을 몇 번 겪었으나, 캐딜락은 여전히 건재하다. 오늘 시승할 차는 캐딜락의 기함 CT6다. 트림은 스포츠, 플래티넘, 스포츠 플러스 3가지 중 가장 기본인 스포츠다.
상위 트림과 비교해 외관 차이는 크지 않다. 최상위 스포츠 플러스가 20인치 휠을, 스포츠가 19인치 휠을 신었다는 점을 제외하면 다른 점을 찾기 어렵다. 그릴과 곳곳을 번쩍번쩍한 크롬으로 장식해 럭셔리함을 강조한 플래티넘에 비하면, 검은색 매쉬 그릴을 사용한 스포츠의 이미지가 한층 차분하고 스포티해 보인다.
최근 부분 변경을 거치며 헤드램프와 리어램프는 보다 세련된 형태로 변했다. 콘셉트카 ‘에스칼라’의 영향을 받아 수평적인 이미지를 더한 덕분이다. 작은 변화지만 지난 4년의 시간을 말끔히 벗겨냈다.
실내는 프리미엄 브랜드의 F 세그먼트 세단 치곤 고급감이 다소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디지털 계기반과 기어봉 뒤 인포테인먼트 조작부를 추가해, 편의성을 개선한 점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스티어링 휠 일부와 도어트림, 대시보드에 폭 넓게 쓰인 ‘진짜’ 카본 소재는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는다.
감상은 뒤로하고 심장을 일깨운다. V형 6기통 3.6리터 엔진이 묵직한 고동과 함께 깨어났다. 그 소리가 좋아 가속 페달을 밟아 RPM을 살짝 띄웠다. 엔진음과 함께 부드러운 회전질감이 전해진다. 최근 터보로 무장한 4기통 엔진이 출력은 따라잡았어도, 이 소리와 회전질감은 도저히 흉내내지 못할 영역이다.
기어레버를 당겨 움츠린 몸뚱이를 일으킨다. 최고출력 334마력, 최대토크 39.4kgm의 힘은 1,874kg에 이르는 무게를 가볍게 밀어낸다. 직접 운전대를 잡는 입장에선 기함치고 가벼운 몸놀림에 당황스럽기도 하지만, 경쾌한 움직임이 내달리는 쾌감을 느끼게 한다.
요철이 많은 구간을 지나도 승차감은 시종일관 나긋하다. 지면을 꾹꾹 눌러가며 달리는 묵직함이 고급스럽다. 충격을 머금으면 너울대는 움직임에 코너링이 불안할 법하지만, 앞뒤 245/45 R19 사이즈의 굳이어 이글 투어링 타이어는 지면을 놓치는 법이 없다. 브렘보 브레이크는 큰 덩치를 멈춰 세우는데 부족함이 없다.
그러나 연속되는 코너에서 약점을 드러낸다. 상위 트림에 달린 마그네틱 라이드 컨트롤 서스펜션이 스포츠 트림에선 빠진 탓이다. 부드러운 서스펜션은 급격한 하중이동에 약점일 수밖에 없다.
시승을 늦게 시작해 어느새 노을이 지기 시작했다. 허기가 져 송도에 유명 맛집으로 발길을 옮기는데 아뿔사, 퇴근시간 러시아워에 겹쳤다. 차라리 여유로운 마음으로 음악 감상이나 하자 싶어 볼륨을 높였다. 이와 함께, 하위트림에 설움도 함께 커졌다. 상위 트림은 34개 스피커를 울리는 보스 파나레이 사운드 시스템을 얹은데 반해, 시승차는 고작 스피커 10개를 품은 보스 프리미엄 사운드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반전은 여기서 시작이다. 스피커 10개만 울리는 소리가 이토록 좋을 줄은 몰랐다. 공간을 가득 채우는 소리는 CT6 실내를 작은 재즈바로 만들어 버린다. 볼륨 높낮이에 영향을 받지 않는 선명한 해상력과 둥둥거리는 베이스는 몸에 전율을 일으키기 충분하다.
식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노곤함이 몰려온다. 반자율 주행 기능을 켰다.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은 앞차와 간격은 잘 유지하지만, 차선은 벗어날 즈음에만 도움을 준다. 스티어링 휠을 쥔 손에 힘을 뺄 수 없음이 야속하다. 반자율 주행 기술에 있어 GM은 업계의 실력자다. 부디 다음엔 ‘슈퍼 크루즈’를 탑재해주길 기대한다.
선수단을 젊게 쇄신하고, 전방위적 압박 전술로 30년만에 리그 우승을 거머쥔 리버풀, 캐딜락도 최근 CT4와 CT5를 추가하며, SUV 라인업에 이어 세단 라인업을 완성했다. 전방위적으로 압박할 준비를 마친 셈이다. 이제 필드에 나가 실력을 보일 일만 남았다. 캐딜락 다음 행보에 승리가 따르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