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의 여인
원제 : The Presidnt's Lady
1953년 미국영화
감독 : 헨리 레빈
원작: 어빙 스톤
음악 : 알프레드 뉴만
출연 : 수잔 헤이워드, 찰톤 헤스톤, 존 맥인타이어
페이 베인터, 윗필드 코너, 루스 애터웨이
짐 데이비스, 칼 베츠
앤드류 잭슨, 미국의 제 7대 대통령입니다. 재임기간은 1929년 ~ 1937년, 재선 대통령으로 총 8년을 통치했습니다. 대국인 미국의 대통령이면 좋은 집안에서 태어난 엘리트 출신을 예상하기 마련인데 잭슨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태어나기도 전에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도 5살 때인가 돌아가시고 가난하게 자랐고 제대로 학업도 못했습니다. 독학으로 법을 공부하여 법률가가 되었지만 주로 인디언 토벌에 참여하여 민간 용병대로 활약했습니다. 그리고 유부녀였던 레이첼과 사랑에 빠져 결혼했지만 레이첼의 이혼이 2년이나 늦어지는 바람에 구설수에 휩싸였고 이건 두 사람을 평생 옥죄게 합니다. 동부출신이 아닌 비주류인 서부 출신의 대통령, 더구나 취임전 레이첼이 사망하는 비운을 겪죠.
앤드류 잭슨을 보면 우리나라 노무현 대통령이 연상됩니다. 좋은 집안에서 좋은 학벌이 아닌 농촌에서 자란 고졸출신이면서 영남출신임에도 민주당에서 활동하며 늘 비주류였고 대통령이 되어서도 반대와 무시를 당한. 둘은 많이 닮았죠. 비주류가 주류가 된 케이스. 입지전적인 인물
이 앤드류 잭슨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가 1953년에 등장했습니다. 찰톤 헤스톤과 수잔 헤이워드 주연의 '광야의 여인'으로 개봉된 작품입니다. 원제는 'The President's Lady" 즉 '영부인'이라는 제목입니다. 앤드류 잭슨(찰톤 헤스톤)이 레이첼(수잔 헤이워드)를 만나던 20대 청년 시절부터 대통령에 취임하기까지의 내용을 다루고 있고 아내인 레이첼의 관점에서 전개하고 있습니다. 한 남자의 일대기를 다룬 만큼 방대한 내용이어야 하지만 불과 1시간 36분에 녹여내고 있습니다. 그러니 꽉찬 영화라기 보다 다소 부실한 작품이죠. 주로 두 남녀의 만남과 사랑에 촛점을 더 두었습니다.
남편과 별거중이던 레이첼은 자신의 집을 방문한 앤드류 잭슨과 만나게 되고 둘을 처음부터 호감을 느꼈습니다. 남편이 찾아오고 다시 재결합을 시도하지만 남편은 흑인 하녀와 놀아나고 있었고 레이첼은 답답한 부부생활을 합니다. 그녀를 구하러 앤드류 잭슨이 찾아오고 레이첼은 그를 따라 떠납니다. 둘은 멀찍이 도피하여 부부가 되지만 레이첼의 이혼이 2년이나 걸리면서 졸지에 불륜 부부가 되어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오릅니다. 당시 미국은 서부 개척 초기로 인디언과 치열한 전투를 치루고 있었습니다. 특히 미국을 침공한 영국, 스페인등에서 인디언을 활용하여 미군과 싸우게 하고 있었죠. 잭슨은 민병대를 조직하여 인디언과 싸우며 용맹한 군인으로 거듭납니다. 하지만 그로 인하여 자주 집을 비웠고 레이첼은 본의 아니게 생과부 같은 삶을 살게 됩니다. 레이첼이 아기를 갖지 못하자 인디언 소녀를 입양하기도 하지만 일찍 죽는 비운도 겪죠. 레이첼은 사교모임에서도 거절당할만큼 평생 수군거림속에 살았습니다. 하지만 잭슨과의 사랑은 깊었고 잭슨은 레이첼에게 이야기합니다.
"언제가 당신을 높이 올려줄거야"
두 사람의 젊은 시절의 이야기는 비중이 길고 중년 이후의 삶은 후다닥 넘어갑니다. 잭슨은 하원의원, 상원의원을 거쳐 의회에서 활동하며 주로 동부지역에 가 있고 레이첼은 서부의 저택에서 흑인 하녀와 아이도 없이 외롭게 지냅니다. 군인 출신이라 불같은 성격의 잭슨에게 레이첼은 감정을 다스리라고 조언합니다. 반대파의 거센 저항에도 불구하고 결국 대통령에 당선된 잭슨, 하지만 그 소식을 전하러 집으로 달려왔을 때 레이첼은 그의 당선 소식을 듣고 결국 잭슨의 품에 안겨 세상을 떠납니다. 영부인으로서의 삶을 결국 누리지 못한 채. 잭슨은 취임식에서 품안에 있던 레이첼의 사진을 보며 올바른 통치를 하겠다고 다짐합니다.
수준이 아주 높은 영화는 아닙니다. 다만 이 영화를 보고 알 수 있는 점이 앤드류 잭슨이 보기 드문 비주류 대통령이고 비록 미국의 재선 대통령으로 노년을 보냈지만 비운의 인물이라는 점입니다. 아버지 없이 태어났고 유부녀와의 사랑으로 오래오래 구설수에 올랐고 아내와의 사이에서 아이를 얻지 못했으며 인디언 앙녀도 결국 일찍 죽고 더구나 대통령에 당선되었지만 사랑하는 아내 레이첼을 잃었으니...그리고 영화에서는 묘사되지 않았지만 외롭고 힘든 말년을 보냈다고 합니다.
1950년에 데뷔한 찰톤 헤스톤은 데뷔하면서 바로 주연배우로 활약했는데 스타가 되기 전 초기에 인기있는 탑급 여배우들과 공연하면서 차근차근 성장했습니다. 이 영화에서 공연한 수잔 헤이워드를 비롯하여 '루비 젠트리'의 제니퍼 존스, '끝없는 지평선'의 도나 리드, '네이키드 정글'의 엘레노어 파커 등. 이 영화 출연 당시 수잔 헤이워드는 36세, 찰톤 헤스톤은 30세 였습니다.
국내에 개봉된 찰톤 헤스톤 주연 영화인데 별로 인기있는 영화는 아니었고 방영, 출시 등이 되지 않아 오래도록 잊혀진 영화입니다. 수잔 헤이워드가 주연인 바람에 마치 2년뒤 발표된 '야성녀'와 아주 유사한 작품입니다. 일종의 '야성녀'의 파일럿 버전 같은. 한 여자가 한 남자와 사랑에 빠져 그와 재혼하고 행복했지만 남자는 개척지의 군인으로서 원주민들과의 전쟁에 계속 나가서 오래 헤어져서 살아간다...그리고 광활한 대륙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라는 점. 오래 같이 사는 하녀와 함께 꿋꿋이 농사를 짓는다는 점 등 닮아도 많이 닮은 영화인데 당연히 '야성녀'가 더 재미있습니다. 흑백과 칼라, 4:3의 좁은 화면과 넓은 시네마스코프라는 점 등이 다르죠. '야성녀'의 각본이 이 영화를 많이 참조하여 좀 더 상업적인 발전으로 만든 게 아닐까 싶네요.
찰톤 헤스톤, 수잔 헤이워드 라는 유명한 톱 배우가 등장했지만 국내 개봉된 고전 이라는 점 외에 두드러진 점은 없는 영화지만 그럼에도 앤드류 잭슨과 그의 아내 레이첼이라는 실존인물의 삶을 많이 알 수 있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ps1 : 찰톤 헤스톤은 앤드류 잭슨 역을 두 번이나 했는데 이 영화 외에 율 브리너가 주연한 '대해적'이라는 영화에서 같은 역으로 특별출연했습니다. 아마 앤드류 잭슨 역을 이미 맡아서 이미지를 살리기 위해서 비중이 큰 역은 아니었지만 캐스팅 된 것 같네요.
ps2 : 집을 떠나면서 1년을 약속했지만 4-5년씩 집을 비웠다는 군인과 동부 정치인의 삶. 전화도 없던 그 시절, 오로지 편지로 소식을 주고 받았을 레이첼의 외로운 삶이 애잔하게 느껴집니다. 영부인이 될 순간을 맞이했지만 요절하는 비운의 삶이었네요. 미국 서부에서 동부가 워낙 먼 거리다보니 남편을 외국에 몇 년 보낸 것과 같죠. 주말부부가 부러울 지경이겠네요.
ps3 : 찰톤 헤스톤의 노역 분장이 잘 어울려 보입니다. 흑백이라는 점에서 부실한 분장이라도 많이 감출 수 있고. 원래 청년기에도 중후한 외모이고.
ps4 : 미국 역사에서 인디언 학살이 많이 화두에 오르는데 앤드류 잭슨이 인디언 토벌에는 굉장히 두드러진 역할을 한 인물로 평가됩니다. 행정가가 아닌 군인 출신의 대통령이지요. 영국와 스페인전쟁에서도 활약한 전쟁 영웅이기도 하고요.
ps5 : 원작자 어빙 스톤은 전기 문학의 대가입니다. 실존인물을 등장시킨 작품을 여럿 발표하였는데 나름 익히 알려진 영화 중에서 커크 더글러스가 주연한 '빈센트 반 고호(56)' 찰톤 헤스톤이 미켈란젤로 역으로 열연한 '고뇌와 환희(65)' 등이 있습니다. 두 작품 모두 수작인데 국내에는 개봉되지 않았습니다. 액션이나 오락위주의 영화가 아니라 미술가의 삶은 다룬 작품이라서 그런지 톱 인기 배우가 출연했음에도 국내에 개봉되지 못했죠.
[출처] 광야의 여인 (The President's Lady, 53년) 앤드류 잭슨 일대기|작성자 이규웅
첫댓글 지금은 사라진 '국제극장'이란 이름이 반갑습니다.
옛날엔 아카데미극장도 있었는데 지금은 흔적도 없고,
그러고보니 세종문화회관의 극장도 없어졌고
명동에 있던 코리아극장도 사라져버렸으니 명동이 한산 할밖에---
조금 더 걸어오면 중앙극장이 텃주대감 노릇을 했는데 아, 영광이여---
동양물산을 운영하며 부산에 문을 연 극장으로 돈을 쓸어담았다는 중앙극장도
귀신 나올듯 한 으시시한 감이 들고, 성쇄라---
중앙극장을 건너 백병원길로 걸어오면 스카라극장 옆에 초동극장도 있었던 걸로 기억되는데
스카라극장보다 먼저 문을 닫았고, 청계천쪽으로 걸어오다보면 종3이 보이는데
그곳엔 세기극장이 똬리를 틀었고, 그러다 메트로극장으로 간판을 바꾸기도 했고,
세월이 흘러 세기극장도 곽정환에게 팔려 서을극장으로 이름을 바꿨는데
한국영화의 전성시대를 열어갔지만 지금은 영락의 시대를 걸어가고 있으니---
길건너엔 반도극장이 있었고 반도극장 앞엔 단성사극장이 위엄을 내품었는데,
반도극장하면 모를 이도 있을 터라, 걍 피카딜리극장이라고 해야겠구나
피카딜리극장 골목을 끼고 2가쪽으로 내려가면 우미관이 종로시대를 대변했는데
그러다 술집으로 변신했고 지금은 영고성쇄, 슬픈 극장 우미관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