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트루드 엘리언(1918~1999)은 20세기에 신약을 가장 많이 개발한 여성이다. 부모는 유대인 이민자
였는데, 아버지가 치과의사와 증권 중개를 겸직하여 어릴 때부터 부유한 환경에서 자랐다. 고등학교
를 두 학년 월반하고도 수석으로 졸업한 엘리언은 뉴욕시립대학 부설 여자대학인 헌터칼리지에 입학
했다. 그녀는 화학을 전공하여 대학도 수석으로 졸업했다. 그러나 여자라는 이유로 15개 대학원으로
부터 입학을 거절당했다. 이렇던 나라가 요즘 들어 인권이 쪼매 개선되었다 하여 툭하면 남의 나라
인권문제에 감 놔라 배 놔라 간섭하고 있으니 가소롭다.
엘리언은 3개월 동안 월 200달러를 받고 간호학과 학생들에게 화학을 가르쳤다. 그 뒤 덴버화학회사
가 실험실에 일자리는 제공했지만 역시 여자라는 이유로 무급이었다. 출근과 퇴근에 각각 2시간이
걸리는 고단한 근무조건이었다. 마침 프랑스로부터 장학금을 받는 조건으로 1년 간 파리에서 화학공
부를 하게 되었다. 일이 풀리느라 공부를 마치고 돌아오자 덴버화학회사에서도 월급을 주기 시작했
다. 이듬해에는 금녀의 장벽이 헐려 뉴욕대학교 대학원에 입학했다. 엘리언은 학비를 벌기 위해 임시
직 교사나 병원 원무과 서기로 일했다. 그 즈음 약혼자가 세균성 심장질환으로 요절하자 엘리언은 평
생 독신으로 살았다.
1941년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면서 남자들이 대거 징집되자 여자들에게 취업의 문이 넓어
졌다. 엘리언은 전공을 살려 한 식품회사 품질검사원으로 입사했다. 1943년에는 버로스웰컴제약회사
연구원으로 채용되었다. 엘리언은 맡은 일을 하는 틈틈이 유기화학‧생화학‧미생물학‧바이러스학‧면역
학‧종양의학 등 광범위한 분야를 독학으로 공부했다. 그 바쁜 와중에도 밤에는 브루클린공과대학에
서 박사학위 과정을 밟았다. 대학에서 엘리언에게 회사를 그만두고 학업에만 전념하라고 요구하자
그녀는 학교를 그만두었다.
1944년에는 히칭스의 팀원으로 영입되었다. 이후 엘리언은 30년 동안 히칭스와 함께 일했다. 엘리언
이 합류했을 때 히칭스는 DNA의 구성요소인 핵산 연구에 막 착수한 참이었다. 히칭스가 핵산 연구를
시작한 것은 DNA 분자에 유전정보가 들어있다는 획기적인 논문이 발표되었기 때문이었는데, 그가
주목한 것은 세균과 암세포는 인간의 건강한 세포보다 헐썩 빠른 속도로 자라기 때문에 DNA 합성도
그만큼 많이 해야 할 것이라는 점이었다. 즉 DNA 합성을 차단하면 암세포 증식이나 세균 감염을 차
단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한 것이다.
엘리언은 퓨린(purine. 요산)系 핵산 조사를 맡았다. 그녀는 도서관과 실험실에서 살다시피 지내며
핵산 합성법을 연구했다. 천연 퓨린系 핵산과 비슷한 분자를 설계하여 합성한 뒤 체내에서 DNA를 만
드는 데 필요한 효소에 결합시킨다면, 진짜 퓨린系 핵산으로 DNA를 만드는 효소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할 것이었다. 즉, 세균이나 암세포의 빠른 증식을 막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약을 ‘대사 길
항(拮抗) 물질’이라고 하는데, 세포 대사를 방해한다는 뜻이다.
엘리언은 히칭스 입회하에 새로 합성한 화합물을 유산균에 시험해보았다. 그 결과 1948년 두 개의 아
미노基를 가진 디아미노퓨린을 합성했다. 두 사람은 의사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의사들은 성인 만
성 백혈병 환자들에게 디아미노퓨린을 투약해보았다. 두 명에게는 증상이 일시적으로 사라지는 효과
가 있었지만 다른 두 명은 구토가 심해 임상실험을 중단했다. 엘리언은 합성방법을 조금만 개선하면
부작용이 없는 신약을 만들 수 있을 것으로 믿고 연구를 계속했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엘리언은 ‘6
-머캅토퓨린’ 개발에 성공했다. 이 약은 수많은 어린이 환자를 치료했고, 말기암 환자의 평균 생존기
간도 1년 이상으로 늘어났다. 이 약은 개량을 거듭하여 오늘날에는 백혈병 환자의 완치율을 80% 이
상으로 높여놓았다. 그 사이 엘리언은 45개의 신약 특허를 차례차례 획득했다.
퓨린系의 다른 화합물인 ‘6-티오구아닌’은 백혈구의 이상증식을 억제하고 인체의 과도한 면역반응을
막는 데 효과가 탁월했다. 외과의사들은 신부전증 같은 질병을 치료할 때 장기이식을 시도했는데, 장
기를 이식받는 사람의 몸이 이식받은 장기를 이물질로 인식하고 백혈구를 대량생산하여 파괴해버린
다. 오랜 임상실험 결과 ‘6-티오구아닌’을 투여한 환자에게서는 생명을 위태롭게 하는 거부반응이 일
어나지 않았다. 엘리언은 연구를 더 진척시켜 아자티오퓨린이라는 새 물질을 찾아냈다. 이 물질은 이
뮤란이라는 신약으로 개발되어 현재까지 거부반응을 성공적으로 억제하고 있으며, 류머티스性 관절
염 치료에도 탁월한 효과를 보이고 있다.
엘리언은 놀라운 속도로 신약을 개발해냈다. 통풍 환자의 요산 합성을 줄이는 알로푸리놀, 말라리아
치료제인 피리메타민, 새로운 항생제 트리메토프림 등 중요한 약제들을 잇달아 개발해냈다. 회사에
서 지위도 올라가고 특허료 수입도 막대했지만 엘리언은 일 자체 외에는 다른 관심이 없었다. 그녀는
오래 전부터 구상해오던 바이러스 감염증 치료물질 개발에 착수했다. 첫 번째 결실이 헤르페스바이
러스의 DNA 복제만 선택적으로 억제하는 아시클로버 개발이었다. 이 약은 버로스웰컴제약회사에서
가장 많이 팔려나갔다. 훗날 엘리언의 후배 연구원들이 개발한 최초의 에이즈 억제제 아지도티미딘
도 아시클로버의 억제 메커니즘을 변형한 것이다.
1983년 66세의 나이에 회사를 그만둔 엘리언은 여행‧사진 촬영‧음악 및 발레 감상‧연극 관람 등 여유
로운 생활을 즐기며 오랜만에 긴 휴식을 취했다. 엘리언은 뉴욕공과대학을 비롯한 국내외 여러 대학
에서 23개의 명예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미국과학아카데미‧의학연구소‧예술 및 과학협회의 정회원으
로 영입되었다. 1987년에는 연방정부로부터 국가과학훈장을 받고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국립발명가
협회 명예의 전당에 헌정되었다. 인류의 질병 예방 및 치료에 이바지한 거트루드 벨 엘리언의 공적은
1988년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으로 꽃을 피웠다.
2018. 10. 19. 12:44
펜드리드 노이스 「사라진 여성 과학자들」 소개 끝
출처:문중13 남성원님 글
첫댓글 바쁜 일상도 아닌데 미리 준비치 못한 짐싸기에 정신이 없습니다. 마침 오후 비행기가 되어 다행이긴 해도 근 한달을 머무르는 동안의 긴여정으로 챙길것이 많습니다. 해마다 지인내외와 함께하는 방콕 북동쪽 팍총의 리조트 여행을 출발하는 오늘 입니다. 예약이 수월치 않아 설날 다음날 가는 출발일을 두달이나 앞당긴 탓으로 연말 모임도 참석치 못하는 아쉬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