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학화점에서 호두과자(ㄱㄱㄴ ㄱㄱㄴ) 사가지고
상경 하도록 하겠습니다
루나, 세바스찬, 윰 (이 사람들이... -.-) 기다려라..
알비레오군은 오늘 못온다니.. (기회는 흔치 않은것임을...)
맞다.. 칭송 어린이도 달라고 했는데.. 꼬리도..
사달라고 했던 분들.. 오늘 아니면 더 이상의 기횐 없어요 ^^~
방금 인터넷에서 찾아 본 호두과자 정보 입니다
명예 경영학박사 학위를 받은 호두과자 할머니
평생 호두과자만 만들어 온 팔순의 심복순(沈福順.86) 할머니가
호서대학교(총장.정근모.鄭根模)에서 2001년 2월 23일 명예 경영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충남 천안시 대흥동 천안역 옆에 `학화 호두과자점'을
운영하는 심 할머니는 우리 국민이면 누구나 아는 호두과자의 원조이다.
심 할머니가 호두과자를 처음 만들기 시작한 것은 것은 1934년으로,
이미 고인이 된 남편 조귀금(87년 사망)씨와 함께 호두 모양을 본떠
만든 과자는 선풍적인 인기로 열차와 고속도로 휴게소 진열대를
점령하며 60년이 넘도록 지금도 그 모습 그대로 만들어 지고 있다.
심 할머니는 호두과자의 명맥을 유지하려고 원료를 순수 국산 호두만을
고집하고 아들과 손자에게 제조 기법을 전수시키는 등 67년 간
외길 인생을 살아 왔다. 그 결과 현재 연간 매출액 10억원 이상을
올리는 건실한 회사를 갖게 됨은 물론 일본, 미국, 캐나다 등지에
호두과자 제조기계와 호두과자를 수출하는 괄목할만한 성장도 했다.
특히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기도 한 심 할머니는 그동안 얻은 수익으로
불우이웃을 돕는데 남몰래 앞장서 와 명예박사 학위를 받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심 할머니는 "그저 내게 주어진 일로 알고 묵묵히 일해
왔을 뿐인데 감당하기 힘든 짐을 주는 것 같다"며 "앞으로 어려운
이웃을 돕는데 여생을 보내겠다"고 말했다. (아산=연합뉴스) 정태진기자
호두과자 할머니 심복순 권사님의 기도
요즈음 꽉 막히는 도로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는 것이 호두과자를 파는
모습입니다.
과연 호두과자를 제일 먼저 만든 사람은 누구일까요?
이 호두과자를 개발한 사람은 바로 천안 성심교회의 심복순
권사님입니다.
천안에 호두가 많은 것을 최대한 이용해 이것으로 과자를 만들었고
이것이 히트를 쳐 천안에서는 물론 광고도 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알고
주문을 해와 전국 각지 그리고 미국, 중국, 일본에 이르기까지 수출하게
된 것입니다.
심권사님은 이 사업은 하나님이 번창케 하여 주신 것이라고 믿습니다.
돈이 조금씩 들어오자 심 권사님은 하나님께 이런 서원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저는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하나님과 함께
동업을 하는 것입니다. 지금부터 제가 버는 돈의 절반은 하나님의
것으로 믿고 하나님을 위해 사용하겠습니다."
권사님이 만드는 호두과자 봉지에는 "주 예수를 믿으라" 라는 성경
말씀이 인쇄되어 있습니다.
심 권사님은 지금까지 혼자서 예배당을 일곱 개나 지었습니다.
이것은 심 권사님이 어렵게 살 때 "평생 혼자 힘으로 예배당
일곱 개만 짓게 해주세요"하고 드린 기도가 응답받은 것입니다.
심 권사님은 하나님이 오라 하실 때까지 앞으로도 계속 이 일을 할 것이
라고 고백합니다.
천안을 빛내는 '전통의 과자'
호두과자는 우리의 교통문화와 함께 성장해온 대표적인 먹을거리다.
전국의 고속도로는 물론 지방도로에서도 휴게소에 들어서면 어김없이
따끈하게 금방 구운 호두과자를 맛볼 수 있다. 심지어 교통체증이
빚어지는 도심 한복판 도로에서도 간단한 음료와 함께 한 봉지에
1천∼2천원 하는 호두과자를 즉석에서 구워 판다.
기차를 타도 마찬가지다. 특히 천안역을 지날 무렵이면 천안의
명물 호두과자가 등장한다. 그 내력은 한국전쟁이 끝나고 철도여행이
자유로워진 직후까지 거슬러오른다. 아마도 차 안에서 파는 먹을거리로
김밥과 호두과자만큼 오랜 먹을거리도 없을 것 같다.
이처럼 역사가 오래되고 우리 일상에 가깝게 느껴지는 호두과자지만
그 내력에 대해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호두과자는 그 기원이 천안
‘학화호도과자’에서 비롯됐다. 천안역에서 100여미터쯤 떨어진
도로변에 자리잡고 있다. 할머니호두과자로 불리기도 하는 이곳은
1934년, 천안사람 조귀금(작고)씨 부부에 의해 시작됐다.
당시 20살이었던 심복순(86) 할머니는 지금도 깔끔한 모습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어 그 내력이 무려 66년을 헤아린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기도 한 심 할머니는 평생을 함께해 온 호두과자를 자신의
분신처럼 여기며 학화호도과자의 맛과 명성을 지키기 위해 극진한
정성을 쏟는다. 그래서 전국에 퍼져 있는 호두과자들과 모양은 비슷 하지만 맛과 품질로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전혀 다른 차원의 진짜
호두과자를 예전과 꼭같은 모습으로 만들어내고 있어 호두과자를
좋아하거나 제과에 관심있는 사람이면 한번쯤 들러볼 만하다.
학화호도과자는 우선 만드는 과정부터 색다르다. 호두과자의 바탕이
되는 밀가루 반죽을 물로 하지 않는다. 계란과 물을 약간 섞은 묽은
우유에 설탕을 가미해 믹서기에 돌린 시럽으로 반죽한 뒤 잠시
숙성과정을 거친다. 호두과자의 속을 장식하는 팥도 붉은팥과
흰팥(흰동부)을 가려 쓰는데, 팥을 삶아 껍질을 벗기고 물을 세번쯤
갈아준다. 팥독을 씻어내며 가라앉힌 앙금을 물엿처럼 녹인 설탕에
비벼 한번 더 찜을 하듯 열을 가해 물기를 알맞게 빼준다. 그리고
구울 때 호두 한알을 8쪽으로 나누어 한 조각씩 얹어 다 구워진 뒤에도
호두조각이 살짝 내비치도록 하고 있다.
이런 과정을 거쳐 호두과자 하나를 완성하는 데 하루 반나절이 걸린다.
인공적인 감미료나 방부제가 전혀 들어가지 않지만 순도가 높은 과자여
서 구어놓은 뒤 10일이 경과해도 딱딱하게 굳어지기는 하지만 쉬거나
상하는 법이 거의 없다. 오히려 진짜 호두알맹이처럼 딱딱해진 호두과자
는 더 뛰어난 별미고, 우유에 잠시 불려 우유와 함께 3∼4개만 먹으면
아침식사를 대신해도 좋을 정도로 맛과 영양에서 손색이 없다.
이사람의 맛내기/ 학화호도과자 심복순 할머니
서양기술로 우리식 과자 개발
학화호도과자 심복순(86) 할머니는 19살 되던 1931년 출가해 이듬해
가게를 열었다. 심씨는 창업 날짜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학화(鶴華)
호도과자란 이름도 학처럼 빛나라는 뜻으로 남편 조귀금씨가 지어준
것이라고 한다. 당시 천안에는 일본인들이 많이 살았는데, 일본사람들이
좋아하는 학(鶴)자가 들어가 더 인기를 누렸다고 한다.
그러나 일본인들을 겨냥했거나 일본인들에게서 배워온 서양과자는
아니었고, 일본인들이 만드는 서양의 제빵기술을 눈여겨본 조씨가
고안해낸 순수한 우리 고유의 과자였다. 그 맛이 일본인들이 모방할 수
없을 정도로 정성이 들어간 것이어서 서울로 이사해 가거나 일본으로
돌아간 뒤에도 사람을 보내 사가는 일본인들이 적지 않았으며, 지금도
간혹 한국을 방문한 일본사람의 부탁이라며 서울에서 내려와 선물용호두
과자를 사가곤 한다.
90을 바라보는 고령이지만 깔끔한 모습으로 단장한 할머니는 아침 7시면
문을 열고 저녁 9시까지 직접 카운터에 앉아 고객을 맞는다. 누가
찾아오든 호두과자에 관해 물으면 이런 자부심과 함께 만드는 법과
먹는 법까지 자세히 일러준다. 모든 물가가 올랐고 토종 팥과 호두
구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지만 토종팥이 아니고는 같은 맛을 낼 수 없어
값이 비싸도 옛날 것과 꼭 같은 것을 구해 쓴다. 그러다보니 호두과자
값이 자연히 비싸질 수밖에 없어 미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고 한다.
이익을 최소한으로 낮춰 7개, 한봉지에 1천원씩 팔고 있지만 늘
넉넉하게 주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한다. 선물용은 한지에 한알씩 곱게
싸서 상자에 차곡차곡 담아 5천∼1만원에 낸다.
이름난 호두과자점
학화호도과자 본점=학화호도과자는 천안역 앞 본점과 아들이 경영하는
신부동 분점 단 두곳뿐이다. 그 밖에 분점을 두지 않고 있다. 또 두곳의
특징을 나타내기 위해 본점에서는 흰팥 앙금을 사용하고 분점에서는
붉은팥 앙금만 사용한다. 천안역 광장에서 아산방향으로 100m가
채 안 되는 도로변에 있고, 역 앞에서 물으면 모르는 사람이 없다.
충남 천안시 대흥동(0417-551-3370).
학화호도과자 분점=천안 고속버스터미널 사거리에서 대각선으로 건너다
보이는 신부동 천호주유소 옆에 자체건물을 짓고 분가했다. 본점과
구별하기 위해 붉은팥 앙금만을 사용하는 이곳은 심씨 할머니의 아들
부부가 경영한다. 충남 천안시 신부동(0417-551-8596).
호두의 전래와 호두과자
호두과자가 천안의 명물로 등장한 것은 호두의 전래과정과 무관하지
않다. 호두가 한국에 전래된 것은 약 700년 전 고려 충렬왕
12년(1290년)에 당시 역관(譯官)이었던 류청신이란 사람이 사신들을
따라 원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묘목과 씨앗을 갖고 와 자신의
고향마을에 심은 것이 그 기원이 되고 있다.
지금의 천안 근교인 광덕사 절마을이다. 지금도 절 입구에는 보호수로
지정된 수령 400∼500년생의 호두나무 몇 그루가 늘어서 있는데,
이들이 처음 들여온 호두나무의 자손으로 추정되는 국내 최고령의
호두나무이다.
절 앞 마을은 지금도 류씨들의 집성촌이고 광덕산 자락으로 군락을
이룬 호두나무들이 집집마다 몇 그루씩 갖고 있어 천안명물 호두의
원산지나 다름없다. 가을이면 집집마다 마당에 호두를 널어 말리는
모습이 이채로운 농촌 풍광을 자아낸다. 이곳 호두는 거죽은 물론
속껍질이 얇아 손질이 쉽고 유난히 고소해 원산지인 중국 것은 물론
전국 어디에서도 이곳의 품질을 따르지 못한다. 학화호도과자에
들어가는 호두도 시장 상인들을 통해 이곳 호두를 대놓고 쓰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