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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 기도)
주님,
4월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봄꽃으로 가득한 고난주간은
십자가와 상관없이 살아가는 무지한 세상 사람들을 생각하게 합니다.
주님의 이름을 힘입어 이 세상 가운데 아들의 생명을 가진 자로 살아가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멕시코 사역 사진을 봅니다.
주님께서 불러 모아 주신 영혼들이 생명의 복음에 집중하네요.
복음이 선포되는 그곳에 제가 함께 있는 듯 기뻐합니다.
오늘도 그곳에 온종일 성령님이 역사하시는 은혜의 시간이 되길 기도합니다.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십자가 보혈을 의지합니다.
오염된 영혼을 정결케 하여 주옵소서.
진리의 성령님, 말씀을 밝히 볼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 새벽에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함께 의논하고
2. 결박하여 끌고 가서 총독 빌라도에게 넘겨 주니라
3. 그 때에 예수를 판 유다가 그의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그 은 삼십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 주며
4. 이르되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하니 그들이 이르되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냐 네가 당하라 하거늘
5.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
6. 대제사장들이 그 은을 거두며 이르되 이것은 핏값이라 성전고에 넣어 둠이 옳지 않다 하고
7. 의논한 후 이것으로 토기장이의 밭을 사서 나그네의 묘지를 삼았으니
8. 그러므로 오늘날까지 그 밭을 피밭이라 일컫느니라
9. 이에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나니 일렀으되 그들이 그 가격 매겨진 자 곧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가격 매긴 자의 가격 곧 은 삼십을 가지고
10. 토기장이의 밭 값으로 주었으니 이는 주께서 내게 명하신 바와 같으니라 하였더라
11. 예수께서 총독 앞에 섰으매 총독이 물어 이르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이 옳도다 하시고
12.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고발을 당하되 아무 대답도 아니하시는지라
13. 이에 빌라도가 이르되 그들이 너를 쳐서 얼마나 많은 것으로 증언하는지 듣지 못하느냐 하되
14. 한 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총독이 크게 놀라워하더라
15. 명절이 되면 총독이 무리의 청원대로 죄수 한 사람을 놓아 주는 전례가 있더니
16. 그 때에 바라바라 하는 유명한 죄수가 있는데
17. 그들이 모였을 때에 빌라도가 물어 이르되 너희는 내가 누구를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바라바냐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냐 하니
18. 이는 그가 그들의 시기로 예수를 넘겨 준 줄 앎이더라
19. 총독이 재판석에 앉았을 때에 그의 아내가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마옵소서 오늘 꿈에 내가 그 사람으로 인하여 애를 많이 태웠나이다 하더라
20.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무리를 권하여 바라바를 달라 하게 하고 예수를 죽이자 하게 하였더니
21. 총독이 대답하여 이르되 둘 중의 누구를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이르되 바라바로소이다
22. 빌라도가 이르되 그러면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를 내가 어떻게 하랴 그들이 다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23. 빌라도가 이르되 어찜이냐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그들이 더욱 소리 질러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하는지라
24. 빌라도가 아무 성과도 없이 도리어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이르되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25. 백성이 다 대답하여 이르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 하거늘
26. 이에 바라바는 그들에게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
(본문 주해)
1~2절 : 밤새도록 예수님을 심문하고 새벽에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함께 의논한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예수를 죽이기로 결의한 자들이다.
그러므로 재판의 결론은 이미 내려져 있었다. 그들의 법의 형식을 따라 빌라도에게 예수를 넘겨 빌라도가 사형을 언도하게 한다.
3~5절 : 유다가 예수님의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친다. 이때의 뉘우침이라는 단어는 하나님 앞에 통렬한 회개의 뜻이 아니라, 자신의 불찰을 깨닫고 인간적으로 후회하는 정도의 뜻이다. 그래서 그는 은 삼십을 빨리 반환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유다가 돈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 준 것은 보통 상거래를 취소하거나 무효화하기 위해서는 해당 당사자가 받은 돈을 일단 성전에 예치하는 관행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못나고 악한 행동의 결과요 증거라고 할 수 있는 돈을 되돌려주어 양심의 가책을 덜고자 했다.
그러나 그 돈은 거부되고 만다. ‘우리가 상관할 것이 아니니, 네가 스스로 처리하라, 네가 책임지라’는 말만 듣게 되었다.
유다는 그 돈도 받아들여지지 않자 성전에 돈을 내던지고 그 길로 스스로 목을 맨다.
제사장이라면 자기 백성이 죄를 범하였다고 고백을 하면 속죄의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
그런데 제사장이 그 속죄의 길을 차단하는 것이었다. 즉 가룟 유다가 스스로 목을 매어 죽는 일을 제사장들이 방조한 것이다.
6~10절 : 대제사장들은 그 은을 거두어 핏값으로 부르며 성전고에 넣어두는 것이 옳지 않다고 여겼다. 신명기(23:18)에 따르면 그런 핏값으로 얻은 돈은 마치 창기나 개 같은 자의 돈과 같아 여호와께서 미워하는 것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의논한 후 그 돈으로 토기장이의 밭을 사서 나그네를 위한 묘지 터로 삼았다. 그런 돈을 성전의 거룩한 일에 사용할 수 없다고 하여 소위 사회복지사업을 한 것이다.
가룟 유다가 받은 돈이 예언대로 사용되어진 것이다.
“내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좋게 여기거든 내 품삯을 내게 주고 그렇지 아니하거든 그만두라 그들이 곧 은 삼십 개를 달아서 내 품삯을 삼은지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그들이 나를 헤아린 바 그 삯을 토기장이에게 던지라 하시기로 내가 곧 그 은 삼십 개를 여호와의 전에서 토기장이에게 던지고”(슥11:12~13)
9~10절은 스가랴 11:11~2, 예레미야 32:6~9, 18:2~3, 19:11을 혼합하여 인용한 문장이다.
11~14절 : 산헤드린 공회에서 예수님을 빌라도 총독에게 넘긴다.
총독이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고 묻자 예수님은 ‘네 말이 옳도다’고 하신다. 이 답변에는 ‘네가 생각하는 그런 유대인의 왕은 아니지만, 내가 이스라엘의 왕으로 왔다’는 뜻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고는 아무 말씀을 하지 않으신다.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그렇게 고발을 하는데도 예수님은 아무런 변호를 하지 않고 이런 모습에 빌라도가 놀란다.
예수님을 사형시키라고 달려드는 고발자들 앞에서 아무 대답을 하지 않으시는 것은 예수님께서 스스로 고난과 죽음의 길로 가고 계시는 것이다.
빌라도는 이러한 예수님의 모습을 보면서 로마법으로 죄가 아님을 알고 풀어주려고 한다.
15~18절 : 빌라도는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이 시기심으로 예수를 넘겨준 것을 알았다.
그래서 민란을 일으키고 살인한 바라바 예수와 그리스도 예수 중에 누구를 풀어주겠느냐고 제안을 한 것이다. 빌라도는 그래도 바라바보다는 예수가 사람들에게 좋은 일을 많이 했기에 예수를 풀어주라고 할 것으로 착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무리들은 살인 강도인 바라바보다도 예수가 더 싫었던 것이다. 그것이 자기들이 기대했던 메시아, 자기들 입맛에 맞는 메시아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이 기다린 메시아는 힘으로 다윗 왕국의 영광을 회복하는 메시아였으므로 그들은 모두는 예수를 배척한 것이었다.
19~23절 : 이방 여인(빌라도의 아내)은 예수님이 옳은 분이라고 하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지킨다는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예수를 죽이라고 무리들을 충동질 한다.
빌라도가 예수님을 놓으려고 세 번이나 말하지만(눅23:22) 성난 군중은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고함을 친다. 그들은 바로 얼마 전에 예수님을 향해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부르던 자들이었다.
그들은 왜 이토록 성이 났을까?
무리는 예수를 다윗 왕과 같은 정치적 메시아로 확신하였다. 그런데 지금 예수는 무력하고 비참한 죄수로 전락하였다. 그들은 자신들이 속았다고 생각했다.
종교지도자들의 선동에 사로잡힌 무리는 무서운 말을 내뱉는다.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을 죽인 죄를 자신들은 물론 그의 후손이 담당하겠다는 것이다. 예수의 피는 단지 순교자의 피가 아니라, 죄인이 죄 사함과 구원을 위해 흘린 피이다.
그들이 그의 피를 담당하겠다는 것은 영영 구원의 길에서 벗어나겠다는 참담한 말이다.
24~26절 : 빌라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무 성과도 없었고 오히려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는다.
그는 예수가 옳은 자인 줄 알지만 무리들에게 넘겨주면서 자신은 이 피에 대하여 상관이 없으니 너희가 당하라고 하면서 손을 씻었던 것이다.
빌라도의 죄가 무엇인가?
죄 없는 자를 사형에 넘긴 것이다. 그 이유는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
빌라도는 그러잖아도 당시 위태한 정치적 상황 속에 처해 있었는데, 자신이 다스리고 있는 유대에서 작은 소동이라도 나서 로마 황제에게 보고된다면 낭패가 될 것은 뻔했다. 이런 이유로 빌라도는 유대인들의 협박에 넘어가고 말았던 것이다.
빌라도가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면서 ‘너희가 당하라’고 하자,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라고 백성들이 다 대답을 한다.
그들의 이 대답의 결과가 예루살렘의 멸망으로 나타난다.
로마에 의하여 AD 70년에 예루살렘이 무너지고 성전이 파괴되는데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고 다 무너지는, 비참한 상황이 되는 것이다.
(나의 묵상)
‘파라디도미’라는 단어를 배우게 되었다.
그것은 ‘넘겨주다, 팔다’의 의미이다.
오늘 본문에서 이 파라디도미의 과정을 본다.
가룟 유다가 은 30을 받고 대제사장과 장로들에게 예수님을 파라디도미 하고, 산헤드린 공회가 빌라도에게 예수님을 파라디도미 하고, 빌라도가 군병들에게 예수님을 못 박도록 파라디도미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파라디도미는 그들의 계획대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내어주시는 주님의 뜻, 스스로 십자가로 걸어가시는 주님의 뜻대로 되어지는 것이다.
예수님을 통해 자기 목적을 이루려 했던 가룟 유다, 십자가형으로 죽이고 싶을 만큼 예수님께 시기심에 가득했던 공회원들, 예수님의 무죄를 알고도 자신의 안전을 위해 결국 예수님을 못 박도록 넘겨준 빌라도.....
이들을 보며 그들의 죄악들이 내 안에 고스란히 들어 있음을 확인한다.
복음을 알기 전 나는 유다였고 성난 군중과 같은 자였다.
유다처럼 메시아를 오해했고, 성난 무리처럼 자기 소원을 들어주는 메시아가 아니라고 길길이 날뛰며 악다구니를 쓰는 자가 나였다.
내 안에 든 시기심은 아마 공회원들을 능가할지도 모르겠다.
나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적당히 사람의 입맛을 맞추며 살아갈 것이 빌라도 못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나를 위해 주님이 스스로 자신을 ‘파라디도미’ 해 주신 것을 이제는 알게 되었다.
내가 기대했던 바 세상 영광을 주시기는커녕 나더러 십자가에 같이 죽자고 하시는 분임을 알게 된다.
나는 당연히 오늘 본문의 무리들처럼 악에 받쳐서 ‘내게는 이런 예수 필요 없어!’ 라고 외쳐야만 어울리는 존재인데, 어찌된 일인지 이 예수님을 사랑하게 되었다.
저주받은 그 십자가야말로 나를 구원하고, 예수님이 원하시는 성도의 삶을 살게 해 주시는 보배 중의 보배란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본성적으로 이 예수님을 따라갈 수 없는 존재인데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나를 택해 주시고, 때가 됨에 귀를 열어주셔서 복음이 들리게 하시고, 눈을 뜨게 하셔서 십자가를 보게 해 주셨기 때문이다.
파라디도미의 주체가 유다와 공회원과 빌라도가 아니라, 바로 주님이심을 알게 되니 너무도 감격하게 된다.
이제는 ‘나와 함께 십자가로 가자’ 하시는 성령의 음성에 ‘예’ 하고 반응하는 자가 되기를 소원한다.
나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신 주님이심을 알기에......
(묵상 기도)
주님,
스스로 무엇을 하고자 하다가 낭패를 당하는 유다적 본성을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제 안에 자라는 공회원들의 시기심을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세상 속에 기대했던 바가 좌절되자 고함치는 무리의 악한 본성을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자신의 안위를 위한 빌라도의 비굴함도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이 모든 것은 저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신 주님의 사랑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성령님,
그저 매일, 매 순간을 의탁하오니 저를 다스려 주옵소서.
성령님과 동행하며 십자가의 길을 기꺼이 걸어갈 수 있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