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김알렉산드라
작년부터 눈 여겨보던 책 한 권을 이제서야 읽었단다.
<시베리아의 딸, 김알렉산드라>란 책이란다.
우리나라를 위해 자신을 희생했던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그 중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이들을 소개해주는 책들에 아빠는 관심이 많이 가더구나.
이 책도 그런 책들 중에 하나였어.
이름부터 심상치 않아서 책 소개를 읽어 보았어.
조선이 최초의 볼셰비키 혁명가라니..
어떻게 그럼 삶을 살 수 있었을까? 궁금하더구나.
이 책은 김금숙 님께서 그린 만화라고 생각했는데,
책 소개에는 그래픽 노블로 소개하고 있단다.
이 책은 정철훈 작가의 원작 소설이 있었는데, 그걸 그래픽 노블로 바꾼 것이라고 하는구나.
원작 소설은 읽어보지 못했지만
그래픽 노블이
우리들이 좀더 접근하기 쉽고,
그림이 들어 있어서 더 읽기 편하지 않을까 싶었단다.
아무튼 이 책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이후에 정운현 님이 쓰신 <조선의 딸, 총을 들다>라는 책을 읽었어.
그 책에서도 김알렉산드라를 짧게 소개해 주었단다.
짧게 소개되었지만, 그녀의 강렬한 삶을 알 수 있었고,
더욱 <시베리아의 딸, 김알렉산드라>를 읽고 싶더구나.
이제서야 읽게 된 것이고..
1. 아버지
김알렉산드라의 실제 이름은 알렉산드라 페트로보나 스탄케비치라는
무척 길고 외우기 어려운 이름이란다.
줄여서 쑤라라고 불렀다고 하는구나.
김알렉산드라의 아버지는 표트로 김이었고, 그는 함경도 함흥 출신이었어.
원래 이름은 김두서였어.
구한말 조선의 정세가 어지러울 때, 북쪽 국경을 접한 사람들의
간도나 연해주로 많이 이주를 갔는데,
그 때 김두서도 연해주로 이주를 했다고 하는구나. 그때가 1869년이었어.
연해주로 간 조선인들은 대부분 농사를 지내곤 했는데,
김두서는 중국어와 러시아어 공부를 해서 농사보다 통역일을 하였고
그렇다 보니 조선인과 현지인 사이의 중재를 하곤 했대.
그 연해주 땅에서 1885년 김알렉산드라가 태어났단다.
엄마는 어린 시절에 죽고 아버지가 알락센드라와 동생들을 길렀어.
범상치 않으신 아버지와 생활하다 보니,
알렉산드라도 사회를 보는 어린 시절부터 남다르지 않을까 싶구나.
…
1891년 제정 러시아는 시베리아 철도를 건설하게 되는데,
이 철도의 간선이 동청 철도도 건설하였어.
이 도로는 시베리아 철도에서 분기되어 하얼빈, 다롄까지 이어지는 철도였어.
조선인 노동자들과 중국인 노동자들이 많이 투입되었는데,
이때 통역으로 아버지가 차출되었고, 알렉산드라도 함께 그곳으로 갔단다.
그때 알렉산드라의 나이는 11살이었어.
그곳에서 통역 일만 한 것은 아니었단다.
조선인 노동자와 중국인 노동자가 부당한 대우를 맞거나 허망한 죽음들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어.
그것에 대한 항의도 하곤 했지만 잘 받아들여지지는 않았어.
그 때 그곳에서 중국의 의화단이라고 하는 단체가 외세 배척을 하자는 운동인
의화단 사건이 일어났어. 의화단 운동이라고도 하고 의화단의 난이라고도 했단다.
의화단 단원들은 경찰에 쫓겼는데,
이때 알렉산드라의 아버지는 그들을 숨겨주기도 했단다.
진정한 의인이셨구나.
알렉산드라의 큰 버팀목이었던 아버지였는데,
1902년 장티푸스에 걸려 그만 돌아가시고 말았단다.
그때 고작 알렉산드라는 18살이었는데 말이야.
심정이 어땠을까.
2. 결혼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다행히 아버지와 친분이 있는
아세허 역장인 스탄케비치 씨가 보살펴 주셔서 학교도 다닐 수 있었어.
그래서 다시 블라디보스토크로 와서 여성사범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단다.
그때 작가 니콜라이 체르니셉스키라는 작가의 책에 빠져 살기도 했다는데,
아빠는 처음 들어보는 작가란다.
블라디보스토트에서 스탄케비치 씨의 아들 마르크와 사귀게 되었어.
어렸을 때도 알고 지내긴 했는데, 마르크가 알렉산드라를 좋아해 왔던 거야.
그들은 그렇게 결혼을 했단다.
이 일은 한인 사회에서 이슈가 되기도 했다는구나.
그들이 다른 나라에서 살아가지만 보통 같은 조선인들과 결혼했으니까 말이야.
둘 사이에 드미트리라는 아들도 생겼어.
하지만 결혼 후에는 마르크는 도박과 술에 빠져 살았고,
남편으로써 아빠로써 점수는 빵점이었단다.
알렉산드라에게 폭력까지 휘두르게 되자 알렉산드라는 이혼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단다.
이혼은 하지 않은 채 따로 살 수밖에 없었어.
…
3. 노동 운동
알렉산드라는 야학 교사를 자원하였고,
이 학교에서 만난 이반이라는 사람의 제안으로 노동운동을 시작하게 되었단다.
아버지가 하신 일들을 보고 자랐으니 얼마나 열심히 하셨을까.
그로 인해 차르 헌병대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기도 했지만 말이야.
그들을 피해 눈 덮인 겨울 산으로 도망을 갔다가 정신을 잃기도 했구나.
아, 그냥 어린 아들과 함께 편히 지내지…
시대는 의로운 생각을 가진 이들을 가만 두지 않았나 보구나.
의식을 잃은 알렉산드라는 다행히 길을 가던 채행길이라는 사람이 구출해 주었어.
채행길은 함경도 출신이었는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억울하게 노동 착취를 당하고 있었어.
하지만 채행길은 그것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었고…
알렉산드라는 행길에게 블라디보스토크에 가서 일하고 공부하라고 제안했단다.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면서 말이야.
동상 걸린 발이 나은 알렉산드라는 행길을 설득하여 블라디보스토크로 함께 갔단다.
행길의 착하고 성실한 성품을 지켜 본 알렉산드라는
그를 동생 마리아에 소개해 주었고, 서로 호감을 가진 그들은 결혼하게 되었단다.
마리아도 참 착한 동생으로 알렉산드라가 없는 동안
알렉산드라의 아들 드미트리를 잘 보살펴 주었어.
알렉산드라는 이반, 와실리 신부와 함께 볼셰비키 운동을 했단다.
갈수록 포악해지는 러시아 차르는 강경 대응을 했어.
차르 경찰에 도망가던 알렉산드라는 총상을 입었는데,
와실리 신부가 알렉산드라를 숨겨 준 뒤 부상을 치료해 주기도 했어.
그러다가 둘은 사랑하게 되었고 보리스라는 아들을 낳았단다.
보리는 전투와 혁명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는구나.
….
시간이 흐르고,
열차사고가 일어났는데,
그 사고로 많은 노동자들이 죽었대
그 노동자들 중에는 우리나라 사람들도 있었고…
그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소개해 준 사람이 알렉산드라였어.
알렉산드라는 당시 신한촌민회에서 일하고 있었단다.
유족들은 알렉산드라에게 불만의 소리를 냈단다.
알렉산드라도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는데 말이야.
…
알렉산드라는 우랄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형편을 알아보기 위해
우랄산맥의 공업도시인 페름으로 갔어.
그곳에서 알렉산드라는 통역일을 했는데,
각 나라의 극빈 최하층이 지내고 있는 바라크에 배치되었단다.
그곳의 생활은 열악했어.
신체가 상한 사람들이 많았고, 자유는 아예 없었어.
차별 대우는 당연했어.
그래서 무리한 노동 강도와 노동 시간.. 환경도 열악해서 병에 걸린 이도 많았어.
탈출도 못하게 철망이 쳐져 있었어.
감옥과 같은 생활이었지.
그들 중에 사관생도 출신인 이인섭이라는 사람이 있었어.
알렉산드라는 이인섭과 함께 그들의 열악한 노동 환경을 공장장에서 이야기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어.
어느날 현장감독이 중국인 노동자 장가를 구타해서 죽인 사건이 있었고
이 일로 알렉산드라는 파업을 주도했단다. 1916년이었어.
이 파업 시위를 하다가 밀정에 의해 죽을 뻔한 일도 있었어.
이 일로 레닌의 오른팔인 야코프 미하일드비치 스베르드로프를 만나
러시아 볼셰비키의 임무를 맡게 되었단다.
극동인민위원회를 조직하는 일이었어.
그래서 알렉산드라는 옴스크에서 활동을 시작했어.
페름에서 만난 이인섭 등 20여명의 청년들과 함께 시작했어.
활동의 시작은 공산당 선언 낭독으로 시작했단다.
극동인민위원회은 이인섭이 회장, 안경억이 부회장을 맡았어.
1918년 3월 하바롭스크에서 한인망명자대회를 열었는데,
이동휘, 이동녕, 홍범도, 안공근 등 유명한 독립운동가들도 참석을 했어.
하지만, 극동인민위원회는 이동녕과 의견 충돌을 끝내 좁히지 못하고 그 대회를 떠났단다.
한인 사회에도 한인사회당이라는 한인 사회주의 정당이 생겨났어.
이동휘가 의장이었고 와실리 신부가 부의장이었어.
…
4. 너무나 짧은…
러시아의 상황은 점점 좋지 않았어.
볼셰비키 노동자 군대인 적위군과
왕당파 반혁명군인 백위군의 무력 충돌이 연일 일어났어.
백위군이 하바롭스크를 점령하게 되자,
알렉산드라는 피신을 위해
배를 타고 아무르 강을 따라 가고 있었는데, 선장이 도망가는 일까지 일어났어.
그래서 그만 백위군에게 잡히고 말았단다.
알렉산드라는 사회당을 포기하라고 협박을 받았고,
재판에서도 다시 한번 살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알렉산드라는 끝내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았단다.
어린 아이들이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좀더 굽힐 수 있었는데,
그의 양심은 용납할 수 없었나봐.
그냥 위장 전향이라도 하시지… 이 책을 읽는 아빠가 더 안타깝더구나.
결국 알렉산드라는 총살형을 받고 돌아가시고 말았단다.
그때가 1918년니었어.
우리나라 나이로 해봐야 고작 서른네 살이었단다.
너무나 뜨거운 피를 가지고 미래를 사셨던 것 같구나.
이런 생각과 행동은 어떤 동기에서 나오는 것일까?
알렉산드라는 존경할만한 분이지만,
너희들이 이런 삶을 산다고 하면 아빠는 말릴 것 같구나.
물론 정의로운 삶을 사는 것은 맞지만,
어린 아이들과 자신의 삶도 조금은 생각했으면 하지 않나 싶구나.
조금만 융통성이 있어서 삶을 연장했다면,
더 많은 일을 하시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말이야.
너무 빨리 삶을 마감하셔서 정말 안타깝단다.
알렉산드라가 돌아가시고 난 후,
아이들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궁금하구나…
PS:
책의 첫 문장 : 탈영이라니.
책의 끝 문장 : 나는 죽음을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싶다.
책제목 : 시베리아의 딸, 김알렉산드라
지은이 : 김금숙, (원작)정철훈
펴낸곳 : 서해문집
페이지 : 240 page
책무게 : 597 g
펴낸날 : 2020년 04월 10일
책정가 : 16,800원
읽은날 : 2021.05.22.~2021.05.23
글쓴날 : 2021.06.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