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아름다워(389) - 잎과 가지처럼 푸르게 번성하라
지난 16~17 양일간 고향나들이를 하였다. 해마다 이맘 때 갖는 가문의 성묘행사를 겸한 축제의 모임이다.사촌과 함께 광주에서 출발하여 동학운동발상지의 하나로 알려진 고창군 공음면 구수리의 선영에 이르러묘역을 살피니 이내 서울에서 출발한 전세버스가 도착한다. 참석인원은 30여명, 한 시간여 성묘행사를 치르고 굴비의 고장으로 유명한 인근의 법성포에서 굴비정식으로 점심을 들었다.
오후에는 고향마을의 옛집에 들러 무성하게 열린 무화과를 따먹는 등 고향의 정취를 즐겼다. 그 사이 일부는 선고들이 학문과 운율을 즐기던 정각에 들러 할아버지의 시문을 새긴 현판을 둘러보았다. 정각은 어렸을 적 자주 놀던 곳인데 오랜 세월이 지나 많이 퇴락하였다. 정긱의 이름은 송고정으로 소나무언덕에 지은 정자라는 뜻, 정각을 세운 이는 동행한 일가 아저씨의 할아버지인 수현공( 할아버지의 재당숙)이다. 아저씨가 설명을 걷들인다. 이곳에서 원근지역 선비들이 모여 시회를 갖기도 하였는데 몇년전 정각을 살피다가 걸려 있는 현판 중 글의 주인공이 할아버지인 것을 발견하고 동생에게 이를 사진으로 찍어 전했다고.
무화과가 무성하게 열린 고향집
오후 4시 경에 고향마을을 출발하여 선운사로 향하였다. 가는 도중 집안 동생이 심원면 만돌해안에 있는 장어양식장에 들르기를 권한다. 양식장 주인이 문중의 아저씨뻘이라 미리 연락을 취한 모양이다. 고창은 풍천장어로 유명한 곳, 지리적인 연고를 따라 장어양식장이 여럿 있는데 그중 규모가 큰 편이다. 수협조합장을 지낸 문중아저씨는 장어양식에 조예가 깊은 편, 장어는 인공양식이 안되어 태평양에서 부화한 치어를 매년 수십만 마리 사들여 8개월 정도 양식하면 성어로 자란다고 한다. 치어는 3천원 내외, 성어가 되면 2만원 내외로 팔린다며 작년에는 꽤 많은 수입을 올렸다는 설명이다. 새우도 양식중이어서 작별할 때 2kg 남짓의 새우를 건낸다. 일반인들로는 접하기 쉽지않은 장어의 생장과 유통과정을 살피는 기회가 된 셈, 저녁메뉴는 장어구이에 얻어온 새우를 걷들였다.
숙소는 선운사우체국수련원, 아침에 일찍 일어나 선운사 경내를 한바퀴 돌았다. 선운사 일원은 4계절 운치가 있는 곳, 이맘때는 꽃무릇이 피기 시작한다. 경내에 들어서니 이를 카메라에 담으려는 동호인들이 많다. 대웅전에서 만난 스님은 친절하게 인사를 하며 기회가 닿으면 탬플스테이를 하라고 권하기도.한 시간여 경내를 돌아보고 나오니 멀리 인천에서 온 초등학생들이 들어선다. 소년들아, 큰 나무로 자라라.
아침메뉴는 인근해안에서 많이 잡히는 백합죽. 몇년전 1만원이던 밥값이 1만3천원으로 올랐다. 어릴적 구시포해수욕장에 가서 널려있는 대합조개를 줍던 추억이 떠오른다. 값은 좀 높지만 고향의 맛으로 여기면 좋으리라.
아침 후 아산면 운곡저수지로 향하였다. 운곡저수지는 영광원자력발전소의 수원지로 조성하여 외부의 출입을 통제한 곳, 수십년 지나니 창녕우포늪 비슷한 자연생태습지로 변하였다는 보도를 얼마전에 접하였다. 저수지를 한바퀴 돌아보려면 여러 시간이 걸릴 듯, 안내표지가 있는 곳에서 내려 잠시 살핀 후 부안 내소사로 향하였다.
내소사는 사찰입구의 전나무길이 운치있고 천년된 당산나무와 고즈넉한 대웅전, 우뚝 솟은 능가산 자락의 경관이 한데 어울린 아름다운 사찰이다. 주차장에는 원근각처에서 온 차량들이 붐비는데 한무리의 대학생들이 버스에세 내려 발랄하게 걷는다. 청년들아, 험난한 세상과 마주서라.
내소사를 돌아보고 나오니 12시가 지난다.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변산반도 해안길을 휘돌아 격포해안의 식당가에 차를 세웠다. 미리 수소문한 음식점에서 이순신정식(짐작컨데 인근에 성웅 이순신 드라마세트장이 있는 등의 연유로 그런 메뉴가 생긴 것 아닐는지)으로 점심을 들고나니 오후 1시 반이다.
광주로 돌아갈 일행은 이곳에서 작별할 시간, 사촌 동생이 고향의 명산이라고 주문한 시화젓 한 단지 씩을 선물로 나눠준다. 9월 16일은 숙모의 11주기, 기일이면 친척들이 모여 즐겁게 지내라는 유지 따라 해마다 이맘때 한데 모여 화목과 우애를 다진다.
하나님이여,
가문으로 정직하게 행하고 공의를 일삼으며 진실하게 하소서.
집안의 여인으로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자손으로 어린 감람나무 같게 하소서.
후예들로 조상의 좋은 덕목을 계승하여 잎과 가지가 푸른빛처럼 번성하게 하소서.
* 이번 행사의 포인트는 고향 정각의 할아버지가 쓰신 현판 글을 새기는 것, 관련내용을 덧붙인다.
초서로 쓴 글이라 어려워서 국어고문을 하는 분, 한문학자 등 여러 전문가를 거쳐 해독하게 되었다 대숲과 솔숲 언덕을 등지고 있는 정자각의 모습을 묘사하고 계회와 어려운 이웃을 돌본 재당숙의 덕망을 칭송하는 글로 할아버지가 타계하기 3년 전인 1946년 작품이다.
<呈(정)> <바침>
堂成背郭路幽微(당성배곽로유미)
당을 완성하니 성곽을 등지고 오솔길은 그윽한데
倚竹繞松俗態稀(의죽요송속태희)
대숲에 기대고 솔숲에 둘러싸여 속된 모습 볼 수 없네.
稧會捐金皆出義(계회연금개출의)
계모임에 자금 출연하니 모두 의로움에서 나온 것이요
窮隣擧共必無違(궁린거공필무위)
어려운 이웃도 모두 함께하니 반드시 어김이 없었네.
陰存晴欄排暑氣(음존청란배서기)
그늘 진 맑은 난간에는 더위 기운 걷어내고
節高舊巷却寒威(절고구항각한위)
절개 높은 오랜 마을은 추위 기세 물리치네.
子葉孫枝蒼翠色(자엽손지창취색)
자손들은 잎과 가지처럼 푸른빛으로 번성하니
皷山之下永生輝(고산지하영생휘)
고산마을에 길이 빛이 나리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