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의 순간들을 되돌아보는 것은,
과거의 일들을 회상하며 현재의 나의 위치를 자각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한 걸음을 내딛고자 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유락여중 삼거리에 위치한 삼익아파트는 1960년대 한국조폐공사가 있던 자리로 야트막한 야산이었다.
부산광역시 동래구 온천1동에 위치한 공립중학교이다. 1974년 설립인가를 받았고, 1981년 동래구 낙민동에서 현 위치로 교사를 이전하였다. 교훈은 ‘1. 올바르게 생각하자 2. 검약한 생활을 하자 3. 어디서나 등불이 되자’이며, 교화는 목련화, 교목은 목련이다.
유락여중 주변 노거수
백목련
부산에서 제일 먼저 꽃을 피우는 동래지점 목련보다 키가 큰 것 같다
나무껍질은 잿빛을 띤 흰색이며 어린 가지와 겨울눈에 털이 난다.
줄기는 곧게 서고 가지를 많이 낸다. 잎은 어긋나고 달걀을 거꾸로 세워놓은
모양이거나 긴 타원형이며 길이 10∼15cm이다. 가장자리는 밋밋하고 잎자루가 있다.
꽃은 3∼4월에 잎이 나오기 전에 피고 흰색이며 향기가 강하다.
태산목
목련에 비하여 잎과 꽃이 커서 태산목이라 한다
편백나무
16m 전주를 내려다 보고 있다
모과나무
안락1동 경계에 있는 것보다 크다
팔손이
부산 캠퍼스 ‘사유의 길’ 시작점인 미리내 계곡에 있는 크기만 하다
실화백
높이 3m, 수형은 우아한 넓은 원개형의 수관을 형성한다. 수피는 흑갈색이고 사방으로 많은 가지가 나오며 다시 작은 가지가 길게 30㎝ 정도 자라 하향한다.
회화나무
회화나무는 콩과에 속하는 낙엽활엽수종으로 나무 높이가 30m, 직경이 2m까지 크게 자랄 수 있어 은행나무, 느티나무, 팽나무, 왕버들과 함께 우리나라 5대 거목 중의 하나이며, 현재 500~1,000년 된 나무 10여 그루가 노거수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무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릴 때쯤인 8월 초에 황백색 꽃이 나무 전체를 뒤덮어 꽃대가 휘어질 정도로 많이 핀다.
후피향나무
새로난 잎과 줄기가 붉어 이채롭다
홍단풍
잎이 늘 홍색을 띤다
청단풍
어린가지가 청색을 띤다.
왕벚나무
겹벚꽃나무
가지 끝이 굵고 겹꽃이다.
곰솔
바닷바람을 좋아해서 해송
줄기가 검어서 흑송
전깃불 잡아먹고 그 힘으로 달리는 괴물
온천장 종점
'쇠막대기로 전기를 잡아먹고 그 힘으로 달리는 괴물'. 부산에 전차가 등장하면서 부산사람들은 전차를 '전깃불 잡아먹고 달린다'고
떠들어댔다. 처음 전차가 달릴 당시만 해도
공중 전기 케이블에서 방전 불빛이 번쩍번쩍 나는 바람에 사람들은 그 불빛을 번갯불로 생각했다고 한다.
전차가 등장했던 초기엔 일정한 정차장이
없었다. 굳이 정차장을 정해 놓고 전차가 다닐 만큼 손님이 많지 않기도 했다.
사람들은 아무데서나 손을 번쩍 들어 전차를 세우고 탈 수도 있었고, 내리고 싶은 곳에 내릴 수도 있었다고 한다.
1915년 11월 1일 부산우체국~동래 온천장 간 전차 운행을 통해 부산에선 전차가 처음 선을 보였다. 처음엔 주로 일본인들이나 여행객들이 쉽게 온천장을 찾을 수 있도록 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
그 뒤 1916년 대청동선, 1917년 광복동선이 개통되고 1928년 대신동선, 1933년 범일동선, 1935년 영도선이 연장 개통되면서 전차 사업이 본궤도에 올랐다.
전차는 대중교통으로서 역할을 톡톡히 했다. 1918년 부산부의 인구가 6만2천567명이었는데, 1년간 전차를 이용한 승객은 203만3천27명으로 한 사람이 연간 33번가량 전차를 이용했다는 계산이 나온다. 전차삯은 만만찮았다. 처음 전차가 운행될 무렵, 부산역~동래 온천장까지 왕복 운임은 50전. 40~50전 하던 날품팔이 하루 품삯과 비슷했다.
사고도 있었다. 1918년 여름 지금의 부산진시장 근처인 영가대 언덕길에서 좌천동으로 내려오던 전차에 한국인 어부가 치여 즉사했는데, 일본인 기관사는 전차를 몰고 바로 뺑소니쳤다고. 회사 측에서 성의 있는 태도를 보이지 않자 울분에 쌓여 있던 민중들은 영가대에 정차 중이던 전차로 몰려갔다. 민중들은 로프를 전차에 매고 언덕 아래에서 당겨 전차를 굴러 떨어지게 했단다.
1960년대 부산에는 서면을 기점으로 하는 3개 전차노선이 운행됐다. 서면~구덕운동장, 서면~영도 남항동, 서면~동래 온천장 노선이 그것. 하지만 버스의 등장으로 노선 운행에 따른 적자폭이 커지고, 전반적인 시설의 노후화로 전차는 쇠락의 길을 걸었다. 1968년 5월 19일 마지막 운행을 끝으로 53년 동안 부산시민과 함께 해오던 전차는 그렇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숨은 그림 찾기
첫댓글 유락여중의 역사는 낙민초교에서 시작한다
1912년 4월 1일 동래공립보통학교 여자부로 설립돼 1943년 유락국민학교로 명칭을 변경했다. 1974년 유락여중이 설립인가를 받았고, 이후 1976년 유락여중으로 바뀌었다가 1980년 낙민국민학교로 이름을 다시 변경해 낙민국민학교는 그 자리에서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오고 있고 유락여자중학교는 1981년 동래구 낙민동에서 현 위치로 교사를 이전하였다.
낙민초등학교 상수리 나무
100년이 넘어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