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아웃소싱 시대 연 '인포시스'의 고팔라크리슈난 CEO
미국의 한 주부가 야간에 전력회사에 "정전이 됐다"고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그 전화를 응대한 것은 미국 전력회사 직원이 아니라 미국에서 수만㎞ 떨어진 인도 남부 방갈로르(Bangalore)에 있는 인포시스(Infosys)란 회사의 콜센터 직원이다. 미국식 영어를 쓰는 이 인도인 직원은 주부의 불만 사항을 접수해 즉시 그리고 친절하게 처리해 줬다. 인포시스에는 이런 콜센터 직원만 1만8500여명이 있고, 이 업무로만 연간 3억5000만달러(3850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전체 직원은 11만 5000명에 매출은 47억5000만달러에 이른다.인도 기업의 취재는 섭외부터가 매우 힘들다. 하물며 세계 2위의 아웃소싱(outsourcing·외주) 업체이자, 토머스 프리드먼(Friedman)의 ≪세계는 평평하다·The world is flat≫ 집필에 영감을 준 회사임에야. 인포시스의 창업자 7명 중 한 사람이자 현 CEO인 S 고팔라크리슈난(Gopalakrishnan·59)씨가 오는 11월 서울서 열리는 'G20 비즈니스 서밋(B20)'에 참석한다는 사실을 지렛대로 겨우 취재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취재는 처음부터 난항에 부딪혔다. 회사측이 거의 모든 건물의 출입을 막은 것이다. 보안상의 이유라고 했다. 기자는 수영장과 골프장까지 들어선 호화 사옥의 겉만 둘러보고, 레스토랑과 헬스클럽이 들어 있는 복지동 건물에 들어가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 ▲ '인포시스'의 고팔라크리슈난 CEO.
아쉬웠다. 30여개의 건물 곳곳에선 날로 진화하는 글로벌 아웃소싱의 현장을 볼 수 있을 터였다. 오늘날 이 회사의 아웃소싱 범위는 콜센터를 훨씬 뛰어넘는다. 주로 미국과 유럽의 고객 기업에 필요한 각종 IT 시스템 개발은 물론, 재무·회계 자료를 대신 처리해 주고, 회계보고서도 만들어준다. 나아가 직원 채용과 교육, 인사 관리, 물품 구매와 물류 관리, 각종 서류 발급 대행, 인터넷·통신판매, 컨설팅에 이르기까지 기업이 원하는 일이면 무엇이든 대신 맡아서 해준다. 세계 592개 기업이 인포시스의 고객이다. 보안은 매우 엄격해서 예를 들어 아메리칸익스프레스를 담당하는 직원은 GE를 위한 일을 하는 건물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
콜센터부터 인사관리·컨설팅까지
기업이 원하면 무엇이든 대신해줘
"인도 애들이 일자리 다 뺏어간다?
개도국은 IT전문가가 모자라고
선진국은 노령화로 아웃소싱 늘 것
인포시스의 공동 창업자 7명 중 한 사람인 고팔라크리슈난 CEO와는 방갈로르가 아니라 뭄바이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 그는 인포시스라는 회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기업의 모든 업무를 해결해 주는 서비스 회사"라고 정의했다. 인포시스는 글로벌 아웃소싱 모델을 처음으로 개척했다. 고팔라크리슈난 사장의 표현을 그대로 옮기자면 "멀리 떨어져 있는 해외 기업의 업무를 보다 싼 비용으로 대신 처리해 전달해 주는 일"이고, "아무도 시도하지 않은 창의적인 비즈니스"였다.
1981년 단돈 250달러로 창업한 이 회사를 지난해 포천(Fortune)지는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100대 기업'으로 선정했다. 금융위기의 진앙인 미국시장에 매출의 3분의 2를 의존하고 있는데도 인포시스는 큰 타격 없이 비켜 지나갔다. 2009년 3월까지의 1년간 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13% 증가했고, 2010년 3월까지의 1년 동안에는 0.9% 증가했다. 올 7~9월엔 전년 동기 대비 17% 늘어났다.
- ▲ '인포시스'의 고팔라크리슈난 CEO. /블룸버그
토머스 프리드먼은 인포시스를 비롯한 인도 기업들의 아웃소싱 현장을 취재하고 이렇게 썼다. "어릴 때 밥을 남기면 부모님이 '어서 마저 먹어라. 중국이나 인도 애들은 없어서 못 먹는다'고 했다. 그러나 요즘 나는 딸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 숙제 마쳤니? 제대로 안 하면 중국이나 인도 애들이 네 일자리 뺏어간다'라고."
금융위기로 미국의 실업률이 고공행진을 거듭하자 '일자리 뺏는 인도인'이란 인식이 정책으로까지 반영되기 시작했다. 지난 8월 미 의회는 기업 숙련 노동자들의 미국 입국 비자 발급 비용을 2배로 올리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미 오하이오주는 정부가 발주하는 IT나 후선 지원업무(back office)를 인도 같은 해외에 아웃소싱 하는 것을 금지했다. 인도 아웃소싱 업체들에게 미국 정부의 일감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기 때문에 별 영향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미국인들 사이에 해외 아웃소싱에 대한 거부감이 계속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고팔라크리슈난 CEO는 "미국에서 일자리가 사라지는 것은 시장과 경제 상황의 변화가 원인이지 아웃소싱 때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창업자 중 한 사람이자 전 CEO인 나라야나 무르티(Narayana Murthy) 이사회 의장은 한 인터뷰에서 "(미국의 조치에 대해) 공격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정답이 아니다. 혁신을 통해 고객에게 더욱 더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가 되는 것이 더 좋은 길이다"라고 말했다. 인도에는 인포시스 외에도 위프로(Wipro)나 타타(Tata) 같은 대형 아웃소싱 업체들이 있다. 이들 기업에 대한 미국 기업의 의존도는 이미 되돌리기 어려운 단계까지 와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고팔라크리슈난 CEO는 "글로벌 아웃소싱이 계속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 근거로 두 가지를 꼽았다. 개발도상국은 IT 전문가 부족 현상이, 선진국은 인구 노령화 현상이 계속 아웃소싱 수요를 창출할 것이라고 그는 내다봤다.
"은행 통합 IT시스템까지 서비스…우린 단순 하도급업체가 아니다"
고팔라크리슈난 CEO를 만나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그의 바쁜 일정 때문에 인터뷰 약속 시간은 4번이나 바뀌었다. 심지어 인터뷰 2시간 전에 다시 '약속 변경' 통보가 오기도 했다. 인터뷰 장소도 '방갈로르→뭄바이 외곽→뭄바이 시내'로 수시로 바뀌었다. 비서진은 돌발 행사가 많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달 20일 인도 뭄바이의 최고급 호텔 오베로이에서 마침내 그를 만났다. 그는 갈색 가죽가방을 들고 인터뷰룸에 들어섰다. 가방은 서류가 가득 들어 있는 듯 불룩했다. 그는 아담한 체구에 말투는 느리고, 간결했다. 간디와 아인슈타인, 빌 게이츠를 존경한다는 그는 사업가라기보다는 조용하고 생각에 잠긴 듯한 표정이 마치 학자 같았다. 1시간 동안 제스처나 몸짓 한번 없이 꼿꼿한 자세로 말을 이어갔다. 단어 하나하나를 또렷하게 끊어 말하는 품에서 자신감이 느껴졌다.
250달러짜리 벤처기업을 어떻게 글로벌 기업으로 키웠는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는 "남이 보지 못한 곳에서 새로운 사업 아이템을 찾아낸 창의적 아이디어가 성공 요인"이라고 답했다. 그가 애초에 가진 생각은 기업의 일감을 세계의 여러 지역에서 할 수 있도록 나누고 또 합치는 것이었다. 인터넷을 비롯한 IT 기술의 눈부신 발전이 이를 가능하게 했다. 처음에는 미국의 일감을 인도에서 처리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전 세계의 일감을 중국과 필리핀, 동유렵, 남미 등 세계 곳곳에서 나눠 처리하고 다시 합친다.
그는 지속적이고 신속한 변화를 강조했다. "리더십은 사람과 조직에 변화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지속적으로 변화·발전하되, 다른 이들보다 더 빠르게 해야 합니다. 우리는 시장 수요와 기술 변화에 대응해 끊임없이 서비스를 변화시켜 왔습니다. 예를 들어 밀레니엄 버그(Y2K·컴퓨터의 2000년 인식오류) 문제 때도 우리는 미리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또한 인터넷 붐 때도 그랬죠. 그 시기에 우리는 매우 빠르게 성장했습니다."
그는 사업을 마라톤에 비유했다. "하룻밤 사이에 성공한다는 것은 우연일 뿐입니다. 성공한 기업은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됩니다. 사업을 100m 달리기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참을성이 있어야죠."
■더 이상 하도급 업체에 머물지 않겠다
그는 인포시스가 은행을 위한 통합 IT시스템인 '피너클(Finacle)'을 개발한 것을 두고 "가장 성공한 금융거래 시스템"이라며 꽤나 자랑스러워했다.
은행의 여신·수신·외환·인터넷뱅킹 등 기본 업무에다 CRM(고객관계관리), 신상품 개발, 데이터 관리에 이르기까지 모든 업무를 포괄하는 시스템이다. 은행의 경쟁력의 원천이라고도 할 수 있는 핵심 시스템을 인포시스가 한 묶음으로 만들어 판매하는 것이다. 하나에 수백억원에 이르는 이 프로그램이 2008년부터 본격 판매돼 세계 110여개 은행이 도입해 사용하고 있고, 여러 기관에서 금융분야 최고 상품으로 수차례 선정됐다. 최근에는 모바일용 제품도 나왔다.
인포시스는 그동안 고객 기업의 일감을 대신 처리해주는 하도급업체이자 을(乙)이었는데, 이제 가장 고도화된 산업 중 하나인 금융산업에 표준이자 플랫폼이 되는 시스템을 공급하는 업체가 된 것이고, 이 점을 크리슈난 CEO는 자랑스러워하는 것이다.
그는 '크라우드소싱(crowdsourcing)'을 새로운 성장 분야로 꼽았다. 크라우드소싱이란 일을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에게 공개적으로 요청해서 처리하는 것으로 집단 지성을 활용하자는 취지다. 예를 들어 소녀시대의 노래 편곡을 인터넷을 통해 공모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도록 한 사례가 있는데, 이것도 크라우드소싱의 한 예다. 인포시스 역시 고객으로부터 받은 일감을 쪼개어 대중의 지혜를 빌릴 수 있다는 것이다.
창업 멤버들은 60세 되면 은퇴
가족 경영·대물림 경영 없다
차세대 리더 700명 양성 중
고팔라크리슈난 CEO는 작년 한 해가 가장 힘든 해 중 하나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인포시스는 -3~-4%의 마이너스 성장이 예상됐던 2010년 3월에 끝난 회계연도에도 3% 성장을 이룩함으로써 30년 연속 성장의 기록을 세웠다. 그는 "인도 같은 개발도상국에서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하면서 42만개의 일자리와 600개의 해외 거래처를 확보한 게 스스로도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 성장률은 24~25%에 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인포시스가 미국·유럽 시장에서의 성공과는 대조적으로 아시아에서 별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그도 인정했다. 아시아를 포함한 '기타' 시장은 매출의 10%를 차지하는 데 그치고 있다. 그는 "한국, 일본, 중국 등 아시아에서 고객을 상대하는 방식과 미국이나 유럽에서 하는 방식은 매우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래서 요즘은 현지인을 많이 채용하고, 사업도 현지화에 신경을 쓴다. 중국에서 약 3000명, 일본과 싱가포르에서 각각 600명의 현지 직원을 채용했다.
―중국은 IT 분야에서도 아주 빠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잠재력을 어떻게 평가합니까?
"중국은 세계의 많은 회사들에게 매우 중요한 시장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중국의 시장뿐만 아니라 중국의 인재 또한 활용하고 싶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이미 중국에 2개의 기술개발센터를 세우고 3000명의 인재를 채용한 이유입니다. 저는 중국을 시장 기회로, 인재를 발굴할 수 있는 곳으로, 그리고 미래의 잠재적 경쟁자로 봅니다. 우리는 서로 경쟁해야 하는 동시에 함께 일해야 합니다."
■2000명의 백만장자를 배출하다
인포시스의 창립 이념 중 하나는 '모든 직원을 백만장자로 만들자'는 것이다. 현재 인도 루피화 기준으로 직원 2000명이 백만장자다. 달러 기준으로도 500명이나 된다. 국민의 60%가 하루 2달러 이하로 사는 인도에선 이례적이다. 1993년 회사를 공개했을 때부터 모든 직원들에게 스톡옵션을 주기 시작한 덕이다.
매년 130만명 이상의 젊은이들이 입사 원서를 내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러나 실제 입사하는 사람은 이 중 1% 안팎인 1만~1만5000명 정도다. "하버드 대학보다 들어가기 어렵다"는 말도 나온다.
또 하나의 매력은 직원 교육이다. 인포시스의 신입사원 연수 기간은 거의 5개월에 이르며, 신입사원 한 명을 교육시키는 데 평균 5000달러를 쓰고 있다. 게다가 인포시스의 고객들은 대부분 세계 2000대 기업들이다. 인포시스 직원이 되면 세계 최고의 회사들과 일할 수 있는 것이다.
'1조213억 루피(약 25조5000억원)'. 이는 인포시스의 연례보고서에 기재된, 이 회사의 인적 자산 가치를 나타내는 수치다. "기업에는 눈에 보이는 자산만 있는 게 아닙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자산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는 브랜드이며, 다른 하나는 인적 자산이죠." 브랜드나 인적 자산은 공식 회계보고서엔 반영이 안 된다. 그럼에도 인포시스는 자체적으로 브랜드와 인적 자산의 가치를 오랫동안 평가해 왔다. 인적 자산의 가치는 종업원들이 장차 받게 될 소득을 현재가치로 환산해 계산된다.
그의 말은 Weekly BIZ가 만난 덴마크의 미래 학자 롤프 옌센의 말을 떠올리게 했다. 롤프 옌센은 "기업의 자산에서 인적 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90%에 이르는데, 그런 인재의 가치를 반영하지 않는 현재의 회계 시스템은 잘못됐다"고 말했다. 나라야나 무르티 이사회 의장은 인포시스의 2008년 연례보고서에 이렇게 썼다. "우리의 핵심자산은 매일 저녁 회사를 빠져나갑니다. 우리의 임무는 그 자산이 다음날 아침 열정적인 모습으로 다시 돌아오게 하는 것입니다."
이 회사의 입사시험엔 수학과 논리 퍼즐 시험이 포함되는 것으로 유명하다. 예를 들어 이런 문제다. '형제자매가 없는 나는 한 남자의 사진을 보고 있다. 이 남자의 아버지는 내 아버지의 아들이다. 이 남자는 누굴까?' 이런 문제를 내는 건 "응시자의 학습 능력과 문제 해결 능력을 테스트하기 위해서"라고 고팔라크리슈난 CEO는 말했다.
"기술과 사업, 제도, 경쟁상황은 수시로 변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학습 능력은 매우 중요합니다. 대학에서 배운 것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어떤 문제에 직면했을 때, '와! 이건 너무 어렵잖아'라면서 두손 들고 포기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반면 성공한 사람들은 난관을 잘 극복하고 즐길 줄 합니다. 저는 문제 해결 능력과 삶을 낙천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서로 관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낙천주의자들은 도전을 즐기고 해결하려는 사람들이죠. 그런 사람은 자신감이 있고 의사소통 능력이 좋아요. 이것이 바로 직원 채용 시 중요한 잣대이고, 이것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인포시스의 장래에 위협 요인 중 하나는 인재 확보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임금이 상승하고 이직률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6월까지 1년간 인포시스의 이직률은 15.8%로 치솟아 지난 5년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고팔라크리슈난 CEO는 지난 2년의 경기 침체기 동안 임금을 동결한 것도 한 원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회사가 다시 성장기로 들어서면서 보수를 인상했고 그 뒤 이직률이 다시 감소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고경영자 후보 50명을 키운다
인포시스는 인도에서는 드물게 '가족 경영'과 '대물림 경영'을 하지 않는 기업이다. '설립자로부터 자유로운 기업'이 인포시스의 경영이념 중 하나다. 그래서 가장 모범적 지배구조를 갖고 있는 기업으로 평가되고 있다. 창업 멤버들의 지분은 다 합쳐 16.4%. 외국 기관투자자들의 지분(35%)이 훨씬 많다.
입사 시험에 수학·논리 퍼즐
모든 직원에 스톡옵션 제공
직원 2000여명이 백만장자
지금까지 경영은 창업 멤버들이 맡아 왔지만, 앞으로는 회사 내부에서 키운 전문경영인에게 맡길 계획이다. 창업 멤버들은 60세가 되면 은퇴하기로 결정했고, 약속대로 무르티 회장은 2006년 만 60세가 되자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고팔라크리슈난 CEO는 "우리는 가족들이 사업에 참여하지 못하게 했고, 사내에서 키운 최고의 인재에게 회사를 넘겨주기로 했다. 이것은 매우 분명한 원칙이다"라고 말했다.
인포시스의 사내 리더 양성 프로그램은 미국의 GE를 뺨친다.
"우리는 차세대 리더를 세 가지 단계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먼저 미래의 최고경영자(CEO)와 최고운영책임자(COO), 최고재무책임자(CFO)가 될 수 있는 후보자 50여명을 양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바로 아래 수준, 또 그 아래 수준의 리더가 있죠. 그래서 세 단계를 합쳐 총 700명의 사람들이 구분되어 발굴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교육하고 멘토링(mentoring)하고 있습니다."
―한국과 인도 기업이 윈윈을 위해 어떻게 협력해야 할까요?
"인도의 서비스 회사들은 특히 한국 기업들이 저소득층을 위한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약속한 인터뷰 시간(1시간)에 딱 맞춰 답변을 끝냈다. 그리고 "바로 다음 일정이 있다"며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비서도 없이 혼자 가방을 들고서 말이다.
수영장·쇼핑몰·극장… 리조트 뺨치는 '인포시스 캠퍼스'
인도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IT의 중심지 방갈로르에 위치한 인포시스 본사는 한마디로 별천지였다. 멋진 디자인과 다양한 IT 기능을 갖춘 최첨단 건물들과 수영장, 골프 코스, 극장 등을 보니 탄성이 절로 났다. 대형 헬스클럽과 당구장, 야구·테니스장에 쇼핑몰과 병원까지 갖추어져 있었다. 푸른 수영장에 둘러싸인 복지동은 호주 시드니의 오페라 하우스를 연상시켰다.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 광장의 대형 유리 피라미드를 꼭 빼닮은 회의장 건물도 있었다.
수십 개 동으로 나눠진 본사 사옥은 하나 같이 친환경, 인체공학적으로 설계되어 있다. 모든 건물은 인텔리전트화돼 있고, 초고속 통신망이 국내외 지사와 전 세계 거래처를 실시간으로 연결한다. 대학 캠퍼스와 연구소, 리조트를 합쳐놓은 느낌이었다. 인포시스에선 본사 단지를 '인포시스 캠퍼스'라고 부른다. 항상 차와 사람이 뒤엉켜 복잡하고 지저분한 주변 거리와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 ▲ 인도 방갈로르의 인포시스 본사 복지동 주변의 수영장. 직원들이 일과 시간 중에도 대화를 나누며 자유롭게 시간을 보내고 있다. /조선일보 DB
넓은 캠퍼스를 전기카트를 타고 돌아보면서 이것이 인도 기업이라는 것을 실감하기 어려웠다. 직원들은 캠퍼스 곳곳에 비치해 둔 1000여대의 자전거를 이용해 손쉽게 건물 사이를 이동했다. 많은 직원들은 천천히 산책을 하며 대화를 나누거나, 잔디밭에 삼삼오오 앉아 토론을 하고 있었다. 경치 좋은 카페에서 차를 마시거나 식사를 하는 사람, 벤치에서 쉬는 사람, 단체로 사진을 찍는 직원 등 자유로운 분위기가 대학 캠퍼스와 다르지 않았다.
안내하는 직원에게 "근무시간에 이렇게 자유롭게 지내도 되느냐?"고 물었다. 그는 "각자의 일에 따라 차별화된 유연한 근무시스템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대답했다. 직원들은 자신의 일과 시간을 고객인 미국·유럽 기업의 근무 시간대에 맞춘다. 그러니 고객과 업무 교류를 하지 않는 시간에는 산책과 식사·운동 등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직원에 대한 투자를 늘릴수록 그들이 더 효율적으로 일한다는 것이 인포시스의 생각이다. 인포시스의 이직률은 업계 평균(17~18%) 보다 크게 낮은 11~12% 정도다.
- ▲ 인도 마이소르에 위치한 인포시스 세계교육센터. 공 모양의 이 건축물은 디즈니월드의 놀이시설을 빼닮았다.
인포시스의 상징 중 하나인 글로벌 콜센터(Business Proccessing Office)는 사방이 푸른색 유리로 둘러싸인 독특한 디자인의 건물이었다. 직원인 자얀스 자가디시(Jagadeesh)는 "1000여명의 직원들이 전 세계 소비자들로부터 걸려오는 상담과 주문, 고객 불편 신고 전화를 24시간 응대하고 있다"며 "주 고객은 미국 기업의 소비자들"이라고 말했다. 이곳 직원들은 미국식 영어를 공부하고 발음도 미국식으로 하려 애쓴다. 고객은 별의 별 걸 다 묻는다. 미국 현지의 날씨와 교통 정보, 피자집 전화번호까지 물어본다. 미국에 있는 것처럼 보여야 하기 때문에 인터넷으로 즉시 파악해 알려준다. 항의하는 고객의 마음을 누그러뜨린 뒤 다른 물건이나 서비스를 판매하기도 한다.
그러나 인포시스가 하고 있는 업무 대행 서비스는 단순 콜센터에 그치지 않는다. 사실상 기업의 모든 업무가 인포시스의 아웃소싱 대상이다. 미국 기업의 직원들이 신청한 각종 서류나 재직 증명서를 발급해 주는 곳도 여기다. 기업의 채용이나 면접에 필요한 공고 등 각종 절차를 대행해 주고, 쏟아져 들어오는 이력서들을 검토해 회사가 정한 기준에 맞는 후보들을 추려낸다. 직원 직무 교육을 위한 직원별 일정 관리, 통보 절차도 대신 해준다. 대량으로 싸게 자재를 구입해 고객 기업에 공급해 주기도 한다. 전통적으로 기업이 가장 남에게 맡기기 꺼려할 재무 업무조차 대행한다. 기업의 여러 부서에서 발생하는 각종 수입·비용 내역을 한데 모아 분석하고, 회계 보고서 초안까지 작성해 준다.
이곳에서 130㎞ 떨어진 마이소르에는 40만평 넓이의 세계 최대 규모의 사내 교육시설인 '글로벌 교육센터'가 있다. 야자수가 늘어선 대형 수영장과 인도 최대 규모의 헬스클럽, 디즈니월드에 있는 것과 유사한 공 모양의 건축물, 볼링센터와 미용센터, 대형 극장 등을 갖춘 리조트형 교육시설이다. 인포시스는 1억2000만달러(약 1300억여원)를 투자해 이곳을 건설했다. 연간 1만5000명에 달하는 '신입생'들이 14주간 컴퓨터 언어와 소프트웨어 등 업무 교육을 받는다. 신입 교육을 받는 직원들 중에는 미국 MIT와 펜실베이니아 대학 등 명문대 졸업자들도 상당수 끼어있다. 미국 기업의 하도급을 받던 인포시스가 거꾸로 미국의 최고 인재를 데려다 교육시키고 있는 것이다.
고팔라크리슈난 CEO는 이곳을 "모든 교육을 마무리하는 학교"라고 설명했다. "우리가 교육에 이렇게 돈을 투자하는 것은 창의적인 인재와 미래 리더를 발굴하고 양성하기 위해서입니다. 학교를 졸업한 학생을 좋은 직원으로 바꾸고, 인포시스만의 기술과 프로젝트를 실행하는 방법과 수단을 훈련시키는 과정입니다."
올해 3월까지의 1년간 인포시스의 매출액은 47억 달러(약 5조2000억원), 순이익은 13억 달러(약 1조4000억원)에 달한다. 국제아웃소싱협회(IAOP)가 조사·발표하는 세계 아웃소싱 기업 순위에서 인포시스는 작년 9위에서 올해 2위로 뛰어올랐다. 전 세계에 50여개의 지사와 자회사를 갖고 있고, 직원 수는 11만5000여명이다.
모두 592개사를 고객사로 두고 있고, 이 중 연간 1억달러 이상 아웃소싱 거래를 하는 글로벌 기업이 12개이다. 북미와 유럽 매출 비중이 각각 66%와 22%로 대부분을 차지한다. 인도 내의 거래는 2%에 불과하다. 기업의 업무 관련 각종 응용 프로그램 개발·관리와 컨설팅 서비스가 핵심 업무다. 매출의 각각 39%와 26%가 여기서 나온다. 콜센터 등 업무 용역과 기업의 인프라 관리 업무의 비중은 각각 6% 정도다.
인포시스는 1981년 인도 중서부의 교육 도시인 푸네(Pune)에서 단돈 250달러의 자본금으로 출발했다. 나라야나 무르티(Murthy)와 난단 닐레카니(Nilekani), S 고팔라크리슈난(Gopalakrishnan), N S 라그하반(Raghavan) 등 7명이 창업의 주역. 이들은 인도의 파트니컴퓨터시스템이라는 IT 회사에서 함께 일하던 IT 전문가들이었다. 창업 자금은 무르티의 아내가 인도 대표 기업인 타타자동차에 근무하면서 저축해 놓은 1만 루피(250달러)가 전부였다. 사무실을 얻을 돈도 없어서 라그하반의 집에 사무실을 차렸다.
첫 번째 고객은 미국 뉴욕에 있는 '데이터 베이직스'라는 회사였다. 인포시스는 1983년 본사를 뭄바이로 이전했고, 1992년에는 보스턴에 첫 해외 사무실을 냈다.
그러나 1980년대 말 심각한 경영난에 봉착했고 창업자들은 한때 회사 매각까지 검토했다. "우리는 당시 무명의 작은 회사였고, 자금도 충분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1989년에 창업 멤버들이 모여 회사의 미래를 결정하기 위한 논의를 했습니다. 우리는 회사를 매각하려 했고, 인수 대상자를 찾기도 했죠. 다행히 그렇게 하지는 않았습니다."
어떻게 위기를 넘겼는지 물었다. 그는 "투자자들에게 한 번만 더 기회를 달라고 호소한 뒤 1992년 주식 상장으로 승부수를 던졌다"고 말했다. 다행히 상장은 성공적으로 이뤄졌다. 운도 따랐다. 1991년 인도 정부가 경제 자유화 조치와 함께 인도 시장을 개방한 것이다. 인도가 문을 열자 해외 시장의 문호도 함께 열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다행히 알맞은 시기에, 알맞은 장소에 있었습니다." 1999년에는 매출 1억 달러를 달성하면서 인도 기업 최초로 미국 나스닥에 상장하는 데 성공했다.
무르티의 뒤를 이어 CEO가 된 닐레카니는 "우리가 게임을 하는 경기장이 평평해졌다"는 말로 유명하다. 이 말은 토머스 프리드먼의 책 ≪세계는 평평하다≫의 모티브가 됐다. 그는 "서로 무관해 보이는 것들 사이에서 연결고리를 찾아내고, 익숙한 것을 새롭게 배열하면 불현듯 아이디어가 싹트고, 엄청난 기회가 느닷없이 생긴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그는 현재 인도 정부의 주민등록번호 시스템 개발 프로젝트를 주도하고 있다.
고팔라크리슈난 CEO는 명문 인도공과대학(IIT)에서 물리학과 컴퓨터 공학을 전공했다. 미국 책임자와 COO(최고운영책임자)를 거쳐 2007년 CEO가 됐다.
콜센터·고객관리서 회계·재무보고서까지 IT서비스 기업에 위탁
컴퓨터가 기업 경영의 중요한 도구로 사용되기 시작한 1960년대 이래 많은 회사들이 자체적으로 정보시스템 부서를 운영하며 필요한 시스템들을 스스로 구축했다. 하지만 폭발적으로 늘어가는 현업 부서들의 요구를 한정된 내부 전산 인력으로 제대로 만족시킬 수 없었기에 점차 외부 IT 서비스 전문 기업들에 자사 정보시스템의 개발이나 산재한 시스템들의 통합(SI)을 의뢰하는 기업들이 늘어나게 됐다.
IT 아웃소싱은 1989년 코닥(Kodak)이 자사 주요 부서들의 모든 정보시스템 운영 업무를 IBM 등 외부 IT 서비스 기업들에 위탁하는 10년 외주 계약을 체결하면서 대변혁기를 맞게 된다. 연간 5000억원 가까이 들어가던 IT비용을 30%나 절감한 코닥사의 성공 사례에 고무돼 전 세계에서 IT 아웃소싱이 트렌드로 자리를 잡기 시작했고, 이러한 서비스를 전문으로 제공하는 IBM, 액센츄어, EDS 같은 기업들이 급성장하게 된다. 1990년대 중반부터는 자사만을 위한 시스템을 구축하지 않고, SAP나 오라클(Oracle) 등에서 만든 전사적 통합 정보자원 관리시스템(ERP)을 패키지 형태로 도입해 자사의 비즈니스 프로세스를 혁신하는 기업들이 늘어났다. IT 서비스 기업들은 기업의 중요한 전략 수립이나 프로세스 재설계를 위한 컨설팅 부문으로도 사업 영역을 확장하게 된다.
이와 동시에 초고속 인터넷의 글로벌 확산에 힘입어 기업의 비핵심 부문 운영을 외부 기업에 의뢰하는 비즈니스 프로세스 외주(BPO) 또한 활발해졌다. 많은 미국, 유럽의 기업들은 자사의 콜센터나 회계·재무 등 경영 지원 업무들은 물론 고객 관리, 공급망 관리 업무까지도 영어 구사에 문제가 없는 인도 등지의 IT 서비스 기업들에 이관하고 있다.
인포시스는 IT 외주업계의 후발 주자임에도 불구하고 독창적인 비즈니스 모델과 고객 가치 중심 전략을 통해 불과 10여년 만에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한 매우 드문 사례이다. 아마도 전 세계 수많은 IT 서비스 기업 중 자사 전문가 직원들의 보수를 매출이나 계약고가 아닌 고객사에 실제로 발생한 비즈니스 가치에 따라 결정하는 기업은 인포시스가 처음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