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의 사전적 의미는 자기가 태어나고 자라난 고장이거나 조상 때부터 대대로 살던 곳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그러나 자기가 태어나지 않았던 곳이거나 조상이 대대로 살지 않았다고 해서 고향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태어난 곳을 떠나 어쩌다 정착하게 된 고장을 고향으로 생각하고 사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이곳저곳 떠다니다 정을 붙이고 살다 보면 그곳을 고향으로 여기며 사는 사람들도 있다.
고향에는 부모 형제가 살아있거나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산소를 모신 경우가 허다하고, 형제자매와의 오붓한 추억이 서려 있는 곳이다. 어린 시절 개구쟁이 친구들과 어우러져 지냈던 행복한 즐거움이 채색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희로애락의 순간들로 점철된 삶의 편린과 진한 체취가 배어있기 마련이다.
고향이라는 말에는 언제나 그런 아련한 그리움과 포근한 느낌을 주는가 하면 동시에 가슴을 울컥 치밀게 하는 연민의 정을 자아내기도 한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 꽃 살구 꽃 아기 진달래......’로 시작되는 동요 ‘고향의 봄’도 그렇다. 그래서 이 곡은 민족의 노래이자 고향에 대한 아련한 정서를 대표하는 노래이기도 하다.
우리는 분단의 아픔을 간직한 채 반세기가 훨씬 넘어가는 동안 고향을 잃은 일천만 실향민들의 애환을 가슴속에 애틋하게 담고 사는 민족이다. 태어나고 자란 고향을 잠시 떠나있을 때나 고향에서 살아가면서도 우리들은이 노랫말을 대하면서 코끝이 찡하는 아릿함을 느끼게 되며 아련한 그리움이 솟구치는 격정을 경험하게 된다.
하물며 부모 형제가 살아있는 그리운 산하를, 꿈에 본 고향을 지척에 두고 오갈 수 없는 실향민의 향수와 그리움을 어찌 글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분단 이후 40 여년 만인 1988년 8.15 경축 예술단이 북한을 방문하게 되었을 때의 일이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지학순 신부가 처음으로 누이를 상봉하면서 부둥켜안고 오열했던 장면은 혈육의 정과 그리움이 얼마나 애틋한 것인가를 웅변으로 말해주고 있어 보는 이들의 눈시울을 적셨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부모 형제자매는 물론 이웃과 함께 정든 고향 땅에서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나는 신의 크나큰 축복을 받고 있다. 이따금 그런 생각이 들 때면 고향을 떠나 살아가는 이들에게 미안하다는 생각보다 오히려 송구함마저 느낄 때가 많다.
내 고향은 군산이다. 옥구군 임피면이 내가 태어난 곳이고 고향이다. 일곱 살이 되던 해 군산으로 이사하여 평생을 살아왔다. 지금은 도농통합으로 군산시가 되었으니 군산이 고향인 셈이 되었다.
고향은 꿈을 담은 투박한 질그릇과 같다. 어머니와 같은 포근함과 위안을 주는가 하면 거센 파도가 일렁이듯 회한을 일깨우기도 하고 때론 따스한 안식과 새로운 희망을 주기도 한다. 고향을 가지지 않은 사람은 없다. 그러나 매양 고향에서만 평생을 사는 사람은 드물다.
많은 사람들이 직업이나 학업 등 여러 가지 사정 때문에 고향을 떠나살기 일쑤이다. 고즈넉한 저녁나절 휘영청 밝은 보름달이라도 보는 밤이면 고향은 거센 파도처럼 가슴을 휘저으며 설레게 하고 간절한 그리움으로 일렁이게 한다.
난 태어나서부터 고향을 떠나 본 일이 거의 없다. 공무원으로 살아온 탓에 남원과 순창에 발령을 받아 근무한 적이 있다. 하지만 가솔들이 군산에 기거하고 있었고, 거처를 잠시 옮겼을 때에도 고향을 뻔질나게 드나들었으므로 고향을 떠나있었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내 고향 군산은 바다가 풍겨주는 비릿하고 짭조름한 내음으로 하여 더욱 정감을 갖게 한다. 그런 바다 냄새와 더불어 고향 사람들이 숨 쉬고 사랑하면서 격정의 세월을 살아왔고, 서로들 끈끈한 정과 인연을 맺으며 살아가고 있다.
아침 햇살에 비늘처럼 번쩍이는 고깃배와 그곳에 삶을 실은 어부들의 땀이 녹아있는 선창의 진지함도 그렇다. 사람과 바다가 어우러져 뿜어내는 터질 것 같은 팽팽함이 기를 죽이는 해망동 특유의 향기 또한 군산의 토속적인 냄새일 것이다.
금빛으로 빛나는 싱싱한 황석어 더미 위에 앉아 만선의 흥겨움을 만끽하는 어부들의 싱그러운 모습과 군산만이 갖을 수 있는 도시의 냄새가 어우러지면 우리의 삶의 체취와 열정이, 가슴과 가슴을 가로질러 대학로에도, 해망굴에도, 점방占方*과 설림雪林*을 넘어 월명산의 수시탑까지 도시 전체를 휩싸 안고 영원한 생존을 거듭할 것이다.
나는 나의 생활이 지루하고 느슨해질 때면 으레 군산역의 벼룩시장을 버릇처럼 찾게 된다. 군산의 새벽은 어김없이 벼룩시장으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곳은 삶의 격전장일뿐더러 훈훈한 가슴이 교차하고, 침잠하였던 인정이 승화되는 감동과 더불어 삶에 대한 외경심마저 불러일으키게 한다.
시장은 어느 지역이나 있게 마련이지만 군산에서 느끼는 장터의 모습은 특별한 연민과 애증까지도 안겨주게 된다. 오랫동안 맡아 온 그 특유의 냄새 때문일 것이다. 그 냄새들로 하여 풀이 죽고 생기를 잃었던 나는 어느덧 삶의 열기로 가득 차 있는 모습으로 변모하여, 생생한 일상을 살아갈 수 있는 동력을 얻게 되는 것이다.
70여 년간의 삶 속에 영욕이 없을 수 없겠으나 그런 나의 모든 것을 간직한 용광로처럼 타올랐던 내 고향 군산은 어쩌면 나의 우상처럼 커다란 웅지를 품고 있는 도시인지도 모른다. 미래의 삶 또한 이곳에서 함께할 내 고향 군산은 그 특유한 고향의 냄새와 더불어 항상 내 가슴속에 영원히 머무르게 될 것이다.
*占方山 전라북도 군산시 월명공원 지역내에 위치한 138m의 산 이름
*雪林山 전라북도 군산시 월면공원 지역내에 위치한 116m의 산 이름
첫댓글 고향 그리는 절절한 마음과 아련히 피어나는 냄새를 한 데 버무려 낸 첫 작품을 대하니 반갑습니다. 잘 감상했습니다. 다음 작품을 기대합니다.
졸작을 읽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많은 지도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