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장소가 갖는 의미는 모세가 살았던 장소, 출애굽때에 이집트 델타 동남부에 살고 있던 유대인들의 출발장소로서 알려져 있다는 점이다. 예레미야는(예레미야 43~47) 는 느부갓네살 왕 (BC 606~538) 에 의하여 예루살렘이 파괴된 후에 이곳에서 설교를 하였으며, 그의 무덤이 있던 장소이기도 하다는 점이다.처음에는 알무알라카 교회의 부속건물로서 AD 4세기에 지어져 AD 9세기까지는 미카엘 교회(성 미카엘교회) 또는 가브리엘 천사 교회로 불렸었다. 이집트의 이슬람 왕조인 이븐 툴룬 왕조 (AD 868 ~ 905) 때인 이집트의 제 56대 교황 (주교) 미카일 3세 때 아흐메드 이븐 툴룬이 '이븐 툴룬 모스크' 건축 비용을 마련하기 위하여 기독교도들에게 금 2만 디나르의 고액의 세금을 부과하자 몇 개의 예배당을 매각하였는데 그 중의 하나로 유대인들이 매입하여 회당으로 개조하여 사용하였다. 그러나 알하킴 (AD 996 ~ 1021) 때에 다시 파괴 되었다.
AD 1115년 예루살렘에서 랍비 아브라함 벤 에즈라가 방문한 이후에 재건하였기 때문에 이 이름이 유래되었고, 당시의 건축 양식으로 지어진 까닭에 아라베스크 문양을 하고 있다. 이후 이 회당은 현대의 아랍, 이스라엘 간의 갈등이 심화되던 AD 1965년 까지 천여년 동안 유대인 공동체의 중심지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현재 이집트 잔존 유대인들의 수는 100여명 정도이고 이들의 약간이 시내 중심지의 샤리아 아들리 (아들리가)에 있는 회당에서 모이고 있다.
이 회당이 다시 지어진 당시에는 주위에 29개의 사원과 20개의 예배당이 존재하고 있었다. 133,000명의 무슬림들과 10.000명의 콥틱 기독교인, 42명의 유대인들이 올드 카이로 지역에 살고 있었다. 종교가 서로 달랐음에도 불구하고 가족 공동체처럼 살았었다고 기록들은 말하고 있다. 이 자리에 세워졌던 최초의 회당 건설은 BC 350년경이며 당시의 이름은 선지자 예레미야 시나고그였다. 그러던 것이 BC 30년 경에 로마에 의해 파괴되었다. 아랍에 의해 로마의 통치자로부터 탈환된 이 지역에 콥틱 교회에서는 새로이 예배당을 지었던 것이다.

회당에는 AD 1890년에 발견된 퀘니자 문서(Geniza Document)가 있다. 이 문서에는 AD 11~12 세기 당시의 유태인들의 생활상이 기록되어있다. 이 문서는 중세 이집트의 유대인의 문화를 살펴보는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또한 기원전 학자 에스라가 발견한 모세의 토라(기원전 475~6세기 경)가 발견되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