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香)아
신동엽
향아 너의 고운 얼굴 조석으로 우물가에 비최이던 오래지 않은 옛날로 가자.
수수럭거리는 수수밭 사이 걸찍스런 웃음들 들려 나오며 호미와 바구니를 든 환한 얼굴 그림처럼 나타나던 석양 …….
구슬처럼 흘러가는 냇물가 맨발을 담그고 늘어앉아 빨래들을 두드리던 전설 같은 풍속으로 돌아가자.
눈동자를 보아라 향아 회올리는 무지개빛 허울의 눈부심에 넋 빼앗기지 말고 철따라 푸짐히 두레를 먹던 정자나무 마을로 돌아가자 미끈덩한 기생충의 생리와 허식에 인이 배기기 전에 눈빛 아침처럼 빛나던 우리들의 고향 병들지 않은 젊음으로 찾아가자꾸나.
향아 허물어질까 두렵노라 얼굴 생김새 맞지 않는 발돋움의 흉낼랑 그만 내자 들국화처럼 소박한 목숨을 가꾸기 위하여 맨발을 벗고 콩바심하던 차라리 그 미개지(未開地)에로 가자 달이 뜨는 명절밤 비단치마를 나부끼며 떼지어 춤추던 전설 같은 풍속으로 돌아가자 냇물 굽이치는 싱싱한 마음밭으로 돌아가자.
해설
[개관 정리]
◆ 성격 : 문명비판적, 소망적, 의지적
◆ 특성
① 인간 본연의 아름다움을 회복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 줌.
② 청유형 문장의 반복을 통해서 이상향에 대한 간절한 소망을 드러냄.
③ 연이 바뀔수록 점점 길어지는 시행은 소망의 간절함을 더해주는 효과를 지님.
④ 4연에서 허울, 기생충의 생리, 허식이라는 표현을 통해서 문명 비판적 태도를 보임.
◆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향아 → 물질 문명에 물들지 않은 순수한 존재
* 고운 얼굴 조석으로 우물가에 비최이던
→ 지금의 현대문명과는 대비되는 과거의 아름다운 시절에 대한 그리움
맑고 순수한 느낌을 환기시키는 표현임.
* 오래지 않은 옛날 → 화자가 지향하는 순수한 세계
* 수수럭거리는 → 수런거리는
* 걸찍스런 → 걸쭉한
* 2, 3연 → 전통적인 농촌 공동체의 모습
* 회올리는 → 타래져 올라가게 하는
* 무지개빛 허울의 눈부심 → 현대문명의 비인간적이고 물질적인 허욕
* 미끈덩한 기생충의 생리와 허식 → 현대문명의 폐해 상징
* 인 → 여러 번 되풀이하여 몸이 깊이 밴 버릇
* 향아 허물어질까 두렵노라 → 문명의 폐해에 대한 염려와 두려움
* 얼굴 생김새 맞지 않는 발돋움의 흉내 → 반자연적인 문명의 모습 상징
* 콩바심 → 북한어로, 거둬들인 콩을 두드려 콩알을 털어내는 일
* 냇물 굽이치는 싱싱한 마음밭 → 인간 본연의 순수성이 살아 있는 세계
◆ 주제 : 자연과 인간의 아름다움이 조화롭던 과거 세계로의 회귀 의지
[시상의 흐름(짜임)]
◆ 1연 : 향의 고운 얼굴이 비치던 오래지 않은 옛날로 가기를 소망함.
◆ 2연 : 오래지 않은 옛날의 아름다운 풍경
◆ 3연 : 전설 같은 풍속으로 돌아가기를 소망함.
◆ 4연 : 허물과 허식으로 병들지 않은 고향을 병들지 않은 젊음으로 찾아가기를 소망함.
◆ 5연 : 인간 본연의 모습이 남아 있는 전설 같은 풍속으로 돌아가기를 소망함.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이 작품은 화자가 '향아'라는 시적 대상에게 청유형으로 진술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화자가 향아에게 부드러운 어조로 돌아가자고 말을 건네고 있는데, 함께 돌아가자고 하는 그곳은 '오래지 않은 옛날'이다. 향아는 '고운 얼굴'을 가진, 아직 문명에 찌들지 않은 순수한 존재를 의미한다고 볼 때, 시적 화자는 현대 문명을 매우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아름다운 옛날로 돌아가기를 소망한다. 결국 이 시는 자연과의 조화로운 삶을 통해 참다운 인간성의 회복을 추구하는 문명 비판적 성격을 띤 작품이다.
[작가소개]
신동엽 : 시인
출생 : 1930. 8. 18. 충청남도 부여
사망 : 1969. 4. 7.
가족 : 아들 신좌섭
데뷔 : 195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
작품 : 도서, 기타
충청남도 부여(扶餘) 출생. 단국대학교 사학과를 거쳐 건국대학교 대학원을
수료하고 195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장시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大地)》가
당선되어 데뷔하였다. 이후 1961년부터 명성여고 야간부 교사로 재직하면서
사회의 부조리를 폭로하고, 허구성을 비판하는 시를 짓기 시작한다.
그 후 아사녀(阿斯女)의 사랑을 그린 장시 《아사녀》, 동학농민운동을
주제로 한 서사시 《금강(錦江)》 등 강렬한 민중의 저항의식을 시화(詩化)하였으며,
시론(詩論)과 시극(詩劇) 운동에도 참여하였다. 시론으로는 《시인정신론(詩人精神論)》
등이 있고, 시극 《그 입술에 파인 그늘》은 시극동인회에 의해 상연되었다.
특히 4·19혁명의 정신을 되새기며, 인간 본연의 삶을 찾기를 희망한
시 <껍데기는 가라>를 《52인 시집》(1967)에 간행하며 그의 시적 저항정신은
더욱 확고해졌다. 1969년 4월 간암으로 사망하기 전까지 약 20여 편의 시를
발표했으며, 사후 유작을 모아 간행된 《신동엽전집》(1975)이 있다.
주요작품으로 《삼월(三月)》 《발》 《껍데기는 가라》 《주린 땅의 지도원리(指導原理)》
《4월은 갈아 엎는 달》 《우리가 본 하늘》 등이 있고, 유작(遺作)으로
통일의 염원을 기원하는 《술을 마시고 잔 어젯밤은》 등이 있다.
첫댓글 오래지 않은 옛날로 가자
감사합니다
무공 김낙범 선생님
댓글 주심에 고맙습니다.
오늘은 문학상 시상식 날입니다.
설레는 가슴을 안고 행사장으로
달려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