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2022년4월호 vol.638(2022.5.10.)
사단법인 한국문인협회
■ 제11회 녹색문학상 작품 공모
■ 문학관으로 초대합니다_노작홍사용문학관_관장 손택수_경기도 화성의 문화충전소, 그리고
라키비움_임희진 녹작홍사용문학관 대리
■ 권두언_유안진_시(詩,) 무용(無用)이 대용(大用)되는 기적을 바라면서
아무리 생각해도 제3차 세계대전인 듯,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코로나와 전 세계가 전쟁을 치
르고 있다. 미국에서만도 지금껏 500만여 명이 사망했고, 부모 사망으로 고아는 400만여 명이
생겨났단다. 나라마다 대문을 걸어 잠그고, 거리두기 재택근무 재택치료 등으로 대처한단다.
정부마다 모든 매체를 총동원해서 감염 예방을 위해 마스크와 영업시간 단축, 모임금지 등 경
계생활의 일상화와 백신을 강요하고 있다. 이 수다를 보고 들으면서 대문 밖이 저승이라는 속
담이 생겨났다. 그래 이 속담 한마디면 되는 데 왜 그리 수다스러워야 할까? 이래서 가장 낡
은 것이 가장 새로운 것이라는 말이 아닐까?
우리 시도 마찬가지라고, 아무리 수다를 떨어도 우리 시조 3장 6구 45자 내외로 간추려지는
것을, 아무리 새롭게 써도 꼰대의 작품은 꼰대만의 향기를 지닌 것을, 그것이 우리다움이고
정체성일 수도 있다는 억지부리기도 생각하게 된다.
가히 우리 시단은 르네상스를 창조했나? 싶을 정도로 월간지와 계간지가 겹치는 달에는 단행
본이 아닌 인쇄물들과 시집들을 거의 150여 권 전후로 우송받는다. 특히 신 전문지와 시집들
이 많다. 등재 시인이 6~7만 명 정도라고들 하니까. 온 국민 시인 시대가 올 거라고, 식자들
은 모두 시를 지었던 우리 역사도 있었으니까. 아직도 시가 그렇게 매력적인가? 하기사 나도
등단 57년인데 신작 시집이 18권이니까. 자성이 왜 없으랴마는.
이런 자성은 늘 정암이라는 어느 시대 어느 나라 시인인지도 모르는 시인의 시구로 이어진다.
초등학교 입학 전에 조부께 불려나가 천자문을 배워야 했다. 그 시절 조부님들은 봉제사 접빈
객이 직업이어서 출입이 없는 때는 손주들 글공부를 담당했던 모양이다. 나의 조부님도 어리
고 여린 나의 산길 들길 물길의 5km안팎 되는 험한 등하굣길을 염려하신 듯, 조상들 함자나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가르쳐 시집이나 보내려 하신 듯.
그러나 글공부 때는 당신이 하고 싶은 얘기를 다 하시는 듯, 알아듣는 귀와 눈으로 미처 자라
지 못한 나는, 다만 입술과 귀에 익은 것들 중에서 얼마는 기억나는 이유도, 내가 시 쓰며 살
다보니 정암의 탄식시가 유독 자주 기억되었나?
지우고 쓰기로 반평생을 살고나서 중년에 이르러 이름 나기를 피하느니, 까닭인 즉 재능 있는
시인 무리들이 끼니도 잇지 못하는데 홀연히 자비심이 동해서 더불어 겨루기를 포기한다는 뜻
풀이를 기억하면서, 입과 귀에 익은 대로 다듬어지는 원문은, 동말서도 박반생 중년하고 피성
명 재류백배 무찬반 홀동자비 불여쟁이다. 예나 지금이나 시인들의 가난은 변함없는 이치인
가? 하다가, 오늘의 시인들은 겨루어 명성 날리기 위해 시를 쓰지 않고 싶어서 쓸 뿐이라고,
정암은 이런 이유를 들어 시쓰기를 포기한 더불어 경쟁하는 시인이었으나 나는 아니었으니까.
오히려 퇴직 후에 뒤늦게 시인으로 활동하는 소위 후문학파 시인들이 얼마나 많은가. 진주의
강희근 시인이 명명한 후문학파는 이분들의 인생 전기가 생업종사였고, 생업에 밀려 못쓰던
시쓰기의 꿈을 퇴직 후에 되살려서, 후문학파를 이룰 정도 시에 몰두한 시인들을 지칭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문학에 어찌 나이가 장애 되랴. 연륜과 함께 삶의 철학과 살아낸 체험이, 열
정만으로 일찍 등단했던 청년 시인들보더 더 다양 다채로운 시쓰기의 자원이 될 거라고 다
다익선으로 좋은 현상일 수도, 시대적 현상으로 문학지도 시 전문지도 대량이 되었고, 전문지
마다 등단 기회를 만들어, 등단 시인들도 대량화될 수 밖에. 지역마다 지역 문학지를 신문사
마다 신춘문예로 등단 기회는 더욱 다양화되고 대량화되어 왔으니까. 당연한 현상이지, 나쁠
건 없지.
긴 시 짧은 시, 철학시 전문지식의 시...등등 읽어내기에는 사전 지식이 딸려서 읽혀질 수가
없는 시들과, 새로움이라는 기치 아래 시인들의 시마다 다르기도 하다가 어느새 비슷해지고
말아, 시인들마다의 특징도 사라지고 말아, 게다가 등단 연도가 오래된 시인들마저도 후문학
파 시인들과 함께 닮아가는 듯, 읽다 보면 어디서 읽은 듯한 작품들이라는 느낌도 들곤 하지,
하기사 좁고 작은 우리나라에서 동일 언어로 살면서 형성된 동일 문화 체험에서 엇비슷하기야
당연하지만. 철학! 쉽게 하기는 어려우나 어렵게 하기는 쉽다는 말을 시쓰기에도 적중되는가
할 때도 너무 많지만.
중학생 적이었을까? 시험 직후 친구들은 재치있는 커닝 경험을 실토하곤 했지, 발각된 얘기가
아닌 자백들이었는데, 희망봉을 발견한 사람은?이라는 문제에, 답을 몰라서 슬쩍 옆자리 친구
의 답지를 보니, 바스코 다가마였다나, 똑같이 쓰면 커닝이 발각될까봐, 다스코 다가마라고 썼
는데, 그 옆자리의 친구도 커닝이 들킬까봐 가스코 다가마라고 썼다 해서 깔깔댄 얘기, 그 재
치가 얼마나 놀라운가 말이다. 그래서 잊혀지지 않는가 모르지만, 시인들의 작품에서는 이런
재치의 오마주가 왜 없을까?
날(해)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고 구약성경 잠언에서 천명되었으니, 잠언의 진리가 진리임이 증
명되고 있지마는.
신작이라는 새로움의 창조가 얼마나 힘든가. 수년 전 신문사의 신춘문예 작품을 심사하던 중
에 물리학의 어느 공식이 한 연을 이루는 작품이 있었다. 다수결이었으니 심사위원들의 다수
에 양보할 수 밖에 없었지만, 시 한 편 읽기에서 독자에게 물리학의 전문지식가지 요구할 권
리가 있는가? 꼭 이래야만 새로움이 되는가? 양보하고서도 납득되지 않았었다 아직도.
이미 장자는 사람이 꿈에서 나비를 보았는가? 나비가 저의 꿈에서 사람을 보았나?라고 했다.
그의 시대 2300년 전의 거꾸로의 새로움은 지금도 요구되지 않을가? 그의 무용이 대용이라는
철학도 무궁세월 인간 삶의 모든 분야에서 길이 깊게 자주 증명 확인될 것이다. 장자의 이런
새로움이 진정한 새로움일진데, 뻔히 알면서도 신작다운 신작을 못 쓰는 탄식이여.
신작을 쓰지 못하면서도 정암처럼 시쓰기를 포기하지도 못하는 나의 용기 없음과 부정직과 비
양심이여. 시를 쓸수록 가난해지는 시인들끼리의 연민으로, 무용이 대용이기를, 그런 기적을
바라마지 않는 허망과 슬프고 슬픈 슬픔이여!
이래도 되나? 정말로 되나? 시라고 왜 메타버스, 가상현실, 증강현실 시대를 외면해야 하랴마
는, 서울, 어디에 돌을 던져도 시인 아니면 수필가가 맞는다고도 듣는다. 현재의 등단 시인만
6~7만 명인데도 독자들이 안 되어 주고 못 되어 주고, 독자는 오직 한 사람뿐이라는 자조의
탄식이 시인들의 고백이다. 시의 독자는 단 한 사람, 그 시를 쓴 시인 자신뿐이라고, 시로서의
효용은 오직 등단시인이라고, 시라는 무용지물이 대용이 될 기적은 있어 줄까? 없다 해도 시
인들은 자기 시를 쓸 것이다. 그것만이 존재 이유가 될 수밖에 없으니까. 그래서 시마라고 했
나? 그래서 언젠가는 시다운 시 한편을 쓰고 싶어 목을 매는 걸까?
■ 이달의 시
■ 이달의 시조
■ 가상인터뷰_안장환 소설가_호감도 만점 소설가, 안장환 선생님_김진초
■ 목동살롱_노창수_문학권력을 넘었던 글쓰기의 편린들
■ 이 시대 창작의 산실_임보 시인_운수재에서의 반세기/흥겹고 재미있는 시/적요의 밤
■ 나의 등단 이야기_김창완_바다와 섬과 성녀 오다아
■ 이달의 소설
■ 이달의 희곡
■ 이달의 수필
■ 이달의 동시
■ 이달의 동화
■ 이달의 평론
■ 제10회 이설주문학상 수상자 발표_수상자 신세훈 심사평 대표작 수상소감 약력
■ 제17회 다형 김현승 시인 전국 학생 문예작품 공모
■ 제6회 매계문학상 공모(김천문화원)
■ 제9회 풀꽃문학상 공모(나태주풀꽃문학관_공주시 봉황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