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손으로 만들지 않고 한꺼번에 싸게 사서 마구 쓰다가 망가지면 내다 버리는 플라스틱 물건처럼 느껴질 때 나는 당장 버스에서 뛰어내리고 싶다.
현대 아파트가 들어서며 홍은동 사거리에서 사라진 털보네 대장간을 찾아가고 싶다.
풀무질로 이글거리는 불 속에 시우쇠처럼 나를 달구고 모루 위에서 벼리고 숫돌을 갈아 시퍼런 무쇠 낫으로 바꾸고 싶다.
땀 흘리며 두들겨 하나씩 만들어 낸 꼬부랑 호미가 되어 소나무 자루에 송진을 흘리면서 대장간 벽에 걸리고 싶다.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이 온통 부끄러워지고
직지사 해우소 아득한 나락으로 떨어져 내리는 똥덩이처럼 느껴질 때
나는 가던 길을 멈추고 문득 어딘가 걸려 있고 싶다.
대량생산과 대량 소비가 만연한 현대 사회를 살아가면서, 플라스틱 쓰레기나 배설물처럼 개성없이 획일적으로 만들어져 쓰이다 버려지는 무가치한 존재로 느껴질 때 산업화와 도시화로 사라져 간 가치있고, 개성있는 것을 만들어 내는 공간으로 찾아 가고 싶은 유혹을 느낄 수 있다. 자신의 존재가 몰개성적이고 무가치함을 느껴지는 것은 고통일 것이다.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단련하는 과정을 통해 스스로를 단련하여 가치있는 삶을 살고 싶은 화자의 마음에 공감한다. 현재 처한 공간과 대립되는 공간을 향한 마음을 '유혹'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가치 있는 삶을 되찾고 싶은 소망을 느낄 수 있다.
가치있는 삶이란 것은 상당히 추상적인 관념이다. 그러나 대장간에서 <풀무질로 이글거리는 불 속에 시우쇠처럼 나를 달구고 모루 위에서 벼리고, 숫돌에 갈아 시퍼런 무쇠 낫으로 바꾸고 싶다>고 구체적인 행위로 형상화해서 가치있는 삶이 되고자 하는 마음을 표현했다.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김광규 시인은 내면의 깊이가 있으면서 쉬워야지 덮어놓고 쉽게 쓰는 게 아니라고 한다. 그래서 시인은 시를 굉장히 많이 고쳐쓴다. 썼다가 넣어뒀다가 다시 꺼내 고쳐 쓴다. 몇 년씩 묵힌 것도 있고. 평균 스무 번 정도 고친다고 했다. 끓는 자신을 가라 앉히려고 써뒀다가 고치고 하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첫댓글 갈 곳 몰라 헤매다가
언뜻 다가온 깨달음에
나도 한번의 뜨거움을 겪고 싶다
시를 쓴다는게 그런거지요,
인고의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