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점방
최경선
사라진 것들은 어느 하늘 어귀에 살고 있을까
구름이 점방을 펼쳐놓은 곳이 있었다
동네가 시작되는 삼거리
백 년이 넘었다는 느티나무는 두어 평 평상을 내어놓고
늙은 주인과 함께 자주 하품을 물었다
우루루 몰려온 참새 떼 같은 아이들은
작은 부리마다 츄파춥스 하나씩 물고 공중으로 날아갔다
하루 서너 번 다니는 버스는 덜컹거리며 읍내 소식을 실어 날랐다
가끔 나무 아래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노라면
이 세상에 길은 왜 세 개 뿐일까 생각하면서
자욱한 먼지 너머로 신기루처럼 보이던 먼 곳
두 개의 백열등을 개구리 눈알처럼 걸어놓고
밤이면 점방은 등대처럼 반짝거렸다
하루를 끝낸 아버지들은 막걸리 한 잔에 목을 축인 뒤
터벅터벅 흙내 나는 구름 하나씩 호주머니에 넣고 집으로 돌아갔다
뭉게구름, 새털구름, 양떼구름, 조개구름, 비늘구름, 면사포구름, 두루마리구름
언니 오빠들은 저마다 좋아하는 구름을 잡아타고
멀리 바다 넘어가 돌아오지 않았다
간간이 비릿한 갯내가 마을을 다녀가곤 했지만
흘러간 시간들은 지금쯤 어느 곳에서 별이 되었을까
언제부터인가 녹슨 간판도 떼어지고
점방이 있던 자리엔 잡초만 무성한데
이제 내어놓을 평상도 없는 느티나무는 굽은 허리를 더 굽힌 채
멀리서 들려오는 바람 소리에 주름진 귓밥을 후비고 있다
--최경선 시집 {오후의 편식}에서
인생은 뜬구름과도 같고 수많은 샛길과 오솔길이 있는 것도 같지만, 그러나 어느 길도 그 목적지에 가닿지 못한다. 지상낙원도 없고, 이상천국도 없고, 지하의 궁전도 없다. 구름은 물방울이며, “뭉게구름, 새털구름, 양떼구름, 조개구름, 비늘구름, 면사포구름, 두루마리구름” 등이 있지만, 어느 누구도 그 구름의 나라에 갈 수는 없다. 구름은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고, 구름은 존재하지 않으면서도 존재한다.
우리들의 인생은 덧없고, 너무나도 우연히 [구름점방]을 차려놓은 것과도 같다. “동네가 시작되는 삼거리”에 “백년이 넘었다는 느티나무” 아래 “두어 평 평상을 내어놓고/ 늙은 주인과 함께 자주 하품을 물었다.” 가끔씩 “우루루 몰려온 참새 떼 같은 아이들”이 “작은 부리마다 츄파춥스 하나씩 물고 공중으로 날아갔”지만, “하루 서너 번 다니는 버스는 덜컹거리며 읍내 소식을 실어 날랐다.” “가끔씩 나무 아래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노라면/ 이 세상에 길은 왜 세 개 뿐일까”라고 생각했지만, 그때마다 “자욱한 먼지 너머로 신기루처럼” “먼 곳”이 보였다. 먼 곳은 지상낙원이고 이상천국이며, 먼 곳은 지하의 왕국이고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신기루이다.
우리들의 [구름점방]은 밤이면 “두 개의 백열등을 개구리 눈알처럼 걸어놓고” “등대처럼 반짝거렸다.” “하루의 일과를 끝낸 아버지들은 막걸리 한 잔에 목을 축인 뒤/ 터벅터벅 흙내 나는 구름 하나씩 호주머니에 넣고 집으로 돌아갔다.” “뭉게구름, 새털구름, 양떼구름, 조개구름, 비늘구름, 면사포구름, 두루마리구름” 등, “언니 오빠들은 저마다 좋아하는 구름을 잡아타고” “간간이 비릿한 갯내가 마을을 다녀가곤 했지만” “멀리 바다 넘어가 돌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녹슨 간판도 떼어지고/ 점방이 있던 자리엔 잡초만 무성한데” “이제 내어놓을 평상도 없는 느티나무는 굽은 허리를 더 굽힌 채/ 멀리서 들려오는 바람 소리에 주름진 귓밥을 후비고 있다.” 돈을 보면 돈을 두고 싸우고, 명예를 얻으면 명예를 두고 싸우고, 권력을 보면 권력을 두고 싸운다. 모든 싸움도 덧없고, 그 싸움의 목적도 없다. 밤하늘의 별들도 뜬구름 같고, 아버지와 어머니도 뜬구름 같다. 언니와 오빠도 뜬구름 같고, 막걸리와 츄파춥스도 뜬구름 같다.
인생의 무대는 [구름점방]이고, 우리들은 모두가 다같이 막대사탕이나 빨다가 가는 어린아이들과도 같다.
구름점방, 구름점방, 최경선 시인의 [구름점방]----.
모든 만물이 이곳에서 태어나고, 모든 만물이 이곳에서 뜬구름처럼 사라져 간다.
오오, 아침해여, 밤하늘의 별과 달이여, 너희들의 생애도 뜬구름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