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과 귀족들의 사후 이름 시호(諡號)
역사책 읽다 보면 사람 이름이 뭐 이렇게 복잡한지 헷갈리는 부분이 많지요. 그래서 저도 언제부터 이거 정리를 좀 해놓자 싶었는데, 못하고 있다가 한번 적어봅니다. 시호(諡號), 묘호(墓號), 존호(尊號), 자(字), 휘(諱), 호(號), 이런 글자들이 헷갈리는데, 이걸 한번에 정리하기는 힘들고 오늘은 시호(諡號)에 대해 찾아서 정리해봅니다.
■ 시호(諡號)에 대해서는 위키백과에 이렇게 나와 있네요. 시(諡) 자가 무슨 뜻인지 찾아보니 그냥 "시호 시"라고 나옵니다. 이름을 위해 특별히 만들어진 글자라고 생각됩니다.
시호(諡號)는 죽은 인물에게 국가에서 내려주거나 죽은 군주에게 다음 군주가 올리는 특별한 이름으로, 동양의 군주제 국가에서 시행되었다. 시호를 받는 대상은 황제, 제후, 임금 등의 군주와 그 조상 및 부인, 공신, 고급 관료, 기타 국가적으로 명망을 쌓은 저명한 인물이다.
시호는 국가가 부여하는 공적인 시(諡)로서, 개인이 붙이는 사시(私諡)와 구별되나, 일반적으로 말하는 시(諡)는 전자 쪽이다. 시호를 붙이는 제도의 기원은 중국 주나라 중기 때(기원전 9세기경)로 언급되며, 천자 뿐만 아니라, 제후・경대부・고관・저명한 유학자 등에게 내려졌고, 시대가 흘러 고승도 대상이 되었다.
일반적으로 중국 주나라 때 시호의 법도를 처음 정했다고 알려져 있다.[1] 한국사에서는 삼국시대의 군주들에게 시호를 올린 것이 최초로, 신라에서는 지증왕이 죽은 514년에 처음으로 시호를 올렸다고 한다.그 뒤로도 이어져 고려와 조선에서도 시행되었다.
시호는 나라에 따라 또 시대에 따라 제각각으로 결정되었던 모양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까지는 간단하게 썼다가 고려때 들어와서 길어졌다고 하네요. 중국에서는 당나라 측천무후 때부터 길어졌다고 하니 그 영향이 있었던 듯 합니다.
신라에서는 태종무열대왕(太宗武烈大王) 같이 간단하게 썼는데, 고구려 광개토왕의 시호는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國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이라는 것을 보면 그렇게 짧지도 않네요.
왕이 아닌 관료들의 시호는 대개 2자로 정해졌다고 하네요. 우리의 성웅 이순신 장군은 충무공(忠武公)이라는 시호를 받으셨지요.
그런데 고려 태조 왕건의 시호(諡號)는 “응운원명광렬대정예덕장효위목인용신성대왕”(應運元明光烈大定睿德章孝威穆仁勇神聖大王)이라니 정말 길어졌네요. 조선 태조 이성계의 시호는 강헌지인계운성문신무대왕(康獻至仁啓運聖文神武大王)이군요. 왕건 보다는 짧네요.
세종대왕의 시호는 “장헌영문예무인성명효대왕”(莊憲英文睿武仁聖明孝大王)이었습니다. 이 뜻을 새겨보면 장헌(莊憲)은 나라의 큰 법을 세웠다는 의미 같고요. 영문(英文)은 글에 뛰어났다는 뜻, 예무(睿武)는 무예에도 지혜로웠다는 뜻이고, 인성(仁聖)은 어질기가 성인 같았다는 뜻, 명효(明孝)는 효도에 밝았다는 뜻으로 생각됩니다.
그런데 조선을 말아먹기 시작한 고종의 시호는 고종통천융운조극돈륜정성광의명공대덕요준순휘우모탕경응명입기지화신열외훈홍업계기선력건행곤정영의홍휴수강문헌무장인익정효태황제(高宗統天隆運肇極敦倫正聖光義明功大德堯峻舜徽禹謨湯敬應命立紀至化神烈巍勳洪業啓基宣曆乾行坤定英毅弘休壽康文憲武章仁翼貞孝太皇帝)라네요. 이건 뭐 해석도 힘드니 누가 한번 해보시지요. 받아쓰기도 힘들텐데, 일제 영향하에 만들어진 흡사 장난 같은 느낌이 듭니다.
-옮긴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