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꺼풀 -5-
우리는 한국에 갈 때마다 꼬박꼬박 한 차례씩 할아버지를 만났는데, 만나는 장소가 한결 같이 취영루라는 중식당이었다. 할아버지는 키크고 호리호리한 몸에 각진 턱을 지녔고, 온화하면서도 씩씩한 분위기를 풍겼다. 젊었을 때는 검은 머리카락을 깔끔하게 뒤로 쓸어넘긴 헤어스타일에 알록달록한 네커치프와 디자이너 맞춤 재킷이 썩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할아버지는 한때 잘나가던 성우였는데, 어느 인기 있는 라디오 방송에서 세종대왕 역할로 유명세를 탄 덕분이었다.그래서 엄마가 어렸을 때는 살림이 넉넉한 편이었다. 엄마 집은 엄마가 살던 동네에서 컬러텔레비전이 있는 유일한 집이라, 매일 동네 꼬마들이 뒷담 언저리에 모여들어 거실 창 너머로 테레비전을 보려고 낑낑댔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영화배우로도 충분히 성공할 만한 외모를 지녔지만 결정적으로 암기에 서툴렀다. 텔레비전이 점점 인기를 얻으면서 할아버지가 하던 일은 갈수록 비중이 줄어들었다. 엄마는 할아버지가 한국에서 '팔랑귀'라고 불리는 사람, 즉 남의 말에 잘 흔들리는 사람이었다고 말하곤 했다. 별 볼일 없는 사업에 투자했다가 실패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고, 엄마가 초등학교를 마칠 무렵엔 저축해둔 돈을 몽땅 날리고 무일푼이 되었다고 한다.
할머니는 살림에 보태려고 손수 액세서리를 만들어 길거리에서 팔았다. 주중에는 소 양지머리에 고사리, 무,마늘, 콩나물을 넣고 매콤한 육개장을 한가득 만들어 작은 비닐봉지에 조금씩 나눠 담은 것을 점심시간에 회사원들에게 팔았다. 나중에 할아버지는 다른 여자를 만나 할머니와 자식들을 버리고 떠났다. 할아버지는 세월이 한참 흐른 뒤에야 딸들에게 연락했는데, 그것도 돈이 필요해서 였다.
저녁식사가 끝나고 나면 엄마는 할머니 몰래 할아버지에게 돈봉투를 찔러넣어주었고,누구한테도 절대 입도 뻥끗해선 한된다며 나한테 입단속을 시켰다. 식당을 예약할 때 나미 이모는 큰 테이블에 거대한 유리 회전판이 있는 방을 잡았다. 회전판 위에는 식초와 간장이 담긴 미니 자기 주전자와 대리석 문양의 호출 버튼이 놓여 있었다. 우리는 조미료와 기름 범벅으로 만들어져 언제 먹어도 입에 착착 달라붙는 짜장면, 진한 육수에 만두가, 먹어도 먹어도 끝이 없을 정도로 많이 들어간 만둣국 버섯과 피망을 곁들인 돼지고기 탕수육 그리고 물컹물컹한 해삼에, 오징어, 새우, 호박,마늘을 넣어 만든 유산슬을 주문했다.
식사가 끝나고 나면 할머니는 줄담배를 피우면서 자신이 외면하고 떠났던 아이들의 근황을 따라잡기 바쁜 할아버지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몇 계단 올라가면 약 2미터 길이의 수조가 있었는데,성용 오빠는 늘 나를 거기로 데려가서 새끼 악어를 구경시켜주었다. 몇 해가 지나도록 우리가 그 식당 갈 때마다 악어는 그대로 있었다. 졸린듯한 눈을 끔뻑이면서,나중에는 악어가 너무 커진 나머지 몸을 움직일 공간이 3센티미터도 채 남지 않았고, 그 다음 번에 갔을 땐 아예 자취를 감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