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4일 묵상 본문 : 마태복음 27장 57절 - 66절 - 상황에 매몰되지 않고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고 순종함으로 주의 일에 동참하며 살게 하소서
시작 기도
주님, 전쟁의 소식이 좀처럼 끝나지 않는 혼란의 상황 가운데 하루를 시작합니다.
전쟁의 참상은 전쟁을 하는 나라뿐만 아니라 온 세계가 함께 어려움 가운데 처하게 합니다.
그것은 모든 나라가 일정의 관계를 유지하기 때문이며 자원을 나누어 쓰기 때문입니다.
관계의 파괴와 단절이 가져오는 폐해는 고통과 아픔으로 나타나는 것을 봅니다.
사람과의 관계도 그러할진대 하나님과의 관계도 단절되면 그에 따른 아픔도 따라옵니다.
깨어진 관계를 회복시킬 힘과 능력은 오직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는 것에 있습니다.
그 관계를 바르게 세워가도록 이끌어 주시고 모든 관계 가운데 평안을 누리게 하옵소서.
죄와 부정함으로 오염된 영혼을 주의 보혈로 씻어 주시고 주님 앞에 기쁨으로 서게 하옵소서.
오늘 하루도 은혜와 사랑으로 인도하시길 소망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본문과 주해
57 저물었을 때에 아리마대의 부자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왔으니 그도 예수의 제자라
58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에 빌라도가 내주라 명령하거늘
저물었을 때는 해가 지기 전의 시간을 의미하며 해가 지면 안식일이 시작되기 때문에 그 이전에 시신을 장사하기 위해 요셉이 예수님의 시신을 요구하게 된다. 아리마대는 높은 이란 뜻을 가지고 있으며 이곳은 사무엘의 고향인 예루살렘 서북쪽에 위치한 에브라임 산지 라마다임의 소빔과(삼상1:1) 같은 장소로 추정한다. 그리고 이는 이사야 53:9절의 성취이기도 하다. 요셉은 예수님의 제자였는데 유대 종교 지도자들을 의식하여 숨겨왔다가 예수님이 죽으시자 자신을 드러내고 장례를 집행하는 자가 되어 도망친 제자들과 다른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59 요셉이 시체를 가져다가 깨끗한 세마포로 싸서
60 바위 속에 판 자기 새 무덤에 넣어 두고 큰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고 가니
깨끗한 세마포는 당시 귀하고 비싼 천으로 요셉이 장례를 정성스럽게 준비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자기를 위해 미리 파둔 무덤에 예수님을 장사했음을 보여준다. 무덤을 제공하는 것은 부자가 아니면 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이사야 53:9의 성취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61 거기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향하여 앉았더라
제자들은 다 도망치고 없었지만 두 여인은 무덤의 위치가지 확인하고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키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참된 제자의 모습과 예수님의 부활을 처음 목격하는 은혜를 얻게 된다.
62 그 이튿날은 준비일 다음 날이라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함께 빌라도에게 모여 이르되
이튿날은 유월절과 안식일 당일을 의미한다. 마태가 유월절과 안식일로 표현하지 않은 것은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이 안식일을 어기고 이방인인 빌라도를 만났기에 그 날을 더럽혔다고 여겼기 때문으로 추정한다. 그들은 스스로 율법을 어기면서 율법을 지키라고 말하는 이중적인 모습으로 사는 것이 일상이 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63 주여 저 속이던 자가 살아 있을 때에 말하되 내가 사흘 후에 다시 살아나리라 한 것을 우리가 기억하노니
제자들은 예수님이 죽고 다시 부활할 것에 대해 들었으나 쉽게 잊어버리고 망각했지만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모습은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모습으로 가까운 사람들은 망각하고 대적자들은 기억하는 상반된 모습임을 보여준다.
64 그러므로 명령하여 그 무덤을 사흘까지 굳게 지키게 하소서 그의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도둑질하여 가고 백성에게 말하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 하면 후의 속임이 전보다 더 클까 하나이다 하니
65 빌라도가 이르되 너희에게 경비병이 있으니 가서 힘대로 굳게 지키라 하거늘
66 그들이 경비병과 함께 가서 돌을 인봉하고 무덤을 굳게 지키니라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이 다시 살아날 것이라는 사실에 대한 두려움으로 그 일이 일어나지 못하도록 로마의 군사가 지켜 줄 것을 요구하였다. 또한 무덤의 돌을 인봉했다는 것은 돌에 도장을 찍었다는 것으로 무덤을 돌로 막고 그 돌을 밧줄로 매어 무덤과 연결하고 밧줄의 중앙과 양끝을 흙이나 밀랍을 칠한 후 그 위에 도장을 찍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일을 사람의 힘으로 막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나의 묵상
예수님이 오후 3시를 지나서 숨을 거두시자 예수님의 죽음을 지켜보고 있던 아리마대 요셉은 빌라도를 찾아가서 예수님의 시신을 달라고 요청한다.
다른 복음서에 보면 빌라도는 벌써 예수님이 죽었냐고 질문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당시 십자가에 달린 죄수는 길게는 며칠 동안 살아 있었다고도 전해진다.
일반 사람들과 다르게 빠르게 숨을 거두신 것은 그 전날 채찍에 맞으시고 많은 고난을 당하셨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본질적인 이유는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시는 하나님의 예언에 대한 성취를 위해 모든 과정이 진행되었기 때문이었다.
그 과정에서 아리마대 요셉이 자신의 무덤에 예수님을 장사 지낸 것도 동일하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예언에 대한 성취였음을 보여준다.
모든 제자들이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한 것과는 달리 아리마대 요셉은 자신이 예수님의 제자임을 드러내었으며 또한 예수님의 장례를 집행하는 일을 주관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러한 모든 일도 결국 하나님의 예언을 성취하는 과정이었음을 보여준다.
결국 모든 일은 하나님의 계획과 작정을 따라 진행되며 그 과정에서 하나님은 자신의 일을 위해 필요한 이들을 이끄시고 힘주시며 함께 그 일을 감당하도록 만드신다.
사람이 다 알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친히 성취하시고 이루시며 온전케 하심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하나님의 일에 대한 성취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이들의 모습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며 악인도 그 날에 합당한 모습으로 나타나게 하시는 손길을 보여준다.
그래서 솔로몬은 이와 같은 하나님의 섭리와 인도를 분명하게 선포한다.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쓰임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잠16:4)
대제사장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은 예수님을 죽이는 일에는 성공했으니 이후에 일어날 일들에 대해 걱정하며 그것을 대비하기 위해 빌라도를 찾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들이 빌라도를 찾아간 때는 안식일이요 유월절 당일이었다.
그들은 율법을 지키도록 하고 율법을 가르치는 자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전혀 율법을 소중히 여기고 지키기 위해 힘쓰며 그 의미를 알고자 하지 않았던 자들임을 보여준다.
예수님이 그들을 향해 선포하셨던 말들은 그들의 본성이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드러낸다.
1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14 없음 15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16 화 있을진저 눈 먼 인도자여 너희가 말하되 누구든지 성전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도다(마23:13~16)
이러한 이중적인 종교 지도자들의 모습이 비단 과거뿐만이 아닌 오늘날의 사람들의 모습에서도 선명하게 나타나는 모습이며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타락한 본성임을 인정하게 된다.
나의 모습이 그러하며 다른 이들도 본질상 다르지 않은 모습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인생은 하나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이 아니면 철저하게 심판을 통해 죽음에 이르러야 할 대상에 불과함을 고백하게 하신다.
그것을 인정하고 주의 긍휼과 자비를 구하는 것인 인생의 지혜이며 능력이고 세상과 다른 구별된 삶을 사는 비결임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예수님이 유대 종교지도자들을 책망하시고 심판을 선포하셨지만 그 자리에 나 자신도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요즘 전쟁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트럼프를 욕하고 이와 아울러 전쟁이 지속되고는 있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를 포함하여 이란과 이스라엘 등을 욕하는 소리를 늘 듣게 된다.
나 자신도 그러한 나라와 지도자들을 욕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한 태도가 하나님 앞에서 정당할 수 없는 것은 나 자신도 내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의 고통을 외면하는 것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인생의 본질은 모두 하나님 없이는,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이 아니면 모두 즉각 심판당하여 죽음에 이르러야 할 대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인류가 하나님의 심판에 의해 종말을 경험하지 않는 이유는 인생을 향해 오래 참으시고 하나님의 때가지 기회를 주시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고백하게 된다.
다른 사람의 죄와 허물을 들추기 전에 먼저 자신의 죄와 허물을 보고 주의 긍휼과 자리를 구하며 또한 다른 이들이 돌이키는 모습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성도의 본분임을 고백하게 하신다.
또한 모든 일은 다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기에 그 과정에서 주의 뜻을 알고 겸손히 순종하며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를 기대하는 것이 인생의 지혜임을 배우게 된다.
오늘도 주의 인도와 경륜의 과정을 깨닫고 겸손히 주께 나아가 기도하며 주의 선하심을 배우고 삶 가운데 고백하는 은혜의 삶이 나의 삶에, 그리고 지체들의 삶에 나타날 수 있길 기도한다.
묵상 기도
주님, 오늘도 주의 말씀은 인생의 허물과 죄악을 드러내지만 또한 하나님의 섭리와 하나님의 뜻의 성취는 그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는 것임을 발견합니다.
인생의 무지와 어리석음은 이러한 하나님의 섭리를 무시하고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하나님의 뜻을 바꾸려는 모습에서 나타납니다.
겸손히 주의 뜻을 분별하는 자가 되도록 이끌어 주시고 그 뜻에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는 자가 되도록 인도하옵소서.
세상은 전쟁의 소문으로 요동하며 경제적 어려움 가운데 해결법을 찾기 위해 분주합니다.
세상의 상황만을 바라보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의 섭리를 바라보며 주의 뜻에 합당한 삶의 태도를 가지고 순종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자 되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주의 지체들도 주의 은혜 가운데 머물게 하시고 주님과 함께 교제하면서 모든 시험과 환난과 상황을 능히 극복하며 살아가도록 이끌어 주옵소서.
날마다 은혜와 진리로 붙드시고 생명의 길로 인도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