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굴레
원제 : Of Human Bondage
1934년 미국영화
감독 : 존 크롬웰
원작: 서머싯 몸
출연 : 베티 데이비스, 레슬리 하워드, 프란시스 디
케이 존슨, 레지날드 데니, 알란 헤일
레지날드 오웬, 데스몬드 로버츠
눈이 예쁜 배우로 알려진 전설적 여배우 베티 데이비스는 30-40년대에 왕성한 활동을 한 대배우입니다. 그녀의 비교적 초기인 20대 중반에 출연한 영화 '인간의 굴레'를 감상했습니다. 1934년 고전이지요. 서머싯 몸의 유명한 원작이기도 하고 60년대 로렌스 하비와 킴 노박 주연으로 만들어지기도 했죠. 작가의 유명세 보다는 베티 데이비스의 젊은 시절의 영화를 하나하나 감상해 나가는 묘미 때문에 손이 간 작품이죠. 이미 '사랑의 승리' 제저벨' '작은 여우들' '편지' 등 초기 30-40년대의 수작들의 많았으니. 특히 악녀로서의 모습이 좀 더 어울렸던 그녀지요.
'인간의 굴레'에서 베티 데이비스는 악역입니다. 착하고 순수한 남자가 매력적이지만 못되고 한심한 여자의 덫에 걸려 청춘을 허비하고 헤매는 안타까운 내용입니다.
화가로 성공하고자 했던 필립(레슬리 하워드)은 소질이 없다는 걸 깨닫고 진로를 바꾸어 의학생이 됩니다. 필립은 순진한 외모를 한 선량한 청년이었지만 다소 소심하고 한쪽 발에 장애가 있습니다. 그는 식당에서 종업원으로 일하는 밀드레드(베티 데이비스)를 보고 반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녀에게 작업을 걸고 다소 도도한 밀드레드는 적당히 필립의 대시에 응해주지만 완전히 마음을 주지 않습니다. 그리고 밀드레드는 단골 중년남자 밀러에게 더 추파를 던지죠. 이런 그녀의 모습을 완전히 사로잡지 못한 필립은 마음아파하고 결국 밀드레드는 밀러와 결혼하겠다고 선언하고 떠납니다.
순진하지만 다소 재미는 없는 심심한 느낌의 남자가 사악하고 매력적인 한 여자에게 이끌리다가 채이는 내용이지요. 그런 필립의 곁에 노라(케이 존슨) 라는 매력은 좀 덜하지만 착한 여성이 가까이 합니다. 노라는 필립을 사모했고 밀드레드가 떠나고 나서야 비로소 필립이 자신에게 관심을 갖는 것에 안도합니다. 하지만 필립은 노라가 필립을 사랑하는 만큼 노라를 사랑하지는 않죠. 그런 필립의 앞에 임신하고 밀러에게 채인 밀드레드가 비참한 모습으로 다시 나타납니다. 필립은 잠시 혼란스럽지만 결국 다시 밀드레드에게 빠져들죠. 그런 필립을 보게 된 노라가 하는 말이 인상적입니다.
"밀드레드는 밀러를 바라보고 당신은 그런 밀드레드를 바라보고 나는 그런 당신을 바라보는군요"
필립과 밀드레드의 재회는 오래가지 않습니다. 필립은 밀드레드가 자신의 친구인 그리피스를 좋아하는 걸 알고 실망하고 결국 둘의 사이는 다시 갈라지죠. 다시 좌절한 필립이지만 이번에는 착하면서도 매력적인 샐리(프란시스 디)가 나타납니다. 둘은 서로에게 이끌리게 되지요. 하지만 다시 폐인처럼 된 모습의 밀드레드가 아기까지 잃은 채 나타납니다. 그녀를 가엾게 여긴 필립은 오갈데 없는 그녀를 자신의 집에 머물게 하지만 마음은 주지 않습니다. 밀드레드는 어떻게든 필립을 다시 유혹해보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자 그의 집과 물건을 엉망으로 만들고 사라집니다. 돈이 없어 의학생까지 포기할 뻔한 필립을 샐리가 헌신적으로 받아주었고 결국 둘은 사랑의 결실을 맺습니다.
베티 데이비스의 Eyes 가 실감나는 장면
의외의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는 내용입니다. 사실 한 여자에게 홀려 좋은 여자들 다 놓치고 헤매는 남자의 이야기라면 비극적 결말이 유력하지만 그래도 이 작품은 샐리라는 착한 여자와 결실을 맺는 내용이지요. 좀 씁쓰레하긴 합니다. 차라리 외모는 좀 떨어져도 착한 노라에게 다시 돌아간다면 좀 더 의미있는 결말이 될거라고 보지만....결국 부유함과 미모, 착한 마음까지 다 가진 천사같은 여자가 나타나서 밀드레드에게 한눈이 팔려 몇 번 파멸할 뻔한 남자를 구원해주는 결말이네요. 그것도 샐리는 간절히 필립이 자신에게 멋진 청혼을 해주기를 기다렸고....그래서 영화는 그리 완성도가 아주 뛰어나다고는 할 수 없었습니다. 통속적 재미는 있었지만. 가난한 고아에 가벼운 장애가 있고 여자보는 눈이 없어서 못된 악녀에게 홀려서 시간 다 보낸 남자를 완벽한 여인이 나타나서 구원해주다니.
물론 서머싯 몸의 소설은 아마도 인간의 내면과 삶, 사랑에 대한 깊은 고찰이 있겠죠. 영화만큼 재미있진 않을지언정.. 영화에서는 다소 통속적 재미로 흘러간 한계가 있지요. 재미는 있습니다. 베티 데이비스의 악녀로서의 연기와 병약한 모습이 인상적이지요. 그녀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애슐리 역으로 우리나라에 알여진 배우 레슬리 하워드를 압도하는 포스로 영화를 지배합니다.
레슬리 하워드를 좋아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저는 이 배우가 별 박력이 없어 보여서 큰 매력은 못 느낍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그 박력없는 계란형 길죽한 얼굴이 잘 어울리더군요. 소심한 의학생으로 악녀 밀드레드에게 끌려다니는 역할이 그럴싸했으니까요. 좀 더 왜소한 배우가 더 어울렸을 듯 하지만.
필립을 구원하는 샐리 역의 배우는 '나는 좀비와 함께 걸었다'의 주인공 역할의 프란시스 디 입니다. 그리 유명한 배우는 아니지만 제법 우아한 미모를 가진 배우죠. '작은 아씨들(33)' 에서도 출연했고. 거기서는 캐서린 헵번의 독무대처럼 꾸며진 영화라서 그다지 두드러지진 않았지만. '인간의 굴레'에서는 조연이었지만 상큼한 매력을 보여줍니다.
감독은 존 크롬웰, '소공자(36)' '님은 가시고(44)' '안나와 샴왕(47)' '케이지드(50)' 등 제법 볼만한 수작을을 연출한 인물입니다. 유성영화 초기 감독이지요. 베티 데이비스, 레슬리 하워드, 프란시스 디 등 매력있는 배우들을 잘 활용하여 볼만한 재미가 있던 30년대 영화입니다. 걸작, 수작 레벨은 아니지만.
ps1 : 레슬리 하워드는 1943년 50세의 나이로 요절하지요. '인간의 굴레' 출연히 40대에 접어드는 시기로 나이에 비해서 젊은 역할을 맡았습니다. 하긴 40대에 '로미오와 줄리엣'의 로미오 역을 맡았던 배우니.
ps2 : 이듬해 베티 데이비스가 출연하여 아카데미 주연상까지 받은 '청춘의 항의'와 다소 유사한 캐릭터로 느껴집니다. 그리고 이런 모습이 전성기 시절 베티 데이비스의 모습이고요.
[출처] 인간의 굴레 (Of Human Bondage, 34년)|작성자 이규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