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에게 저주받은 일족의 비극을 소재로 삼은 라신의 희곡은 여타의 작가들과는 확연히 다르다. 인간들의 삶은 신이 점지해주었다. 그렇다면 숙명으로 정해진 그 삶에서 인간들은 벗어나서도 안 되고 벗어날 수도 없다. 그러나 인간들은 신이 점지해준 카테고리를 벗어나 자기만의 삶을 영위하려 했다. 그래서 비극의 씨앗이 열매를 맺었다. 라신의 '페드라'에서도 사랑은 비극으로 종지부를 찍는다. 해서는 안 될 사랑, 만나서는 안 될 만남, 계모와 전처의 아들이 만나면서 어쩔 수 없는 사랑의 싹이 튼다. 첫눈에 반해 사랑에 빠지는 페드라. 계모인 페드라를 사랑하는 아들 그러나 두 사람의 사랑을 기다리는 건 비극이다. 그리스의 줄스 다신 감독은 10년만에 할리우드로 돌아가서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페드라'를 연출했다. 라신의 작품은 연극으로 종종 무대에 올려졌다. 그만큼 대중적이다. 그러나 연극이나 책이 관객이나 독자에게 많이 다가갔는지는 의문이다. 아직까지는 라신의 작품이 폭 넓게 번역되었거나 출판되지 않았다. 그리 보자면 라신을 강의하는 정병희의 '라신 희곡 연구'는 일반인이 보기엔 골치는 아프겠지만 한 권 사볼만 하다. 다만 일반인이 구해보려면 애를 써야 된다는 점이 흠이지만(대학교출판부에선 구할 수 있는 책)--- 라신 희곡 연구서가 이화여대출판부에서 출간된 해는 1989년이다. 그로부터 10년 후인 1999년 서울대학교출판부에서 '라신 희곡선집'을 출간했다. 그렇다고해서 라신의 전 작품이 번역된 건 아니고 '라 테바이드' '앙드로마크' '부리타니쿠스' '바자제' '페드라' 등 5편이다. 이후 문예출판사에서 재해석된 '페드라'가 출판되었다. 물론 번역은 정병희 외 몇 사람이 포함됐다. 그건 그렇고 2009년 5월 2일 라신 희곡 연구는 2000원에 구했고 라신 희곡선집은 5년 전에 거금18,500원을 주고 샀다. 정가는 2만원 인데 도매점이라 조금 쌌다. 고전을 읽는다는 건 새로운 세상을 보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고전을 낡은 것으로 치부한다. |
15년도 더 된, 사족 같은 얘기 한 토막이 생각난다.
대학에 강의나가는 처자와 종종 만나 이런저럼 대화를 해가며 술잔을 기울이곤 했다.
그미가 살아온 세월이 지난했다지만 그 시간들을 극복하고 시를 쓰고 학생들을 가르친다는 건
의지의 표상이라 부르고 싶을 정도라---
한데 지나면서 보니 그 여자는 무척 편향적이고 나아가 고전을 싫어했다.
고리타분하다는 게 이유다.
고전 아니라도 얼마든지 학생들 가르칠 수 있는 자료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시간을 버렸다는 생각에 화가 났고, 멍해진 뇌가 잠시 놀랐고 어이없었다.
얼마 안 되는 시간이지만 그 시간들이 허비된 건 같아 씁쓸했다.
선생이, 시인이, 소설가가, 음악인이, 미술가가, 아니 모든 예술인이 완벽할 수야 없겠지만
고전을 통해 그만큼의 자리에 설 수 있었다는 걸 잊고 사는 그 선생이 참으로 초라해 보였다.
고전, 고전을 읽는다는 즐거움 그건 지식의 만끽인데---
첫댓글 파라마운트극장(예전 을지극장인데, 이름이 몇 번 바뀌었다가 훗날 유명한 술집으로 자리바꿈했다)에서
상영한 '죽어도 좋아'는 독재정권하에서 커트를 당해 아쉬웠는데, 세월이 흐르고 2000년대 초 종로 2가
극장에서 노커트로 상영한 '페드라'를 보며 흥분했던 기억이 새삼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