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토스카나의 속살로 들어간다. 6월 1일 피렌체 역 근처 버스 정류장에서 8시쯤 버스를 타고 시에나에 도착하니 9시 30분쯤이었다. 일인당 8.4유로.
늘 여행 가면 하는 식대로 도시의 가장 높은 곳부터 오르기로 했다. 만지아 종탑이다. 10유로씩, 싸네 싶었다. 이미 터미널 내려 산지미냐노 가는 버스가 매시 10분 한 대씩 있는 것을 파악하고 점심 때까지 둘러보기로 했다. 그래야 산지미냐노 가서 돌아본 뒤 저녁은 피렌체 가서 먹고 미켈란젤로 언덕 위에서 일몰까지 구경할 수 있어 무엇보다 시간 배분이 중요했다.
10시부터 문을 여는 만지아 종탑에 올랐다. 야 여기 좋구나, 피렌체 조토의 탑처럼 온 사방에 붉은색 지붕들이 즐비하고 원래 70여개였다는 탑 가운데 12개가 점점이 박혀 있다. 만지아의 탑이 게중 가장 높고 웅장한 탑이다. 사방 어디를 둘러봐도 멋지다. 사진도 여러 장 찍고 한참 만에 내려왔다.
어느 골목을 다녀도 예쁘다. 하늘은 맑고 푸른데 올올이 박힌 구름은 솜사탕처럼 달큼하다. 성처럼 어느 방향에서든 올라오게 도시가 꾸며졌는데 모두 돌아보고 싶었지만, 시간이 허락하지 않는다. 날씨는 조금 더운 편이지만 그늘만 들어가면 시원했다. 더욱이 산들바람이 계곡 아래에서 불어와 등을 간질어준다. 집친구와는 따로 돌아다녔다. 내가 만지아의 탑 위에서 눈여겨 본 장소가 있어서였다. 모터바이크 족들이 여럿 머무르며 사이프러스 나무들로 둘러처진 장원들의 장관을 굽어보는 장소인 것 같았다. 집친구는 한참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와야 할지 모른다며 힘을 아끼겠다고 했다.
여기저기 골목을 쏘다니며 바삐 사진을 찍었다. 나중에 보니 이곳 건물 가운데 적어도 다섯 곳은 직접 들어가봤어야 했는데 시간에 쫓겨 그러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12시 조금 못 돼 버스 타는 곳에 갔더니 집친구는 딸기 500g을 건넨다. 생수 마시는 것보다 나을 것 같아서 그랬다고 했다. 정말이었다. 딸기가 아주 건강한 맛이 넘쳐났다. 2.2유로라 엄청 가성비 있다고 생각했다.
12시 20분에 출발해 포지본시란 이상한 이름의 마을 지나 산지미냐노에 도착하니 2시가 조금 못 됐다. 허기도 그닥 없고 시간도 아낄 겸 그랬다. 입구 빵집 스웰 스윗에서 빵 세 종류에 콜라 한 병까지 했는데 8.45유로. 이상하다 왜 이렇게 싸지, 우리는 서로 얼굴을 마주 봤다.
조그만 성곽 도시다. 심지어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 우리는 맨 위쪽 포롤로 궁전 옆 계단에 앉아 빵과 콜라를 먹었다. 야, 이거 싼데 맛도 있네, 감탄하며 먹었다. 먹고 난 뒤 요새 쪽으로 올라갔다. 어떤 중늙은이가 전통 의상을 차려 입고 연극 대사와 같은 딕토네이션 강한 어조로 뭔가를 읊어댄다. 이탈리아 말이라 당최 알아들을 수가 없지만 그는 지나가는 청년들이 비웃건 말건 두 팔을 번갈아 허공에서 휘저으며 뭐라고 외쳐댄다. 우리는 1시간 정도 머물렀는데 그는 지치지도 않는지, 간혹 짧게 쉬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줄기차게 외쳐댔다.
요새 아래 아주 큰 나무 두 그루 사이에 장원 풍광을 조망하기 좋은 곳이 있어 우리 부부는 여기 정말 좋네. 요 아래 마을에서 며칠 묵어도 좋겠네, 했다.
나올 때는 반대편 골목도 조금씩 들락날락 하며 걸었다. 그리고 젤라토 가게. 젤라테리아 돈돌리 앞에 줄이 거짓말 조금 보태 80m쯤 서 있었다. 진득하게 기다리는데 생각외로 빨리 풀린다. 가게 안에는 10여명의 아주머니들이 앞다퉈 아이스크림을 콘이나 컵에 퍼담으며 값을 치르느라 아주 정신이 없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아이스크림이란 칭호를 얻었다고 많이 알려진 집이다. 4유로에 먹었는데 재료를 아낌없이 쓰는, 건강한 느낌의 맛이었다. 이탈리아에서 처음 맛본 본토 젤라토였다. 그걸로 그만이었다.
오후 4시 30분 넘어 버스 타고 포지본시행 버스를 기다리는데 생각보다 대중교통 이용하는 사람이 많았다. 한 치매 할머니가 자꾸 여러 사람 붙잡고 같은 질문을 해대고 한 이탈리아 할아버지가 자꾸 외국인 붙들고 뭐라고 외쳐대는데 말은 안 통하고, 이탈리아 젊은애들은 킥킥대고 기다리는 시간이 조금 힘들었다. 산지미냐노~포지본시 2.6유로, 포지본시~피렌체를 6.2유로에 타고 돌아왔다.
호텔 돌아와 간단히 씻고 딸이 일러준 피렌체의 맛집 트라토리아 달로스테 42유로(자릿세 5유로, 필레토 28.5유로, 스파게티 7.5유로, 맥주 5유로, 4분의 1와인 3.5유로에 먹었다. 원래 음식값은 49.5유로 나왔는데 네이버 쿠폰을 보여주자 서슴치 않고 7.5유로를 깎아줬다. 이런 횡재가.
네이버 쿠폰 할인이 될 정도로 한국인 손님이 무척 많은게 인상적이었다. 기다리는 손님들에게 화이트 와인을 제대로 컵에 따라 서비스했다. 예쁘고 영어도 잘하는 아가씨가 세상에 이렇게나 손님이 나래비를 서다니, 뭐 이런 표정으로 와인을 따라주는데 난, 속으로 모어 모어, 라고 할까말까 하다가 관뒀다.
그리고 피렌체 역으로 다시 걸어나와 버스 타고 미켈란제로 언덕에 갔다. 사람이 말도 못하게 많다. 한국인이 또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게 놀라웠다. 이 정도면 발에 채일 정도다. 일몰은 기대에 못 미쳤지만 일몰 전의 노을이 아름답다. 피렌체 두오모와 살바토레 오그니산티 성당, 산타 크로체 성당 첨탑들이 솟아있다.
밤 9시 56분 버스로 돌아와 잠깐 두오모 일대를 돌다 호텔 돌아와 잤다. 다음날 아침 일찍 스트로치 성 근처를 조깅하는데 노숙자가 잔디밭에서 일 보다 갑자기 달려온 나와 마주쳤다. 미안했다. 호텔 돌아와도 시간이 남아 뒷마당에 앉아 새소리를 들었다. 아침 먹고 잠시 집친구와 이곳을 다시 들러 조금 쉬다 짐 꾸려 8시 45분 볼차노로 떠났다. 열차 안에서 전날 쇼핑몰에서 집친구와 만났다는 아주머니네 가족과 이런저런 여행정보를 교환하며 가느라 금세 도착했다. 피렌체~볼차노 열차 값은 일인당 23.9유로였다.
토스카나 편은 간단히 3회로 마치고, 다음 13회는 다시 시간을 앞으로 돌려 돌로미티 여행을 끝내고 인스브루크 가는 여정으로 이어진다.
첫댓글 지치지 않고 쓰느라 수고한다~~ 잘 읽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