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 연천지역 트레킹
►트레킹 일자 : 2024. 09. 18. (수)
►트레킹 코스
율곡습지공원→율곡수목원→
비룡전망대→1.21 무장공비 침투로→
고랑포구역사공원→신라경순왕릉→
호로고구(통일바라기)→
상승전망대→황포돛배
►참가자
최폴리 부부 2명
►날씨 : 맑음 (약간 구름낀 날씨)
(낮 최고기온 29도)
▶트레킹 스케치
추석연휴 마지막 날
차롓상 준비에 고생한 옆지기
콧바람 쐬줄겸 드라이브 차 비교적
교통소통 원활한 북쪽지방을
트레킹 목적지로 선택했다
파주. 연천. 포천. 철원 지방은
여러번 탐방한바 있어 그동안
찿지않은 최전방 舊op 비룡전망대.
상승전망대를 목적지로 삼았고
기타 지역은 오며 가며 재 방문
탐방지로 삼아 이날 08:30분
화곡동 집에서 출발했다
아니나 다를까???
서울-문산간 고속도로는 쭈쭈빵빵~~~
과속으로 찍히지 않도록 조심운전~~
파주 율곡습지공원에 도착하였으나
코스코스 꽃밭은 아직 일러 통과...
12~13시에는 비룡전망대 방문 할 수
없어 곧바로 고랑포역사공원을 지나
최전방 비룡부대로 직행했다
비룡부대 철책 검문소에 도착
공개할 수는 없지만 여차여차하여
일체 촬영금지. 핸드폰 카메라
렌즈에 비표를 붙이고 네비 칩도
빼고 그곳에서 부터 촬영금지
주지후 軍 간부가 동행 軍 짚차로
울 부부가 탄 차를 안내했다
舊 승전 op로 사용하던 전망대에
도착 軍 간부는 바로 앞 남방한계선
북방한계선 등등 공개할 수는 없는
상황을 상세히 설명했다
이어서 상당한 거리를 軍 짚차로
안내 1. 21 무장공비 침투로 현장에
도착 설명을 듣고 견학했다
이곳 현장은
사진촬영 가능하다 하여 인증샷~~
원래 비룡전망대. 1.21 침투지역은
연천군청에서 안보견학 신청 접수받아
사전에 軍 허락을 득하고 軍 간부가
동행하는 것이 원칙이나
울 부부만 방문 견학하다보니 재향
警友인 점을 감안 울 부부에게
전방 상황 상세한 설명에 감사하다
철책 軍 검문소를 나와 점심
식사후 상승전망대로 향 했다
상승전망대도 마찬가지....
경계 부대는 다르지만 군 철책
검문소를 통과해야 한다
근무중인 사병은
신분증 제시를 요구하였으나
옆지기는 신분증 미소지...
근무 사병은 최대한 협조하기 위해
옆지기 폰에 정부 24시 신분증
앱을 깔아주고 신분증 발급받게
해줄려고 최대한 노력 하였으나
이 또한 발급에 실패 규정상
어쩔 수 없이 전망대 방문을 포기
발길을 돌려야 했다
새삼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불철주야 국토방위에
여념이 없는 든든한 대한민국
모든 軍人에게 감사하다
특히 이날 안내를 한 軍 간부
경계 근무중이던 사병 모두
최대한 국민의 입장에서 편익을
도모 노력해준 점에 대해 진정
진심으로 감사하다
여타 탐방지는
기히 탐방한 지역으로 가벼운
맘으로 재 탐방 했지만 호로고구
통일 바리기축제는 태풍으로
해바라기 꽃이 모두 쓰러져 취소
되었다
탐방을 마치고 서울로 출발
뻥~~~ 뚫린 고속도로를 달려
17:00경 귀가했다
►비룡전망대. 1.21무장공비 침투로.
상승전망대는 안보견학 효용가치가
충분하여 조만간 서울양천재향경우회
산행팀에 최전방에 위치한 파평산
(495.9m)산행 공지 올리면서 이곳을
연계하는 방안을 모색하겠습니다~~
2024. 09. 18. (수) 저녁
서울양천재향경우회 산행팀
산악대장 최폴리...........
▼ 레클리스
고랑포 구역사 공원에 레클리스
동상이 세워져 있다.
‘레클리스’는 1952년 연말 탄약
수송병으로 전선에 투입된 이후
1953년 3월 경기도 연천에서 벌어진
미해병1사단과 중공군의 전투에서
닷새간 무려 51차례나 험한 산길을
‘무모하게’ 오르내리며 포탄과
탄약을 운반하는 등 한국전쟁때
용감하게 활약했던 군마(軍馬)다~~
정전 협정 후 소속 부대원들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간 ‘레클리스’는
무공을 인정받아 美 정부로 부터
미 대통령 표창장·국방부 종군기장·
퍼플하트 등 5개의 훈장을 받았다.
2013년 7월에는
한국전쟁 정전 협정 60주년 기념
행사의 일환으로 국립해병대박물관
인근 셈퍼 필렐리스 공원에 실물
크기의 동상이 세워졌다. 연천군은
고랑포 구역사공원 한가운데에
‘레클리스’ 동상을 세웠다
▼임진강변 고랑포구~~~
임진강은 한국전쟁 전까지 경기 북부
최대의 무역항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요인 이였다. 고랑포구는 임진강을
따라 무거운 화물을 싣고 배들이
내륙까지 들어올 수 있었던 지역으로
5만여 명의 사람들이 살았다고 한다
개성과 한성의 물자교류로 화신백화
점분점이 자리잡을 정도로 번성했고
큰 시가지를 이루고 있었던
고랑포구는 한국전쟁 이후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고랑포구는
한국전쟁과 남북분단으로 황망하게
쇠락했지만 삼국시대부터 전략적
요충지. 임진강을 통한 물자교류
중심역할을 했던 나루터다.
▼ 경순왕릉
고랑포 구역사공원에서 400m지점
신라 마지막 왕 경순왕릉이 있다
927년 11월 후백제 견훤이 신라의
수도 금성을 급습하여 포석정에서
연회를 베풀며 놀고 있던 경애왕을
사로잡아 자살하게 하고,
경애왕의 이종사촌 동생인 김부
(金傅)를 왕위에 세우니 그가
경순왕이다. 신라 56대 마지막 왕
경순왕은 재위 8년 동안 나라의
힘이 완전히 약해지고, 국토가 날로
줄어들어 나라를 제대로 이끌
형편이 되지 않았다.
경순왕은
935년 11월 시랑 김봉휴를 시켜
항복을 청하는 국서를 고려 왕건
에게 바쳐 천년 (기원전 57년 ~
935년)의 신라는 멸망했다.
이 때 맏아들 마의태자는
고려에 항복하는 것을 반대하다
개골산(현재의 금강산)으로 들어가
바위에 의지하여 집을 삼고
삼베옷을 입고 풀을 먹으며 살다가
일생을 마쳤으며, 둘째 아들 범공은
머리를 깎고 화엄사(華嚴寺)에
들어가 중이 되었다
935년 11월 경순왕이 문무백관을
거느리고 서라벌을 출발하여 고려
송악(松嶽, 지금의 개성)으로 향했다.
고려 태조는 경순왕이 송악에 도착
하자 궁궐 동쪽 유화궁(柳花宮)에
머물도록 했다. 고려 태조는
경순왕에게 “지금 왕께서 과인에게
나라를 주었으니 그것은 매우 큰
은혜 입니다. 원컨대 종실과 혼인
하여, 장인과 사위의 좋은 관계를
영원히 하고자 합니다.”하며, 큰딸
안정숙의 공주(일명 낙랑공주)를
시집보내 왕을 사위로 삼았다.
이후 아홉째 딸인 ‘공주’도
경순왕에게 시집보냈다.
경순왕은 978년(고려 경종 3)
음력 4월 세상을 떠났다. 시신은
다른 신라의 왕릉이 있는 경주로
운구하려 하였으나,
고려 왕실에서 왕의 영구는 도성 밖
100리를 넘을 수 없다고 반대하여
임진강을 건너지 못하고 현재의
고랑포 8리 계좌언덕에 안장하였다.
신라 왕릉 중에 유일하게 경주가
아닌 이곳 장단면 고랑포에 있다
경순왕릉은
남방한계선(DMZ)과 인접해 있고
주변이 미확인 지뢰지대로 남아
있는 등 민통선 내에 있어 그 동안
군부대의 허가를 받아야만
제한적으로 출입이 가능했지만,
2005년 연천군과 군부대는 5차례에
걸친 협의 끝에 민통선 초소
이전에 합의하고 완전 개방했다
카페 게시글
국내여행(등산)사진
파주. 연천지역 트레킹(2024.09.18.)
최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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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8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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