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달샘:
영성이 나아가는 지침은
'형통亨通' 입니다.
현대의 우리는
'상대적 가치'에 관한 이해도가
높습니다.
상대적 가치는
각 차원에 부합하는 질서와 충족이
각기 다름을 보여주지요.
이 사실은
'모든 가치가 동등한 평가를 받아야
하며
주관성이 정하면 그만인가?'
라는 질문을 낳습니다.
대답은
'그렇지 않다' 이지요.
이유는
차원들 간에 질서와 위계가 있는데
좁은 차원과 넓은 포괄적 차원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차원들 간에 위계位階를 정하는
기준이 존재할까요?
그것은
자유도自由度 혹은 보편성입니다.
자유도는
유연성이나 적응성으로 치환되며
여러 차원에
얼마나 보편적으로 작용하느냐를
나타내지요.
과거부터 동양에선
'형통亨通'을 중요시 했습니다.
이것은
자유도나 보편성을 잘 드러내는
개념이지요.
앞서 언급한
개념들과의 대척점에
'갇힘' 이 있습니다.
갇힘은
상황이나 영역의 단절과 폐쇄성을
나타내는 개념으로
그 크기나 내용을 지칭하지
않습니다.
갇힘의 구조적 특성은
형통과 대비됨이 적절하지요.
닦음에서
'확장과 갇힘'이 통상적으로
사용될 뿐입니다.
영성에선
'형통' 을 지향합니다.
완성된 절대성이나
가치의 정점인 '최고'를 쫓지 않지요.
성장의 현상이 멈추는 순간
그것이
아무리 거대하고 좋아보여도
곧 갇힘입니다.
종교나 철학이나 문명이 추구하는
많은 가치들이
사실은 화려한 갇힘이지요.
좁은 차원에서 바라보면
수승한 무엇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보다 넓은 형통의 지점에선
그것이
갇힘이었음을 알게 되지요.
이처럼
인식의 영역이 확장되는 사건이
깨우침입니다.
영성은
깨우침의 지속적 과정이지요.
영성의 정의가
'의식의 확장 현상' 이기도 합니다.
깨우침과 확장이
과정의 어느 지점에서나 일어나고
있듯
갇힘 또한
과정의 모든 지점에서 발생할 수
있지요.
"어느 수준을 지났으니,
더 이상 퇴락은 없다"
이런 말은
성립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교의 어느 교단에선
실제 이런 단계를 설정해놓고
있지요.
그런 견해 자체가
갇힘에서 나왔습니다.
그들은
영성의 전체 구도를 모르고 있지요.
선현들의 메시지를
주의 깊게 살피면
그들은
결코 완성된 지점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성장의 과정에
우리가
반드시 지나야 하는 관문만을
언급하지요.
붓다는 무아를
노자는 무위, 장자는 소요유,
예수는
'형통한 나라'를 가르쳤습니다.
모든 교단에서
과정이나 관문이 아닌
최종 목표에 관한 가르침은
전적으로
추종자들의 어리석음에서
나왔습니다.
초기의 작은 어리석음이
상호 인용을 통해
권위로서 권위를 추가함으로써
어리석음이
진리로 둔갑했지요.
'형통'은
목표가 아닙니댜.
이것은
단지 방향성이며
확장의 성격을 나타내지요.
가치는
특정 차원에선
상대성을 강하게 띨 수도 있으나
분명 한계가 있습니다.
차원에도 위계가 있으며
비교와 평가의 작업은 여전히
유효하지요.
그리고
확장의 방향이 '형통'이라 함은
모든 지점에서 내리게 될
가치평가의 지침이
될 수 있음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형통'과 같은 지침을
좋아하지 않지요.
좋은 말이라 여기긴 하지만
그들은
자신이 추종하는
소위
성인聖人의 말씀이라 착각하는
더 자극적이며
특별한 용어를 선호합니다.
그들은
메시지의 깊은 뜻 이전에
멋져보이는
특별함을 좋아하지요.
그들은 수 천년 지속되고 있는
'영웅의 시대' 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외소함을
영웅으로 대체하려 하지요.
대리만족을 느끼며
그 후광에 도취되어
자신을 직면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자신을 변화 성장시키기보다
영웅을 찾아다니는데 몰두하는
이유이지요.
그들이
운 좋게 훌륭한 선생을 찾아도
자신의 성장에 게으른 것이
그들의 민낯을
방증합니다.
'영웅의 시대' 는
평등하지 않지요.
이 시대는
근본적으로 계급 사회입니다.
외압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무능한 신분으로 가두지요.
도전은 어려워보이기에
그저
쉬운 길을 택하고 있습니다.
영웅을 크게 과장함으로써
자신의 게으름을
정당화시키지요.
영웅에
끊임없이 거품이 주입되는
이유입니다.
사실
그들은 영웅에 관심이 없으며
자신의 나약함을
방어하는 수단으로 이용하지요.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
'영웅의 시대' 는
끝나가고 있습니다.
민낯의 자신에 직면하고
'형통'에
도전해야 하지요.
현상과 차원의 구도가
그렇게 짜여져 있기 때문입니다.
우상화는
갇힘의 길이지요.
모든 교단은
갇힘의 길을 걸었습니다.
영웅이 길이 아니라
'형통'이
길입니다.
누구도 본 적 없는 나그네
물결 일렁여 흔적 남기고
작은 돛에 살포시 안기니
걸림없는 천성 여유 가득.
..260918小野
첫댓글 감사합니다. 아미타불 _()_
아미타불! 아미타불! 아미타불!
고맙습니다.나무아미타불_()_
고맙습니다 나무아미타불~()~
고맙습니다. 나무아미타불 _()_
고맙습니다. 나무아미타불. _()_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