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택하셔서 큰 민족을 이루시겠다는 약속을 주셨는데, 하나님은 아브라함 이후에 하나님의 약속을 이어 나갈 후손으로 이삭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삭을 통해 어떻게 하나님의 약속을 이뤄가시는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바다의 모래처럼, 하늘의 별처럼 수많은 후손을 주시고, 큰 민족을 이루실 것이며, 세상 모든 민족들에게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지만,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의 아들은 이삭 한 명이었습니다. 물론 이삭 외의 하갈이나 그두라를 통해서 낳은 아들들도 민족들을 이뤄갔지만, 이삭을 통해서 큰 민족을 이룬다는 것을 눈으로 보기에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100세에 낳았는데, 이삭이 리브가와 결혼할 때의 이삭의 나이가 40세였으니(20절) 이삭이 결혼할 때의 아브라함의 나이는 140세였고, 이삭이 리브가를 통해 에서와 야곱을 낳을 때의 이삭의 나이가 60세였으니(26절) 에서와 야곱을 낳을 때 아브라함의 나이는 160세였습니다. 아브라함이 175세에 죽었으니(7절) 아브라함은 이삭이 에서와 야곱을 낳은 것을 보고, 15년 정도를 더 살다가 죽었습니다. 에서와 야곱이 15세 정도 되었을 때 아브라함이 죽은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이 결혼한 후에 아기를 낳지 못하고 20년을 그냥 보내다가 가까스로 쌍둥이를 낳아 손주 2명을 보았을 뿐, 그 이후에도 다른 손주를 볼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니 이삭을 통해서도 큰 민족을 이루겠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기에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러려면 이삭이 자녀들을 최소한 대여섯 명 이상을 낳아야 하지 않았을까요?
그렇지만 하나님은 이삭과 리브가를 통해서 낳은 쌍둥이 아들 중, 그것도 야곱이란 한 아들을 통해 이스라엘 민족이라는 민족을 이뤄가십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는 야곱이 열두 아들을 낳아 큰 민족을 이뤄가는 것을 기록하기에 앞서 야곱의 출생에 관해 먼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삭과 리브가를 통해서 에서와 야곱이 태어나고, 어떻게 야곱이 이스라엘 민족을 형성해 가고 있는지를 밝혀주고 있습니다.
이삭과 리브가도 아브라함과 사라처럼 임신을 못하여 긴 세월 동안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하였고, 하나님께서 기도에 응답하셔서 리브가가 임신하게 됩니다(21절). 리브가는 쌍둥이를 임신하였는데, 그 쌍둥이가 리브가의 뱃속에서부터 서로 싸우면서 심상치 않은 미래를 암시하고 있습니다(22절). 이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리브가가 잉태한 쌍둥이는 각각 민족을 이뤄갈 것인데,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길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둘째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언약을 이어받을 자라는 것을 알려주십니다(23절). 그 당시에도 일반적으로 장자(長子)가 그 부모의 대(代)를 이어가는 것인데, 그 반대가 될 것이란 말씀입니다.
그런데 에서는 태어날 때부터 털투성이였고, 몸이 붉었기에 에서(Esau)라고 불렀고, 두 번째로 나온 야곱은 에서의 발꿈치를 잡고 나왔기에 야곱(Jacob)이라고 불렀습니다(24절~26절).에서, 히브리어로 “에사우”(עֵשָׂו)는 “털이 많은”, “거친(rough)”이란 의미입니다. 그리고 야곱, 히브리어로 “야콥”(יַעֲקֹב)은 “발꿈치를 잡는 자” 즉 “자리를 빼앗는 자”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둘 사이의 관계가 어떠할 것인지에 대해 보여주는 듯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암시는 실제로 실생활에서 드러나게 됩니다. 에서는 익숙한 사냥꾼이 되어 주로 들에 나가서 사냥하면서 살고, 야곱은 조용한 사람이어서 집에 거하면서 주로 어머니의 살림을 도우며 살았습니다(27절). 그래서 아버지 이삭은 사냥한 고기를 좋아하여 에서를 편애(偏愛)하고, 리브가는 자기의 살림을 돕는 야곱을 편애했습니다(28절). 이러한 편애도 형제의 우애를 방해하는 요소가 되었을 것입니다.
결국 에서는 야곱에게 자기의 장자의 명분을 붉은 죽 한 그릇에 팔게 됩니다(29절~34절). 사냥하고 돌아와서 배가 몹시 고팠던 에서는 야곱이 끓이고 있던 붉은 죽 한 그릇을 달라고 했고, 야곱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죽 한 그릇을 줄 테니, 대신 장자의 명분을 팔라고 요구하였고, 배가 너무 고팠던 에서는 “그깟 장자의 명문이 뭐가 그리 중요하다고”라고 말하며 흔쾌히 수락합니다. 34절에 나오는 팥죽의 팥은 히브리어로 “아다쉼”(עֲדָשִׁ֔ים)인데, 이 단어의 원형은 아다쉬(עָדָשׁ)는 렌틸콩(Lentil bean)을 말하는데, 렌즈콩(Lens culinaris)이라고도 부릅니다. 고대 근동 지역에서 주식이었던 식물인데, 이 콩으로 죽을 쑤어서 에서에게 주고 장자의 명분을 산 것입니다. 아마 에서는 이 일이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여겼을 것입니다. 이 일로 인해 일어날 결과가 얼마나 클지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34절은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김이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에서의 별명은 에돔(Edom)이라 하였습니다(30절). 히브리어 “에돔”(אֱדֹם)은 “붉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에서의 후손을 에돔 족속이라고 부릅니다.
모르긴 몰라도 에서와 야곱이 15살 때까지 아브라함이 살아있었으니,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에 대해서는 직간접적으로 들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런데 에서는 장자로서 이 언약의 중요성에 관해 별로 깊이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반면 야곱은 이러한 언약을 이어감에 있어서 장자의 명분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알고 있었던 것이 확실합니다. 그래서 야곱은 장자의 명분을 차지하려고 애썼고, 에서는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긴 것입니다.
제가 믿기는 하나님께서 야곱을 택하여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을 이어가시기로 했기에, 야곱이 술수를 부려서 장자의 명분을 에서에게서 빼앗지 않아도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방법을 통해서라도 야곱을 통해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을 이어가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야곱은 이러한 하나님의 언약을 인간적이고도 비열한 방법을 통해서 자기가 이어가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에서는 그러한 언약에 대해서도 별로 큰 관심을 갖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매우 중요하게 여겨야 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과 약속들에 대해 진지한 태도로 삶을 통해 이뤄 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들이나 비전(Vision)을 내 방식대로 이뤄가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인간적인 방법으로 애쓰지 않아도 하나님만을 온전히 신뢰하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해 나간다면 하나님께서 이뤄가실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약속과 비전이 무엇인지를 잘 살피고, 그 약속과 비전을 중요하게 여기며,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비전을 하나님께서 이뤄가시도록 나 자신을 온전히 드리는 복된 삶이 되길 소망합니다. (안창국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