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왕산 얼음 트레킹의 하이라이트인 용추계곡 구간. 사진/ 민다엽 기자
경북 청송의 주왕산국립공원에서는 누구나 쉽게 한 겨울의 낭만을 즐겨볼 수 있다. 계곡을 따라 걸으며, 억겁의 시간이 만든 천혜의 비경을 한껏 만끽해 보자. 등산이 힘든 당신에게 추천하는 주왕산 얼음 트레킹을 소개한다.
전체 면적의 80%가 산림 지대인 경북 청송군은 한때 오지라고 불릴 만큼 외부와 단절된 곳이었다. 현재는 고속도로를 타고 비교적 손쉽게 닿을 수 있게 됐지만, 여전히 공장 하나 없는 때 묻지 않은 자연을 간직하고 있는 청정 지역이다. 그중 가장 깊숙한 곳에 주왕산 국립공원이 있다.
저멀리 주왕산을 상징하는 거대한 암봉이 눈에 들어온다. 사진/ 민다엽 기자
주왕산국립공원 입구에 있는 탐방안내소. 사진/ 민다엽 기자
우리나라 최고의 지질공원
1976년 우리나라의 12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주왕산 국립공원은 시선을 사로잡는 커다란 기암괴석과 수려한 계곡으로 유명한 대표적인 암산(바위산)이다. 화산 분출과 풍화 침식작용으로 생겨난 다채로운 암봉과 기암괴석, 폭포, 계곡, 동굴 등 독특한 풍경이 인상적이다.
실제로, 화성암·퇴적암·변성암 등 수 억년의 시간에 걸쳐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주왕산의 지형은 국제적으로도 그 가치를 인정받아 지난 2017년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지금까지 국내에 지정된 지질명소는 총 24곳, 이중 주왕산국립공원에만 무려 9개의 지질명소가 포함돼 있다.
주왕산국립공원은 유네스코 세계지징공원으로 지정됐다. 사진/ 민다엽 기자
국립공원 입구의 모습. 사진/ 민다엽 기자
주왕산은 특히나 가을 단풍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곳이지만, 겨울에는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얼어붙은 계곡을 따라 겨울의 정취를 오롯이 느껴보기 좋은 곳이다. 무엇보다도 평지에 가까운 탐방로와 국립공원답게 잘 정비된 시설 덕분에, 추운 날씨라도 큰 준비 없이 환상적인 얼음 트레킹을 즐길 수 있어 매력적이다.
주왕산의 진면목은 산행보다 계곡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대표적인 탐방 코스로 용추계곡으로 향하는 상의지구 코스를 꼽는다, 상의지구 탐방로는 방한 장비만 잘 갖췄다면 아이나 노약자도 무리 없이 걸을 수 있는 쉬운 코스다.
상의탐방지원센터 주차장에서 출발해 대전사와 주왕암, 시루봉을 거쳐, 용추계곡과 용연폭포까지 이어지는 총 길이 8km 남짓의 코스. 왕복 소요 시간은 총 3시간 정도. 일부 구간을 제외하면 대부분 평지 코스라 어렵지 않다. 만약 시간 여유가 없어 용추계곡까지만 다녀온다면 2시간이면 충분하다.
대전사에서 바라본 주왕산의 암봉. 사진/ 민다엽 기자
소박한 지금의 모습과는 달리, 대진사는 과거 제법 큰 사찰이었다. 사진/ 민다엽 기자
영험한 기운이 느껴지는 명산, 주왕산
주왕산 계곡 트레킹에 앞서 입구에는 대전사가 자리 잡고 있다. 이 곳은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작은 사찰로 임진왜란 때에는 사명대사가 승군(僧軍)을 모아 훈련시켰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처마 너머 보이는 거대한 암봉과 어우러진 사찰의 풍경은 가히 압권이다. 풍수지리는 몰라도 명당 중에 명당이라는 생각이 단번에 든다.
대전사가 원래부터 이런 모습은 아니었다고 한다. 과거에는 꽤 번성했던 사찰이었지만 여러 차례 화재로 대부분이 소실되어, 법당 몇 개가 전부인 작은 사찰이 되었다고. 곳곳에 남아있는 주춧돌 등을 살펴봤을 때 과거에는 상당히 큰 규모의 절이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부속 암자로는 주왕산 안 백련암과 주왕암이 있다.
탐방로 초입. 계곡을 따라 걷기 좋은 길이 이어진다. 사진/ 민다엽 기자
절벽 아래 작은 암자가 보인다. 주왕암 정문. 사진/ 민다엽 기자
본격적으로 주왕산 계곡으로 들어서니, 아직 탐방로 초입임에도 불구하고 거대한 기암괴석과 크고 작은 폭포가 어우러진 독특한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몇 걸음 안 걸었지만 마치 깊은 산속에 들어와 있는 듯 주변 산세가 험준하다. 탐방로 중간 주왕암으로 빠지는 표지판이 보인다. 돌계단을 따라 오르다보니 햇빛조차 들지 않는 어두침침한 협곡 아래 작은 암자가 눈에 들어온다. 그야말로 그림 같은 비경이다.
산신각이라고도 불리는 주왕암은 통일신라 의상대사가 세웠다고 전해지는데, 불교에서 말하는 ‘현세에서 정법을 지키는 십육나한’을 모시는 법당이다. 평생 한가지의 소원을 들어준다는 ‘나한기도 도량’ 중 한 곳. 정문을 넘어 암자에 들어서니 뒷편 절벽 사이로 숨겨진 길(?)이 나타난다. 하늘이 겨우 보일 정도로 좁디좁은 협곡 사이로 서늘한 칼바람이 불어오고 암벽에서는 얼음폭포가 흘러내린다. 분위기가 묘하다.
절벽 사이로 신묘한 기운이 감도는 비밀스러운 길이 이어진다. 사진/ 민다엽 기자
협곡 깊숙한 곳까지 다다르면 주왕굴을 만날 수 있다. 사진/ 민다엽 기자
얼음 트레킹의 묘미. 사진/ 민다엽 기자
요상한 부적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좁은 길을 따라 좀 더 깊숙한 곳으로 들어서니, 이윽고 신묘한 기운이 감도는 작은 동굴이 모습을 드러낸다. 마치 중국 무협지에서나 나올 법한 비현실적인 풍경. 실제로 신라 때 중국의 주왕이 이 곳으로 피신을 와서 은거했다는 설화가 전해지기도 한다.
결국 주왕은 이 곳에서 애절하게 죽음을 맞이했고 결국엔 산신이 되었다는 전설이다. 암자를 둘러본 후 다시 탐방로 쪽으로 내려가야 하는 수고로움이 있지만, 그만한 가치는 충분하다.
신선이 노닐던 협곡, 용추계곡
수려한 경치를 감상하며 계곡을 따라 1시간 남짓 오르다 보면, 주왕산 트레킹의 하이라이트인 용추계곡에 들어서게 된다. 어마어마한 크기를 가진 두 개의 암벽 사이로 난 틈새 길을 지나자, 마치 신선세계에 발을 딛은 듯 넓은 협곡이 펼쳐진다. 눈앞에서 마주한 대자연의 웅장함에 경외감이 들 정도. 암벽 하나 지났을 뿐인데 공기마저 달라지는 것이 ‘속세와 천상을 가르는 협곡’이라는 전설이 전해질만 도 하다.
용추계곡 입구. 마치 신선 세계로 들어가는 관문처럼 보인다. 사진/ 민다엽 기자
경이로움이 느껴지는 용추계곡의 풍광. 사진/ 민다엽 기자
눈 덮인 용추 폭포. 사진/ 민다엽 기자
그 중심에는 용이 승천한 폭포라는 뜻을 가진 용추폭포가 있다. 용추폭포는 총 3단의 폭포로 이뤄져 있으며 각 폭포 아래에는 선녀탕과 구룡소라고 불리는 돌개구멍이 있다. 이는 응회암이 발달하는 수직절리를 따라 억겁의 시간동안 침식작용이 일어나면서 생겨난 자연 현상이다.
응회암은 화산이 폭발할 때 분출된 뜨거운 화산재와 암석조각들이 서로 엉겨붙어 만들어진 암석을 말한다. 뜨거운 암석이 식으면서 세로방향의 틈이 생겨났고 그 사이로 물이 들어가 가파른 절벽과 폭포를 만들어 낸다. 주왕산 전역에 크고 작은 폭포가 많은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다.
사실상 얼음 트레킹의 종착지인 용연폭포. 사진/ 민다엽 기자
얼어붙은 용연폭포의 풍경도 나름 운치있다. 사진/ 민다엽 기자
용추계곡을 지나 조금만 더 올라가면 주왕산의 폭포 중 가장 크고 웅장한 용연폭포도 만날 수 있다. 용연폭포 역시 총 3단의 폭포로 이뤄져 있으며, 두 개의 물줄기가 떨어진다고 해서 쌍용추폭포라고도 불린다. 영하의 날씨에 꽁꽁 얼어붙은 모습뿐이지만, 주왕산의 속살을 만끽하기에는 충분한 절경이었다.
INFO 주왕산 국립공원 상의탐방지원센터(안내소)
주소 경북 청송군 주왕산면 공원길 146
문의 054-870-5342
Editor's Choice
야외에서 즐기는 뜨끈한 노천탕
소노벨청송 솔샘온천
살을 에는 듯 한 찬바람에 지쳤다면, 뜨끈한 온천물에 몸과 마음을 녹여보는 것도 좋겠다. 주왕산국립공원 입구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소노벨 청송 리조트에서는 지하 800m~870m 암반에서 용출되는 솔샘온천을 운영 중이다. 숙박객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이용할 수 있으니, 트레킹 후에 꼭 방문해보길 추천한다. 물론, 숙박객이라면 40% 할인된 가격에 온천을 이용할 수 있지만, 일반 방문객도 제휴 카드(자세한 내용은 홈페이지를 참조)만 잘 이용하면 최대 20%까지 할인받을 수 있으니 부담이 적다.
소노벨청송에서 운영하는 솔샘온천. 눈 덮인 노천탕의 모습이 이국적이다. 사진/ 소노호텔앤리조트
편백나무탕. 자연과 어우러진 아늑한 공간에서 소소한 행복을 누리자. 사진/ 소노호텔앤리조트
먼저, 대형 체인 리조트에서 직접 운영하고 있는 만큼 시설 면에서 상당히 깔끔하고 쾌적한 점이 솔샘온천의 가장 큰 강점이다. 사우나 내부라 사진은 찍지 못했지만, 락커룸부터 실내 온천탕, 야외 노천탕, 사우나실까지 하나같이 널찍하고 시설도 최신식으로 갖추고 있었던 점이 인상적이다.
무엇보다 가장 눈에 띄는 공간은 바로 야외 노천탕이다. 자연과 어우러진 아늑한 공간. 영하 10℃를 밑도는 강추위에도 불구하고 이미 많은 사람이 야외 온천욕을 즐기고 있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편백나무 노천탕에 반쯤 누워서 눈 내린 작은 정원을 멍하니 바라보는 소소한 행복, 아마도 이번 겨울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한 장면을 꼽으라면 이 순간이 아닐까 싶다.
주소 경북 청송군 주왕산면 주왕산로 494-1
시간 07:00~21:00
출처 [여행스케치=청송 민다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