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8일(수)
* 시작 기도
주님...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로 믿는 자들은 어둠에 속하지 않고 낮의 아들이자 또한 빛의 아들이라 하셨습니다(갈 5:5).
이 말씀 앞에서도 제 자신이 부족한 것은 여전히 내 안에 칠흑 같은 밤과 어둠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곧 땅에 속한 지체들이 보이는 것인데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 등임을 고백합니다.
나의 부정함과 음란함을 불쌍히 여기사 나의 첫 자리인 죽은 흙임을 알고 주님 앞에서 납작 엎드리게 하소서.
아무 것도 아닌 자가 별 것이라도 되는 양 자꾸만 고개를 쳐들려합니다.
이런 나에게는 오직 주님의 공의의 심판만이 답이오니 주의 십자가로 나를 묶으소서.
나의 실존(失存)을 알고 나의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나는 죽고 오직 예수로 사는 자가 되게 하소서.
나를 드러내려는 자기 의가 얼마나 강한지 그것이 나를 살려줄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못함을 알면서도 고개를 들려합니다.
이 시간 나 자신을 부인하고 죽은 흙의 자리로 내려가 주의 십자가와 무덤에서 주님과 연합한 자로 서게 하소서.
그곳에서만 영원한 생명으로 일어설 수 있음을 믿사오니 다른 것에 눈을 돌리거나 귀 기울이지 않게 하소서.
영원한 주의 나라가 오늘 나의 심령에 임하기를 원합니다.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나를 빚어주시고 주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으로 비추소서.
주의 보혈로 나를 씻어 정결한 주의 신부로 세워주소서.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나는 죽고 오직 예수로 부요한 자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시 91:1-16
제목 : 그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1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며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 사는 자여
2 나는 여호와를 향하여 말하기를 그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3 이는 그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심한 전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4 그가 너를 그의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의 날개 아래에 피하리로다.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방패가 되시나니
5 너는 밤에 찾아오는 공포와 낮에 날아드는 화살과
6 어두울 때 퍼지는 전염병과 밝을 때 닥쳐오는 재앙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7 천 명이 네 왼쪽에서, 만 명이 네 오른쪽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하지 못하리로다.
8 오직 너는 똑똑히 보리니 악인들의 보응을 네가 보리로다.
9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시라 하고 지존자를 너의 거처로 삼았으므로
10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
11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천사들을 명령하사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12 그들이 그들의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아니하게 하리로다.
13 네가 사자와 독사를 밟으며 젊은 사자와 뱀을 발로 누르리로다.
14 하나님이 이르시되 그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 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
15 그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그에게 응답하리라. 그들이 환난 당할 때에 내가 그와 함께 하여 그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16 내가 그를 장수하게 함으로 그를 만족하게 하며 나의 구원을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도다.
* 나의 묵상
본시는 표제어가 없어서 저자가 누구인지 저작 배경을 전혀 알 수 없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직간접적으로 찬양하는 표현이 가득하다.
은밀한 곳, 그늘 아래, 나의 피난처, 나의 요새,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 건지실 것, 덮으시리니, 그 날개 아래, 피하리로다, 방패, 손방패, 나의 피난처, 거처, 지키게 하심, 붙들어 등이 바로 그런 표현들이다.
이를 보면 하나님에 대한 시인의 신뢰는 가히 절대적이다.
이러한 시인의 하나님께 대한 깊은 신뢰는 평탄한 삶속에서 형성된 것이 아니라 역경 가운데서 견고해진 신뢰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시인의 이러한 신뢰는 환경과 상황이 변할지라도 요동하지 않는다.
본시의 주제는 지존자이신 하나님을 보호받을 거처로 삼는 자들의 고백과 그들이 누리는 안전을 선언하는 내용이다.
특별히 2절에는 지존자를 거처로 삼는 자의 신앙 고백이 소개된다.
(2-3) 나는 여호와를 향하여 말하기를 그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이는 그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심한 전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본시는 세 부분으로 분류할 수 있다.
1-2절은 지존자 하나님을 거처로 삼은 자로서의 시인의 신앙 고백이다.
3-13절은 시인이 지존자 하나님을 거처로 삼은 자의 안전에 대하여 반복적으로 선언하는 내용이다.
14-16절은 이전 단락에서 시인이 선언한 것에 대한 하나님의 화답으로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의 안전에 대한 하나님의 확증적 선언이다.
2절에서 시인은 “나는 여호와를 향하여 말하기를 그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라고 하였다.
즉 시인은 하나님을 자신의 안전하게 보호하시는 보호자로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이어서 3절에는 지존자를 거처로 삼은 자의 안전을 선언하고 있다.
여기서 ‘너’가 지칭하는 대상이 누구인지 정확히 알 수 없다.
만약 본시의 저자가 모세라 한다면 그의 후계자인 여호수아에게 교훈을 주기 위한 것으로 ‘너’가 여호수아를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만일 저자가 다윗이라 한다면 ‘너’는 솔로몬을 가리킬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서 ‘너’는 여호수아나 솔로몬에 한정지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는 모든 사람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면 가장 합리적이 될 수 있다.
즉 시인은 자신이 하나님을 의지함과 하나님께서 ‘너’의 보호자가 되심을 말하고, 이어서 하나님께서 ‘너’의 보호자가 되실 것임을 말함으로써 ‘너’가 곧 자신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임을 시사하는 것이다.
3절을 보면 시인은 “그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심한 전염병에서 건지실 것”이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새 사냥꾼의 올무’와 ‘심한 전염병’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우선 ‘새 사냥꾼의 올무’란 하나님의 사람을 실족하게 하거나 훼방하기 위한 악인들의 은밀하고도 음흉한 술책을 말한다.
그리고 ‘심한 전염병’이란 하나님의 사람을 향한 악인들의 극심한 비방이나 모략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결국 본절은 하나님께서 당신을 의지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이러한 악인들의 간계로부터 안전하게 보호하여 주신다는 말이다.
우리는 실로 가녀린 새처럼 어리석고 지극히 약한 존재이다.
또한 무서운 전염병 앞에 놓인 인간처럼 스스로 자신을 방어할 힘이 없는 존재이다.
그에 비하여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마치 광야와 같이 험난한 곳이다.
광야에는 수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도 수많은 위험이 도처에서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시인은 이러한 위험을 5절과 6절에서 ‘밤에 찾아오는 공포’와 ‘낮에 날아드는 화살’ 그리고 ‘어두울 때 퍼지는 전염병’, ‘밝을 때 닥쳐오는 재앙’으로 표현하고 있다.
또 7절에서는 이러한 재앙으로 인하여 천명이 네 왼쪽에서, 만명이 네 오른쪽에서 엎드러진다고 하였다.
이러한 표현들은 우리가 이 세상을 안전하게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보여주는 것들이다.
우리의 힘으로는 결코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는 곳이 이 세상이다.
더욱이 이 세상은 사냥꾼으로 상징되는 사탄이 우리의 영혼을 삼키기 위하여 마치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는 곳이기도 하다(벧전 5:8).
이런 세상에서 우리가 어떻게 우리의 힘만으로 안전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하나님을 거처로 삼고 그 안에 거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시인은 9-13절처럼 노래하는 것이다.
물론 우리가 이 땅에서 아무리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한다고 할지라도 때로는 넘어지고 올무에 걸릴 수 있다.
그것은 지존자이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그 고난의 수렁으로 몰아넣으시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수렁에 빠질지라도 염려하거나 근심하지 않는 것은 우리의 목표가 이 세상이 아니라 영원한 나라 곧 영생에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이다.
(요 6:40)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따라서 이 세상에서 수렁에 빠지거나 올무에 걸리는 것에 너무 마음을 빼앗길 필요가 없다.
그 수렁과 올무를 통하여 나를 다루시고 만지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는 체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복음을 알기 전까지는 내 시야가 이 세상에 머물러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지 이 세상에서 잘 되고자 하였다.
남들이 보기에 보란듯한 인생을 살아야 했고, 내가 하는 일은 늘 성공을 해야 했으며, 또한 부자로 풍요롭고 윤택한 삶을 살아야만 하였다.
그런데 어디 내가 원하는 것이 내 뜻대로만 되던가?
나도 모르게 걸려 넘어지기도 하고 올무에 빠지기도 하였다.
이런 나를 보면서 도무지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고난 중에 복음을 듣게 되었고 이 복음이 나를 살렸다.
하여 내가 당했던 여러 가지 고난은 나를 살린 생명의 수단이었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우리의 인생은 결코 이 땅에서 결론짓지 않는다.
우리의 인생은 영원한 하나님 나라이다.
곧 영생이다.
그곳에 갔을 때 비로소 모든 것을 알게 된다.
그곳을 가기까지는 내가 알지 못하는 여러 가지 고난의 무덤들이 곳곳에 숨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고난의 무덤이라 할지라도 주님과 함께라면 넉넉히 견디고 이겨낼 수 있다.
그것이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지존자 하나님의 은혜임을 믿는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이 땅에서의 인생을 전부로 알고 살아왔던 이 못난 놈을 불쌍히 여겨주소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면서도 이 세상에서 어떻게든 남든 보기에 보란듯하고 멋지게 살려 했던 어리석은 자가 여기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고난의 무덤을 깊이 경험하면서 우리 주님의 복음을 깨닫게 됨이 그저 은혜입니다.
그 은혜 안에서 오늘도 말씀으로 주님과 사귐을 가집니다.
나는 아무 것도 아니지만 내 안에 계시는 우리 주님의 은혜와 보혈의 능력으로 하루 순간을 살아갑니다.
나는 정말 복 받은 자입니다.
주님만이 나의 전부임을 고백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