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시가강독】
* 황조가, 구지가, 공후인, 해가 - “황조가, 구지가”는 원문의 내용이 짧으니 반드시 암기할 것.
1. 고전시가란?
일반적으로 19세기말 이전에 우리 선조들이 만들고 즐겨 불렀던 노래를 의미하며 구체적으로 갑오개혁이전까지의 작품들을 일컫는다. 예로부터 우리는 詩는 노래로 불려 졌으며, 시와 노래는 함께 존재하는 양면적 성격(시이면서 노래이고, 노래이면서 시이다)을 지녔다고 볼 수 있다.
2. 상대시가란?
일반적으로 삼국시대 이전의 노래를 上代詩歌라고 하는데 현존하는 상대시가는 매우 적은편이다. 상대시가에 대한 이해가 바탕이 된다면 후대의 시가인 향가, 고려속요, 경기체가에 이르기까지 민족시가를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신라시대 이후 등장한 향가는 이두로 표기되었으며 향찰에 대한 명확한 해석이 어렵다. 현재 우리 국문학계에서는 고대 향가의 문자를 해독하는 일조차 완성단계에 있지 못하므로 이점을 기억하여 국문학도로써 더욱 연구에 정진하여야 할 것이다.
★★ 노래와 설화가 함께 존재하던 시대이므로 각 노래의 배경설화를 필히 읽어보고 익혀두도록 한다.
① 황조가 (黃鳥歌)
翩翩黃鳥 (편편황조) 펄펄 나는 꾀꼬리는
雌雄相依 (자웅상의) 암수가 서로 정다운데
念我之獨 (념아지독) 나의 외로움 생각하니
誰其與歸 (수기여귀) 그 뉘와 함께 돌아가리
● 작자 고구려의 유리왕. 삼국사기. 홀로 있는 고독에 대한 비극적인 정서
● 화희와 치희의 존재에 대한 의미가 민족이나 부족의 상징인지 여부에 대한 연구가 필요.
● 치희를 생각하는 유리왕의 고독 혹은 죽은 송씨에 대한 그리움으로 보는 견해도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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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공후인
公無渡河 (공무도하) 님이여 강을 건너지 마시오.
公竟渡河 (공경도하) 끝내 건너셨네.
墮河而死 (타하이사) 물에 빠져 죽었으니,
當奈公何 (당내공하) 님이여 이 일 어이할고
● '공후인'이라는 제목은 중국식 명칭. (일반적으로는 공무도하가)
● 한치윤의 [해동역사]에서 처음으로 우리의 노래라고 주장.
● 노래의 국적에 대한 많은 논란이 있다.
● 우리나라로 보는 견해는 당시 중국의 힘이 만주까지 미치지 못한 것에 근거를 삼고 있으며, 중국으로 보는 견해는 이 노래를 중국인이 먼저 입수하여 즐겨 불렀으며 이태백 등의 시인들이 '공후인'을 주제로 시를 쓴 점 등을 예로 들고 있다.
③ 영신가 (迎神歌)
龜何龜何 (귀하귀하) 거북아 거북아
首其現也 (수기현야) 머리를 들어라
若不現也 (약불현야) 들지를 않으면
燔灼而 喫也 (번작이 끽야) 구워서 먹을 거다
● 구지가, 영신군가 라고도 함.
● 한자로 기록되어 있으나 한시의 형태와는 많은 차이가 있음. 해가(海歌)와 비슷한 짜임을 가지고 있음.
● 삼국유사에 전함. 가락국의 시조신화에 나타남. 수로왕의 탄생을 염원하는 내용.
④ 해 가 (海歌)
龜乎龜乎 出水路 (구호구호 출수로) 거북아 거북아, 수로부인을 내 놓아라
掠人婦女 罪何極 (약인부녀 죄하극) 남의 부인 앗아간 죄 얼마나 큰 가
汝若패逆 不出獻 (여약패역 불출현) 만약 너가 거슬러 내어놓지 않는다면
入網捕掠 燔之喫 (입망포략 번지끽) 그물로 끌어내어 구워서 먹겠다
(3행의 '패' 자는 컴의 한자에 나와 있지 않네요. 교과서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해가'와 '영신가'는 집단 노동 또는 집단 행동이 노래와 함께 이루어진다는 공통점이 있다.
● 이 노래들은 경상남도 (경주, 김해지역)에서 민간에 불렸던 민요가 아닌가하는 추측.
● '구지가'에 수로부인의 얘기만 첨가되었음. (수로부인은 헌화가에도 연결).
● 구조상의 일치는 보이는 부분은 첫째, 불로 구워 먹는 것. 둘째, 거북을 불러내 뭔가를 내어놓으라 하는 것이다.
● 시가는 상대로 올라갈수록 설화와 관련이 깊다.
● 고려후반기 (고려가요)부터 시와 노래가 완전히 분리된다.
● 이황의 [도산십이곡]에 보면 그것의 증거가 될 만한 구절이 나와 있다.
<고전시가강독 2강 >
⑤ 인삼요 (人參謠)
三椏五葉 (삼아오엽) 세 갈래 가지마다, 잎은 다섯 개
背陽向陰 (배양향음) 양지를 등지고, 응달에서 자라니
欲來求我 (욕래구아) 나를 얻고자 하는 사람들은,
椴樹相尋 (단수상심) 자작나무 그늘에 찾아보시구려.
● 인삼요는 예부터 불려진 민간의 노래로 추정. 상대시가에 포함한다.
● 박지원은 열하일기에서 이 노래는 고구려 노래로서 중국에 널리 알려진 것이라고 했다.
⑥ 자루 빠진 도끼 (沒柯斧歌 몰가부가)
誰許 沒柯斧 누가 자루가 빠진 도끼를 빌려 주겠는가
我斫 支天柱 내가 하늘을 괴는 기둥을 깍겠다
● 자루 빠진 도끼 : 남편이 없는 여성(가부가) 을 상징
● 일반인들은 노래의 의미를 몰랐으나 임금은 알아차림.
● 상징, 표현이 민요적 성격
● 관련 설화 - 원효가 어느 날 평소와 다르게 거리에서 이 노래를 부르며 다녔다. 사람들은 그 뜻을 몰랐으나 태종 무열왕만은 그 뜻을 알고는 관리를 시켜 요석궁의 공주에게 가도록 한다. 원효는 이때 다리를 건너다가 일부러 떨어져 옷을 적신다. 요석궁에서 옷을 말리게 되고 요석 공주는 잉태하게 되고 설총을 낳는다. (삼국유사)
제 3 장 향찰로 표기된 향가
( 향찰표기 부분, 양주동 박사의 해독부분, 해석부분은 교재를 보시고 각자 공부하시기 바라며, 스터디 자료는 각 작품과 관련된 내용만을 올리도록 합니다)
● 총 25편 중 신라시대의 것은 14편으로 추정.
● ‘삼대목’은 현재까지 발견되지 않고 있음.
1. 삼국유사에 적힌 향가
1) 죽지가 (竹旨歌)
● 모죽지랑가, ‘죽지랑’이라는 화랑을 사모해서 부른 노래
● 3장으로 구성.
● 비극적인 정서가 깔려 있다.
● 배경설화 : 신라 제 32대 효소왕 때에 죽지랑의 무리 가운데 득오(得烏)라고 하는 급간이 있었다. 화랑도의 명부에 이름을 올려놓고 매일 출근하더니, 한 열흘 동안 보이지 않았다. 죽지랑이 그의 어미를 불러 아들이 어디에 갔느냐고 물어 보았다. 그의 어머니는 "당전(幢典:오늘날의 부대장에 해당하는 신라 때의 군직) 모량부(牟梁部- 사람이름)의 익선아간(益宣阿干:아간은 신라 관등의 제 6위)이 내 아들을 부산성(富山城)의 창직(倉直- 곡식창고를 지키는 직책)으로 임명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급히 가느라고 낭께 알리지 못하였습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죽지랑은 이 말을 듣고, "그대의 아들이 만일 사사로운 일고 그 곳에 갔다면 찾아 볼 필요가 없지마는 공사로 갔다니 마땅히 가서 위로하고 대접해야겠오. 죽지랑은 익선의 밭으로 찾아가서 가지고 간 떡과 술을 득오에게 먹인 다음, 익선에게 휴가를 청하였으나 이를 거부하고 허락하지 않았다. 그 때 마침 간진이라는 사람이 추화군 (지금의 밀양) 능절(能節)의 조 30석을 거두어 성 안으로 싣고 가다가, 죽지랑의 선비를 존대하는 풍도를 아름답게 여기고, 익선의 막히고 변통성이 없는 것을 품위가 없고 천하게 생각하여, 가지고 가던 벼 30석을 익선에게 주면서 득오를 보내오도록 청하였으나 허락하지 않았다. 이에 또 진절사지(珍節舍知-신라 관직의 제13위)가 쓰는 말안장을 더 주었더니 드디어 허락하였다. 조정의 화주(花主-신라에서 화랑을 관장하는 관직)가 이 이야기를 듣고 익선을 잡아다가 그의 더럽고 추한 마음을 씻어 주고자 하였는데, 도망쳐 버렸으므로 그의 아들을 대신 잡아갔다. 때는 동짓달 몹시 추운 날인데 성 안의 못에서 목욕을 시키니 얼어 죽었다. 대왕이 이 말을 듣고 모량리 사람은 모두 벼슬에서 쫓아내게 하였고, 그 지방 사람들에게 심각한 불이익을 주었다. 처음에 득오가 죽지랑을 사모하여 노래를 지어 부르니 이것이 모죽지랑가다.
2) 헌화가 (獻花歌)
● 수로부인과 노래와의 관계.
● 이 노래를 사랑의 노래로 본다면 노인이 수로부인에게 자신의 심정을 하소연하는 것이다. (신적인 인물, 상징적 존재.)
● 수로부인과 관계된 얘기에서 노인은 두 번이나 수로부인을 구출하는데 이 부분에 대한 많은 연구가 필요하겠다.
● 배경설화 : 4구체 향가이며, 민요가 문자로 기록된 것으로 여겨지는 작품이다. 이 노래는 신라의 빼어난 미인으로 알려진 김수로 부인 이야기 속에 들어 있다.성덕왕 시대에 순정공이 강릉 태수로 부임하여 가다가 바닷가에서 점심을 먹게 되었다. 옆에 바위가 있어마치 병풍처럼 바다를 둘러쳐져 있는데, 높이가 천 길이고 위에 철쭉꽃이 만개해 있었다. 공의 부인 수로(水路)가 보고 좌우에게 말하기를 "누가 저 꽃을 꺾어서 바치겠는가?"라고 하니, 따르던 사람이 말하기를, "사람이 오를 곳이 아닙니다."라고 하며 모두 사양하였다. 그 때, 옆에 소를 몰고 가던 노인(견우노옹-遣牛 老翁)이 부인의 말을 듣고 소를 타고 절벽에 올라가 그 꽃을 꺾고 가사(歌詞)를 지어 바쳤는데, 그 노인이 어떤 사람인지 몰랐다. 다만 그 노인의 헌화가가 남아 있다. 수로부인(水路夫人) 이야기는 신라인들의 미의식을 느낄 수 있게 한다. 신라인들은 내면의 아름다움 만큼이나 외형의 아름다움을 추구하였다. 뒤에 이어지는 수로 부인 이야기는 그녀의 미모에 용왕마저 감탄하여 그녀를 납치하나, '해가' (고대 가요 구지가 참조)를 지어 부르니 어쩔 수 없이 수로 부인을 돌려 주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신라인들의 외형적 미의 추구가 있었기에 수로 부인의 미모에 반한 노인이 절벽에 피어 있는 철쭉꽃을 꺾어 바치면서 노래를 불렀다는 이야기가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많은 학자들은 배경 설화와는 별도로 '헌화가'를 남성이 여성에게 구애하기 위해 부르던 민요가 수로 부인 이야기 속으로 들어간 것으로 본다. 꽃을 바치며 노래로 고백하는 운치 있는 사랑이다.
3) 안민가 (安民歌)
● 정치적 이념인 유학과 불교의 논리가 섞여 있다.
● 이 노래는 충담사가 경덕왕의 명을 받아 어떻게 하면 나라를 편안하게 할 수 있겠는가 하는 도리를 밝힌 것이다.
● 위와 관련하여 충담사라는 존재가 단순하게 스님이라는 신분인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 3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국가의 구조와 가정의 구조를 연결하여 가정의 편안함을 강조.
● 군, 신, 민을 아버지, 어머니, 어린아이와 대조.
● 배경설화 : [안민가_ 배경설화] <경덕왕, 충담사, 표훈대덕 조> 중
왕이 나라를 다스린 지 24년에 오악삼산의 신들이 때때로 나타나 전정(殿庭)에서 모시었다. 3월 3일에 귀정문 누각 위에 올라 좌우에게 말하기를 "누가 길에서 영복승을 데려올 수 없겠는가?" 하였다. 이 때에 마침 한 고승이 있어 위의(威儀)가 깨끗하였는데, 배회하며 가고 있었다. 좌우가 바라보다 인도해 와 뵙게 하니, 왕이 이르기를, "내가 말한 영승(榮僧)이 아니다." 하여 물리쳤다.다시 한 승려가 있어 납의(승려들의 옷)를 입고 앵통(혹은 삼태기를 지고 있었다 한다.)을 지고 남쪽에서 오고 있었다. 왕이 기뻐하며 만나보고는 누각 위로 맞아들여 그 통 안을 보니 다구(茶具)가 가득 차 있었다. 왕이 말하기를 "그대는 누구인가?"하니, 승려가 아뢰기를 "충담이라 합니다."하였다. "어디에서 오는 길인가?"하니, 승려가 말하기를 "승이 매해 중삼일(重三日), 중구일에 차를 끓여 남산의 삼화령 미륵세존(彌勒世尊)께 올리는데, 지금도 이미 올리고 돌아오는 길입니다."하였다. 왕이 이르기를 "과인에게도 역시 한 잔의 차를 나누어 줄 수 있겠는가?"하니 승려가 이에 차를 끓여 바쳤는데, 차의 맛이 이상하고 찻잔 속에서 이상한 향기가 풍겼다. 왕이 말하기를 "짐이 일찍이 대사가 기파랑(耆婆郞)을 찬미하여, 사뇌가(詞腦歌)를 지어 그 뜻이 매우 높다고 들었는데 과연 그런가?" 하니, 대답하기를 "그렇습니다."하였다. 왕이 이르기를 "그렇다면 짐을 위해 안민가(安民歌)를 지으라."하였다. 승이 곧바로 왕명을 받들어 지어 바치니, 왕이 아름답게 여겨 왕사(王師)에 봉하였으나, 승이 재배(再拜)하고 받지 않았다.
<고전시가강독 3강>
4) 기파가 (耆婆歌)= 찬기파랑가
● 찬기파랑가라고도 한다. 기파랑을 찬양하는 노래로 ‘안민가’이전의 노래이다.
● 표현과 구조에 있어 향가 14수중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3장으로 구성.
● 천상의 달, 강물의 조약돌, 땅 위의 잣나무에 기파의 인품과 기개를 비유.
● 안민가’와 ‘도솔가’: 나라의 재변을 다스리려는 뜻에서 지어졌다면, 기파가’와 ‘누이가’는 나라 일과는 다른 사사로운 한 개인에 대한 정분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짝지어진다.
* 참고자료 --------------
<찬기파랑가>의 제6행에서 [일로]라는 말을 현대어로 하면 '이로해서'로 해석하던데 그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답) 원래 향가는 향찰로 전해진다는 것은 알죠? 문자가 없던 시기의 향찰 문자를 해독할 때 당대의 문자가 아닌 조선 시대(중세국어)의 문자로 해독하고, 이를 현대어로 해석한 것을 국어/문학교과서에 실어 놓습니다. 따라서 어떤 구절은 의견이 일치가 되지 않고 학자들마다 해석이 다릅니다. '일로'가 그 한 예입니다. 이제부터, 이로부터, 이로해서 일오(逸烏)내 등의 해석이 있습니다. "새파란 냇물에 기파랑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구나. 이제부터(혹은 이것으로 해서=기파랑의 인격이 냇물에 투영되어 있어) 냇가의 조약돌에 기파랑이 지니시던 마음의 가장자리를 따르고자 한다." 이 정도로 해석하고 이해하면 됩니다.
찬기파랑가 학습에서 중요한 것은
가. <화자>와 <달>의 문답구성을 이해하고,
1~3구 : 화자가 달에게 묻는 말
4~8구 : 달이 답하는 말
9~10구 : 화자의 찬양
나. 기파랑의 인격이 비유적으로 드러난 말을 통해 정신적 의미가 자연물에 투영되어 있음을 이해하는 수준이면 ( 화자 → 달 → 기파랑의 인격 (비유된 표현들 : 나리, 조약, 잣 가지)
5) 처용가 (處容歌)
● 울산 앞 바다 처용암 앞에 처용노래비가 세워져 있음.
● 이 시에서는 처용의 존재와 성격에 대해 파악한다.
● 향가중 유일하게 고려 ~ 조선조까지 궁중에서 불림.
● 배경설화와 처용가에 대한 해석
이 노래는 [삼국유사] '처용랑 망해사'조에 실려 있다. 처용은 용왕의 아들로 경주에 들어가 예쁜 아내를 얻고 급간 벼슬을 하였다. 밤에 그의 아내가 역신과 함께 동침하는 것을 보고 이 노래를 불렀더니 그 역신이 물러났다고 한다. 뒤에 처용의 화상은 역신을 내모는 기능을하여 문신門神이 되었다. 처용의 이야기는 뒤에 처용무, 처용희 등으로 극화되었으며 고려시대, 조선시대에도 이 노래와 춤이 지속되었고, 12월 그믐에 잡귀를 몰아내는 나례 때에 처용놀이를 하기도 했다. 처용랑 망해사 설화에는 망해사 창건에 얽힌 이야기와 그리고 몇 차례에 걸쳐 나라가 망할 것을 신이 미리 예고했지만 왕과 신하들은 방탕한 생활에 젖어 끝내 나라가 망하고 말았다는 이야기가 중심을 이루고 있다. 처용가의 원초적 모습은 歌가 아니라 '말'이다 : 처용가의 원초적인 모습은 '歌'가 아니라 입에서 순간적으로 흘러나온 허탈감에 싸인 '말'이었으리라는 증거로 그것이 '歌'로 체계화되고 난 후에도 시가적인 모습을 거의 보여주지 않고 있다는 데서도 찾아볼 수 있다. 정병욱 교수는 처용가에는 시적인 수사도, 긴장도, 내포도 그 아무 것도 발견되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 처용 => 문신 : 마지막 순간에도 자신에게 인간으로서 분노하지 않은 처용의 행위에 감복한 역신은 "今後로는 맹세코 공의 형용을 그린 것만 보아도 그 문에 들어가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해 처용이 역신을 몰아내는 문신으로 자리 잡게 한다.
● 처용의 변화 : 처용(동해용왕의 아들:무격) > 신라의 무격 > 문신
고려시대 처용가의 특징
처용이 열병신을 물리치는 무신으로서의 기능을 되살렸다. 고민하는 모습이 아니고, 후덕하지도 않다. 그러나 처용 자신이 처음부터 능동적으로 나서지는 않았으며, 계속 찬양하고 부추긴 결과일 따름이다. 마지막으로 여섯째 단락에서는 산이며 들이며, 천리 밖으로 처용을 피해 달아나는 것이 열병신의 발원이라고 해서, 재앙을 물리치는 일이 뜻하는 대로 성취된다고 선언했으나, 거기 이르기까지 서술자의 개입이 너무 많다 하겠다. 이렇게 기록되어 있는 <처용가>는 처용을 신으로 섬기며,
처용이 재앙을 물리치는 권능을 회복하도록 기원하자는 생각을 강하게 나타내고 있으나, 노래가 박진감 있는 짜임새를 갖추지는 못했다. 조동일, 한국문학통사 권 2, p. 132
처용가에 대한 다른 해석
작품에 대한 해석은 다양할 수 있다. 종교적 관점으로 해석할 수도 있으며, 당시 역사적 사실과 관련하여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런가 하면 배경설화에 의존하는 방법도 있겠다. 처용이 아내가 다른 남자와 잠자리를 같이하고 있는 것을 보고서도 춤을 추며 물러선 것은 상식을 초월한 것이며, 무격 사회에서나 있을 수 있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무속에서 병이 든 것은 역신이 덮어 씌웠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처가 역신과 교접한 것은 사실 처용의 처가 병이 들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아내의 병을 치료하는 직능을 수행하는 처용은 의술사로서의 무당인 것이다. 결국 그의 역할로 역신이 물러났다. 삼국 통일을 통하여 영토가 확대되자 이를 체계적으로 지배할 수 있도록 지방 행정 조직의 재편도 요구되었다. 이리하여 신문왕 5년에 9주 5소경, 그 아래에 군て현을 두었으며, 그 아래에 행정촌이 있고 다시 그 아래에 자연촌들이 있었다. 여기에는 그 지방 토착 세력인 촌주가 있어 중앙에서 파견된 지방관의 통제 아래 그 지역의 자치를 담당하고 있었다. 이들 지방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서 촌주들의 자제 하나를 서울에 와 살게 하는 상수리 제도가 시행되었는데, 이는 고려 시대에 이르러 기인 제도로 발전했다.
6) 서동요 (薯童謠)
● 보통 서동설화라 함은 신분이 낮은 사람과 높은 사람의 결합을 의미한다.
● 서동의 출생에는 이물교혼 이야기도 깔려 있다.
● 이물교혼이란 인간이 아닌 괴물 같은 존재와 여성이 혼인을 해서 벌어지는 이야기로 세계적으로 존재하며, 견훤 설화 등의 예가 있다.
● 배경설화
제 30대 무왕의 이름은 장이다. 어머니가 홀로 되어 집을 서울 남쪽 못가에 짓고 살았는데 못에 있는 용과 교통하여 그를 낳았다. 어릴 때 이름은 서동이며, 도량이 한없이 넓었다. 항상 마를 캐고 팔아서 생업으로 삼았으므로 사람들이 그런 이름을 지은 것이다. 신라 진평왕의 셋째 공주 선화가 아름답기 짝이 없다는 말을 듣고 머리를 깎고 서울로 왔다. 마를 동네 아이들에게 주자 여러 아이들이 가까이 따랐다. 이내 노래를 지어 여러 아이들에게 부르게 하였다. 동요가 장안에 퍼져 궁중까지 알려지니 모든 신하들이 간청하여 공주를 먼 곳에 귀양보내게 되었다. 공주가 떠나려할 때 왕후가 순금 한 말을 주어 보냈다. 공주가 귀양 가는 길에 서동이 나와서 절을 하고 모시고 간다 하였더니, 공주는 그가 어디에서 온 사람인지 알지는 못하지만 공연히 미덥고 즐거웠다. 그래서 따라가다가 상통하게 되었다. 그런 뒤에 서동의 이름을 알고 동요가 맞는다 하여 함께 백제로 가서 어머니가 준 금을 내놓으며 이것으로 생활을 영위하자 하였다. 서동이 크게 웃으며 "이것이 무엇이냐?"하니 공주는 "황금인데 백 년 동안 부자로 살 수 있을 것입니다."하였다. 서동은 그 말을 듣고 "내가 어려서 마를 캐던 곳에는 이것이 진흙처럼 쌓였었다."하였다. 공주가 듣고 깜짝 놀라 "이것은 천하의 보배인데 당신이 금이 있는 곳을 알았으니 이 보배를 우리 부모의 궁전으로 보내는 것이 어떠합니까?"하였다. 서동이 "좋다." 하고 금을 모았는데 그것이 구릉처럼 쌓였다.용화산 사자사 지명법사가 머무는 곳에 가서 금을 보낼 계책을 물으니 "금만 가져오라"고 하여 공주는 편지를 쓰고 금을 법사에게 가져다주었다. 법사는 신통한 힘으로 하룻밤에 신라 궁중으로 실어다 놓았다. 진평왕이 그 신통한 변화를 이상히 여겨 더욱 존경하고 항상 서신으로 안부를 물었고, 서동은 이로 인해서 인심을 얻어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하루는 무왕이 부인과 사자사에 가려고 용화산 밑 큰 못가에 이르자 미륵 삼존이 못에서 나타나 수레를 멈추고 경의를 표하였다. 부인이 왕에게 "이곳에 큰 절을 세우는 것이 소원입니다." 하니, 왕이 허락하였다. 지명법사에게 나아가 못을 메울 일을 묻자 법사는 신통한 힘으로 산을 무너뜨려 하룻밤 사이에 못을 메워 평지를 만들었다. 이에 미륵삼회를 법상으로 하여 전, 탑, 낭, 무를 각각 세 곳에 세우고 절 간판을 미륵사(국사에는 왕흥사)라 하였는데, 진평왕은 많은 공인들을 보내어 도왔다. 지금도 그 절이 있다. (삼국사에는 법왕의 아들이라 하고 여서는 과부의 아들이라 하니 확실치 않다.) [삼국유사 권2 기이. 무왕]
7) 득안가 (得眼歌) = 천수대비가
● 천수대비가, 도천수대비가 라고도 한다.
● 기원적 성격을 담고 있으며, 무속신앙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청배 - 오신 - 송신)의 무속의 세 단계 구조와 일치한다.
● 天手代悲란 관세음보살을 가리키는 말.
● 작자가 희명, 또는 그 딸 등으로 논란이 되기도 하였다.
● 배경설화
경덕왕 때 한기리(漢岐里)의 여인, 희명의 아이가 난 지 다섯 살 만에 갑자기 눈이 멀었다. 하루는 그 어머니가 그 아이더러 노래를 지어서 빌라고 하였더니 그만 눈이 떠졌다. 그를 예찬하여 시를 지었으니 "막대로 말을 삼고 파로 피리 불어 골목에서 뛰놀다가 하루아침에 앞이 캄캄, 반짝이는 두 눈동자 어느덧 잃었구나. 만일에 관음보살 인자한 눈을 떠서 돌보지 않았다면 버들개지 휘날리는 몇 몇 해 봄 빛을 헛되이 지냈으니 ! " <삼국유사 권 3 분황사 천수대비 맹아 득안 조>
<고전시가강독 4강>
8) 공덕가 (功德歌)
● 흙을 운반하면서 불렀다는 점에서 이 노래는 노동요이다.
● 노동요적 성격을 지닌 민요. 향가 중에서 가장 민요적 성격이 강하다.
● 향가의 초기 형태인 4구체 향가이다.
● 공덕가에 대한 북한의 견해 : 승려들이 백성을 착취하는 노래이다.
● 우리의 견해 : 노동을 불교의 공덕과 연결하여 찬양한 노래이다.
9) 왕생가 (往生歌) = 원왕생가
● 원왕생가.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노래이다.
● 백제의 ‘정읍사’의 구조와 완전일치를 보인다.
● 교재에서는 ‘정읍사’를 고려의 노래로 보고 있음으로 ‘왕생가’가 ‘정읍사’에 영향을 준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처럼 한 작품을 어느 시대로 정의할 것인가는 국문학사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 이 노래에서는 공간적 한계를 ‘달’이라는 자연 상관물을 통해 극복하려는 것이 보인다.
● 이 부분이‘정읍사’와 일치하는 부분이다. 달을 바라보며 편지를 쓰는 형식.
● 그러한 근본에는 달이 삼라만상을 살피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믿음이 담겨 있다.
● 이 노래는 전형적인 3장 구성의 사뇌가 형식으로서 초장과 중장이 각 4구씩이다.
● 배경설화
이 노래는 유사 권 5 광덕엄장 조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문무왕 때 사문(沙門;출가하여 도를 닦는 사람)으로 광덕, 엄장이란 두 사람이 있어 사이가 매우 좋았으니, 항상 둘 중 누구든지 먼저 잘되면 알려 주기로 하였다.광덕은 분황사 서쪽 마을에 처자를 데리고 은거하여 짚신이나 삼아 그날그날 지내고, 엄장은 남악에 살면서 농사를 지어 지냈다. 어느날 저녁에 "나는 벌써 소원 성취했네, 나를 따라 오세"하는 소리가 문밖에서 난다. 문을 열고 내다보니 중천 구름 밖에서 나는 소리였다. 이튿날 아침 광덕을 찾아가 보니 과연 죽었던 것이다. 장례를 치른 뒤에 과부가 된 그 부인에게 같이 살기를 청하였다. 과부도 허락하므로 엄장은 속으로 좋아서 같이 지내면서 동침하기를 청하니, 의외에도 거절하며 말하기를 "당신이 정토(淨土)를 바란다는 것은 나무에서 고기를 구하는 것과 같다"고 한다. 염장은 놀래서 "그러나 광덕하고는 같이 잔 것이 아니냐, 그렇거늘 나와 같이 잔다고 한들 어떠냐?"고 하니, 과부가 하는 말이 광덕은 나와 같이 10여년을 동거하였어도 한번 잠자리를 같이 한 일이 없다. 하물며 서로 관계를 했겠습니까? 그는 다만 매일 밤 정좌하여 염불 외고 십육관(十六觀)을 했었다. 정신을 이렇듯이 하였는데, 천리를 갈려면 한 걸음부터 골라야 하는 법, 당신이 정토를 원한다는 것은 기가 막힐 일이다."라고, 이러는 바람에 그는 얼굴을 붉히고 쥐구멍을 찾는 듯이 도망쳐 그 길로 원효법사를 찾아가서 도를 닦고 소원성취 하였다. 광덕의 처는 곧 분황사(芬皇寺)의 비(婢)가 되었다.
10) 도솔가 (兜率歌)
● 산하공덕(꽃을 뿌려 찬양)을 찬양한 불교적 성격의 노래이다.
● 기원적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민간의 중생이 쉽게 부르도록 만들어진 노래이다 .
● 경덕왕이 월명사에게 이 노래를 지으라고 한 것을 보면 월명사가 정치와 관련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 두 해가 함께 나타나는 것은 경덕왕의 왕권에 대한 상징적인 것으로 해석된다.
● 배경설화
경덕왕 19년 병자 4월 초하루에 두개의 해가 나타나서 10일이 되도록 없어지지 않았다. 일관이 아뢰기를 "인연이 있는 스님을 청하여 산화공덕을 지으면 재앙을 물리치리이다."라고 하였다. 그래서 제단을 조원선에 깨끗이 꾸며 놓고 임금이 창양루에 나가 앉아서 인연이 있는 스님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마침 월명사가 언덕 남쪽 길로 가고 있었다. 임금이 그를 부르라하여 제단을 열고 의식을 시작하게 하니, 월명사가 아뢰기를 저는 다만 화랑의 무리에 속하여 있기 때문에 오직 향가만 알 뿐이고 범패노래는 아직 못한다고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이미 인연 있는 스님이 되었으니 향가를 쓰더라도 무방하다고 하였다. 월명사는 이 말을 듣고 도솔가를 지어 불렀다. <삼국유사 권 5 월명사 도솔가조>
11) 누이가 (祭亡妹歌) = 제망매가
● 제망매가. 위로가의 성격. 표현기교가 뛰어나서 향가 중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된다.
● 초장 : 삶과 죽음의 허무. 무상과 두려움
중장 : 죽어서도 한 곳에 모이자는 뜻이 담겨있다.
● 종장 극락세계에서 함께 태어날 것을 믿고 있고 불도를 닦으며 기다리겠다는 의지.
● 형제간의 인륜, 세상 버림에 대한 삶의 허전함이 이 시속에 깔려 있다.
● 배경설화
월명이 일찍이 죽은 누이를 위하여 49재를 올리며 향가를 지어 제사했더니 갑자기 바람이 불어 지전(紙錢-종이돈)을 날려 서쪽으로 사라졌다. 노래는 이러하다.
생사의 길은 /여기에 있으매 두려워지고 /
나는 갑니다 하는 말도 /다 못하고 가버렸는가. /
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 /여기저기 떨어지는 잎처럼 /
한 가지에 낳아 가지고 /가는 곳 모르누나. /
아아 미타찰에서 만나볼 나는 /도를 닦아 기다리련다.
월명이 항상 사천왕사에 있으면서 피리를 잘 불었다.
한번은 달밤에 절 대문 앞 큰길에서 피리를 불었더니, 달이 그 피리 소리에 운행을 멈추었다. 그래서 그 길을 월명리라 했고 월명사도 이로 인해서 이름이 났다.
12) 혜성가 (彗星歌)
● ‘혜성’이라는 존재에 대한 노래.
● 혜성이 나타나 변괴가 있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그것이 좋은 징조라고 노래함.
● 융천사의활약과 연결해서 이해하는 것이 좋다.
● 융천사의 이름에서‘융천’이라는 것은 하늘의 온갖 질서를 조화롭게 한다는 뜻을 지닌다.
● <혜성가> 배경설화
신라가 고구려와 금장산에서 대치하였을 때 왜적 병선과 혜성이 출현함으로 불렀다는 노래로 신라 진평왕 때 다섯째 거렬랑(居烈郞), 여섯째 실처랑(實處郞), 일곱째 보동랑(寶同郞) 등 세 화랑의 무리가 풍악(楓岳, 금강산)에 놀이를 떠나려고 하는데, 마침 혜성이 나타나 대성(心大星 : 북극성)의 중심을 범하는 괴이한 현상이 나타났다. 이런 천체의 괴변은 종종 국토에 불길한 변란을 가져온다고 생각하고 세 화랑은 놀이 떠날 것을 중지하려고 하였다. 이때에 융천사가 향가를 지어 불렀더니 별의 괴변은 사라지고 국토를 침범한 왜구도 물러갔다. 이리하여 화가 물러가고 경사가 생겨서 진평대왕이 기뻐하여 화랑들을 풍악에 놀러 보냈다.
13) 원가 (怨歌)
● 약속을 이행치 않아 원망하는 노래 (신충)
● 원한이 사무쳐 잣나무가 마르지 않았다고 말함.
● 효성왕은 왕위에 오르기 전에 신충과 궁정 잣나무 밑에서 바둑을 두면서 잣나무를 두고 신충을 잊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그런데 왕위에 오른 뒤 신하에게 벼슬을 줄 때 왕은 신충을 잊었다. 그래서 신충은 원망의 글을 써서 잣나무에 붙였더니 그 가지가 말랐다. 왕이 그 사실을 알고 신충에게 벼슬을 주니 잣나무도 소생하였다.
14) 우적가 (遇賊歌)
● 삼국유사 원전에 몇 글자가 지워져 있어 정확한 해석을 못하고 있다.
● 노래를 짓게 된 사연에는 속세를 등진 승려의 삶을 예찬하는 뜻이 담겨 있고,
● 설법적인 교훈성을 지니고 있어 세속의 허망한 탐욕을 질타하는 뜻이 함축되어 있다.
● 영재는 향가를 잘했다고 하는데 이 이야기를 보면 향가가 민족의 노래였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배경설화
영재란 중은 성질이 익살 맞고 물욕에 구애되지 않고 향가를 잘 하였다. 나이 늙어서 남악 속으로 들어가 은거하려고 가던 차 대현 고개에 으르러 도적놈 60여 명을 만났다. 장차 죽이려고 하는 데 영재는 칼을 보고도 무서운 기색이 없고 태연하게 행동하였다. 도적이 야릇해서 그 이름을 물었더니 영재라고 하는 것이다. 도적돌도 그 전부터 들어서 알기 때문에 노래를 지으라고 명했다. 그 노래가 바로 만적가이다. 도적들이 그 노래의 사연에 감동되어 비단 두 끝을 주었더니 영재가 웃고 나와서 사양하기를 "재물이 지옥의 근본이라는 것을 알고 장차 깊은 산 속으로 피해 가서 일생을 마치려는 길이요. 어떻게 감히 이런 것을 받겠소?" 비단을 그만 땅에 던져 버렸다. 도적들이 또 그 말에 감동되어 칼을 놓고 창을 던지고 머리를 깎고 그의 상제들이 되었다. 함께 지리산으로 들어가서 다시 세상에 나오지를 않았다. 영재의 나이 90가지 살았으니 원성대왕 시대 였다. 그를 예찬하여 시를 지었다."지팡이 뒤던져 산속으로 돌아갈 제 비단이랑 보배랑 구무에 탐이 나랴? 도적질로 사는 분네 그런 것 주지 마소! 몇 푼의 쇠천도 지옥갈 장본입네." <삼국유사 권 5 영재 우적조>
고전시가강독 5강
제 4장 고려시대의 가요
● 고려시기의 가요? - 한글기록 시대의 문학.
● 고려시대에 창작 되었다 할지라도 한글이 조선조에 창제되었으므로 문자로 정착된 것은 조선시대이다.
● 한글로 기록된 작품이 문학사적 의의가 더 높은 작품이 많다.
● 고려시대는 약 470년간 근심과 걱정이 많았던 혼란의 시대이지만 관료정치의 안정으로 문약에 빠지게 된다.
● 고려속요는 지배층의 노래가 아닌 피지배층의 노래일 가능성이 높아 작품의 내용과 형식이 비교적 자유롭기 때문에 다른 문학작품에 비해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것이 특징이다.
● 악학궤범, 악장가사, 시용향악보 등에 작품이 전한다. (도서관에 가서 원전을 찾아 원전의 체계, 글자의 모양 등을 보도록 한다)
1. 고려 국어 가요
(1) 정읍사 (井邑詞)
● ‘원왕생가’와 구조일치. 자연 상관물을 심부름꾼으로 끌어와서 자신의 심정을 편지로 쓰는 형식 (이는 소설에서도 나타난다) 예) 심청전에서의 기러기에게 편지를 전하고자 하는 부분.
● ‘정읍사’를 백제의 노래로 본다면 이와 같은 시도 ‘정읍사’가 최초가 된다.
● 악학궤범은 궁중의 음악 이론서.
● 그러므로 ‘남녀상열지사’에 해당하는 내용은 실지 않았다. 주로‘충신연군지사’의 내용이다.
● 충신연군지사의 대표적 작품 : ‘정과정’과 ‘정읍사’.
● 남녀상열지사에 관해서는 문헌상의 내용이 여성이 남성을 그리워하는 것이 주를 이룬다.
● 이것을 유학의 이념으로 본다면 여성=신하, 남성=임금으로 해석할 수 있다.
(2) 동동 (動動)
● 이 노래 역시 삼국시대의 노래로 볼 소지가 있다.
● 제목의 의미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현재로써는 북소리 ‘둥둥’을 음차로 해석하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 이 노래는 총 13장으로 구성, 1장의 내용이 전혀 별개의 것이라는 것이 특징이다. 이 부분은 ‘남여상열지사’의 내용을‘충신연군지사’의 내용으로 바꾸기 위해 삽입한 것이 아닐까 추정
● 1장은 임금에 대한 송축, 송도의 내용이고, 2장~13장은 1월부터 12월까지 화자의 그리움이나 원망의 심정을 그리고 있다.
● 12월에 대한 마지막장 내용에서‘남여상열지사’의 극치를 이루는 표현을 찾아볼 수 있다.
<고전시가강독 5강>
(3) 처용가 (處容歌)
● 신라시대 향가 ‘처용가’에서 연원을 찾을 수 있다. 내용이 더 길어졌는데 길어진 부분은 처용의 모습을 묘사한 부분이 대부분이다.
● 처용의 위용(신적인 힘)이 많이 떨어진 것으로 해석된다.
● 나례희 때 처용탈을 쓰고 춤을 추며 길고 긴 노래를 부른다.
첫 부분 : 신라의 태평을 처용신의 덕으로 노래했다.
중간부분: 본·사에서는 처용의 위용을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형용.
마지막 부분 : 처용이 열병신을 물리치는 내용이다.
처용은 후대 수호신, 문신의 기능을 하는 신으로 변모되었고, 이것이 기원이 되어 고려 때에는 재난을 극복하기 위하여 처용무를 추었다고 한다.
● 악학궤범에 처용탈의 모습과 춤출 때의 배열모습, 원문이 나와 있다.
제 6강.
4) 정과정
1. 작가 : 정서 - 호는 과정
2. 고려시기에 불린 고려가요 중 유일하게 작가가 있는 노래
3. 내용상 : 충신연군지사 : 악학궤범에 삼진작이라고 불림 : 삼진작 - 궁중에서 불린 5진작 중 삼진작으로 불림. 조선시대에 충신연군지사 노래 중 으뜸으로 생각
일진작 : 느린 상태의 음악으로 시작 부분
이진작 : 흥이 오르기 시작하는 부분
삼진작 : 흥취와 분위기가 고조되는 핵심적인 부분
사진작, 오진작으로 끝남.
4. 고려시기의 쓰여진 표현 방법을 일부분에서 볼 수 있다. : 민간의 노래와 궁중의 노래가 얽혀져서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5. 山졉동새 : 山 + 졉동새는 한자와 우리말을 섞은 표기로 우리말로 쓸 수 없는 것은 한자로 썼다. :졉동새는 우리시가에 많이 쓰이는 새로 슬픈 심정을 노래할 때 쓴다.
5) 쌍화점 - 남녀 상열지사
1. 작가를 추측할 수 있는 유일한 작품 : 고려말 충렬왕 때 오잠 등이 지어서 공연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2. 남녀상열지사 : 4장으로 되어있으며 고려시대의 각 분야의 타락상을 노래함
3. 솽화뎜 : 만두파는 가게 - 몽고지배하에 있던 고려:퇴색 된 문화가 자리하지 않았을까? : 삿기광대가 있는 걸로
4. 휘휘아비 : 눈이 파란 사람, 외국인, 몽고인
5. 삿기 : 새끼 : 사람의 어린아이
6. 더러둥셩 다리러디러 다리러디러 다로러 거디러 다로러 : 소문이 나는 과정을 북소리나 악기소리로 표현
7. 덤ㅅ거츠니 : 현재 경상도 지방에서도 사용함 : 나무와 풀이 울창하게 우거진 : 남녀가 같이 잔 곳으로 어질러 있는 그런 뜻으로 보아야 함
6) 서경별곡
1. 대동강의 이별을 노래 : 정지상의 “송인”의 정서와 비슷
2. 우리말로 되어 있는 부분 중 제대로 해석 못한 곳 많음 : 고려시가 대부분
3. 이별의 정서는 우리 민족의 정서와 닿아있다.
4. 아즐가 : “아” 정도로만 해석
5. 구스리 아즐가 : 이 부분은 정석가에서도 나오는 것으로 보아서 민가에서 불리웠던 노래인 것 같다.
6. 배내여 노한다 샤공아 : 떠나는 대신에 사공을 원망한다.
7. 배타들면 것고리이다 나난 : 배를 타고 들어가면 새로운 꽃을 만나서 꺽을 것인가?
7) 청산별곡
1. 잘 알려 있기는 하지만 아직까지 해석이 안 되어 있음
2. 자연(이상향)에 살고 싶어 산에도 가보고 바다에도 가보았으나 결국 고향의 냄새가 가장 좋다는 노래
3. 믈 아래 가던 새 본다. : 물의로 날아가는 새가 물에 투영된 모습을 그린 것이 가장 타탕한 해석
4. 잉무든 장글란 : 이끼 묻은 쟁기를
5. 조롱곳 누로기 매와 : 누룩냄새가 나 : 자기가 살던 곳의 냄새
제 7강
8) 정석가
1. 가시리보다 애절하고 절실한 노래
2. 사랑하는 임과의 이별 불가 ( 실현 불가능한 일과 연관)
3. 딩아 돌하 : 징이여 돌이여
4. 셰몰애별헤 : 여기서 "셰"를 "가는"으 뜻으로 본다면 한자어인데 우리말로 적고 있다.
5. 구은밤 : 생명이 없는 밤
6. 삼동(三同) : a. 우리말로 보면 왜 한자로 썼는지?
b. 김태준 ; 한자오기이다. 三冬(삼동)을 잘못 표기한 것이다. c. 양주동 : 삼백송이로 d. 상중하로 해석 : 위, 아래까지 모두 꽃이 필 때 e. 중국어에서 볼 때 : 사방 삼 백리에 걸친 너른 땅 f. 고사성어 : 세가지일을 같이 한 친구 : 같은 해에 태어나고,과거 급제하고, 벼슬을 한 친구의 이야기
9) 이상곡
1. 가장 해석이 안 되는 고려시가. ( 내용의 연결성으로도 안됨)
2. 열명길 : 십왕절로 보임 ( 저승의 열명의 염라왕)
3. 년뫼랄 거로리 : 다른 임과 걷겠습니까?
4. 다롱디우셔 마득사리 마두너즈세 너우지 : 후렴구나 악기소리
10) 사모곡
1. 내용 : 어머님의 사랑을 노래함
2. 비유법이 뛰어남 : 어머니는 낫에/ 아버지는 호미에/ 부모님 사랑은 낫과 호미의 날에 비유
3. 신라 속악편에 실린 목주가의 전통이 이어진 것
11)상저가
1. 노동요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2. 디히히얘 : 히얘는 조흥구로 해석
3. 게우즌 : 거친
4. 신라 때 백결이 지은 대악과 관련지어 논의 되고 있다.
12)가시리
1. 위 증즐가 태평성대 ; 삽입구나 후렴구로 보는 견해중 후렴구로 보는 것이 타당
제 8강
13)만전춘별사(滿殿春別詞)
1. 별사라고 하는 것을 보아“만전춘”이라는 노래가 있었을 것임
2. 하나의 연결된 작품이 아니라 여러 작품이 모여서 이루어진 것 그래서 해석이 안됨
3. 남성과 여성의 이별을 노래함. 조선시대 : 남녀상열지사
4. 님과 나와 어러주글 만뎡 반복, 전렴 : 의미있는 전렴
5. 더듸 새오시라 : 늦게 새었으면 좋겠다 (원망형) : 옛날로 올라갈수록 말을 줄여서 쓴 것 같다
6. 경경고침샹(耿耿孤枕上) - 딱딱하고 외로운 침상 경경 - 잠들지 못하고 이리뒤척 저리뒤척
7. 녀닛경 : 가기를
8. 벼기시더니 : 미루다,어기다, 빗대어서, 꼬아서 - “정과정”에 나온다
9. 여흘란과 소해 : 여울은과 연못에 : 변화하는 곳과 변화하지 않는 곳의 대비 남녀상열지사로 보면 여울은 기생, 소해는 본부인
10. 벼여누어 : 베고누어 (교재에는 자리하고 누워서 라고 나오지만 이것이 타당한 해석)
11. 약든 가슴을 맛초옵사이다 : 성행위로 봐도 무방하다
14)유구곡 (維鳩曲) = 비두루기
1. 비둘기 노래
2. 작가를 알 수 있는 실마리 : a. 예종이 지은 벌곡조가 이 노래라는 설 b. 간신배 노래 c. 쫓겨난 충신 노래
3. [시용향악보]에만 전한다. 시용향악보 : 민간의 음악을 악보로 만든 것
4. 비두로기 : 비둘기 : 임금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간신배
5. 버곡댱 : 뻐꾸기 : 충신
15)나례가 (儺禮歌)
1. 무가의 성격을 가진 대표적 노래
2. 나례의식 : 섣달그믐, 삼월 그믐, 구월그믐에 나례를 올린다.(1,3,9월) : 조선 중기때까지 (기록에 처용 무를 나례 때 춤)
3. 궁에자 : 흥을 돋기 위해 (정확한 해석 없음)
2. 경 기 체 가
1. 고려말에 생겨난 독특한 형식의 노래
2. 속요의 형식 : 표현이 바뀌어 신흥사대부들의 의식 세계 노래
3. 명칭 ; 경(景) 긔 엇더하니잇고...에서 따옴
4. 고려시대의 경기체가는 한림별곡, 관동별곡, 죽계별곡 등 3곡이다
5. 조선시대 ; 24수
6. 그런데 왜 고려가요라 하는가? 고려시대의 3 작품이 문학성이 뛰어나서다
7. 조선시대 : 경치나 왕에 대한 충성의 노래로 문학성이 문제 퇴계 이황의 혹평 이후 쇠퇴
1) 한림별곡 (翰林別曲): 한림제유(8명)
● 8장으로 되어 있음
● 1장 (시부 : 문장가), 2장 (서책), 3장(명필) : 선비들이 반드시 해야 할 일
● 4장 (술 - 명주), 5장 (꽃 - 여성상징), 6장(음악) : 선비들의 놀이
● 7장 (산 - 이상세계), 8장 (천추 - 그네 - 현실세계) : 선비들이 그리는 이상향노래
● 력남(歷남) : 처음부터 끝까지 보는
● 주필 (走筆) :일필 휘재
● 샹영(相映) : 서로 얼굴을 비추어보는 모습 (남녀상열지사)
● 솽슈 ㅅ 길헤 : 손잡고 같이 가는 길에
제 9강
2) 관동별곡 - 안 축
● 관동 8경을 노래함
● 한문이 문장의 주를 이룸 ; 후렴과 “엇더하니잇고”가 한글
● 1연 : 경로
● 마지막 연 읽어보세요.
3) 죽계별곡
● 竹嶺 (죽령) ; 경상도와 충청도를 연결하는 고개
● 永嘉 (영가) : 안동의 옛 지명
● 첫째줄의 竹嶺南 永嘉北 小白山前 (죽령남 영가북 소백산전) 이 가리키는 것은? 順政城 (순정성) 지금의 순흥
3. 한자로 번역된 고려가요
1. 讖 謠 (참 요)
2. 참요란... 일어날 일을 미리 예언적으로 노래한 것 (정치적 노래 많음) 19세기 이전에는 요참이라는 말 많이 씀 어린이의 입을 통해 (동요로 많이 불림) 어른의 생각을 전달 서동이 최초
3. 국가가 어려운 시기(혼란, 전쟁, 정치적 큰 사건, 나라의 흥망) 에 나타남
1) 계림요(鷄林謠) - 고려가 일어날 것을 예언
● 계림 : 경중의 옛 지명, 신라를 상징
● 황엽( 黃葉) : 죽음 상징
● 곡령 (鵠嶺) : 고려의 수도인 송악, 고려를 상징
● 신라가 망하고, 고려가 일어날 것을 예언
2) 망국요 (亡國謠) - 신라 망국을 예언한 노래
● 남무 (南無) 정확한 해석 어려움
● 찰니나제 (刹尼那帝) : 진성여왕을 가리키는 말
● 니(尼): 국가를 상징하는 것
● 신라 망국을 예언한 노래
3) 망국예언가 (亡國豫言歌) - 주변이야기 보고 해석
● 지리다 (智理多) : 아주 지루하다 라는 우리말식 표기
● 책의 해석은 삼국유사의 주변적 이야기를 보고 해석한 것
4) 완산요(完山謠)- 견훤 아들 올바르지 못한 행동 노래
● 완산 : 전주. 견훤을 가리키는 말
● 완산아이 (完山兒 ) : 견훤의 자식(신검)
● 후백제 신검의 옳지 못한 행동 노래
5) 삼장(三藏) - 쌍화점의 원형이라 봄
● 쌍화점에서 후렴부분 등을 다 뺀 나머지
● 쌍화점의 원형이라고도 봄
6) 사룡 (蛇龍) - 나를 믿으시오
● 민간에서 많이 불려진 노래
● 헛소문으로 인해 임과 헤어질 것을 염려
7)한송정곡
8) 이원수요 (李元帥謠) - 이성계 노래
● 이원수 : 이성계를 가리킴
● 마지막 행의 검창(黔蒼) : 머리가 검은 사람으로 백성을 뜻함
9) 목자득국
제 10강 민요
10) 우대후 (牛大吼)
● 후(吼) : 소리를 크게 냉 울부짖는 상태
● 우(牛) : 을축년을 가리킴
● 용리해 (龍離海) : 용이 바다와 분리되었다- 공민왕이 홍건적을 피해 도망한 것 비유
● 천수 (淺水) ; 얉은 물 : 안동을 뜻함
11) 만수산 (萬壽山)
● 백성들의 원망의 마음이 담겨 있음
● 원나라에 의지하는 충렬왕을 노래
12) 묵책요 (墨冊謠) - 비판과 풍자시
● 정사진묵책 (政事眞墨冊): 정사가 검정책이 됨
● 아욕유 (我慾油) : 내가 기름에 절여두고 싶었는데
● 소 (少) : 탄식의 감탄사
● 도목 (都目) ; 관리들의 이동 등용에 대한 명부
13) 박노래 (호목요 - 瓠木謠)
● 민요, 농민들의 생활과 그들의 노동을 바탕으로 한 진솔한 노래
14) 남구요 (南寇謠)
● 공민왕 때 불린 노래
● [용천담적기]의 저자인 김안로는 “ 옛적에 그 말을 들었더니 이때에 그 효험을 보았다”
15) 아야가 (阿也歌)
● 해석 : 아야 망가져라, 이제가면 언제오리
● 충혜왕이 원나라에 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말 것을 우회적으로 표현
16) 보현찰 (普賢刹)
● 꼭 기억할 것
● 무신 정변에 대한 노래 : 의종이 보현사에 들렸을 때 정변이 일어남
● 권력투쟁에서의 피비린내 나는 싸움에 대한 백성들의 증오심 표출
4. 한자로 번역된 소악부 가요
● 악부란 : 한나라때 민간의 음악을 수집해서 정리하는 행정부서->민간의 음악 관장(임금에게 뜻 해석해서 진언) -> 길군악까지 관장 -> 연회때 하는 음악까지 관장
● 소악부 : 악부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좋은 것만 추려 만든 것, 음악 없이 시만 남음 이것이 우리나라에 전래 소악부로 불림
● 절구식노래 : 5언 절구, 7언 절구
1) 장 암 (長 巖)- 정치에 대한 경계의 노래 (정치적 풍자)
● 그물 : 정치적 그물
● 두영철이란 사람이 귀양 갔다가 풀려나오는 길에 어떤 노인이 벼슬길에 가지 말라는 충고, 다시 벼슬길 - 다시 귀양길 노인의 꾸짖음
2) 거사련 (居士戀) - 꼭 기억 할 것
●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 (자연과 연계해서)
● 님이 돌아오기를 까치와 거미에 붙여 표현
3) 제위보 (濟危寶) : 애틋한 사랑과 그리움 , 사랑하는 님을 잊지 못한다
4) 사리화 (沙里花) : 참새 : 세금을 걷어 들이는 관리, 탐관오리
5) 소년행 (少年行) : 우정 노래
6) 처용 (處容)
● 다른 처용과 다른점 : 처용이 어디에서 왔는지 제시
● 푸른바다에서 왔다 : 중요한 근거 - 사람들이 신격화 한 것이 아닌가하는.
제 11강
7) 오관산 (五冠山) - 효도에 관한 노래
● 부모님의 장수를 기원함
● 효도는 유학 이전의 오랜 옛날부터 내려오는 것
● 목주가와 비슷
● 불가능한 상황을 설정하여 놓고 이별하지 않겠다는 마음을 나타낸 수법: 고려국어가요 [정석가]에 나타남
8) 서경 (西京)
임과 떨어져 있어도 일편단심은 변하지 않는다 : 이런 표현 방식은 여러 노래에서 보이는 것에서 이 구절이 당시 인들에게 상당히 널리 퍼진 민요 가락
9) 정과정 - 한번 읽어보세요.
10) 수정사 (水精寺) - 제주의 스님의 타락성
● 고려시대의 호국 불교를 비판
● 뱃사공이 되었다네. 중의적 표현
11) 탐라요 (耽羅謠) - 제주 도민의 원망과 생활고 노래
● 탐관오리에게 핍박받는 생활
● 육지의 뱃사공 ..... 중의적 표현
12)서호곡(西湖曲) : 사치 풍자
13) 월정화 (月精花) : 기생에게 남편을 빼앗기고 죽은 여인의 넋을 기리는 노래
14) 안동자청 (安東紫靑) : 여성의 정결함, 혹은 여성의 순수함 노래
5. 향찰로 표기된 노래
● 도이장가 (悼二將歌) : 신숭겸과 김락 두 장군을 추모하는 뜻으로 지은 노래
제 5 장 악 장 (樂 章)
● 조선조 초기에 왕실의 위엄을 보이기 위해서 지은 것
● 조선초기에 형성되어서 초기에 사라진 역사가 가장 짧은 왕실 문학의 일종
● 국가의 정당성 확보와 왕실의 홍보 수단으로 악장을 이용
● 정의: a. 궁중의 음악 중에서 말로 된 것
b. 조선 초에 지어지기 시작한 궁중의 노래
c. 국가의 안녕과 만수 무강을 빌고 축원하는 작품
● 명칭 : 궁정문학(宮廷文學), 아송문학 (雅頌文學: 중국에서 유래, 지배계층의 예술이라는 의미), 송도가 (頌禱歌), 송축가(頌祝歌), 악장(樂章) 중 악장이 일반적
6. 표기수단에 따라 나누면
a. 한문악장 : 주로 초기에 지어진 작품들
b. 현토악장 : 한문 투 문장에 우리말 토씨를 붙여서 만든 것
c. 국문악장 : 한글로 지은 것
7. 작가: 권근, 정도전(가장 대표적이며 가장 먼저 지었음)
1)용비어천가 (龍飛御天歌)
● 조선왕조의 정당성이 가장 잘 나타남 (왕실의 번영 노래)
● 중국 것을 노래하는 것부터 시작
● 해동(海東) ; 우리나라
● 육룡 (六龍) : 이성계의 여섯 선조
● 내용 : 125장으로 되어 있다
a. 1장 2장 ; 서문에 해당, 조선왕조 건국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까닭과 이유노래
b. 3장-8장 : 선조들의 업적에서 이미 그 맹아가 보임을 강조
c. 9장-14장 :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에서 한양 천도까지를 노래
d. 15장-26장 : 선조들의 행적에 대해서 노래
e. 27장-46장 : 태조의 비범한 모습과 재주를 노래
f. 47장-82장 : 이성계가 왜군과 싸운 이야기에서 시작하여 문무를 겸비한 인격을 노래
g. 86장 : 앞에서 노래한 방식인 중국 것을 먼저 말하던 형식을 깨뜨리고 이성계의 신기한 재주를 직접 노래
h. 90장-109장 : 태종의 인품에 대해서 노래
I. 110장-125장 : 후대에 올 임금들에게 주는 경계적인 내용
● 여민락 (與民樂) : 백성들과 더불어서 줄기는 것 1, 2, 3, 4, 125 장이 여민락 형성
제 12장
1. 납씨가 (納氏家) - 정도전 지음
● 흉노족 납흡출(나하추)의 침범에 이성계가 토벌. 이때 세운 전공을 찬양함과 더불어 이성계의 위대함을 노래한 작품
● 청산별곡과 같은 곡을 사용하고 있음에 유의 - 있던 곡에 가사를 붙이는 방식
2.신도가 (新都歌) - 정도전 지음
● 새롭게 수도로 정한 서울이 매우 훌륭한 곳이란 것을 찬양. 이성계의 성덕 예찬, 나라의 번영을 기원
● 주석
① 녜 - 옛날에는
② ᄭㅗ올 - 고을이여
③ 디위 - 때, 이제
④ 잣다온뎌 -(성)같구나. 성답도다
⑤ 아으 다롱디리 - 고려속요에 쓰이던 후렴구
3. 감군은 (感君恩) - 상진 지음
● 충신연군지사-임금의 은혜에 감격
● 구성 - 1장, 사해의 깊이 2장, 태산높이 3장, 사해의 넓이 4장, 임금에 대한 일편단심, 충성
● 주석
①가리잇가 - 없어지겠습니까. (가다-없어지다. 무엇을 깨끗이 하다. 부셔서 깨끗이하다)
4. 봉황음 (鳳凰吟) - 윤회 지음
● 임금이 나타날 것을 노래. 왕실에 대해 송축
● 주석
① 高厚無私 (고후무사) -높고 후덕한 것이 사사로움이 없이
② 美貺臻 (미황진) 시니 -아름다움이 상당히 많으니
③ 千箱登黍稌 庶彙 荷陶鈞이 셔터(천상등서도 서휘 하도균이샷다) 많은 백성이 임금이 통치를 잘해서 큰 은택을 입었다.
5.儒林歌 (유림가) - 작자 미상
● 선비들의 생활과 즐거움을 순 한글로 노래
● 구 성
① 함락(含樂) - 함께 기뻐함
② 셩쥬ㅣ 듕흥시니 간과ㅣ 식졍샷다 - (전쟁)이 없어졌다.
③ 심영형설탑 - 형설지공(螢雪之功)
④ 잠등룡방후에 - 창졸간에 과거에 급제. 성공함을 뜻함
참고 말씀
● 경기체가 - 고려시대 문학 (조선조에도 있었으나 고려의 것이 더 가치가 높으므로 고려시대의 문학으로 간주)
● 시조 - 조선조의 문학 (고려 말에 발생하였으나 조선조의 것이 더 문학적 가치가 높다)
● 고려 말에 발생한 시조는 조선조에는 사대부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국문시가였다. 지금도 살아 있는 시 갈래이다. 시조는 3행시의 형태를 가진 단형시가이다.
제 6 장 시조
● 시조의 명칭
① 시조라는 명칭을 사용한 최초의 문헌은 신광수의 ‘석북집’이다.
② 시조의 장단을 배열한 사람은 18세기의 유명한 가객이었던 이세춘이다.
③ 시조는 시절가조의 약칭이다.
● 시기 : 고려말에 생겨나기 시작 : 조선 초에 확립되고 조선 후기까지 노래로 불려진 시가.
● 형태 : 삼행시의 형태를 가진 단형의 시가
● 내용
① 고려 유신들의 작품 : 망해가는 고려왕조에 대한 우려와 회고를 주로 노래
② 조선 초기 사대부 : 새로운 왕조에 대한 찬양과 유학의 이념을 강조
③ 사육신의 시조 : 불사이군의 정신을 노래
④ 임, 병란을 거치는 시기 : 유학의 이념을 강조하는 것과 국난에 임한 사대부들의 기개에 대한 노래
⑤ 17세기 이후 사설시조 등장 : 소재의 제약이 없다. 3행의 형태가 유지되기는 하지만 중간 행의 길이가 많이 길어짐. 초기 까지는 양반 사대부들이 중심을 이루었으나 후기 에는 서민층이 대거 참여하여 변모양상을 보임.
1. 고려 말과 조선 초기의 시조
(1) 고려 유신의 시조 6명
1) 우 탁 : 늙음을 한탄하는 내용이 작품의 중심. 인생과 시간을 잘 이용하여 지은 작품.
2) 이조년 : 임금에 대한 그리움과 자연현상을 잘 조화시켜 노래한 것이 특징. 작가의 마음을 자연 현상과 연결시켜 절묘하게 노래. 春心 임금에 대한 충절의 마음. 자연의 포근함과 나라와 왕에 대한 작가의 따뜻한 마음이 잘 어우러진 작품.
3) 최 영 : 시인의 추상같은 절개와 기상을 잘 보여주는 시조. 시인의 마음이 단도직입적으로 묘사.
4) 이 색 : 지은이의 성격이 잘 드러난 시조 (우유부단한 성격) 흰눈이 내린 골짜기에 구름이 머물고 있다는 것 고려말의 어지러운 정치 상황을 나타낸 것. 해가 지는 것 고려의 멸망을 의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고려 말 지식인의 고뇌를 잘 노래한 작품. 후에 사림파 길러냄
5) 길 재 : 고려왕조에 대한 회환과 그리움을 노래한 작품, 흔히 ‘회고가’라고 부른다. 산천의 의구함과 인간 세상의 변화무쌍함을 잘 대비시켜 자신의 슬픈 심정과 고려의 멸망을 애닮아 하는 마음을 잘 노래. 작자의 모습과 애달픈 심사를 잘 노래한 시조.
6) 정몽주 : 이방원의 시조(하여가)는 정몽주의 마음을 떠보기 위하여 부른 것이고 여기에 화답하여 정몽주는 절대로 그럴 수 없다는 의미를 역시 시조 ‘단심가’로 노래 칡의 얽힘 새로운 왕조를 세워보자는 우회적 표현에 대하여 정몽주는 직접적인 표현을 빌어서 자신의 의지를 분명히 함.
(2) 조선 초기 사대부의 시조 2명
● 조선초기에서 조선 중기에 이르는 시기는 정쟁의 시기이다. 양반사대부들은 정치적으로 위급한 상황에 직면하게 됨으로써 임금에 대한 축원, 만수무강, 정치적 안정, 백성의 안녕 등을 노래했으며 복잡하고 굴국이 심한 것이 특징이다.
1) 맹사성 : 조선 초기의 대표적인 충신연군지사 작품 (亦君恩이샷다.. 라는 표현) 자연의 변화에 순응하면서 삶을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아주 솔직하게 표현한 뛰어난 작품.
2) 황 희 : 임금에 대한 은혜를 직접적으로 노래하지 않고 한가롭게 안빈낙도하는 생활 그 자체를 노래함으로써 은연중에 임금의 덕에 대해 노래함. 태평성대를 말함에 있어 우회적인 표현 사용. 겉으로 보기에 이념적인 내용이 전혀 개입되지 않은 모습이 이 작품의 특징. 수확을 맞은 농촌의 가을 풍경과 시인의 한가로운 생활이 잘 어우러진 작품.
● 사육신의 시조 - 계유정란에 반기 계유정란에 반기를 들어 수양대군을 죽이려다 반대로 죽임을 당함.수양대군을 몰아내고 단종을 다시 복위시키려다가 죽은 사람들을 지칭한다.
1) 성삼문 : 어떤 타협도 거절하고 자신의 이념대로 행동 하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밝힌 것. 중의법 사용 (수양산을 바라보며 이제를 한다고 한 것)
2) 박팽년 : 왜곡되어 잘못된 현실에 대해 노래한 작품. 작자의 변함없는 충성심이 드러나 있음.
3) 이 개 : 외부의 현상과 작가의 심정을 연결시켜 표현하면서 단종과의 이별을 못내 아쉬워하는 서정적인 성격의 내용으로 되어 있는 것이 특징.
4) 유응부 : 유응부의 무인 정신을 잘 보여주는 시조. 간밤에 불던 바람과 눈, 서리 : 계유정란으로 인한 정변을 말한 것. 무인의 작품이 아니면 표현될 수 없는 기개가 잘 드러나 있음.
● 조선 중기의 사대부와 기녀의 시조
조선중기는 정치적 안정을 이루었으나 사색당쟁의 씨앗이 된 시기이다. 이때에는 관료 중심의 시가 문학이 형성되고 발전한다. (시조와 가사가 대표적이다) 사대부의 대표문학은‘한시’로, 부족하다 인식되는 부분은 시조와 가사로 지었다. 시조는 폭 넓은 지배층의 문학이었다. 기녀시가 등장하여 다양한 내용을 표현한다.
● 조선 중기의 시조의 성격
① 산수자연과 벗을 삼겠다는 강호 한정을 노래한 작품들이 많이 등장.
② 호남가단 (송순, 김인후, 기대승), 영남가단 (이현보, 주세붕, 이황), 기녀 (홍랑, 황진이, 소춘풍, 한우)등의 활동이 두드러진다.
③ 기녀들은 이전에 다루어지지 않던 남녀의 사랑과 이별 등을 감각적인 비유를 통해 세련된 수법으로 그림.
● 송 순
① 오상고절의 기개를 가진 국화를 선비의 절개와 맞물려서 표현한 것 (표현이 뛰어난 시조) 국 화 (선비의 기개)를 나타내는 꽃.
② 비슷한 시조 : 이정보와 안민영의 작품.
● 임 제
① 한우와의 시조 화답으로 유명.
② 한우’가 찬비와 ’기생한우‘를 동시에 뜻하는 이중의 뜻을 가진 어휘로 사용 되어서 임제의 풍류를 한껏 살린 작품.
③ 임제의 낭만성은 한시에도 잘 나타남.
● 기녀들의 시조
① 시조문학 측면 : 여류작가의 작품이라는 점과 자유로운 애정표현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음.
② 표현에 있어서 사대부 계층의 남성들에게서 볼 수없던 진솔한 표현, 감각적 이미지의 사용 등의 특징이 있음.
③ 자신의 속마음을 툭 털어놓으면서도 구체적인 매개물을 통해 우회하면서 더 절절하게 표현하는 방법은 문학수준이 빼어남을 입증함.
2. 조선 후기의 시조
임진, 병자호란 뒤 17세기 이후부터의 시기, 양반이 대거 증가하는 양상. 시조문학의 작가 층이 넓어지고 서민층이 대거 참여하게 된다.
(1) 임/병 양란과 사대부의 시조
1) 이덕현 : 작가 - 조선시대의 문신, 또는 한음. 정치 한음의 호탕한 성격이 잘 드러난 작품. 사대부적 절제와는 거리가 먼 풍류의 소산
2) 이항복 : 인목대비 폐비를 반대하다 정치적 희생인 자신의 서글픈 처지를 유배가면서 넘고 있는 철령과 그곳을 넘는 구름에 빗대어서 잘 표현한 시조.
3) 박인로 : 어머니에 대한 효심이 주조를 이룬 시조.
4) 윤선도 : <어부사시사>는 순수창작이 아니라 세상에 전해지던 <어부가>를 이현보가 개작하고 윤선도가 재창작한 것. 이현보: 한문 투를 둔 상태의 소극적인 개작 윤선도: 과감하게 우리말투로 바꾼 것으로 평가되고 있음. 시조에서 보기 드물게 후렴구를 사용하여 일성을 높이면서 경쾌한 분위기를 높인 점. 유형이나 의문형 문장을 구사하여 은연중에 독자들의 동참을 호소하는 기법이 독특함. 자연과 인간의 동화를 유도하면서 어부들의 삶을 생동감 있게 표현한 것이 작품의 묘미.
(2) 기녀의 시조
후기로 가면서 기녀들의 시조가 변모양상을 보이고 남녀평등의 생각을 조금씩 보여준다.
1) 송이 : 조선후기의 기생. 자신의 이름과 결부시켜 작품을 구성. 자신의 늙음을 한탄하는 듯하면서 보는 시각에 따라서는 정치적인 비판도 깃들어 있다
(3) 전문가객의 시조
전문 가객 : 조선 후기에 우리의 전통 가악인 가곡, 가사, 시조 등을 잘 부른 사람이나 그것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
● 작가소개
㉠ 김천택 : 조선 영조 때의 가객. 숙종 때 포교를 지냈고, 시조를 잘 지어 <해동가요>를 남김. 영조 4년에 <청구영언>을 편찬함.
㉡ 김수장 : 조선 영조 때의 가객. 영조 때 <해동가요>를 편찬하여 자작 시조 117수를 수록.
㉢ 박효관 : 조선 고종 때의 가객, 제자 안민영과 함께 <가곡원류>를 편찬하여 그때까지의 가곡을 정리
③ 그 외의 전문가객 : 시조의 창법을 개발.
(4) 조선 후기의 사설시조
① 사설시조는 그 분량이 엄청나게 확장된 꼴이어서 평시조가 가지고 있던 절제나 함축미 등이 대폭 줄었으나 대신 평시조에서 볼 수 없던 솔직함이나 소박함, 서민의식 등이 강하게 드러나는 특징이 있음.
② 사설시조의 특징
㉠ 시어의 반복 : 평시조가 절제를 미덕 / 사설시조는 반복이나 확장에 의해 오히려 과장하는 것.
㉡ 자유로운 감정 분출 : 어떻게 해야 한다는 당위성이 강조되기 보다는 현재 자신의 감정을 충실하게 터뜨리는데 주력.
㉢ 희화화 : 어려운 상황을 어렵게 그려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재미있게 표현하는 기법으로 이는 판소리나 탈춤, 민요 등에 두루 등장하는 서민 문학 공통의 기법.
㉣ 소재나 주제의 확대 : 평시조는 작품수가 많음에도 불구, 그 소재나 주제는 일정한 한계가 있다. 사설시조는 하층의 경험이나 생활 등이 적나라하게 표출.
㉤ 비판의식 : 자신의 생활에서의 불만을 토로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사회의식이 깃들 소지가 있음.
제16강
제 7 장 가 사
가사는 시조와 더불어 조선조 사대부 시가 문학의 양대 산맥을 형성했던 작품이다. 시조가 단형의 시가였다면 가사는 상대적으로 장형의 시가인 것이 특징이다. 가사는 성격이 매우 복잡하다.(교과서 214쪽)
< 가사의 명칭과 개념 >
1) 명칭 : 장가(긴노래), 가사(노랫말), 歌辭(문학적인 성격을 중심으로 붙여진 명칭)
2) 개념 : 대체로 3.4조나 4.4조의 율조를 가지는 4보격 시가 문학이다. 고려말 조선초에 생겨나서 주로 양반사대부를 작가 층으로 하는 율문 가운데 시가문학을 지칭
3) 기원
① 경기체가 기원설 : 경기체가의 문장 형식이 파괴되면서 가사라는 문학 갈래가 발생
② 악장체 기원설 : 악장의 분장형식이 파괴되면서 가사가 발생
③ 시조 기원설 : 시조의 3장 형식이 파괴되고 짧았던 형태가 길어지면서 발생
④ 교술 민요설 : 설은 있으나 신빙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여러 가지 이설일 뿐 완성된 결론은 없다
4) 발생시기
① 고려말엽 발생설 - 나옹화상의 서왕가와 승원가 발견 (거의 통설로 받아들여짐)
② 15세기 발생설 - 정극인의 상춘곡을 효시로 보는 견해 왕가 발견이전까지 설득력을 가진 이론)
2. 고려 말과 조선 전기의 가사
서왕가 (西往歌) : 나옹화상이 지음. 가사문학의 효시. 서왕가가 발견됨으로 해서 가사의 발생이 불교의 포교에서 왔을 것이란 학설이 더욱 설득력을 가지게 됨. 서왕가는 승려가 지은 작품이기 때문에 불교에 대한 것이 중심을 이룬다.
● 내 용 : 인생의 허무함을 깨닫고 불교의 교리에 순응하여 인생의 참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것 출가의 내력, 중생들에게 가르침을 주는 내용, 부처의 공덕을 비는 염불을 강조하는 내용이다. 본문 중 선지석(先志釋)을 선지식(善知識)으로 고쳐 주세요
□ 주석
● 무상 : 제행무상의 준말로 (모든 것이 늘 존재하는 것은 없다)
● 져근 덧.: 잠깐동안
● 선지식 : 나에게 모든 것을 알려주고 유익하게 하는 사람 (218쪽 참조)
● 허공마~ : 허(사물의 비어 있는 모습을 말함)..교과서 218쪽 주석 참조
● 서왕~ : 극락세계 서왕정토의 준말
● 종제선근~ : 좋은 뿌리에 종자를 심음
● 220쪽 작자소개와 해설을 꼭 읽기
상춘곡 (賞春曲) 정극인. 조선조 양반가사의 대표적인 작품 서왕가와 승원가가 발견되기 전까지는 최초의 가사로 평가 받기도 했었다. 상춘곡은 봄의 아름다움을 사대부의 입장에서 찬양한 가사이다.
□ 주 석
● 紅塵(홍진)~ 속세
● 하건마~ 많지만은
● 헌다~ 야단스럽다
● 樽中 (준중)~ 술동이
● 씌우고~ 혐오스럽게 싫어하고( 씌우고 고어라 오타임)
● 簞瓢陋巷(단표누항).~교과서 224쪽 참조
1) 면앙정가 (俛仰亭歌) 송 순
송순이 자신의 고향인 전라도 담양희 제월봉 아래 면앙정을 짓고 그곳의 산수에 취해서 생활하는 즐거움을 노래한 작품이다.
서사 : 제월봉 주위의 경관에 대해서 핍진하게 노래
본사 : 면앙정에서 바라보이는 근경과 원경에 대하여
결사 - 자연 속에서 풍류스런 생활을 하는 것도 또한 임금님의 은혜라고 노래
● 면앙정가는 정극인 의 (상춘곡) 에서 영향을 받았으며 정철 의 (성산별곡) 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유명하다 양반 사대부의 가장 절정을 이루었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성산별곡(星山別曲) 송강 정철이 지은 가사 작품 (전후미인곡)과 (관동별곡)등은 조선조 최고의 시가 작품으로 평가 받았고, (사미인곡)은 동방의 (이소)라고 격찬 받을만큼 충신연군으로 가득찬 작품이다. 서사, 봄, 여름, 가을, 겨울, 결사의 형태로 되어 있는 작품은 작자의 솔직한 생활 정서나 인생관 등이 잘 표현된 가사라고 할 수 있다.
● 손~ 송강 자신을 말함.
● 하건마~ 많건만은
● (冊曆(책력)업서~ 시간가는 헤아림을 알수 없어..산속이라 달력이 없어서
● 山翁(산옹)~ 김성원을 가리킴
● 26).27)은 각주가 서로 바뀌었음.
● 성산별곡은 교수님께서 읽어 주신부분을 중심으로 꼼꼼히 읽어 보세요
2) 만분가 (萬憤歌)
조위가 무오사화로 인하여 귀양간 유배지인 순천에서 지은 유배가사의 효시로 알려진 작품 만분가는 후대에 지어지는 유배가사의 일종인 송강 정철의 <사미인곡>과 <속미인곡> 등에 크게 영향미침 사미인곡과 속미인곡에서 임금이 계신 곳을 도가의 천상 세계로 설정한 것이라든가, 유배되어 귀양 가 있는 작자의 천상에서 옥황상제를 모시던 인물로 설정된 점등이 모두 만분가의 설정과 흡사하기 때문이다.
● 三淸洞裏(삼청동리)~ 신선이 사는곳, 임금이 사는 궁궐을 말함.
● 괴듯~ 사랑하는 듯
● 졀너~ 짧아
● 陽春(양춘)~ 봄날의 햇빛( 임금의 은혜)
● 밑에 줄의 北風(북풍)~ 인생에 있어 어려울 때
● 싀여져도~ 죽어서 사라져도
● 네 아니 아돗더냐.~ 네가 아니 알것이냐? (반어적 표현)
● 우러녤고~ 울면서 가는 고
● 백세교유 만세상감~ 영원토록 사귀고 영원토록 공감함.
3) 사미인곡
정철이 50세 되던 해 지은 가사로 임금을 그리워하고 사모하는 마음을 천상에서 임을 모시다가 지상으로 내려온 선녀에 자신을 비유하여 노래한 작품이다.작품의 구성은 대략 6개의 단락으로 구성 되어 있다(교과서 258쪽 확인) 김만중은 서포만필에서 극찬함. “관동별곡, 사미인곡, 속미인곡은 동방의 이소다. 우리나라의 참된 문장은 이 세 편뿐이다” 홍만종은 <순오지>에서 송강의 <전후미인곡>은 중국 제갈공명이 쓴 출사표에 비길 정도로 충성심이 잘 표현된 문장이다
● 조차~ 함께, 따라
● 그 더디~ 그 사이
● 머흘시고~ 험하다
● 애~ 날개
4)규원가 (閨怨歌)- 허난설헌
규원가의 작자에 대해서는 조선조의 가집인 (고금가곡)에서 허난설헌으로 밝히고 있다. 조선조 봉건사회에서 여성이 겪는 외로움과 고독함을 매우 핍진하게 읊은 것으로 이해된다. 18세기 이후의 규방가사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 선구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사대부가 여성이 지은 최초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 하마~ 벌써
● 천연려질~ 부드럽고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타고난 여성스러움)
● 다싀하야~ 시기가 많음. 많이 시기 하야
● 심근매화 몇 번이나 픠여던고~ 몇 년이나 되었던가
● 실솔~ 귀뚜라미
2. 조선 후기의 가사
조선후기 가사의 특징 - 서민층이 가사에 참여. 가사의 길이가 길어짐. 기행가사가 중심이 됨
(1) 누항사(陋巷詞) - 박인로(노계)
해설 부분을 잘 읽고 정리 하세요(교과서 271쪽)
박인로-- 호는 노계/ 작품으로 조홍시가, 선상탄, 사제곡, 누항사, 영남가, 노계가 등이 있다. 가사 9편, 시조 68편등 국문 시가와 문집으로 노계집을 남겼다.
□ 해 설 - 누항사는 박인로가 51세때 지은 것으로 이덕형이 노계의 곤궁한 생활에 대해 물은 답례로 지은 작품 인간의 길흉화복을 하늘에 맡기고 안빈낙도하며 삶을 살겠다는 심정을 담담하게 읊은 것을 시작으로 가난한 생활로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민족의 아픔이었던 임진왜란의 7년간을 회상하는 것으로 노래를 이어 나가고 있다. 마지막 단락에서는 세상의 어지러운 일에 매달리지 않고 청풍명월을 벗삼아 자연 속에서 저절로 늙어가기를 염원하면서 가난하지만 원망하지 않고 충효에 힘쓰고 형제간에 화목하며 벗에게 신의가 있을 것을 다짐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조선후기 사대부 가사에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는데 노계의 작품만은 전란 후의 현실이 매우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다는데 중요한 의미가 있다. <태평사>와 <선상탄>에서 보여 주었던 남아다운 패기와 호방한 기상이 세속적인 삶에 적응하지 못하는 무기력한 모습으로 <누항사> 에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 어리고.~ 어리석고
● 迂闊(우활)~ 세상물정이 어둡다.
● 옴길넌가~ 바꿀 수 있을 것인가?
● 初更 (초경).~ 저녁7시에서 9시 사이
● 失約(실약)~ 약속을 어김
● 더뎌 두고~ 던져두고
● 和兄弟(화형제)~ 형제간에 화목함.
● 외다~ 옳지 못하다. 잘못 되었다
(2) 북천가 (北遷歌) - 김진형 1853년 귀양가서 북천가는 김진형이 1853년 6월에 명주로 귀양가서 그해 10월 풀려 나오기까지의 기간 동안에 느낀 심정과 체험한 생활 경험, 견문등을 노래한 작품이다. 작자는 당시의 부패한 정계의 현실과 양반 사대부들의 호화 방탕한 생활과 사대부들의 도덕적 위선 등을 잘 반영하여 노래하고 있다. 작자의 체험에 밑바탕을 둔 사실적 묘사와 서술은 조선 시대의 정치적 상황을 매우 잘 포착하여그려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북천가는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표현은 미약하나 작품의 형상화 면에서는 매우 높이 평가할 수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 백수홍~ 진 늘그막에 벼슬살이로 분주 한 것
● 천문에~ 궁궐 문 275쪽 엄지를 뫼셨으니 일시를 지체하랴.. 엄한 임금의 뜻을 모셨으니 한시도 지체하랴
● 갈적에 록음방초 옥적에 풍설이오~ 상당히 오랜기간 귀향갔다는 뜻
● 갈적에 백의러니 올적에 청포로다~ 귀향살이 끝나고 돌아오니 기쁘다
● 288쪽 16줄 글 지어 기록하니 부녀들 보신 후에.가사작품을 부녀자들이 짓고 낭송했음을 알 수 있는 대목
(3)화전가(花煎歌) - 내방가사의 대표적인 작품
화전가는 일년 내내 규방에 갇혀 있던 양반 사대부 집안의 부녀자들이 일년에 한 번 진달래가 피는 봄 동산을 찾아 즐기는 노래다. 화전가가 일반화 되자 화전가를 조롱하는 조화전가가 나타나게 되고, 여기에 대해서 다시 반조화전가 등이 나타나기도 했었다.
● 빈철~ 굽이진 철판
● 정관~ 큰 솥,새옹 솥
(4)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 - 달거리 형식의 시가
농가 월령가는 달거리 형식의 시가로서 서민들에게 농사를 장려하며 영농과 살림살이의 범절을 구체적으로 가르치고 있는 일종의 농사지침서 농가 월령가는 영농의 절차는 물론이고 그 시기의 기후 조건, 철에 맞는 옷차림, 부업으로 하는 생산 행위, 누에 치기, 과수 가꾸기, 화분에 꽃 가꾸기, 장 담그기, 삽주, 두릅, 고사리 등 산채나물 뜯기에 이르기까지 농민들의 살뜰한 교과서로의 체제를 손색없이 갖추고 있다
(5)용부가(庸婦歌) - 작자미상. 교훈적인 작품
용부가는 작자미상으로 자신의 어리석음을 모르고 세상만 탓하는 못난 여인의 형상을 통해서 올바르게 삶을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사람들에게 깨우쳐 주는 교훈적인 성격을 강하게 지닌 작품이다.
(6)안심가(安心歌) - <용담유사>에 실려 있는 개화기가사
안심가는 용담유사에 실려 있는 개화기 가사이다. 수운 (최제우)이 지은 가사는 10편이라고 하는데 현재 남아 있는 작품은 9편 (처사가)는 실전된 것으로 보인다. 용담유사의 가사는 개화가사의 시발을 알려 주는 작품으로 만민 평등의 의지와 여성의 사회적 지위 확인, 외세에 대한 저항 의식의 고취, 개벽에 대한 꿈 등을 심어 주었으며 수가 매우 미려하며 ,양식적인 면에서 개인 창작으로는 상당히 많은 분량이라는 점등이 문학사적 의의라고 할 수 있다.
(7) 노처녀가(老處女歌) - 한글단편소설집에 수록
이 작품은 <삼설기>라는 조선 후기 서울 지방의 서민들이 엮는 한글 단편 소설집에 실려 있다. 가사의 서사화 과정을 잘 보여 주는 작품이다.
● 만당하며~ 집안에 가득 하다.
제 8 장 잡 가 (서정에 포함)
교과서 333쪽 학습개요 및 학습목표/잡가의 성격(5가지) - 교과서 334쪽 5줄부터 정리
1. 상사별곡
문학을 서정 서사, 희곡으로 나눌 때 잡가는 서정에 속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 유 - 분절의 형태가 많으며 각각의 장이 갖는 유기적 연관성이 상대적으로 희박하며 전문 소리꾼에 의해서 유흥 공간에서 불려진 공연 예술이기 때문. 상시별곡은 사랑하는 임을 이별하고 그리워하는 내용이 주제를 이루는 잡가이다. 이별을 주제로 한 잡가에는 상사별곡, 수심가, 황계사 육자배기, 자진영변가, 긴수심가 같은 작품
2. 춘면곡 (春眠曲) - 유흥적,퇴폐적, 향락적
퇴폐적이고 향락적 내용이 많고 취락적이고 유흥적으로 불려진 대표적 노래다. 특히 이 작품은 적극적으로 사랑을 표현할 뿐만 아니라 기생과의 사랑에 빠졌다가 실연 당한 한 남성이 등장하여 남성 화자의 실연을 생동감 있게 그려내고 있다. (유산가)와 같은 계통이다.
3. 죽지사 (竹枝詞) - 인생 무상과 취락을 주제로 한 대표적인 작품 인생무상과 취락을 소재로 하는 잡가는 이별을 소재로 하는 작품만큼 잡가에서 비중이 크다. 이러한 성격을 가지는 잡가에는 - 영변가, 날개타령, 엮음수심가, 영산가,등이 있다.
● 건곤- 하늘과 땅
● 이불노월장ㅣ~ 늙지 않고, 달은 오래 있으니
● 긔경션자랑음과~ 고래를 탄 신선이 파도를 타고 지금 지나가니 즉, 세상일은 변화가 심하다는 뜻
4. 선유가 (仙遊歌) - 뱃놀이를 하면서 부르는 잡가
뱃놀이 하면서 아름다운 여성과 즐겁게 놀자는 내용이 중심을 이룬다. 이 작품에는 이별도 없고, 인생무상도 없고, 허무도 없다. 조선 말기의 암울한 현실을 이런 방법으로 잊어보려는 의지가 잘 드러난 작품이 아닌가 생각된다.
5.추풍감별곡 (秋風感別曲) - <채봉감별곡>과 관련 있다 앞 뒤 부분은 생략하고 사랑하는 임을 그리워하는 심사를 노래한 부분을 중점적으로 부르고 있다. 자연현상, 옛 중국의 고사, 화자의 안타까운 심정을 적절히 배합하여 노래하고 있다. 추풍감별곡을 보면 앞 뒤 부분은 제외하여 서사성을 소거시킨 뒤 서정성이 강조되는 부분만 가사체로 낭송 음영잡가로 불려진 것으로 보인다.
제 9 장 민 요
*학습개요 및 학습목표*를 꼭 읽어 보세요
개 관 - 민요는 생활현장에서 민중이 만들고 부르는 소리이다.공동체 구성원이 모두 참여하기 때문에 민요를 만들고 즐기는 사람들의 생활 정서가 매우 사실적으로 반영되어 있다.
● 민요가 언제부터 불려 졌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그 발생을 추적해 보면 노동을 통하여 인간으로서의 삶을 시작한 때부터 불려졌던 것으로 생각된다. 민요는 노동민요, 여가민요, 의식민요, 정치민요로 나눌 수 있다.
1. 노동민요
노동요는 주로 집단을 통해서 행해지는 과정에서 불려지는 농업노동요, 어업노동요, 집안에서 이루어지는 가사노동요 등으로 나눔
● 농업노동요(모내기 소리) : 농업노동요 중 가장 중심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