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근 선배 제공
여행 계획을 주도면밀하게 짠 집친구에게 돌로미티의 관문 도비아코에서 잘츠부르크까지는 일종의 ‘구멍’이었다. 앞서 소개한 돌로미티 지역에서 꽤나 유용하게 썼던 발 가르데나 교통카드 M카드가 어느 구간까지 통할지 알 수가 없었다. 일종의 지방 열차망인 레지오날만 이용할 수 있고 전국망 열차에는 오를 수 없었다.
해서 우리는 지난 6월 9일 오전 9시 55분 도비아코~낮 12시 45분 포르테자~오후 1시 33분 브레너~2시 13분 인스브루크까지 세 차례나 열차를 갈아 타며 차장에게 다음 열차를 타면 M카드를 계속 쓸 수 있는지 물어보아야 했다. 여기에다 플랫폼 정보가 수시로 바뀌니 트렁크를 끌고 후닥닥 뛰어야 하는데 환승 시간이 빠듯해 돌로미티에 머무를 때도 늘 걱정 많은 집친구는 골머리를 앓아왔다. 나야 어떻게 되겠지 했고. 결론적으로 브레너까지 M카드가 적용됐고, 브레너~인스브루크만 열차 표를 즉석에서 구입해야 했다.
인스브루크를 경유하는 것을 놓고 여행 전부터 고민을 많이 했다. 동계올림픽을 개최한 도시란 이유 하나만으로 고집했고 집친구도 조금 힘들긴 하지만 인스브루크를 5시간 정도 돌아보는 데 동의했다.
포르테자와 브레너에서 트렁크 끌고 엘리베이터 타고 내려가 지하 통로 건너 갈아탈 플랫폼으로 다시 엘리베이터 타고 올라야 하는데 환승에 5~10분 정도 밖에 주어지지 않아 늘 시간에 쫓겼다. 하지만 별다른 혼란 없이 브레너까지 이르렀다.
둘이 약속했다. 내리면 곧바로 집친구는 티켓을 사러 뛰고, 난 플랫폼 정보를 확인해 두 트렁크를 끌고 타는 곳으로 이동한다. 집친구는 역사로 뛰어들어갔고, 난 시골 역치곤 엄청 긴 플랫폼 저 끝에 사람들이 길게 늘어선 쪽으로 걸었다. 나중에 보니 이곳 플랫폼은 아래 쪽은 레지오날, 위 쪽은 전국망 열차가 서는 곳이었다. 당연히 난 옳은 방향으로 가는 것이었다. 배낭을 등에 메고 트렁크 둘을 끌고 아둥바둥 걷는데 티켓 발매기가 눈에 들어오고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역사에 들어갔던 집친구가 달려왔을 때 이미 난 티켓 자판기 버튼을 누를 참이었다. 옆의 아저씨가 현금은 안되고 마스터스 카드만 된단다. 이런. 다행히 내 카드가 마스터스라 결제하려는데 잘 안된다. 출발 시간은 다가오고 뒷줄의 아가씨는 영 마뜩찮은지 눈을 흘긴다. 옆의 아저씨가 그래도 도와줘 출발 3분 전쯤 티켓을 뽑아 트렁크를 밀며 달렸다. 아저씨가 영수증 챙기라고 30m쯤 달려와 건네주는 것을 받고. 저러다 저 양반 열차 놓치면 어떡하지, 싶었는데 나중에 보니 아저씨뿐만 아니라 아가씨들도 모두 무사히 탔더라. 휴 다행.
집친구가 미리 예약한 다른 열차 표와 달리, 브레너에서 인스브루크까지는 단 세 정거장만 거치면 되는데 일인당 17.6유로, 둘이 2만 4019원으로 엄청 비쌌다. 포르테자에서 인스브루크까지 급행을 탈 수 있었는데 몇 푼 아끼려다 현장 매표해 더 비싸고 시간도 많이 죽이며 힘도 들었다고 집친구가 후회했다. 역 안에서 물어물어 라커를 찾아 4.5유로씩 내고 트렁크를 맡긴 뒤 맥도널드에서 가볍게 점심을 때웠다. 10.7유로(생선튀김 3.5유로, 콜라 2.3유로, 폼스(환타?) 2.4유로, 빅맥 3.7유로)
이런, 정말 좁다. 스키 등을 즐기거나 동계올림픽을 보러 오거나 두 목적이 아니라면 굳이 찾을 이유가 없는 것 같았다. 마리아 테레지아 거리에 들어선 개선문과 테레지아의 입상을 보고 막시밀리안 1세 황제가 대중을 굽어봤다는 황금지붕 등을 돌아봤다. 마리아 테레지아 등 도심을 거닐며 언뜻언뜻 그 유명한 스키 점프대를 볼 수 있는데 우리네 평창처럼 산속 깊숙이 있는 것이 아니라 조금 한적한 언덕배기에 있어 도심 어디에서나 건물에 가려지지 않으면 볼 수 있었다.
인 강을 건너보기로 했다. 웬 물이 이렇게 많지? 급하고 탁한 격류가 소용돌이치며 콸콸 흐른다. 청년들이 난간에 줄을 묶느라 열심이었다. 나중에 위쪽 성당과 설산을 배경으로 영혼들이 영원한 안식에 들었지만 사람들이 정성껏 꾸민 꽃밭들로 아름답기 그지 없는 공동묘지를 돌아보고 내려오니 그 탁한 격류에 한 청년이 서핑 보드를 타고 재주를 부리고 있었다.
공원을 지나다 지하 역사로 내려가는 듯한 계단이 눈에 들어왔다. 노르드케테 방문자 센터였다. 특이한 것은 경전철 같은 것을 이곳에서 알펜주 동물원(750m) 거쳐 훈게르버그(860m)에 이르고 그곳에서 케이블카를 갈아 타고 하펠레카르(2256m)에 올라간다는 점이었다. 훈게르버그에는 산악인 헤르만 불을 기리는 광장이 있었는데 이걸 알았더라면 반드시 올랐을 것이다.불은 낭가파르밧을 초등하고 40시간을 선 채로 눈폭풍을 견뎌내고 무사히 하산해 유명해졌다가 나중에 카라코람의 7000m급 거봉 초골리사에서 서른셋 삶을 마쳤다.
우리는 잘츠부르크 북쪽의 운터스베르크 케이블카를 다음날 탈 계획인 데다 시간도 없어 아예 이곳을 올라갈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나중에 많은 후회가 들었다.
역으로 돌아와 기차 대신 버스를 탔다. 일찌감치 예약한 열차 노선이 공사에 들어가 운행하지 않고 대신 버스로 잘츠부르크까지 가야 한다고 이메일 통보를 받았다. 역 안에서 어깨띠를 두른 오베베 아르바이트 청춘들이 자세히 알려준 대로 역사 끝쪽에 갔더니 버스가 있었다. 스파에서 미리 산 빵으로 저녁을 버스 안에서 때웠다. 오후 7시 14분 출발해 밤 9시 32분에 도착했다.
잘츠부르크 역 앞에서 버스를 내려 브루나우어 파크호텔을 찾았다. 도시세 하루 3유로씩 6유로, 이틀 숙박에 217.26유로. 예전에 리조트로 쓰던 것을 호텔로 리모델링한 것 같았다. 넓고 조용했고 안온했다.
택시 한 차례, 버스 두 차례, 열차 세 차례 갈아 타며 짐을 끌고 이동하느라 많이 힘든 하루였다. 거기에다 가장 빈약했던 식사까지, 정신 없이 잠에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