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은하수와 백합
 
 
 
카페 게시글
시 해석 및 시 맛있게 읽기 스크랩 감자를 먹습니다/ 윤이산
은하수 추천 0 조회 44 16.09.10 16:28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감자를 먹습니다/ 윤이산


또록또록 야무지게도 영근 것을 삶아놓으니

해토解土처럼 팍신해, 촉감으로 먹습니다

서로 관련 있는 것끼리 선으로 연결하듯

내 몸과 맞대어 보고 비교 분석하며 먹습니다

감자는 배꼽이 여럿이구나, 관찰하며 먹습니다

그 배꼽이 눈이기도 하구나, 신기해하며 먹습니다

호미에 쪼일 때마다 눈이 더 많아야겠다고

땅 속에서 캄캄하게 울었을,

길을 찾느라 여럿으로 발달한 눈들을 짚어가며 먹습니다

용불용설도 감자가 낳은 학설일 거라, 억측하며 먹습니다

나 혼자의 생각이니 다 동의할 필요는 없겠지만

옹심이 속에 깡다구가 들었다는 건

반죽해 본 손들은 다 알겠지요

오직 당신을 따르겠다*는 그 일념만으로

안데스 산맥에서 이 식탁까지 달려왔을 감자의

줄기를 당기고 당기고 끝까지 당겨보면

열세 남매의 골병든 바우 엄마, 내 탯줄을 만날 것도 같아

보라 감자꽃이 슬퍼 보인 건 그 때문이었구나,

쓸쓸에 간 맞추느라 타박타박 떨어지는

눈물을 먹습니다

 

*감자꽃의 꽃말

 

- 계간다층2010년 가을호

..................................................................

 

  감자 하나를 두고 생각과 상상력이 이리 오지고 찰지니 영락없는 시인의 습성이다. 시인이 일반인과 차이가 있다면 사물에 대한 애정과 포용력이 유별나다는 점이다. 때로 애정은 애틋함으로 뻗어가고 포용력은 통찰에 의해 의미를 다시 부여받는다. 이때 마음작용과 섬세한 관찰, 언어의 적절한 절제에 의해 시가 빚어지는 것이다. 물론 기본으로 공부도 좀 해야 한다. 결국 시란 사물에 대한 시인의 애정을 담아내는 그릇인 셈인데, 여기 그릇에 담긴 물건은 삶은 감자이다.


  감자는 벼, , 옥수수와 함께 세계 4대 식량작물로, 아무데서나 잘 자라고 단위면적당 생산성도 높아 세계사에서 각광받는 구황작물이다. 그러나 안데스산맥 주변의 고원지대가 원산지인 감자가 16세기 스페인 사람들에 의해 유럽으로 전파되었지만, 18세기 초까지 악마의 열매로 치부되어 거의 관상용으로만 키워졌다. 성경에도 나오지 않는데다가 못 생기고 허접한 이 덩이식물을 유럽인들은 노예나 먹는 비천한 음식이라며 기피했던 것이다.


  그런 감자가 스스로 용불용하고 진화하여 유럽인의 식탁에 주역이 되었고, 지금은 서민의 식량을 넘어 참살이 식품, 우주식량, 의약 산업소재, 종자산업 등 다양한 영역에서 주목받으며 감자의 가치가 확대 재발견되고 있다. 특히 배꼽을 포함한 표면에서 발견되는 영양성분은 신체의 손상으로부터 몸의 세포를 보호하는 강력한 항염증 항산화 기능을 갖고 있다. 이는 본디 감자 속에 온갖 우주의 기운이 스며있는 영혼의 작물이란 사실과 더불어, 시인이 발견해낸 옹심이 속에 깡다구기질의 영향이라 여겨진다.


  나도 얼마전 삶은 감자를 먹다가, 아니 먹기에 앞서 무슨 불량한 생각을 했었다. 영화 속 수절과부의 허벅지살과 김동인의 감자에 나온 복녀를 떠올렸지만 역시 윤이산 시인은 깊이가 달랐다. 시인은 오늘날 감자의 그 영광 아래 침전된 가난과 골병의 이력에다 눈을 맞추었다. 그 속을 더 파먹어가다 보면 필시 내 탯줄을 만날 것도 같아’ ‘쓸쓸에 간 맞추느라 타박타박 떨어지는 눈물을 먹고 말았던 것이다.

  

 

권순진


Tornero(I'll Miss You=I'll Be Back Again)

 
다음검색
댓글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