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일서정(秋日抒情)
상강 절기가 지나고 입동을 하루 앞둔 십일월 첫 주말이다. 계속되는 가뭄으로 푸석푸석 이는 먼지를 재워줄 비가 내린다는 예보였다. 가을이지만 기다려진 단비였다. 이른 아침 부슬부슬 내리는 빗속에 길을 나섰다. 등산복 차림이긴 하나 산행이나 산책이 아닌 고향을 찾아가는 걸음이다. 추석 쇠고 마늘 심느라고 찾은 이후 대봉 수확 철을 맞은 큰형님 일손을 거들기 위함이었다.
큰형님은 올해 일흔으로 농사일이 힘에 부친다. 형수님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틈틈이 진주와 울산에 사는 두 조카가 와 일을 거든다. 여름에 마늘 뽑기와 가을에 마늘 심기는 나도 틈이 나면 거든다. 대봉 따기는 감 박스를 날라다 주는 정도다. 감 따기는 안전을 우선해야 하고 힘이 드는 작업이다. 나는 약간의 고소공포가 있어 사다리나 감나무에 올라가 감을 딸 수 없는 형편이다.
대봉은 송이가 아주 굵은 감이다. 요즈음 곶감으로도 저장되나 대개 단단한 감을 상온에 두면 홍시가 되어 이걸 먹는다. 대봉 주산지는 하동 악양이 알려져 있으나 의령 덕실 대봉도 서울 경매장에서는 알아준단다. 크기와 당도에서 악양 대봉보다 더 나아 좋은 값을 받는다고 들었다. 여러 농작물이 토양과 일조량이 좌우하듯 고향 마을은 산간이나 대봉 생육에 적합한 지역인 듯했다.
큰형님은 올가을 벼 수확과 마늘 심기는 일찍 끝내고 대봉을 따는 차례다. 열흘 전부터 볼이 발개진 대봉부터 따서 서울 경매장으로 올려 보내기 시작했단다. 이번 주말이 감 수확 절정이었다. 그런데 웃비가 내려 대봉을 따는 데 지장이 생겼다. 지난 주말 집안 조카 결혼식이 대구에서 있었는데 시골 큰형님 내외는 감을 따느라 참석하질 못했다. 그만큼 농촌에서는 일손이 바쁜 때였다.
나는 합성동터미널에서 버스를 탔고 작은형님은 부산에서 차를 몰아 의령으로 향했다. 내가 먼저 읍내에 닿아 충익사 앞에서 형님을 기다렸다. 구룡산이라고도 하는 의령 남산 단풍은 절정을 앞두었다. 올가을 가보진 않았다만 지리산 백무동이나 뱀사골 단풍은 절정에서 내려오고 있을 것이다. 고향에서 멀지않은 합천 해인사 홍유동과 매화산 단풍은 더 곱다. 그곳 단풍이 절정이지 싶다.
읍내서 작은형님을 만나 함께 고향집으로 갔다. 새벽부터 내리던 가을비는 그치지 않았다. 고향마을 앞 큰형님 논에는 지난 초가을 추수를 끝내고 심어둔 마늘이 싹을 틔워 파릇하게 자랐다. 큰형님은 감 수확을 서둘러 이웃 농가보다 먼저 서울 경매장으로 올려 보냈다고 했다. 주말 비가 온다는 예보로 대봉을 미리 따 바깥마당에 가득 쌓아 놓았다. 시간차를 두고 선별할 요량인 듯했다.
큰형님은 가정용 정미기로 쌀을 비롯한 잡곡을 빻았다. 농가에선 탈곡도 그렇지만 정미 과정도 먼지가 많이 일었다. 그 먼지는 도시 매연이나 분진과는 성분이 달라 자연친화적이었다. 큰형수님은 나보고 푸성귀를 마련해 오라고 했다. 나는 곁에서 더 도울 일이 없는지라 수레를 끌고 남새밭으로 갔다. 부슬비 속에 배추 몇 포기와 무 몇 개 뽑았다. 종아리가 미끈한 대파도 몇 줌 뽑았다.
푸성귀를 뽑아와 가려 놓은 다음 더 할 일이 기다렸다. 큰형님은 경매장으로 올려 보낸 상품에서 밀려난 대봉을 가득 쌓아두었다. 종이 박스와 양곡 포대에다 차에 실어갈 만큼 넉넉히 담아 가라고 했다. 흠집이 나 물컹한 감을 제외하고 박스와 포대에다 촘촘히 담았다. 대봉은 물론이고 단감도 마찬가지였다. 작은형님 승용차는 트렁크는 물론이고 뒷좌석까지 감과 푸성귀로 꽉 채웠다.
큰형수님은 시동생이 가져갈 잡곡을 봉지마다 담아 놓았다. 검정콩과 수수와 조였다. 물론 이것들은 시세 따라 금을 쳐 드릴 것이다. 어느새 큰형수님은 점심밥을 차려내 반주를 곁들였다. 뒤늦게 합류한 조카는 오후에 대봉 선별과 포장할 일을 도우지 싶다. 작은형님 차편으로 많은 짐을 손쉽게 옮겼다. 현관 맞은편에도, 아파트 경비실에도 대봉과 단감을 보내고도 나눌 곳은 더 있었다. 2015.1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