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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소금꽃나무』 "핏물을 찍어 한자 한자 써내려간 책" | ||||||||||||||||||||||||||||||
『소금꽃나무』를 읽고 책으로 묶인 연재소설을 읽는 느낌이랄까... 연재할 때는 아무래도 챙겨보지 않는 한 사정에 따라 띄엄띄엄 읽게 된다. 연재가 끝나고 책으로 묶여 나오면 떠오르는 감동의 조각에 이끌려 손에 잡는 소설. 그렇더라도 좋은 소설은 감동이 반감되거나 바래지 않고 더욱 진한 울림을 주는 법이다. 『소금꽃나무』는 내게 그런 책이었다.
『소금꽃나무』는 이런 책이다. 그 내용을 훑어보는 일은 잠시 뒤로 미루고 글쓴이에 대해 얘기하는 게 순서일 것 같다. 김진숙... 노조활동가, 노동운동에 관여하거나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가 누군지 정도는 알 것이다. 하지만 이 범주를 벗어난 사람에게는 낯선 이름일 수도 있다. 내가 전노협 쟁의부장으로 활동하던 서른 즈음에 대한조선공사(현재의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인 그를 처음 만났다. 나이가 같았지만 커트머리를 한, 영락없이 앳된 소녀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나는 노동운동을 하면서 무엇보다도 먼저 노동자가 되어야 한다고 의식적으로 노력했다. 그것은 대학생 출신이라는 한계를 극복하여 노동대중과 동화되는 것. 즉 머리로만 하는 노동운동이 아니라 노동자로서 온몸으로 살아가고 실천하는 문제였다. 그리고 그 자세와 입장을 일관되게 견지하려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여 왔다. 김진숙, 그는 바로 내가 그리는 그 노동자였다. 가슴 깊숙한 곳에서 통함을 느꼈다. 그는 몸으로, 삶으로 계급의식을 체득하고 현실 속에 실천하고 있었으니까. ‘치를 떨며 아버지를 원망했던 이유도’, ‘강화도 집에서 부산으로 가출하면서 참고서가 가득한 큰 가방을 질질 끌고 왔던 것도’ 바로 그 열망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 꿈은 한진중공업에서 해고되고, 학번 없는 사람이 세상의 주인이라는 믿음이 생길 때까지 지속됐다.(‘학번에 대하여’) 그런데 ‘억새풀 야학’이란 이름도, 절실했던 영어 단어나 수학 공식보다는 근기법이나 노조 얘기에 더 열을 올리는 분위기도 그 곳을 미덥지 않게 만들었다. 강학이 건네준 『전태일 평전』도 ‘노동자’라는 제목이 맘에 안 들어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러다 소나기가 내려 휴업하던 날, 심심파적으로 그 책을 들추었다가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에게 부끄러워’ 꺼이꺼이 울었다.(‘그 시절의 이력서’) 엄혹하기만 했던 노동운동 현실은 유난히 안타까운 죽음으로 점철돼 있다. 박창수, 배달호, 김주익... 그 숱한 열사들의 뜻을 받들고, 영면의 세상으로 보내는 현장에서도 나는 그와 함께였다. 안양에서, 부산역광장에서, 서울시청 광장에서 듣는 이의 가슴을 후벼파는 그의 처연한 추도사를 들으며 나는 흐느꼈다.
듣는 이도 이렇듯 가슴이 미어지는데 절규하는 본인은 또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박창수의 무덤이 빤히 바라뵈는 곳에 배달호 열사를 묻고 와서 이빨까지 빠지는 듯한 심한 몸살에 시달렸습니다. 난 언제까지 이런 추모사를 쓰며 살아야 하나....’ 그가 배달호 열사 추모사에 쓴 ‘추신’이다. 전교조 부산지부 노보에 연재됐을 법한 글을 모은 다섯째 마당(‘손가락을 모아 쥐면 주먹이 된다’)에는 참된 교육에 대한 그의 생각을 만날 수 있다. 그가 쓴 여느 글과는 색다른 맛을 느끼게 된다. 또한 여섯째 마당(‘상처’)은 가난했던 어린 시절과 파란만장했던 개인사, 어두운 가족사를 파노라마처럼 풀어 놓았다. 이를 통해 강단 있는 진짜노동자 김진숙, 노동자에게 감동을 전하는 김진숙의 인간적 면모를 헤아려 볼 수 있다. “나는 글을 잘 쓰는 사람은 아니다. 중학교 때 일기장에 칼을 그리고 선생한테 얻어맞은 뒤로 일기조차 진실을 은폐한 관제 일기만 썼고, 글 쓰는 걸 취미로 삼아 본 적이 없다. 원고지 쓰는 법은 이렇고, 편지를 쓸 때는 상대방의 안부를 먼저 묻고, 그날의 기후를 쓰고 어쩌고 하는 ‘쓰잘데기’ 없는 지식이 내가 배운 작문교육의 전부다. 그런 내가 지금껏 썼던 글들은 원고지에 쓸 수가 없는 글이었다.” 그래, 손(기술)으로 쓴 글은 참된 글이 아니다. 온몸으로 쓰는 게 참다운 글이다. 내 뒤에 선 누군가는 내 등짝을 또 그렇게 보며 “화이바 똑바로 써라. 안전화 끄내끼 단디 매라. 작업복 단추 매매 채아라.” 그 지엄하신 훈시를 귓등으로 흘리고 있었을 게다. 이른 봄 피어나기 시작해서 늦가을이 되어서야 서러이 지는 꽃.’ 그렇다. 이 책은 노동자로 시작해 노동자로 끝나는, 진짜노동자가 쓴 노동자 이야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