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52:6]
그러므로 내 백성은 내 이름을 알리라 그러므로 그 날에는 그들이 이 말을 하는 자가 나인줄 알리라 곧 내니라...."
그러므로 내 백성은 내 이름을 알리라 - 하나님의 이스라엘 구원 계획의 중요한 이유가 밝혀지고 있는데,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분명히 깨닫게 하는 것이다. 이제 하나님은 앞문맥에서 밝힌 예언을 그대로 성취시킴으로써 당신의 영화로운 권능과 주권을 밝히 드러내고자 하신다...
[사 52:7]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
온 성안 백성이 고대하고 원하였던 소식을 소지하고 달려오는 전령을 발견하였을 때 그들의 눈에 비친 전령의 발이야말로 아름답게 보였음에 틀림없다. 물론 그 소식이란 바벨론 포로로부터의 회복의 소식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암시라고도 볼 수 있겠다.
[사 52:8]
들을찌어다 너의 파숫군들의 소리로다 그들이 소리를 높여 일제히 노래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시온으로 돌아오실 때에 그들의 눈이 마주 봄이로다...."
이는 여호와께서 이온으로 돌아오실때에 - 파수꾼들이 한 목소리로 기쁨의 노래를 부를 첫 번째 이유는, 여호와께서 시온에 돌아오심이다. 저자는 하나님께서 포로 귀환민들과 함께 다시 시온으로 돌아오시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일순간도 버리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이 묘사는 하나님의 적극적 개입에 대한 표현으로 보면 되겠다.
눈이 마주 봄이로다 - '눈이 눈을 보기 때문이다'란 뜻이다. '대면하여 보다'로 번역하고 있다. 어떤 베일이나 중간 매개자 없이 가까이서, 공개적으로 또 명백히 보게 되는 사실을 드러낼 때 이 표현이 사용된다.
[사 52:9]
너 예루살렘의 황폐한 곳들아 기쁜 소리를 발하여 함께 노래할찌어다 이는 여호와께서 그 백성을 위로하셨고 예루살렘을 구속하셨음이라...."
구속하셨음이라 - 여기 '구속'은 1차적으로는 하나님이 행하실 이스라엘의 바벨론 포로로부터의 구원을 가리킨다. 그러나 2차적으로는 그 구원이 암시하는 바, 메시야를 통한 온 인류의 구원까지 가리킨다고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예루살렘의 구속의 결과를 서술하고 있는 온 세상 백성이 그 구속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사 52:10]
여호와께서 열방의 목전에서 그 거룩한 팔을 나타내셨으므로 모든 땅 끝까지도 우리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도다..."
팔을 나타내셨으므로 - 전투를 위해 자신의 튼튼한 팔을 과시해 보이는 용사로부터 취한 이미지이다. 모든 땅 끝까지도 ... 구원을 보았도다 - 이스라엘을 위하여 하나님이 행하신 구원을 모든 민족들이 여호와를 인정하게 되는 근거가 된다...
[사 52:11]
너희는 떠날찌어다 떠날찌어다 거기서 나오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찌어다 그 가운데서 나올찌어다 여호와의 기구를 메는 자여 스스로 정결케 할찌어다..."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지어다 - 우상을 좋아하는 이방의 습성에서 벗어나 자신들을 성결케 보존하라는 것이다. 야곱은 세겜에서 하나님을 만났던 벧엘로 올라가기에 앞서 그 모든 우상, 신상 따위를 처분하라는 바자령을 받은 바 있다.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위한 준비 조치는 세상 우상을 제거하는 일이다.
사도 바울은 성도에게 세상으로부터 나와 그 모든 영향력으로부터 단절될 것을 명령할 때 본 구절을 인용한 바 있고, 요한도 그리스도인이 '큰 성 바벨론'으로부터 자신을 분리하여 그 죄의 동참자가 되지 않아야 할 것을 명령할 때 본절의 일부를 인용하고 있다. 여호와의 기구를 메는 자여 ... 할지어다 -
본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유대인이 포로를 잡혀갈 때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성전의 모든 기구들을 함께 운반해 갔고 그것을 자신들의 축제 때 사용했던 사실과, 고레스의 명령으로 본국 귀환시 그 기구들도 같이 옮겨 갔던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성전의 일을 맡아 보는 제사장과 레위 족속은, 일반 백성 그 이상으로 자신들을 성결하고 거룩되이 구별해야 했다.
[사 52:12]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 행하시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너희 뒤에 호위하시리니 너희가 황급히 나오지 아니하며 도망하여 행하지 아니하리라...."
황급히 나오지 아니하며 - 황급히 나와야 했던 출애굽 때와는 대비를 이루는 상황이 제시된다..
[사 52:13]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 종이 형통하리니 받들어 높이 들려서 지극히 존귀하게 되리라..."
보라 - 저자는 본서 곳곳에서 주의를 새롭게 환기시킬 목적이 있을 때 이용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무려 70여 회나 된다. 이제 저자가 새롭게 독자들의 관심을 모으려고 하는 대상은 40장 이후에 계속 나온 '여호와의 종'이다. 받들어 높이 들려서 지극히 존귀하게 되리라 - 본 하반절은 상반절에서 진술된 것에 의해서 나타나는 결과를 말하고 있다.
그 내용은 본 하반절을 이루고 있는 세 개의 동사의 의미를 통해 잘 드러난다. 첫 번쩌 동사는 '야룸'인데 이것은 '그가 일어날 것이다'로 번역될 수 있다. 두 번째 동사는 '니사'로서 '그가 자신을 일으킬 것이다'로 번역될 수 있다. 마자막 동사는 '가바'로서 하나의 상태를 나타내므로 '그가 지극히 존귀하게 되리라'로 번역된다.
주목할 점은 이 세 동사가 모두 승귀의 최고 정점을 나타낸다는 사실이다. 이는 다음과 같은 신약 성경을 사익하지 않고는 제대로 이해될 수 없다 :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은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본서 저자와 빌립보서 저자 바울은 그리스도에 대해 기록할 때 모두 하나님의 성령의 유일한 '구원자'이신 그분의 승귀라는 위대한 주제를 진술할 수 있었다.
[사 52:14]
이왕에는 그 얼굴이 타인보다 상하였고 그 모양이 인생보다 상하였으므로 무리가 그를 보고 놀랐거니와....."
이왕에는 ... 놀랐거니와 - 여기 '놀랐다'는 선지자 에스겔이 두로에 대해 말할 때 사용된 '숌무'인데, 에스겔은 섬들의 거민들이 한때 교만하던 두로가 엄청난 하나님의 응징을 받은 모습을 보고 두려움에 질리는 것을 한 폭의 그림을 보듯 생생하게 묘사하기 위해 본 동사를 사용한 바 있다.
본절에서도 동일한 개념을 나타내기 위하여 동일한 동사가 동일한 개념을 나타내기 위하여 동일한 동사가 사용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본절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질리듯 놀란 것은 종의 모습이 너무 상하여서 사람의 모습 같지 않을 정도로 되었기 때문이다. 그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두로처럼 그 종이 하나님의 징벌릉 받았다고 생각했던 것임에 틀림없다.
[사 52:15]
후에는 그가 열방을 놀랠 것이며 열왕은 그를 인하여 입을 봉하리니 이는 그들이 아직 전파되지 않은 것을 볼 것이요 아직 듣지 못한 것을 깨달을 것임이라 하시니라....."
후에는 그가 열방을 놀랠 것이며 - 여기 '후에는'은 시간적 경과를 나타내는 부사가 아니라 '상하였으므로'와 본절의 동사가 동시 동작임을 암시하는 부사이다. 말하자면 그가 상해 있는 동안에 그가 열방을 놀랠 것이라는 사실을 시사하는 부사라는 말이다. 한편, '놀랠 것이며'의 의미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이에 해당하는 '예제'를 어떤 학자들은 '기뻐 뛰게 할 것이다', '경배할 것이다' 등으로 번역한다. 그러나 최근 몇 년전에 팔레스틴에서 발견된 매우 오래된 본서 사본에 따르면, 본 동사는 '뿌릴 것이다'로 번역되어 있다. 이 번역은 맛소라 본문의 직역과 동일하다. 더 나아가 뿌린다는 것은 결례 집행을 암시한다.
결례를 집행하기 위하여 뿌리던 자는 제사장이었다. 그렇다면 본서의 '종'의 사역 역시 제사장의 사역으로 묘사되고 있는 것이다. 부사 '후에는'과 연결시켜 보면 그 '종'은 그토록 무섭게 상해 있는 동안 바로 이 결례를 집행하신다는 뜻이 된다. 많은 무리에게 전적으로 부정한 자로 간주되었으며 따라서 정결케 되어야 할 필요성이 큰 것으로 여겨진 바로
그 분이 오히려 대제사장으로서 물과 피를 뿌릴 것이며 그렇게 함으로써 열방을 정결케 하실 것이라는 말이다. 그분은 너무도 고난을 많이 당하신 수난자로서 그 일을 수행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고난들은 속죄적 정결을 위한 것이다.
입을 봉하리니 - 이 표현은 어떤 소식에 압도되어버린 상태를 나타낼 때 처한 것은 수난과 종의 사역이 성공적일 뿐 아니라 그의 사역의 형태는 전혀 들어보지 못한 새로운 것이었기 때문이다. 바울은 본 예언을 복음 자체에다 다음과 같이 적용시키고 있다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본절을 포함한 53장에서 전개될 위대한 주제의 요약이라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