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달샘:
영성에서 순수는
존재 바탕의 균일성을 의미합니다.
순수는
원래 윤리적 의미를 담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죄와 죄로부터의 구원이라는 개념이
인류 의식에 물들기 시작함으로써
순수는
죄와 대척점에 있는 개념으로
오염되었습니다.
오염되지 않은 순수의 개념도
늘 존재했으나
종교 영역에선 빛을 발하지
못했지요.
인간 행위는
구조적으로 2가지로 분류됩니다.
첫째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것은
삶의 방향성
곧 목적지향적 행위이고
둘째
'무엇이 옳은가?' 는
환경과 사회 안에서 발생하는
관계의 판단을 위한
기준인데
이것을 우리는 '윤리'라고 부르지요.
현대적 안목에서 윤리는
상대적 가치입니다.
옮음이라 판단된 행위가
다른 조건에선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이지요.
그러므로 실질적으로 윤리에
'순수'의 개념이
반드시 필요하지는 않게
되었습니다.
절대성의 윤리 안에서나
기준으로 작동했었지요.
엄밀히 순수는
앞의 첫 번 질문인
삶의 방향성과 깊은 상관성을 지녔습니다.
영성에서는
'순수'의 개념이 필요한 곳에
'균일성'이 더욱 많이 사용되지요.
순수를
구조나 성분으로 분석하면
이것은
단일성을 가리킵니다.
존재 전체가
하나의 울림, 하나의 색감,
하나의 질감을 가질 때
순수
혹은 균일이 성립되지요.
이것은
배경음이고, 바탕색이며,
깊은 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질감입니다.
이것은
존재가 단일 지향성을 지닐 때
가능한 현상이지요.
이 배경 위에
일상의 다양한 음과 색과 감촉이
흩뿌려집니다.
흩뿌려진 것은
바람에 날리고, 섞이고,
잠시 후 사라지지요.
그리고 또 다른 흩뿌림이
이어집니다.
이것이
삶이지요.
그러나 배경은
맥락으로서 한 존재를 드러냅니다.
물론 방심하면
이 맥락의 배경도 흔들리지요.
즉 순수가, 균일이
훼손되는 것입니다.
영성 수련자들의 깨어있음의 대상은
이 배경이지요.
생체적 잠을 자지 않음이
아닙니다.
먹지 않고, 자지 않는 영성 수련은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인지
깊이 성찰해 보아야 하지요.
생리를 거스르는 특별한 능력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요?
생리 현상을 터부시하여
얻고자 하는 순수는
과연 어떤 것일까요?
영성의 전체 구조와 성격을
모르기에
이런 어리석음이 나옵니다.
결벽성과 순수는
완전히 다른 것이지요.
결벽은
자기 중심성이 매우 강화된
상태입니다.
자신을 지키려는
강박이지요.
영성 수련자가
결벽성을 띠기 시작하면
무언가 크게 잘못된 것입니다.
순수는
존재의 표면에
잠시 묻었다 떨어지는 먼지의
차원이 아닙니다.
먼지의 오고 감은
삶의 필연이지요.
순수는
우리 존재 전체를 관통하는
성격입니다.
우리 생각과 행위와 말의 출발점이지요.
이 배경이 순수하지 못하면
그가 하는 모든 행위는
모순 속에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누구든지
부분적으로는 선하고, 옳고,
훌륭하지요.
표면적으로 옳은 행위를 하는 듯
하여도
결국
그 모순이 드러나고
자기 스스로도 감당되지 않습니다.
이것이
일반적인 우리 삶의 가장 큰
애로점이지요.
삶에서 깊은 죄책감에 시달리고
혹은 트라우마가 있다면
이것은
배경 곧 바탕이 순수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최소한
그 사건의 시점엔 그랬지요.
배경이 순수하지 않다는 뜻은
자신의 방향성이
모호하고 혼란스럽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결코 윤리적 의미가 아니지요.
옳고 그름의 관계성의 문제가
아닙니다.
과거 행위를 반성하지 말라는
의미가 아니라
자기 모순이 시작된 지점과 원인을
정확히
볼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지요.
자학으로
죄책감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행위가 일렁이기 이전의 차원에서
순수성을
확보해야 하지요.
영성 수련을 위해선
우선
의식의 구조를 이해해야 합니다.
제일 아랫단에
배경의식이 있지요.
그리고 그 윗단에
출렁이는 판단 의식이 있습니다.
판단 의식은
흔히 마음이라 지칭되며
이것의 본래 성격은 흔들림입니다.
이 출렁임은
이 차원의 본성이기에
여기에
순수나 흔들리지 않음을 적용하려
하면
영원히 실패하지요.
이것은
현상의 물리적 법칙입니다.
수 천년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종교인들이
영성 수련에 실패한 이유가
이것이지요.
여기서 실패는
사마디samadhi, 견성,
배경의 활성화에 실패했다는
뜻입니다.
순수는
존재의 배경에 관한 주제이지요.
죄책감을 해결하고
구원받기 위한 수단이 아닙니다.
순수를 위해선
존재의 방향성을 살펴야 하지요.
깊은 곳에
하나의 울림,
하나의 색감,
하나의 질감이 느껴지는 지를
살피는 것입니다.
일렁인 물결 보라 피우니
금새 물든 순박한 나뭇잎
온화한 감촉 은빛 허공엔
깊게 울리는 호수의 숨결.
..260922小野
첫댓글 감사합니다..아미타불 _()_
아미타불! 아미타불! 아미타불!
고맙습니다. 나무아미타불 _()_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_()_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_()_
고맙습니다.나무아미타불_()_
고맙습니다. 나무아미타불. _()_
술결-->숨결? 내가 없음에 허공과 허공이 어울리고 뒤섞이며 인연따라 이런 풍광, 저런 풍광~ 나마스테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