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장 가비라성의 비극
제1절 원한과 복수
1 이보다 앞서, 부처님이 사위성에 머무신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바사닉 왕은, 비구들과 좀 더 친근해지기 위해, 부처님의 집안에서 왕후를 맞아들이면, 비구들의 신임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사신을 가비라성에 보내어, 한 여자를 구하게 했다. 또 임금의 생각에는, 이렇게 함으로 말미암아 당시에 명망이 높은 귀족 집안과도 좋은 인연이 맺어지리라고 생각했다.
임금의 사신은 가비라성에 이 뜻을 전했다. 그래서 석가족 사람들은 서로 모여, 이 일을 의논했다. 비록 큰 나라의 임금이라 하더라도, 계통이 바르지 못한 바사닉왕에게 석가족의 딸을, 그 색시로 보낼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청을 거절한다면, 왕은 그 힘을 믿고 군사를 몰아 쳐들어올 것이 뻔한 일이다. 그래서 집안의 장자 마하야마의 종 가운데서 난 딸을, 본처의 소생이라 해서, 바사닉왕에게 보내기로 했다. 왕의 사신은 왕의 명령에 따라, 그 처녀가 그 아비 마하야마와 식사를 같이 하는 것을 보고, 안심하고 돌아 갔다.
그 뒤에, 왕비에게서 왕자가 나서, 비유리 태자라고 이름했다. 왕은 그 왕자를 못내 사랑했다. 왕자의 나이 여덟 살 되던 해에, 활쏘기 공부를 시키기 위해 가비라성으로 보냈다. 왕자는 그 외조부 마하야마의 집에 묵으면서 공부하고 있었다. 그때에, 석가족의 공회당이 새로 지어져, 큰 기旗를 세우고 그물을 치고 힘껏 장식을 다했다. 다만 부처님을 청해 축하의 공양을 올린 뒤에, 사용하기로 결정되어 있었다. 비유리는 다른 동무의 아이들과 함께 공회당에 들어가 놀고 있었다. 석가족 사람들은 왕자를 보고 불같이 화를 내어, 왕자의 팔을 잡아끌면서, '이 거룩한 집에 종년의 새끼가 무엇하려고 들어왔느냐'고 꾸짖었다. 왕자는 이 뜻밖의 모욕을 당하자, 어린 몸에 불이 붙는 듯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래서 내가 만일 장래에 임금이 되면, 기어코 이 가비라성에 쳐들어와, 이 족속들의 씨도 남기지 않으리라고 결심하게 되었다. 왕자는 사위성에 돌아오자, 한 바라문을 시켜, 하루 세 번씩 노래를 부르게 하여 결심을 새로이 하면서, 그때가 오기를 기다렸다. 그래서 이 사실을 안 데카 카라야나 장군도 왕을 섬기면서, 원수 갚을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2 비유리는 끝내 임금의 자리를 빼앗았다. 이제야말로 때가 왔다고 생각하고 신하를 모아놓고 물었다.
"지금 이 나라 백성들의 주인은 누구냐?"
"그것은 대왕이십니다."
"그러면 사부의 군사를 다 모아라. 나는 지금 가비라성을 쳐 빼앗으려고 생각한다."
왕의 명령을 따라, 사부의 군사는 다 모였다. 왕은 군사를 거느리고 가비라성을 향해 진격했다. 이 소식을 들은 비구들은 놀라, 부처님에게 여쭈었다. 부처님은 곧 자리에서 일어나, 가비라성으로 가는 길가에 있는, 가지도 잎도 없는 마른 나무 밑에 앉아서, 비유리왕을 기다리고 있었다. 군사를 거느리고 오던 왕은 부처님을 보자, 수레에서 내려 부처님에게 나아가 여쭈었다.
"부처님이시여, 니구류수의 우거진 나무가 이 근처에 얼마든지 있는데, 왜 이렇게 잎도 없는 마른 나무 밑에 앉아 계십니까."
"왕이여, 친족들의 그늘은 시원한 것이다. 그러나 내게는 친족의 그늘이 없도다."
비유리는 부처님의 마음 속을 알아차리고 곧, 군사를 돌이켜 성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그때에도, 그 전날의 노래를 부르라고 명령을 받은 바라문은 왕의 결심을 새로이 하는 노래를 잊지 않았다. 하루 세 번씩 그 노래를 불러, 왕은 원수 갚을 마음을 불러 일으켰다. 왕은 다시 군사를 일으켜 가비라성으로 갔다. 부처님은 또 전날처럼 마른 나무 밑에 나타나셨다. 왕은 또 군사를 돌이켜 성으로 돌아갔다. 이렇게 세 번을 되풀이했다. 왕은 네 번째 다시 군사를 몰아 가비라성을 향해 갔다. 부처님은 전세의 인연은 막을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하고, 이번에는 고요히 법을 생각하면서 정사에 머물러 계셨다. 왕의 군사는 가비라성에 닥쳐 들었다.
3 가비라성의 백성들은, 그 능숙한 활 재주로 비유리의 군사를 맞아 화살을 퍼부었다. 그러나 그 화살은 귀를 맞히고 혹은 상투를 맞추었다. 혹은 활을 맞히고 혹은 활시위를 맞혀, 그 힘을 꺾기는 하면서도, 한 사람의 생명도 죽이지 않았다. 그러자 그렇듯 나이 젊고 용감한 왕도 성안 백성들의 능숙한 활 재주에 겁을 먹어, 우선은 물러서려고 했다. 그러나 저 바라문의 노래에 다시 분을 내었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의 바라문이 앞에 나와 말했다.
석가족 사람들은 다 계행을 지키기 때문에 벌레 한 마리도 죽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쳐들어가기만 하면 틀림없이 이길 것입니다. 만일 이런 기회를 놓치면, 석가족을 멸망시킬 때는 다시 없을 것입니다."
왕은 이 말을 듣고, 다시 군사를 몰아쳤다. 석가족 사람들은 성문을 굳게 닫고 나오지 않았다. 왕은 성밖에서 외쳤다. 만일 문을 열지 않으면 너희 일족을 씨도 없이 죽일 것이라고 위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