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자물쇠
정구민
산은 문을 잠그지 않는다
사계절 문 열어두고
푸른바람 새소리 산짐승 방목한다
날숨 가지에 햇빛
들숨 가지에 달빛 걸어두고
오른쪽으로 누웠다 왼쪽으로 일어나는
초목의 자음모음에
바람이 슬쩍 팔짱을 낀다
계절마다 달라지는 두 개의 감정
눈동자에 주름 키우며 산을 지키고 있는 외발의 나무들
푸른피는 구름처럼 흐르다 한 채의 봄으로 태어난다
꽃진자리 길한 기운을 모아 동글동글 태어나는 둥근우주
산능선에 새울음이 걸려있다
새 울음에 산목련향이 난다
산그늘이 너무 뜨거울 때
파란자물쇠로 산문을 잠그면
없던 계절이 바글바글 태어난다
--애지 가을호에서
산은 모든 생명체들의 산실이고, 모든 강의 발원지이다. 산은 만물의 터전이며, 모든 생명체들을 다 불러모아 먹여 살린다. 모든 신화와 종교가 탄생한 곳도 산이고, 모든 영웅들이 몸과 마음을 단련하며 전 인류의 스승이 된 곳도 산이다. 산은 언제, 어느 때나 열려 있고, 어느 누구 한 사람을 쫓아내거나 어느 누구 한 사람을 받아들이지 않은 적이 없다.
“산은 문을 잠그지 않는다.” “사계절 문 열어두고/ 푸른바람 새소리 산짐승 방목한다.” “날숨 가지에 햇빛/ 들숨 가지에 달빛 걸어두고” “오른쪽으로 누웠다 왼쪽으로 일어나는/ 초목의 자음모음에/ 바람이 슬쩍 팔짱을 낀다.” 날숨과 들숨이 호흡을 맞추고, 햇빛과 달빛이 온 천하를 비춘다. 왼쪽과 오른쪽이 짝을 이루고, 자음과 모음이 합창을 한다. 산은 만물의 터전이며, 자유와 평화와 사랑을 위하여 바람이 슬쩍 팔짱을 낀다.
“계절마다 달라지는 두 개의 감정/ 눈동자에 주름 키우며” “외발의 나무들”은 “산을 지키고,” “푸른피는 구름처럼 흐르다 한 채의 봄으로 태어난다.” “꽃진자리 길한 기운을 모아 동글동글” “둥근우주”가 태어나고, “산능선에 새울음이 걸려있”고, “새울음”에서는 “산목련향이” 묻어 난다. 산은 자유이고 평화이고 사랑이며, 모든 것이 가능한 지상낙원이라고 할 수가 있다. 요컨대 산은 모든 생명체들이 숨을 잘 쉬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그 모든 은총을 다 베풀어 주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나 “산그늘이 너무 뜨거울 때/ 파란자물쇠로 산문을 잠그면/ 없던 계절이 바글바글 태어난다.” 산과 산그늘이 하나가 될 때는 모든 것이 순조롭고 자연의 운행에 맞추어져 있지만, 그러나 산그늘이 산에 반하여 산을 파괴하고 너무 뜨거워지면 산은 파란자물쇠로 산문을 잠근다.
산그늘 아웃, 인간 망나니 아웃----.
산은 모든 생명체들의 터전이자 숨구멍이지만, 만악의 근원인 탐욕과는 함께 살 수가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