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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윌키 콜린스(1824-1889)
콜린스는 영국 최초의 ‘현대 추리 소설 흰 옷 입은 여인’을 쓴 작가이다.
찰스 디킨스가 멘토로서 1860녀누 대에 성공을 거둔 작가였으나 아편에 빠져서 좋은 작품을 쓰지도 못하고, 문단의 무대에서 사라진다.
1) 흰 옷 입은 여인(1860)
밤에 흰 옷 입은 여인이 나타남으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다. 소설의 한 구절을 보자.
“넓고 밝은 길 위에는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여자 한 명이 서 있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흰옷을 입은 그 여인은 심각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한 손으로 런던 상공의 검은 구름을 가리켰다. 나는 새벽의 낯선 길 위에 갑자기 나타난 이 유령인지 모를 존재에 기겁한 나머지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다.”
상속녀인 로라가 악당인 남편 글라이브와 살면서 마약에 빠진다. 남편은 정신벼원에 입원시켜 버린다. 이 때문에 복수를 계획한다. 앤 캐더릭을 자기의 대역으로 하여, 밤에 흰 옷을 입고 자기 집의 정원에 나타나게 한다.
로라의 대역인 앤이 갑자기 심장마비로 죽자 로라의 무덤에 묻었다. (로라가 죽었다면서)
진짜 로라가 흰 옷을 입고, 자기의 무덤에 나타나면서 ---
고딕 소설의 형식을 영국 중산층의 일상생활을 배경으로 옮겨 온 공포소설이다. 고딕소설이 공포-추리 소설로 변화한 것이다.
6. 토머스 하디(1840년 ~ 1928년)
조지 엘리엇의 전통을 잇는 빅토리아 시대의 사실주의 작가이다. 낭만주의, 특히 윌리엄 워즈워스의 영향을 받았다. 하디는 영국의 농촌 사람들이 몰락하는 상황을 비평했다.
석공의 아버지에게서 태어나서 1862년 런던의 킨스 컬리즈에서 공부, 1920년과 1925년에 각각 케임브리지 대학교와 옥스퍼드 대학교로부터 명예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소설
1867년 첫 소설 《빈자와 숙녀The Poor Man and the Lady》는 출판사를 만나지 못해 출판ㅇ 실패했다. 상업적 호응을 얻으려 두 권의 새 책을 썼다. 모두 익명으로 출판되었다.
이후 결혼도 하고, 몇 권의 책을 출판하기도 했다. 그 후 25년간 하디는 10권이 넘는 소설을 집필한다.
하디의 작품들은 특정 지역, 즉 영국 남부 지역 농촌을 다루고 있어 지방색이 강하지만 결코 지역 소설에 머물지 않는다. 특히 그의 소설들은 시간을 초월하는 인간적 가치들과 당대의 핵심적 문제들을 제시하는 데 특출한 작가적 역량을 아낌없이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된다.
그의 작품들은 대부분 영국 남부의 웨섹스 지역을 배경으로 하는데 이는 그의 고향 도체스터를 모델로 한 것이다. 당시 도체스터는 농촌 지구의 상업 중심지 역할을 하긴 했으나 다소 외진 곳으로, 하디의 어린 시절에는 철도도 들어오지 않았다. 따라서 농촌 풍경, 농촌 사람들의 미신이나 풍습을 쉽게 접할 수 있었던 경험은 훗날 그가 소설을 쓰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되었다. 내용이 차차 어둡게 변하여 비난을 받기도 하였는데, 그것은 그가 지내온 불안한 시대를 나타낸 것이라 할 수 있다.
장례는 국장으로 치러졌고 유해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혔다. 고향에 묻히고 싶어 했던 고인의 뜻에 따라 심장만은 스틴스퍼드 교회에 있는 사별한 첫 아내 에마 기퍼드(Emma Gifford)의 묘 옆에 매장되었다.(본인이 첫 아내 곁에 묻히기를 원했으나)
1) 더버빌가의 테스(테스 1891)
1891년에 첫 출판을 했을 때는 부도덕하다면서 비난받았다.
순박한 시골 처녀가 한 남자(알렉)의 욕망에 희생되어 순결을 잃는다. 그래서 사생아를 낳는다. 이후에 에인젤이라는 착한 청년을 만나 사랑을 느꼈으나, 에인젤은 자기의 과거를 알고, 실망하여 부라질로 가버렸다. 테스는 생존을 위해서 알렉을 찾아가서 학대를 받으면서 비참하게 살았다.
테스를 떠났던 에인젤이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다시 테스에게 돌아온다. 그러나 테스는 에인젤을 사랑하지만는 받아줄 수가 없었다. 에인제를 보내고, 알렉에게 쌓이 분노가 폭발하여 카로 찔러 살해한다. 그리고 사형당한다.
하디는 테스의 죽음을 ‘인간의 잔인함이 보여주는 결과이다.’ 라고 했다.
이 소설은 당시의 여자의 순결 강요와 가부장제도의 사회를 비난하는 작품이라고 재평가를 받아서, 지금은 엄청 유명한 작품이 되었다.
7. 비평가 칼라일
토마스 칼라일(1795-1881)
칼라일은 스코틀랜드의 한 청교도 가정에서 태어났다. 칼빈주의의 신앙이 칼라일에게 영향을 크게 주었다. 에든버러 대학에서 수학과 신학을 공부하였으며, 그 후 독일 문학 연구를 시작하여 괴테·실러 등의 작품을 영국에 소개하였다. 1826년에 제인 웰시(Jane Welsh)와 결혼하였다.
1834년 런던으로 이사를 간다. 3권으로 이뤄진 《프랑스 혁명사》를 저술한다. 이 이 책에서 혁명은 지배자들의 악정에 대한 천벌이며 영웅적인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영웅 숭배론(1841)이 대표작이다.
성실하고 용기있는 영웅적 지도자가 필요하고 그들을 존경 해야 한다, 영웅이라는 이상주의적인 주장을 폈다. 이에 따른 역사에서의 개개인의 역량을 중요시했다.
파시스 추종자들이 영웅숭배론을 가져갔으나. 칼라일이 말하는 진정한 영웅은 진실성과 성실성을 가진 인물로서 그는 윌리엄 세익스피어, 존 녹스, 마르틴 루터, 올리버 크롬웰, 루소, 나폴레옹 등을 인류의 영웅으로 꼽았다.
칼라일은 민주주의는 낭만주의의 정치적인 표현이며 결국에는 무정부주의로 종속된다고 했다. 오직 한 개의 민주주의만이 거의 완벽한 형태이며 그것이 미국이다. 그것 또한 전쟁중이라고 설명했다.
아내 제인의 사망(1866년)뒤에는 글도 거의 쓰지 않았으며, 1881년 2월 5일에 사망하여 에클페칸 묘지에 묻혔다.
칼라일은 빅토리아 시대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러나 20세기에 와서 무소리니가 칼라일의 영향을 받았고, 자신도 독일인이라고 할만큼 독일주의자여서 비판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