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통문 54]오수개 '견분곡'을 아시나요?
문화일보 4월 22일자 오피니언면에 실린 졸문의 칼럼을 이제야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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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최애 프로그램인 <TV 진품명품>을 보고 있는데, 오수개연구소 단톡방에 카톡 한 통이 날아들었다. ‘윤신근, 견분곡’이라는 제목에 읽어 내려가다 깜짝 놀랐다. 견분곡(犬墳曲)이라니? 고려의 문인 최자가 1254년 펴낸 <보한집>의 ‘오수개 설화’에서 들어본, 자신을 살리기 위해 죽은 개의 무덤을 만들고 주인이 슬피 울며 불렀다는 노래의 곡명이 아닌가. 불행히도 노랫말은 전해오지 않지만, 그 노랫말을 수의학자인 윤신근 박사가 1천여년만에 새로이 지은 것이다. 노래라기보다는 문학적 감수성이 충만한 한 편의 준수한 시였다. 살풋 감동했다. 그리곤 오수개를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부끄럽기도 했다. 왜 이제껏 이런 시 한 편을 쓸 생각을 못했지 싶어서였다. 먼저 전문을 감상해 보자.
<너는 아무 말도 묻지 않았다/짖지도, 망설이지도 않았지/그저 내 곁에 있었을 뿐인데/너는 결국, 나 대신/불길에 스러졌다//내가 눈을 떴을 때/내 몸은 젖어 있었고/내 숨은 여전했지만/너는 조용히,/다신 일어나지 않았다//냇물로 달려가 첨벙,/불꽃을 향해 네 온몸을/던진 그 발굽 자국/몇 번이고, 몇 번이고/온몸이 타고, 꺾이고/무너졌어도/너는 물을 안고 왔다/오직 나를 살리겠다는/그 하나뿐인 마음으로//내가 너를 데려왔을 때/그저 길 위의 개 한 마리였거늘/오늘 나는/사람보다 더 사람다운/너를/무덤에 묻는다//돌 위에 새긴다/“여기, 나보다 먼저/사랑을 아는 생이/잠든다”//오수의 바람이 분다/그 바람은 뜨겁고도/차갑다/마치 네 마지막/숨결처럼//내 눈물은 말라가지/않는다/살아남은 죄가 너무 커/너를 부를 수도 없다//너는 개였지만/너는 참 사람이었다>
윤신근 박사는 최근 멸화구주(불을 끄고 주인을 살림)의 충견이자 의견으로 유명한,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려 잘 알려진 오수개의 세계화 발전을 위해 써달라며 임실군에 1억원을 쾌척해 화제가 되었다. 게다가 멸종된 오수개의 생물학적 복원을 위해 1996년부터 오수개 유전공학 육종연구위원회를 조직, 애쓴 주역이기도 했다. 그 결과, 지난해 8월 유엔 FAO(세계농업기구)로부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고유 개품종으로 ‘오수개’가 등재되었다. 임실군에서 전면에 복원된 오수개의 형상만을 그대로 양각한 등재기념비를 건립했다. 1천년 전(1022년)에 세웠을 것으로 추정되는 의견비(비 전면에 승천하는 개형상만을 새김)와 대비하면 ‘1천년’이라는 장구한 세월이 실감나는 장면이다. 그러니 윤 박사의 오수개 사랑이 남달리 깊었을 것은 당연한 일. 수십 년만에 방문한 방문한 소감을 한마디로 ‘격세지감’이라고 했다. 상경하는 열차 속에서 고려초 설화가 아닌 실화였을‘견분곡’의 노랫말을 생각했으리라. 반려인이 아니더라도 의견을 기리는 이 시 한 편을 읽다보면 금세 감정이입이 되지 않은가. 그 까닭은 아마도 때론 개만도 못한 ‘만물의 영장’들이 많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 읽은 『때로는 개가 사람보다 낫다-개를 사랑한 조선사람들』이라는 책도 떠올랐다. 책 제목이 ‘때로는’이 아닌 ‘아주 많이’라 해야 맞지 않나, 혼자 생각을 해보았다. 이제는 정말 시대가 변해, 우리의 일상에서 애완을 넘어선 반려동물(반려새 포함), 반려식물과의 생활을 떼래야 뗄 수 없게 되었다고 보인다. 반려동물 인구가 1500만여명이라고 하지 않은가. 노랫말이 전해 오지 않은 견분곡을 우리말로 복원(?)하고 재탄생시킨 한 수의학자의 오수개에 대한 속깊은 애정이 더욱 고마웠다.
최영록<오수개연구소 홍보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