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저의 100시간>이라는 책이 있다.
<아사히신문> 기자가 3·11 대지진 직후부터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의 사고대책통합본부가 세워질 때까지 100시간 동안 사태 수습을 지휘했던 총리 관저에서 벌어진 일들을 세밀하게 기록한 책이다.
어느 정도 짐작은 했지만, 이 책은 믿기 어려운 사실들로 빼곡하다.
이를테면 사고가 발생한 지 7시간이 지나도록 도면이 없어서 현장에 몇번 가본 원자력안전위원장의 오래전 기억에 기대어 상황을 추측하는 대목은 평범하다.
원전의 수소폭발 가능성을 총리가 물으니 원자력안전위원장은 처음에는
‘그럴 가능성은 없다, 수소는 없다’
고 하다가, 좀 있으니
‘수소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고 하다가, 결국 텔레비전 뉴스로 폭발을 알게 된다.
정전으로 원자로 냉각계통이 상실되어 급히 발전차를 투입해야 할 상황이 있었다. 그 일을 누가 했을까.
간 나오토 총리가 직접 전화통을 붙들고 각지의 발전차량을 수배하여 노트에 기록하고 있었다.
‘일개 말단 직원이 해야 할 일’을 한 나라의 수장이 하는 모습을 보며
‘나라 꼴이 이게 뭔가 싶어 오싹했다’고 당시 상황을 참모가 회상한다.
그런데 점입가경은 그다음이다.
발전차를 구해 왔지만 발전차에서 원전까지 연결할 케이블이 부족해서 발전차는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관저에 와 있던 전문가들은 이미 의식 자체가 ‘멜트다운’된 뒤여서 당최 입을 떼지 않았기 때문이다.
믿고 의논할 만한 상대를 찾을 수 없었던 총리는 도쿄공업대 시절 학생운동의 동료였던 친구를 삼고초려 끝에 직접 관저로 불러 자문을 맡긴다.
그의 전공은 컴퓨터공학이었다.
사태가 더욱 악화되자 도쿄전력은 본심을 드러내기 시작하는데, 그건 다름 아니라 ‘후쿠시마 철수’였다.
화가 난 총리는 도쿄전력을 직접 찾아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여러분은 당사자입니다. 목숨을 거세요. 돈은 얼마가 들어도 좋습니다.
일본이 무너질지도 모르는 이때, 철수는 있을 수 없습니다.
60살 이상이 현지에 가면 됩니다. 나는 그런 각오로 하겠습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일본뿐 아니라 동북아 전체가 결딴날 수도 있었을 아찔한 상황을 이만큼이라도 수습한 것도 그나마 총리 한 사람이 팔을 걷어붙이고 상황을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세월호 사태 당시 이 나라의 컨트롤타워를 떠올리게 된다.
후쿠시마 사고는 그나마 ‘관저의 100시간’을 분 단위로 세밀하게 기록한 자료라도 있다.
그러나 이 나라에서는 대통령이 사고 당일 7시간 동안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아무도 모른다.
세월호가 사고 당시 급속하게 변침한 29초간의 항적도도, 탈출한 세월호 선장을 재웠던 경찰관의 아파트 폐회로티브이(CCTV)도 삭제되어 있다.
세월호와 진도해상교통관제센터(VTS)의 교신기록은 조작 의혹을 받고 있다.
무엇 하나 밝혀진 게 없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길거리에서 교복 입은 아이들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겠다’
는 방송인 허지웅씨의 말을 존중한다.
내 마음이 그렇고, 이 나라 필부들의 마음이 지금 그렇다.
머리를 깎고 거리에서 투쟁하는 유족들의 몸부림을 지켜보는 일이 너무 괴롭다.
간 나오토 총리는 2011년 8월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그는 자신의 퇴임을 조건으로 야당과 협상하여 재생에너지법을 통과시켰고, 일본 전역에서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는 붐이 일었다.
대통령에게 간 나오토를 닮으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인간 자체가 근본적으로 다른 것 같기 때문이다.
대통령에게 벼룩의 간만큼이라도 ‘인간의 품위’를 주문하고 싶다.
4월16일 비행기 타고 유유히 떠나는 대통령의 모습을 상상하니 화가 나고 분해서 미칠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