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경남(PK)과 호남 지역이 이번 대선의 최대 전략지역으로 급부상했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한 곳은 새누리당의 안방이었고, 다른 한 곳은 민주당의 ‘심장’이었다. 그런데 이제 여당은 PK를 걱정하고, 야당은 호남 때문에 안절부절이다.
제주 해저터널, 민주당 '대선후보 만들기' 위한 발악?
민주당의 호남이 더 심각하다. 민주당 간판을 내건 후보가 호남에서 무소속 후보에게 밀리는 초유의 ‘기현상’을 접하게 된 민주당의 당혹감이야 오죽하겠는가. 게다가 단일화도 앞으로 2주 정도가 고비다. 민주당에게는 돌아선 호남 표심을 돌리는 게 무엇보다도 절실한 상황일 것이다.
‘민주당 대선 후보’를 내 제1야당으로서의 체면을 살려보려고 발악하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드러내는 일이 벌어졌다. 민주당 이용섭 정책위의장은 7일 오전 전남 광주시의회에서 “목포에서 제주까지 해저 터널을 뚫으면 광주와 전남, 제주의 관광ㆍ물류 시너지를 제고할 수 있다”고 말했다.
언론은 ‘제주 해저터널’을 민주당의 대선공약이라고 보도했다. 그도 그럴 것이 코앞에 대선을 두고 정책위의장이 공개석상에서 한 발언 아닌가. 대선공약으로 여겨지는 게 당연하다. 또 민주당의 다른 관계자도 “해저터널이 완성되면 낙후된 호남권의 지역발전을 촉진하고 제주도를 국제자유도시로 육성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말 민주당 주장대로 제주-목포 해저터널이 건설되면 호남과 제주 모두에게 좋은 결과를 안겨 줄까? 일단 전남도 입장에서 보면 매력적인 사업일 수 있다. 최소한 목포부터 보길도까지 KTX 운행이라도 가능해질 테니 말이다.
전남에게는 플러스, 제주도에게는 마이너스
제주도에게는 어떨까? 해저터널이 만들어지면 민주당 주장대로 관광이 촉진되고 국제자유도시로 발전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입도할 수 있는 편리한 교통수단 하나가 더 추가돼 내국인 출입은 다소 많아지겠지만 제주도 산업기반의 주축인 관광산업에는 오히려 마이너스가 될 수 있다는 주장과 근거가 많다.
제주도의 관광관련 산업 비중은 지역내 총생산액(GRDP)의 22.8%에 달해 농수산업과 함께 지역경제를 지탱하는 중요한 축이다. 해저터널이 제주도 지역경제에 도움이 되려면 무엇보다도 제주 관광산업에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
제주를 찾는 관광객은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2011년 입도 관광객수는 내국인 796만4천명, 외국인 104만5천명 등 모두 873만9천명에 달했다. 수적으로는 이미 포화상태나 다름없다. 제주도 면적은 1,825㎢로 유명 관광지인 하와이(16,729㎢)의 1/9밖에 되지 않지만, 관광객수는 하와이(728만명/2011년)보다 150만명 정도 더 많다.
제주 관광객, 수적으로는 ‘포화’ 질적으로는 ‘낙후’
하지만 제주 관광산업은 경쟁력과 질적인 측면에서 볼 때 아직 낙후된 부분이 많다. 수적으로는 최고 수준이지만 질적으로는 형편없는 상태다. 제주도의 관광수입은 3.4조원(2010년). 관광객수가 훨씬 적은 하와이(12조9천억원)와 대만(10조1천억원), 오키나와(5조3천억원)에 비해 훨씬 적다. 관광산업의 경쟁력과 질적 수준을 말해주는 관광객 1인당 소비지출액이 현저하게 낮기 때문이다.
방문 관광객 1인당 소비지출을 비교해보면 제주도의 경우 평균 45만원 정도로 하와이(182만원)의 24.5%, 대만(181만원)의 24.7%, 오키나와(93만원)의 48%의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내국인 관광객과 외국인 관광객의 소비지출도 크게 차이가 난다. 내국인일 경우 1인당 소비지출액이 44.7만원 불과하지만, 외국인의 경우 국적에 따라 적게는 76.4만원에서 많게는 216.5만원에 달한다. 외국인이 2배에서 5배 더 많은 돈을 쓰고 간다는 얘기다.
외국인 관광객수를 늘리는 것도 제주 관광산업의 질적 향상에 크게 도움이 된다. 제주발전연구원이 2011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외국인 관광객(2011년 현재 104만명)이 200만명으로 늘어날 경우 3.5조원의 생산유발효과와 1.8조원의 부가가치유발효과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해저터널, ‘섬’에서 ‘육지화’로 제주 정체성 상실
제주 관광산업을 발전시켜 지역경제에 획기적으로 도움이 되게 하려면 국내 관광객수를 늘리는 것보다 고부가가치 관광상품 개발과 관광서비스를 개선하는 일이 시급다. 경쟁력을 강화와 영세 관광업체를 대상으로 공동사업 모델을 구축하는 등 관광산업의 구조조정도 필요하다.
해저터널이 뚫린다면 그 효과는 어떨까? 외국인 관광객들이 해저터널을 이용해 제주를 찾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 일본, 중국, 대만 관광객들이 간편한 직항 항공기를 포기하고 비용과 시간의 증가를 감수한 채, 인천공항에 내려 다시 KTX로 갈아타고 입도할 가능성은 많지 않아 보인다.
내국인 관광객 수는 늘어날 것이다. 이를 위해 천문학적 비용을 쓸 필요가 있을까? 전남도와 호남표가 절실한 민주당 입장에서는 그럴지 몰라도 제주도 입장에서는 되레 손해 볼 게 많다. 제주도의 ‘육지화’로 ‘섬’이라는 정체성이 약화돼 제주 관광의 국제적 가치가 저하될 수 있다. 또 해저 자연환경 훼손도 심각할 것이다.
바닷길로도 충분하다. 최근 해상여객선의 고속화와 KTX와의 연계 크루즈프로그램이 등장하며 해상교통 이용이 크게 느는 추세다. 1998~2010년 동안 연평균 15.8%라는 높은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제주관광산업 근간 ‘숙박요식업’에겐 ‘빚 좋은 개살구’
오히려 내국인 관광객수의 증가가 제주 관광산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육상교통수단이 가능해지면 이들이 입도해서 머무는 시간이 크게 짧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제주 관광산업 가운데 해당 산업의 생산물이 여타 산업에 미치는 영향의 정도를 나타내는 ‘전후방연계효과’가 높게 나타나는 분야가 숙박업, 음식점업, 여가관련서비스업, 부동산업 등이다.
천혜의 자연조건을 갖춘 곳이 제주도다. 관광객이 입도해서 오래 머물 수 있는 자연적 조건은 마련된 셈이니 투자전략과 정책이 뒷받침된다면 관광 제주의 위상과 질을 크게 높일 수 있다. 호텔에 하루라도 더 묵고, 한 끼라도 더 사먹도록 유도하는 전략이 이미 포화상태인 제주 관광객수를 늘리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
해저터널이 뚫려 목포까지 40분, 서울까지 2시간 30분이면 가능해진다면 어떤 현상이 일어날까. 2박3일의 여정이 1박2일로 줄어들 테고, 당일치기 주말 제주여행이 성행할 것이다. 해저터널 덕분에 제주 관광이 더 활성화될 것이라는 얘기는 뭘 모르고 떠드는 헛소리에 불과하다. 좋은 예가 있다.
대전에 정부청사가 들어선다고 하자 인근 상인들은 지역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기대에 부풀었다. 청사 인근 점포 임대료가 천정부지로 올랐다. 하지만 서울까지 50분이면 충분한 KTX가 운행되면서 상인들의 기대는 물거품이 됐다. 점심은 구내식당에서 해결하고, 퇴근시간이 이른 공무원이다 보니 6시 KTX를 타면 서울 집에서 저녁을 먹을 수 있다. 주말 쇼핑은 당연히 서울에서 한다. 결국 지역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는 거의 전무했다.
▲제주도의 경우
터널보다 관광인프라에 투자해야
관광객 1인당 소비지출을 늘이려면 관광과 의료 등 타산업의 연계, 포괄적 전시컨벤션산업(MICE)과 고부가 관광서비스 산업 육성 등에 정부의 전략적인 투자가 필요가 필요한 상황이다. 이곳에 돈을 쓰는 것이 터널을 뚫는 것보다 효과적일 것이다.
필자가 지적한 문제들을 민주당이 모를 리 없다. ‘상식’에서 벗어난 공약이 크게 논란이 되자 몇 시간만에 말을 바꿨다. 이용섭 정책위의장은 “공약으로 포함시켜달라는 건의가 있어 현재 검토단계”라며 “국민 의견을 수렴하고 타당성과 환경영향, 경제 효과 등을 종합해 추후 공약에 포함시킬지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뒤가 맞지 않는다. 국민의견 수렴과 타당성 검토... 정치인들이 제 입으로 한 얘기 때문에 궁지에 몰리면 의례히 내뱉는 말이다. 광주시의회에서는 제주 해저터널 건설을 마치 대선공약인 듯 말하다가 시끄러워질 것 같으니 ‘검토 단계’일 뿐이라며 뒤로 물러선다.
논란 일자 말 바꾼 민주당, 그래서 구태정당
민주당의 해저터널 주장은 ‘호남 선심성 정책’일 뿐이다. 국토해양부가 올해 해저터널에 대한 타당성을 조사한 결과 비용 대비 편익성을 분석한 편익비용(B/C)이 1 미만인 0.78로 나와 4대강 토건이나 한강뱃길 사업처럼 사업 타당성이 크게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푸근한 고향집이자 따뜻한 아랫목으로 영원이 함께할 호남이라고 생각했던 호남민심이 갑자기 돌아서자, 결국 빼든 카드가 ‘제2의 4대강사업’에 불과한 제주 터널이란 말인가? 민주당 역시 MB정권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제대로 보여준 셈이 됐다.
이러니 정치권 전반에 대한 불신이 팽배한 거다. 국민과 국가를 위해서 일하기보다 당장 표 몇 장을 위해 발을 동동 구르는 정당과 정치인은 국민에게서 멀어져야 한다. 이게 바로 정치혁신이다. 민주당도 혁신의 대상일 뿐이다.
(데이터 및 그래프 출처: 제주발전연구원, 한국은행 제주본부)
출처 http://v.daum.net/link/36266032?&CT=C_P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