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 어페어 (Love Affair)
1939년 미국영화
제작, 원안, 연출 : 레오 맥케리
각본 : 델머 데이비스 외 1
촬영 : 루돌프 마테
출연 : 아이린 던, 샤를르 보와이에, 마리아 오스펜스카야
리 보우맨, 애스트리스 앨윈, 모리스 모스코비치
스카티 베켓
미국의 레오 맥케리 감독은 1939년 '러브 어페어'라는 영화를 연출했습니다. 당시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인 뉴욕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서 만나기로 약속한 남녀의 어긋난 사랑을 다룬 촉촉한 멜러드라마였습니다. 이야기 원안을 구성했고 직접 제작까지 했으며 연출도 한 것입니다.
이 작품은 1957년 'An Affair To Remember (한국 개봉병은 '잊지 못할 사랑')' 으로 리메이크 되었는데 레오 맥케리 감독이 직접 다시 연출했습니다. 배우들은 바뀌었고 흑백 영화에서 칼라 영화로 변했죠. 불과 19년만에 자신의 영화를 직접 리메이크 한 것입니다. 그리고 1994년 워렌 비티와 아네트 베닝 주연으로 다시 '러브 어페어'라는 이름으로 리메이크 되었습니다.
레오 맥케리 감독이 직접 스토리를 구상한 이 작품이 이렇게 3차례 영화화되었습니다. 1939년이 오리지날이죠.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57년 작품과 94년 작품만 많이 알려졌었습니다. 57년 작품은 할리우드 스타가 된 영국 출신 두 배우 캐리 그랜트와 데보라 커 주연으로 두 톱스타의 공연이었던 만큼 개봉당시 인기를 모았고 TV, DVD 등으로 출시되면서 꾸준히 인기를 모았고 94년 버전역시 90년대 로맨스 영화로 기억에 많이 남겨진 작품이 되었습니다. 39년 작품은 알려지지 않았죠.
2000년대 이후 많은 고전영화가 번역되고 출시되고 그러면서 1939년 영화도 드디어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일 먼저 만들어진 원전을 제일 나중에 보게 된 것인데 프랑스의 캐리 그랜트 라고 할 수 있는 샤를르 보와이에와 미국 여배우 아이린 던이 함께 공연했습니다. 샤를르 보와이에야 워낙 유명한 배우였는데 아이린 던의 경우는 우리나라에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습니다. 그럼에도 이후 리메이크 된 영화들의 원전에 출연한 여배우라는 특징이 있습니다. '왕과 나'의 원전인 '안나와 샴왕' 도 있고 50년대 칼라로 만들어졌던 '쇼보트'의 원전에도 출연했고 역시 60년대 글렌 포드 주연으로 만들어졌던 '씨마론'의 원전에 등장했습니다. 즉 그녀가 출연한 흑백영화들이 나중에 칼라로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서 리메이크 된 것입니다.
레오 맥케리 감독의 오리지날 '러브 어페어'의 경우 직접 리메이크 한 57년 영화와 비교하면 어떨까요? 94년 영화야 워낙 많은 간격을 가졌으니 논외로 치고 57년 영화와 비교한다면?
결론부터 말하면 너무 똑같습니다. 이 궁금했던 원전을 보고 나니 결론은 흑백에서 칼라로, 배우의 교체 외에는 정말 큰 의미가 없을 정도로 똑같습니다. 심지어 배우의 분위기도 비슷해요. 바람둥이 이미지의 샤를르 보와이에와 캐리 그랜트, 지적인 분위기의 촬영당시 30대 여배우였던 아이린 던과 데보라 커, 심지어 두 배우는 '왕과 나' 원전과 리메이크 작품에도 각각 주인공이었습니다.
배우의 분위기만 비슷한 게 아니라 영화의 구성도 너무나 비슷합니다. 스토리는 똑같고 장소의 세팅, 설정, 분위기, 카메라 위치 까지도 거의 흡사한 느낌입니다. 중간에 할머니를 만나러 정박한 장소까지 똑같은 세트이고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까지 똑같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초초해 하는 모습도 똑같고 연인과의 재회가 불발된 뒤 할머니가 있던 곳에 방문하여 피아노 앞에 하염없이 서 있던 장면도 비슷하고 간판을 그리던 배경도 비슷합니다. 같은 감독이 만들었다고 하는 걸 알려주고 싶었던 느낌이 들 정도로 모든 게 비슷합니다.
그럼에도 오랜만에 다시 접하는 이 유명한 원작의 스토리만 뻔히 알면서 따라가는 게 재미가 있습니다. 그만큼 단순하면서도 애틋한 이야기죠. 애틋한 이야기를 신파적으로 엮지 않고 제법 경쾌한 느낌으로 엮은 것도 두 영화가 비슷하고.
샤를르 보와이에는 아주 심각한 표정으로 영화에 출연할 때도 있는데('사막의 화원' '허무한 사랑') 이 영화에서는 캐리 그랜트와 비슷하게 경쾌한 연기를 합니다. 57년 영화와 다른 건 설정을 프랑스인으로 했다는 것, 프랑스의 한량 미셀로 등장합니다. 미셀은 제법 유명한 인물이고 여성들에게 인기가 있는 한량 바람둥이 입니다. 미국의 돈 많은 여인 로이스 클라크와 결혼할 예정으로 배를 타고 여행중에 우연히 테리(아이린 던)라는 여성을 만나고 두 사람은 서로 이끌리며 배에서의 8일 동안 사랑에 빠지죠. 내릴 때 두 사람은 각자의 연인과 헤어지고 6개월 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꼭대기에서 재회하기로 약속합니다. 6개월이나 기다리는 이유는 한량처럼 살던 미셀이 마음을 잡고 일자리를 구해서 정착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죠. 6개월 뒤 미셀은 들뜬 마음으로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 오지만 그를 만나려고 서두르던 테리는 교통사고로 쓰러지고 하반신 장애를 얻게 됩니다. 이런 걸 모르는 미셀은 테리를 오해하게 되죠. 미셀은 그림을 열심히 그리고 크리스마스 전날 우연히 극장에서 둘은 재회하지만 미셀은 가벼운 인사만 하고 쌀쌀맞게 가버립니다. 미셀이 그린 그림 중 가장 마음에 들어한 그림, 테리의 모습을 그린 그림을 더 이상 가지고 있을 의미가 없어서 중개인에게 처분하라고 하고 다리가 불편한 여인이 와서 갖고 싶어하길래 주었다는 말을 듣습니다. 크리스마스날 미셀은 전화번호부에서 테리의 주소를 알고 불쑥 찾아옵니다. 처음에는 일어서지도 않고 앉아서 자신을 맞이하는 테리에게 다소 냉정하게 대화를 나누다가 그 집에서 그림을 발견하고 테리의 사연을 비로소 알게 되고 둘은 뜨겁게 포옹을 합니다
크리스마스에 어울리는 영화이기도 하고 고전 로맨스 영화로 볼만한 작품입니다. 그리고 유명한 두 영화의 원전이라는 사실도 흥미롭지만 나나 무스쿠리의 노래로도 유명한 '사랑의 기쁨'이 두 번이나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사실 '사랑의 기쁨'이라는 노래는 과거 데보라 커 주연의 '차와 동정'이라는 영화의 주제곡으로 영화옴악 시간에 많이 소개되었는데 그 영화속에서 '사랑의 기쁨'이 등장하는 건 남자주인공 존 커가 기타를 치면서 잠시 흥얼거리는 장면 정도입니다. 오히려 '러브 어페어'에 좀 길게 등장합니다. 실질적으로 '차와 동정'이 아닌 '러브 어페어'의 주제곡이라고 보는 게 맞죠. 이렇듯 고전 영화들을 하나 하나 찾다 보면 기존의 잘못된 정보나 인식을 바로잡게 됩니다. '차와 동정' 보다 17년이나 먼저 영화속에서 비중있게 쓰인 것입니다. ('차와 동정'에 데보라 커가 주이공이니 아이린 던과 데보라 커의 연관성은 참 많네요)
1939년 작품인데 세계 영화 역사상 할리우드에서 가장 완성도 높은 영화들이 많이 만들어진 해가 바로 1939년입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위시하여 '오즈의 마법사' '폭풍의 언덕' '노틀담의꼽추' '브룩휠드의 종' '사랑의 승리(베티 데이비스 출연작)' '생쥐와 인간' '역마차' '스미스씨 워싱턴에 가다' '포효하는 20년대' 등등, 이 한해 할리우드가 미친듯이 수작들을 계속 배급한 것입니다. '러브 어페어' 역시 아카데미상 6개부문 후보에 올랐으나 이 후덜덜한 영화들과 경쟁해야했고 더구나 '바람과 함께 사리지다'가 여러 부문을 싹쓸이해 가던 해라서 수상은 하나도 못했습니다.
듣기만 했던 '러브 어페어' 원작을 직접 보게 된 것이 의미있는 감상이었고 더구나 이 작품은 16mm 만 존재하다가 32mm 가 발견되어 2019년에 4K 로 리마스터링 되었습니다. 고화질로 볼 수 있게 된 것이 볼과 4년인 따끈한 영상이지요. 57년, 94년 작품과 비교할 때 오래도록 묻혀있다 빛을 본 작품인 셈이고, 특히 2010년대 이후 고화질로 리마스터링되고 블루레이 출시되는 고전영화들이 부쩍 증가했습니다. 정말 행복한 시대를 살고 있고 이런 시대가 올 줄은 20세기에는 전혀 몰랐습니다.
ps1 : 아는 사람은 아시겠지만 이 영화에서 남자주인공과 결혼하기로 한 돈 많은 여인의 이름이 로이스 클라크인데 슈퍼맨의 남녀 주인공 이름을 이 이름에서 각각 따온 것입니다.
ps2 : 1930년에 기공된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은 정말 신기합니다. 곧 100주연을 맞게 되겠네요. 1930년대에 100층이 넘는 빌딩을 지을 생각을 했고 지금까지도 잘 운영되고 있다니....
ps3 : 3번 만들어진 것 외에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에도 영감을 준 작품입니다.
ps4 : 자신의 작품을 스스로 리메이크한 감독들이 드물게 있죠. 윌리암 와일러가 '1936년 흑백영화 '이 세 사람'을 '아이들의 시간'으로 60년대에 똑같이 흑백으로 리메이크 했고 알프레드 히치콕도 '너무 많이 아는 남자(33)' 를 50년대에 칼라로 '나는 비밀을 안다'로 리메이크 했죠. 윌리암 와일러의 경우는 30년대 검열 문제로 표현을 못해 동성애를 남녀간 로맨스로 바꾼 아쉬움을 60년대에 원 스토리로 리메이크 한 것이죠.
ps5 유명한 곡 '사랑의 기쁨'이 등장하는 장면입니다. 두 장면입니다.
[출처] 러브 어페어 (Love Affair, 39년) 유명 멜러영화의 오리지날 원전|작성자 이규웅
첫댓글 '잊지 못할 사랑'으로 개봉된 1957년 필름
캐리 그랜트와 데보라 커 주연이지만 제목은 원제보다 더 멋지고 아름답다.
한데 이 제목은 국내에서 붙인 게 아니라 일본에서 '잊지 못할 사랑'이라고 불렀다.
이유는 그 시절 모든 외국영화는 일본에서 수입해 상영하는 게 다반사라서 제목 역시 그대로 사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