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은 깨어났다.
눈을 깜박였다. 태양이 지고 있다.
`여기가 어디지?'
벌떡 일어서려는 순간 머리가 어지러웠다.
`뭐지? 내가 왜 여기있지?'
잠시후, 소년의 입에선 비명이 터져나왔다.
"아무것도 안 입고 있잖아!"
다행히 초저녁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이곳 숲 부근엔 아무도 없었다.
가슴까지 내려오는 긴 파란머리카락. 깊은 바다를 더올리게 하는 진한 청색눈이 인상적인 이 소년은 잠시 혼란스러워졌다.
`내가 .. 누구더라?'
자신의 존재에 대해 자신이 잊어버린 것이다. 이름이 뭔지, 나이가 얼마인지, 사는 곳이 어디인지...문득 옆을 보았다. 막 나타난 달빛에 무엇인가 반짝거린다.
`이거 칼 아냐?'
칼 치고 상당히 가벼웠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역시 아무도 없다.
`이거 설마 내거 아냐?'
하지만 기억이 나지 않는다. 자기 자신에 관해선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검을 들어 자세히 보았다. 손잡이부터 검 끝까지 마치 유리로 만든 것처럼 투명했다.둥근 손잡이에 양쪽으로 돌출된 손보호대 사이에 투명하고 큼직한 다이아몬드같은 한 개의 보석이 달빛에 반짝였다. 검날에는 이상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자세히 보려는 순간,
"까아아아아!!"
깜짝이야!!
`뭐냐 저 여자앤, 거무스름한(어두워서 그런가?) 망토 둘러쓰고 몬스터보듯 보지 말란 말이다! 소리지를 정도로 무서우면 빨리 도망이나 가지 뭘 저리 뚫어지게 보고있냐구!'
"아차!"
(아무것도 입지 않았었다.) 소년은 얼굴이 새빨게진채 재빨리 가리고 소리쳤다.
"보지마!!"
여자아이는 도망가지 않고 나무뒤로 숨었고 소년은 풀숲으로 뛰어들었지만 무엇을 할지 몰랐다.
`잎으로 둘러버려?'
그때 여자아이가 또 비명을 질렀다.
"꺄아아! 사람살려요!"
나무뒤에 숨는다는 것이 그만 나무뒤에 있었던 마물(몬스터)을 밟아버린 것이다.
여자아이의 오른쪽 발에 달라붙어 있는 몬스터는, (정확히 표현하자면 여자아이는 자신이
밟았으면서 발을 빼내지 못하고 있었다.)
`슐러그!'
슐러그는 지름 60cm에서80cm의 둥근 엎어놓은 녹색푸딩모양의 몬스터이다. 온순하나 먼저 공격받을 경우 반격한다. 공격패턴은 상대에게 달라붙은 위 체액을 내어 상대를 녹여버린다.
스피드는 그리 빠르지 않지만 그 체액은 청동검을(시간이 걸리긴 하지만) 녹일 정도인데 저 여자아이의 발이 녹는 것은 당연지사. 그보다 큰일은 언제 더 위험한 몬스터가 나타날지 모르는 숲 근처에서 저놈에게 마냥 붙잡혀 있을수는 없다는 것이다. 소년은 왼손으로 가리고
오른손으로 검을 들고 뛰어갔다. 포즈는 상당히 우습지만 지금은 긴박한 순간이다.
그대로 한칼에 몬스터를 베어버리면 정의의 나이트역할을 해낼 수 있었건만 아뿔싸! 미끄러져 엎어져 버렸다. 더욱 기가막힌 것은 놓쳐버린 칼이 여자아이 머리위의 굵은 나뭇가지에 부딪혀 방향을 튼채 곧장 여자아이의 머리위로 떨어져 내리는 것이다. 여자아이는 비명
도 못 지르고 눈을 감아버렸다.
"...?"
소녀는 눈을 떴다.
검은 우연히도 소녀의 머리는 물론 발과도 아슬아슬한 간격을 둔채 슐러그의 급소인 정중앙에 박혀있었다.슐러그는 투명한 액을 쏟아내며 쪼르라들었다.
"...어쨌거나..고마워..너 이 근처에 사니?"
"...아니."
"이름이 뭐야?"
그러고 보니... 왜 저 쓸데도 없는 몬스터에 대해선 알고 있으면서 정작 자신에 대해서는..
"몰라."
소녀의 이름은 카트린.
이곳은 헬디온 제국의 텔트리온 산맥 부근의 숲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텔트리온 산맥은 어느곳에도 속하지 않은 중립이었다. 이곳은 드래곤의 서식지이기 때문이다. 특히 썬더드래곤의 서식지이며 텔트리온은 썬더드래곤의 최고 연장자인 `썬더 텔트리온'의 이름임을 사람들은 알았고 몇천년간 그렇게 지칭되어 왔다.
카트린은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친척집에 갔다오는 길이었다
"... 아무것도 기억 안난다면 집도 모르겠네? 우리집으로 갈래? 너..아.. 이름이 없으니까 불
편하다. 카틴이라고 불러도 돼?"
"카틴? 왜?"
"내가 옛날에 굉장히 좋아하던 갈색 고양이인데 죽어버렸어..."
`... 다행이군 어디로 가야할지 막막했는데.. 그나저나 이 검, 성능이 좋은걸...' 안듣고 딴 생각하는 카틴이었다.
짙은 푸른빛의 눈썹에 (어두워서 어렴풋하지만)신비한 청색빛눈, 하얀얼굴에 하얀달빛이 반사되는 것을 보며 카트린은 얼굴이 빨개졌다.
`하지만 웃기단 말야.'
카틴의 허리엔 앞치마가 옷대용으로 감겨져 있었다. 카트린이 빌려준 것이지만...
"카틴은 몇 살이야? 아..모르지..내가 보기엔 17살 정도로 보여. 키가 그 나이또래정도인데?
나 그 검 만져봐도돼? 예쁘다..보석같아! "
`카틴은 나이트의 아들이 아닐까..'
카트린이 이런 상상의 날개를 펼칠동안
`..계속 한 집에 빈대붙을 순 없고..나 아는 사람 만날때까지 ..차라리 오우크가 마법을 하길 바라지(아주 가망이 없다는 속담이다.).. 돈은 한 푼도 없고...신발도 없이 걸어서 발아파 죽겠다..'
소녀의 마음은 안중에도 없고 걱정만 태산같은 눈치없는 카틴이었다. 생각할건 다 하면서도 정작 자신에 관한 것은 마을, 심지어 어느나라출신인지도 기억하지 못하는 자신이 새삼 원망스러운 카틴이었다.
한참 좌로우로 골목을 돈 뒤 `드래곤 루어'란 술집 뒤편에 도착했다. 다행히 밤이라 앞치마차림의 카틴을 본 사람은 얼마 없었다.
" 여기야. 조금 시끄럽긴하지만. 아빠한테 들키면 안되니까 잠시 여기서 기다려."
`이건 조금이 아니라 상당히 시끄러운걸.'
대강 씻고, 카트린이 준 옷을 입으니 점차 안정되었지만 눈을 감을 수가 없었다. 카틴은 이미 깨끗이 닦아놓은 자신의 검을 바라보았다. 자신에 대한 유일한 단서... 달빛이 검신에 부서져 내린다. 1층에서 싸우는 소리, 술잔 부딪히는 소리, 노랫소리가 들렸다.
"...엄마는 결국 돌아가셨어. 빚만졌지. 아까 할머니네도 물건을 빌리러 갔다온거야. 팔아서 돈을 마련해야 하잖아. 엄마가 돌아가신 후로 아빠는 많이 예민해 지셨어. 밤엔 꼼짝말고 여기 있어야 돼. 내려가면 술잔에 머리맞아..."
카틴은 맞은편 침대의 갈색 단발머리 소녀를 쳐다보았다.
(동정할 처지가 아니긴 하지만) 자신은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다.
카틴은 눈을 감았다.
`우선.. 자야지.'
2화. 제국의 밤
게르니안 남부,북부내전 접전지대 동남쪽.
"서쪽에서 나이트5번부대가 전멸했다면서? 나이트커맨더 알콘경조차 전사했대."
"빌어먹을 코노흐프란 마법사놈! 마법에 미친놈이라며?"
"우리 서포터즈(마법사 부대)는 꿩궈먹었어? 뭐하고 있냐고!"
"...아무리 적이긴 하지만...그는 세계7대 대마스터중 한 사람이야. 게임이 안돼는건 당연해..'
"제길..숫적으로 우리 남부가 더 유리했는데.."
게르니안 남부. 임시수도 골가. 총통관저.
"총통각하,형세가 너무 불리합니다. 대마스터나 소드마스터도 없이 대마스터의 지원아래 있는 저들에게 대적하는 것은 자살행위입니다."
"할 수 있는데까지 해 봐야지 않소."
나이트커맨더 데이 경이었다. 순간 컴포지션°커맨더 플로우 경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그대의 귀엔 비명소리가 들리지도 않소! 저 개죽음 당하는 병사들의!!"
총통 제르크는 손을 떨며 일어섰다.
"그렇다면..."
컴포지션: 가창법사들로 이루어진 부대를 일컬음. 전쟁에서 주로 부상병의 치료를 담당한다.
게르니안 남부,북부내전 접전지대 서남쪽.
"라이트닝 볼트!"
밤하늘에 낮으로 착각할 정도의 파란색 섬광이 번쩍였다.
"으아아..."
콰콰콰콰쾅
눈앞에 존재하던 것은 모두, 비명소리 마저도 사라져 있었다. 병사들의 시체로 덮였던 곳은 구덩이만 남기고 사라졌다.
"하하핫, 반란군놈들아, 맛이 어떠냐!"
도망치는 남부군을 갑옷째 베어버리며 세이아 경은 비웃었다. 검에 흐르는 피 사이로 푸른 검기가 내비쳤다.
세이아 경이 이끄는 나이트부대의 중앙에 앉아있는 왼쪽눈에 검은 안대를 한 옅은 입술의 남자. 오른쪽 눈의 눈빛이 없는 왼쪽을 대신 하기라도하듯 날카롭다.
"코노호프 님, 이제 이곳에 남부 나이트커맨더와 서포터즈는 전멸했습니다."
"나도 알아. 마나의 흐름이 느껴지지 않으니 당연한 것 아닌가."
"아..네;; 그럼 진격을.." 그린데일이 말을 마치기전 세이아가 코노호프에게 황제의 호출을 알렸다.
게르니안 북부. 수도 겔론. 황제 게르니안3세의 회의실.
"코노흐프, 남부의 대사가 왔었네."
황제는 직접 코노흐프에게 술잔을 권하며 말을 이었다.
"상황은 어떤가?"
"이제 두 번만 공격하면 남군은 전멸입니다."
"하하핫, 역시 대마스터인 자네의 공이 크군. 휴전요청이 있었네. 매달 조공을 바치겠다는 조건으로."
"최후의 발악 직전이군요."
"처음으로 행복한 고민을 해 보는군. 자네의 의견은 어떤가?"
"...진격입니다."
황제는 만면에 웃음을 띄었다. 침 흐르겠다...
"두 곳의 싸움은 자네가 개입할 만한 것인가?"
전쟁에 언제나 파란은 존재한다. 코노흐프는 신중히 생각한 뒤 말했다.
"저 없이도 저희의 전력으로 충분하리라 생각됩니다만."
"잘됐군. 반란군 본거지인 골가를 함락한뒤의 일을 지금 자네와 의논하는 것이 좋겠군. 어떤가? "
"저로서도 다행입니다. 며칠간 5단계이상의 스펠만 난발했더니 상당히 피곤하군요."
"이제 사전에서 공화정이란 말을 지워야겠군. 크하하핫..컥..캑..물좀.."
"......;"
아젤반. 수도 에펜젤. 황제 아젤반2세의 접견실.
아젤반2세황제 앞에 머리가 조금 벗겨져 번쩍거리는 중년 노신사가 비굴할 정도로 땅에 얼굴을 박고 조아리고 있었다.
"....조공을 바치는 대신 자치령을 인정해 달라..."
짧은흑발의 30대중반정도의 남자가 멍하니 창밖의 별을 보며 중얼거렸다. 중년이라면 아랫배가 나왔음직도 하다만, 군살이라곤 없다. 섬세한 손가락에 칫솔모 모양의 콧수염이 인상적이다.
"게로니안 남부도 어지간히 급했던 모양이군요."
맞은편의 깔끔하게 생긴 20대후반정도의 남자가 웃음을 띠며 말했다. 살짝 흘러내린 금발의
앞머리. 부드러운 얼굴선에 반해 체격은 건장하다.
황제 아젤반은 여유롭게 그들의 의견을 기다렸다.
`이럴수록 통치자다운 행동을 보여야지..그렇지만..이게 웬 떡이냐..'
포커페이스. 역시 제국의 황제 다웠다.
잠시 멍하니 생각하던 흑발의 남자 카일은 파트너 금발의 홀트를 쳐다보았다. 앞에 땅바닥에 코박고 있는 게로니안 남부대사에게 안보이도록 오른쪽눈을 찡긋거리며 말했다.
"별로 내키진 않지만"
홀트와 카일은 마주보고 씩 웃는다.
"한번 해 볼까요?"
3화. 드래곤의 회의
헬디온제국에서 서쪽 텔트리온 산맥.
최고봉의 만년설로된 얼음바위사이 분화구속으로 한참 내려가다보면 썬더드래곤 텔트리온의 루어가 나온다. 입구는 만년설이나 내부는 용암으로 끓고있는 이곳에서 드래곤들의 회의가 진행중이었다.
사람이라면 뼈도 안 남을, 쉼쉴수도 없는 열기속에 5명의 인간과 길이 85m정도의 거대한 붉은색 드래곤 한 마리가 마그마 속에 4개의 뿔이 달린 머리만 내놓고 지그시 눈을 감고 있었다. 엄연히 말하면 이들은 인간이 아니다. 인간으로 리폼한 드래곤이다.
리폼이란 드래곤이 다른종족의 형태의 모습으로 변형할 때 사용하는 스펠이다. 자유자재로 변하는 것이 아니라 나이와 외관상 특징을 (수염, 상처등) 반영한다.
드래곤의 평균수명은 7000년 정도이고 마법종족답게 태어난 후 80년이 지나면 드래곤으로서의 기본적 스펠 (리폼의 경우도 해당한다.)을 사용할 수 있다. 80년 후에는 마나의 기본적 흐름을 익히기 위해 인간계에 내려가 생활하는데 여기엔 규칙이 있다. `드래곤과 인간은 상호존중한다'이다. 공존은 가능하지만 폭력은 금지라는 것이다.지식의 교류도 가능하지만 간섭은 금지이다. 인간이 드래곤을 침해할 경우 드래곤은 인간을 응징할 수 있지만, 정당한 이유없이 인간을 괴롭힐 경우 신의 분노를 사게 된다. 이것은 물질계의 균형을 이루기 위해서도 확실히 해야 할 부분이었다.
"...파이아세이스 양반! 왜 남의 침실에 누워있는 거요! "
허리까지오는 은빛머리카락의 8등신몸매에 얼굴만 할머니인 이 드래곤은(인간모습이긴하지만) 썬더드래곤의 최연장자이며 드래곤들의 정신적 지도자인 텔트리온이다.
"내 루어에는 이렇게 딱 알맞는 온도의 마그마가 없거든.."
끓는 마그마속에 이렇게 느긋히 누워있는, 리폼하지 않은 이 드래곤은 파이어족 최고연장자인 파이아세이스였다.
"빨리 리폼해요!"
"하면되잖아.."
곧 거대한 파이어드래곤은 붉은 긴 머리, 붉은 눈동자, 붉은 수염의 노인의 모습으로 내려왔다.
어깨에서 찰랑거리는 은빛머리칼에 검은눈동자의 지(知)적으로 생긴 청년은 썬더드래곤 대표인 타슈아, 붉은머리에 붉은눈동자의 미청년은 파이어족 대표 펠로임 이다. 뭔가 근심스러운 듯 미간을 살짝 찌푸린 짧은 파란머리의 단정한 중년신사는 아쿠아족의 최고연장자 아오게네힘 이고, 옆의 어깨까지 흐드러진 파란곱슬머리에 파란눈동자의 미인은 아쿠아족 대표 아이릴리 였다.
"..언제나 그래왔지만,"
텔트리온은 잠시 뜸을 들였다.
"동족들의 활동권에 대해 다시 한번 당부한다."
"그 벌레같은 인간들 때문에 우리까지 피해보는군."
펠로임이 짜증스레 내뱉었다.
"언제나 그것들이 말썽이군.. 요즘도 자기들끼리 싸우는 것 같더니.."
평소 말없는 타슈아도 한마디 했다.
"만약 인간이 없어진다면 물질계는 붕괴할걸세."
"...."
텔트리온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분의 출발이 텔트리온님의 산맥근처라고요? 인간들의 헬디온이라는 나라가 있는 곳이잖아. 접근을 말아야겠군."
순간 텔트리온이 불현듯 눈을 떴다.
"이런...일났군."
좌중의 동그래진 눈을보며 말을잇는 텔트리온.
"...새기억 주입을 깜빡하고 워프만 시켰어..."
잠시 침묵.
타슈아가 단조로운 어조로 침묵을 깨뜨렸다.
"아이스펙트 계획후 단5일...아니 넉넉히 7일만에 물질계 싹쓸이 되다."
"이런...어떻하지.."
"앗!"
갑자기 파이아세이스가 무언가 생각난 듯이 소리쳤다.
"오오, 파이어족 최고령자 답군요. 묘안이 벌써 떠올랐나요?"
텔트리온의 눈엔 새삼 존경의 빛이 떠올랐다.
"...배고프다."
"...."
텔트리온산맥에서 잠시 대규모의 지진이 일어났다가 가라앉았다.
4화. 시작된 모험.
와장창!!
어지간한 술집이라도 낮에는 싸움이 벌어지지 않는다. 큰길 맞은편의 식당에서도 들리는 이 고함소리로 판단하건데 술꾼들의 싸움은 아니었다.
"새파랗게 어린년이 벌써 놈팽이를 끌어들여!"
카트린은 날아오는 접시를 피하느라 말할 겨를이 없었다. 구석에서 어쩔줄 몰라하던 카틴도 그 서슬에 팔이 접시파편에 베여 피가났다.
"2층까지 피범벅의 발자국에 창문이 열려있어 설마해서 와봤더니, 이년! 이리못와!!"
"아빠, 잠깐... 내말좀.."
철썩!
"네 거짓말에 한두번 속은게 아니다! "
또 한차례 올려붙이려는 순간,
우당탕!
아래층에서 무언가 박살나는 소리가 났다.
"주인장 나와!"
"빚쟁이들이야..."
옷소매로 흘러내리는 코피를 닦으며 카트린은 아빠가 나간 문을 노려보았다.
둔탁하게 얻어맞는 소리와 희미한 신음소리가 났긴 했지만 그사이 카틴은 잠시 진정할 수 있었다.
조용해진후, 불현듯 불안해진 카트린이 방을 뛰쳐나갔다. 카틴도 머리를 묶으며 뒤따라 나갔다.
가게 1층은 엉망이었다. 카트린은 아빠옆에서 분주히 떨어진 그릇을 줍고 있었다.
`저 아저씨 왼쪽 뺨에 멍들었잖아!'
어쨌든 말할 분위기가 아니었기에 카틴도 거들었다.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난다구? 어느 마을인지도?"
"..예"
몇차례 반복되는 질문이 지겨웠지만 신중히 대답하는 카틴.
"아빠, 카틴 우리집에서 살면 안돼? 심부름시키면 되잖아."
카트린을 잠시 노려본 뒤 아저씨는 카틴을 찬찬히 살폈다. 그 눈이 검을 향한다.
"검을 다룰 줄 아나보군?"
"자세히 기억나지 않지만, 기본기는 알고 있습니다."
상당히 웃기는 부분이다. 자신에 대해 기억도 못하면서 검의 기본기는 알고 있다? 다시 자기자신이 원망스러워지는 카틴.
아저씨는 검 중앙의 투명한 다이아몬드(뭔지는 확실치 않지만)를 뚫어지게 본다.
"...우리 카트린이 신세를 졌으니.."
다시 카틴을 보는 아저씨.
"너를 맡을만한 곳을 알고 있다."
"카틴, 잘가. 계속 놀러와!"
만나면 헤어짐이 있는법. 눈물까지 글썽이는 카트린에게 아무 생각없이 손을 흔들어주는 눈치없는 카틴이었다.
카틴이 아저씨를 따라 마차에서 내린곳은 낡은 2,3층 판자집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허름한 골목이었다.
"검은 여기두고 내리거라. 어차피 또 올테니까."
소시지타는 냄새, 바나나 썩은 냄새가 뒤섞인 골목길을 따라 x자 모양이 그려진 문으로 들어갔다.
"여기서 기다려라."
대기용 의자를 가리키며 한마디 던진 뒤 아저씨는 중앙의 문으로 들어갔다.
방문을 열어놨기에 밖에서 안이 조금 보인다. 가끔가끔 아저씨와 이곳 주인같은 남자가 카틴을 힐끔거렸다. 뭐라는지 멀어서 잘 안들리지만.
앞의 탁자엔 스크롤이 있다.
`[헤르디 데이즈]?'
주간지였다.
` <게르니안 남부 위기...대마스터 세르잔의 스펠개발 불발...3국연합 멜른에서 연방회의 개최...드래곤출현 현저히 감소...아젤반의 개발계획에 엘프의 항의...>'
카틴이 주간지를 훑어보는 동안,
"얼굴은 반반하군..."
"그게 문제요... 저 놈이 귀족이라든가 여하튼 무슨 연관이 있다면..."
말 한마디에 신중을 기하는 카트린네 아빠. 검을 보는 순간 신검이나 마검은 둘째치더라도 높은 가격을 호가할수 있다고 직감했다. 카틴을 살펴보는 콜키어와 이익을 나눌 생각은 조금도 없다. 공연한 말 실수에 잡은 봉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돈만 생긴다면 빚 갚고 수도 헤르디에 가서 그럴싸한 집짓고 정착할 생각이었다. 고생만 시켰던 카트린을 학교에 보낼수도 있다.
"님이 언제부터 그런 쓸데없는 걱정을 하는감? 숨기는게 있군!"
"아...아뇨, 그럴리가요. 삼백골드부터 시작할까요?"
"삼백? 장난해?"
옥신각신.
가격흥정의 결론이 났다.
`저녀석 정체가 뭐든 나와 볼일은 없지. 이제 성도 바꾸고 집도 바꾸고 새 삶을 시작해야지.'
카틴과 눈 한번 마주치지 않고 카트린네 아빠는 떠났다.
"넌 여기 있거라."
아저씨를 따라 나가려는 카틴을 콜키어가 히죽거리며 막았다.
상당히 기분나쁜 웃음이다.
카틴은 뭔가 불안했지만, 자신의 검은 금방나간 아저씨의 마차안에 있다.
"저 아저씨 마차에다 제 검을 두고왔어요."
퍽!
아찔함. 카틴은 복부를 얻어맞고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베테랑인 콜키어는 카틴이 눈치채고 도망가려는 줄로 지레짐작하고 있던 것이다.
"상황파악이 안되는 모양이군. 얘들아! "
어디선가 런닝차림의 험상궂은 근육질의 두 남자가 튀어나왔다.
"가둬놔."
아픔이 많이 가시고 어둠이 눈에 익자 사람들 3에서4명정도가 보였다. 다리사이에 고개를 박고 있거나 누워있는 사람중 입가에 피같은 것이 묻은 여자가 입을 열었다.
"..젊은애잖아. 어쩌다 오게 됐니?"
이들은 빚을 갚지 못해서, 혹은 자진해서 몸을 판 사람들이었다. 개중에는 아저씨와 어린 소녀도 있었다.
카틴은 생각중이었다. 자신은 빚을 진 적이 없고 몸을 판 적도 없다. 카트린네 아빠는 자신을 팔 권리가 없다. 화가난다.
`검이라도 돌려달래야지.'
아저씨가 이들에게 자신을 팔았으니 검도 이들에게 있으리라는 것이 카틴의 생각이었다. 검은 자신에 대한 유일한 단서이다. 신체의 일부처럼 느껴졌던 검을 타인에게 뺐기는 것은 싫다.
`계속 가지고 있어야 했는데...'
새삼 후회하는 카틴.
주먹맛을 봐서 조금 무섭긴 하지만, 문을 세게 밀었다. 꼼짝도 안한다.
여인은 화들짝 놀라며 카틴이 문에 해대는 발길질을 말리며 했지만 이미 늦었다.
둔탁한 구타소리.
카틴은 엎어져서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몸이 안 쑤신데가 없었다. 천천히 한쪽팔로 코피를 닦아내는 카틴을 보며 사람들은 다시 무릎사이에 얼굴을 묻거나 잠을 청했다.
5화. 어부지리
게로니안 남부. 임시수도 골가.
밤인데도 강 건너편이 환하다.
공화정부가 있는 곳에서 시뻘건 불꽃에 검은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었다. 아련히 아우성이 들려온다.
"아빠, 벌써 북부군이 여기까지 쳐들어온 거에요?"
낡은 이끼낀 창틀에 팔을 괴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열심히 구경하던 어린 소년이 옆의 덮수룩한 턱수염의 중년어른에게 묻는다.
"단순히 불이 난 것 뿐이란다."
주의깊게 강건너를 살피던 덮수룩한 턱수염의 벌목꾼 노바가 어린 아들에게 대답했다.
마음속으로 정말 단순히 불이 났기만을 바라며 그는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제 자거라."
"조금만 더 보면 안돼요?"
가장 재미있는 구경거리는 싸움구경과 불구경이라던가.
아쉬움을 가득 담은채 아이는 자신의 방으로 가야했다.
노바는 창문을 닫기위해 창가로 갔다. 바람이 차다. 다행히 불길은 점차 사그라들고 있었다.
더 이상의 전쟁은 싫다.
끊임없는 공출에다, 자신도 오른쪽 다리가 성했다면 영락없이 징병을 당했을 것이다. 어느쪽이 이기든간에 빨리 안심하고 잠을 잘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라는 노바였다.
"...이...이게 무슨 짓인가!"
살타는 매캐한 냄새가 진동하는 아비규환 속에서 자신을 호위하던 마지막 나이트커맨더가 타다만 반토막의 시체가 되는 것을 보며 총통 제르크는 처절히 외쳤다.
"전 제국주의자라서 말이죠..."
살며시 웃으며 카일은 자신의 검은색 로브에 붙어있던 핏빛살점을 손가락으로 살짝 튕겨냈다.
"총통각하, 마지막 즐거운 밤이었길 바랍니다."
카일의 오른손에서 생성된 파이어볼이 제르크의 몸에서 작열했다.
"아아악..."
비명소리도 함께 타들어 갔다.
카일은 주변을 한번 둘러본다.
여기저기 널브러진 시체와 매케한 냄새. 카일은 눈썹을 살짝 찌푸리고 스펠을 시전한다.
"윈드!"
생성된 거센 바람이 방안의 지독한 먼지와 냄새를, 벽의 뻥뚤린 구멍을 통해 밖으로 날렸다.
카일은 깨지지 않은 유리잔에 와인을 부은다음 능숙하게 검지와 중지사이에 유리잔을 끼워들고 창가로 갔다.
반짝이는 별을 보며 한모금 마시고 중얼거린다.
"멋진 밤이야..."
한편 금발의 홀트는 불길을 전부 진압했다.
워터스파우트(물폭풍의 스펠)를 남발하는 거야 7대 대마스터의 한명인 그에겐 껌도 아니었지만 애써 이 짓을 하고있는 이유는 민가로 불이 옮겨붙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다스릴자의 입장으로 아량을 베풀어야지.'
군사들에게 파손복구를 지시한 후, 은빛로브에 튄 흙을 떨어내며 홀트는 카일에게 보고하기위해 총통관저로 향했다.
6화. 비밀
진한 보랏빛의 곱슬거리는 머리카락은 어리까지 닿고, 머리엔 배 모양의 다이아몬드로 치장한, 허리역시 다이아몬드가 잔뜩박힌 허리띠를 두르고 단조로운 보랏빛 드레스를 입은 여인.
몸 전체에서 은은한 빛이 나오는 것이 한눈에 인간 따위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붉은 입술로 살며시 미소짓는 미인으로 보이는 이 여신의 뚜렷한 보랏빛 안광에는 표현할 수 없는 위엄과 냉엄함이 서려 있었다.
"...아직까지 그분에게 무슨일이 생기지 않은 것은 확실합니다. 저희들이 굳이 나설 필요는 없지요."
헬카테이아는 허공에 앉으며 말했다. 분명히 아무것도 없는데 여신은 편안한 자세로 앉아있었다. 마치 고난도의 펜터마임°을 보는 것 같다.
"파이오니스 님과 론디스 님께 보고 드려야 겠지요?"
반짝이는 붉은빛의 긴 머리카락에 귀에 정교하게 은으로 새긴 피어스를 달고, 어깨선을 따라 만들어진 은빛 보호대에 발끝까지오는 긴 로브를 입은, 몸에서 은은한 빛이 나오는 청년모습의 신. 카이셔스 였다.
"그분들에게 이런일은 지극히 사소한 것이지요. 게다가 그분들께서 저희들에게 이 일을 완전히 위임했다는 사실을 잊지마십시오."
헬카테이아가 셋째손가락과 엄지손가락으로 딱! 소리를 내자 어디선가 소년의 모습을 한 이그니스°가 나타나 금으로 된 두 개의 잔을 헬카테이아에게 바쳤다. 헬카테이아는 잔을 카이셔스에게 건네며 말을 이었다.
"헌데...왜 하필 검이지요? 그 분의 요구입니까?"
"...아닙니다. 보고에 의하면 봉인석을 쓰고도 가장 잘 어울리는 디자인이 검이었다고 하더군요."
"......."
금잔속의 넥타르°를 마시는 헬카테이아에게 카이셔스는 가장 궁금해했던 질문을 했다.
"그분도 봉인이 풀리지 않는 한 인간이긴하지만... 순조롭게 봉인이 풀리면 어떻게 될까요?"
"그거야 그분이 종합한 기억을 토대로 알아서 하시겠지요."
"만약, 불상사로 봉인이 깨진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속으로 텔트리온에게 노망난 드래곤이라고 투덜대며 카이셔스는 물었다.
"물질계는 파멸되겠지요."
덤덤하게 말하는 헬카테이아.
카이셔스는 미간을 약간 찌푸린채 말한다.
"역시 모두에게 알려야 하지 않을까요?"
헬카테이아는 아름다운, 차가운 눈으로 카이셔스를 똑바로 쳐다보고 빙그레 웃으며 말한다.
"경거망동할 필요는 없습니다. 아직 저희는 방관자일뿐임을 잊지 마십시오."
헬카테이아가 인간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카이셔스도 알고 있었다. 물론 자신도 그녀에게 반대하는 입장은 아니었다.
"특히, "
헬카테이아는 미소를 지우고 굳은 얼굴로 말한다.
"힐서스에게 비밀로 해주십시오."
펜터마임:연극에서 배우가 어떤 장비도 사용하지 않고 오직 몸짓과 표정으로 주변에 사물이 존재하는 것처럼 연기하는것.
이그니스:불의 정령. 정령은 특정한 모습이 없음.
넥타르: 신들의 음료.
7화. 카틴의 검.
브루셀 제국. 수도 브뤼셀.
수많은 상점과 길드°건물들, 잘 포장된 도로.
브루셀의 수도답게 20만의 인구가 이 도시에 거주하고 있다.
"드래곤 외투 특가세일! 100골드!"
"...마법사 라이거님의 시사회입니다!"
"이거 정말 손해보고 파는 겁니다. 나이트가 되시려는 분에게 필요한 방어구세트! 290골드!"
왁자지껄한 상설시장을 지나면 붉은 벽돌로 지어진, 명문 마법사,기사 양성 사립학교 [브뤼셀 아카데미]가 있다. 여기서 왼쪽의 큰 길 맞은편엔 [브뤼셀 스펠개발 연구소]가 있고 그 뒤쪽으로 한 블록건너 [브뤼셀 쥬어리(jewelry)]가 있다.
[브뤼셀 쥬어리]는 브루셀 최고의 보석가게였다.
가게주인 발렌타인씨는 귀족들과도 친분을 착실히 쌓아두었다. 특히, 4대 소드마스터중 한 사람인, 브뤼셀에 살고있는 브루마블 경과 친밀한 사이였다.
브뤼셀 궁전에 납품하는 보석은 거의 다 발렌타인이 중재하는 것이었다. 덕분에 발렌타인은 엄청나게 물어야했을 세금을 50분의1로 줄일 수 있었다.
그는 공들여 다듬은 w모양의 콧수염을 만지작거리며 어제 새로 도착한 물건을 세심히 감정중이었다.
"..멋지군."
그는 연신 감탄했다.
검의 재료는 수준급 보석 전문가인 그로서도 처음보는 것이었다. 포인트인 손잡이 중앙의 반짝이는 원석은 분명히 다이아몬드는 아니었다.
책상 한 구석에 있는 마나검색용지°를 한 장 뜯어내어 칼날에 대본다. 아무 변화가 없다.
그럴즈음 노크소리가 난 뒤 하녀가 들어왔다.
"브루마블님께서 오셨습니다."
감정용 외눈 돋보기를 벗으며 그가 책상 왼쪽의 종을 울리자. 제복차림의 우람한 남자하인 두명이 왔다.
"1번 대기실에 보관하도록."
겉보기엔 유리재질처럼 가벼워 보이는 이 검은, 장정 두 명이 같이 들어야 할 정도로 무거운 것이었다.
파이프°를 입에물고 발렌타인은 브루마블을 만나러 서재로 내려갔다.
길드: 여기선 여러 서비스업을 맡아하는 일종의 회사.
마나검색용지: 검색용지. 본래 흰색이나 마나의 흐름이 있을 경우 검은색으로 변함.
파이프: 담배의 일종.
카틴은 몇날을 걸었었고, 여러번 마차를 갈아탔었다.
도망갈 틈은 추호도 보이지 않았었다. 콜키어는 이동도중에는 반드시 노예들에게 수갑을 채우는 빈틈없는 자였다.
괜찮은 잠자리에 음식도 꼬박꼬박 나왔기에 카틴은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얌전히 있는 것이었다. 최고가 노예에게만 하는 대접이란걸 카틴은 몰랐긴 했지만. 보통 노예는 인간이하의 취급을 받았다.
콜키어가 카틴을 데리고 온 곳은 [브뤼셀 아카데미]란 곳의 총장실이었다.
`꽤 부자인가 보군.' (카틴의 평.)
붉은 빌로드로 된 카펫에 벽마다 사슴뿔과 금으로 된 벽걸이들로 그득했다. 선반엔 자수정과 수정으로 된 장식용구들이 쌓여 있었다.
"저 아이요?"
하얀머리칼에 가운데 대머리가 번쩍거리는 거만한 인상의 노신사.
가슴에 `총장 셰나르'라고 씌어진 주먹만한 금뱃지를 달음으로 총장이란 티를 팍팍내고 있었다.
"예. 그렇습니다. 얼굴도 괜찮고 몸도 건강한 최고급품이지요."
콜키어가 연신 굽실거리며 말한다.
`품? 내가 물건인가?'
속으로 투덜대는 카틴.
"저놈, 나이트나 귀족이었다면 여자 많이 울렸겠어..허허허,"
셰나르가 만족하는 모습을 보고 콜키어는 한 몫 단단히 챙길 수 있다는 희망으로 회심의 미소를 떠올렸다.
셰나르가 종을 울리자 제복차림의 깐깐해 보이는, 갈색머리를 틀어올린 중년여성이 들어왔다.
"교육시키게."
셰나르가 짧게 명령하자 그 중년여성은 카틴을 데리고 방에서 나갔다.
그들이 나가자마자 셰나르와 콜키어는 흥정을 시작했다.
[브뤼셀 아카데미]는 철저한 귀족전용 학교였다.
때론 평민의 자녀가 학교에 들어오는 경우도 있지만, 엄청난 등록금을 지불할 능력이있는 대부호의 자녀뿐이었다.
학생들이 전부 귀한집 자제분들이라 검사수련이나 마법사 수련과정중 대련의 경우 세심한 주의가 필요했다. 만약 대련중 학생이 크게 다치기라도 한다면 학교운영에 치명타를 받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노예를 사서 쓰는 것이다.
상대가 귀족인만큼 노예도 신중히 골라야 했다. 나이뿐아니라 외모도 필수조건이었다. 노예제도는 세계적으로 `신들의 칙령'에 의해 금지된 항목이지만 암거래로 공공연히 거래중이었다.
귀한집 자식이다보니 일부 학생들은 워낙 저돌적이었다. 작년만해도 노예3명이 죽어나갔으니까.
노예들중 만23세가 넘은 노예는 [브뤼셀 스펠개발 연구소]로 보내진다. 그곳에서 온갖 실험대상이 되는 것이다. 즉, 이들은 부려먹힐대로 부려먹히고 버려졌다.
카틴은 오랫동안 서 있었기 때문에 다리가 저려왔다.
눈앞의 깐깐한 여자는 끝없이 떠들어대고 있다.
"...모두 청소해 놓고...인사는 90도로 허리를 숙여서...대련중에는..."
`눈치봐서 도망이나 갈까? 그 전에 좀 쉬고싶다...'
딴 생각중인 카틴.
"알겠느냐!!"
딴 생각했으니 제대로 들었을리 없다. 당황한 카틴.
"네?"
"너도 수업을 들어야 한단 말이야!! 노예주제에.. 고맙게 여기거라! 냉큼5층으로 올라가!"
어쨌든, 불평할 처지도 아니고, 몹시 피곤했기에 묵묵히 올라가는 카틴.
건물전체적인 분위기와 대조적으로 상당히 허름한 방이었다.
몇 개의 침대와 창살이 박힌 창문, 거울과 세면대, 한 개의 탁자가 전부인 썰렁한 방안.
카틴은 이름표가 없는 침대에 가 앉았다. 앞으로 카틴이 쓸 것이다.
`..수업을 듣는다...'
잔심부름이나 하고 검을 배울수 있다면 그리 나쁘진 않았다. (물론 카틴은 자신이 귀족의 대련용품이라는걸 모르고 있었다.)
자신에 대한 유일한 단서인 투명한 검의 행방은 카트린네 만이 알고 있다.
카트린네가 있는 헬디온제국까지 가기에 필요한 돈이 카틴에게는 없다. 그리고 노예로 끌려오는동안 자신의 약함을 절실히 깨달은 카틴이었다.
`우선은 강해져야 한다.'
카틴은 마음속으로 굳은 각오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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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변화시키는 인터넷①』
(≫≪) 미군 희생 여중생들의 죽음을 애도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