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황 장식 달린 비녀는 조선 왕실의 장신구”
걸그룹 장원영 파리 패션위크 착용
中누리꾼 “中문화 훔쳐” 주장 논란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비인 영친왕비의 도금봉황비녀. 국립고궁박물관 제공
인기 걸그룹 아이브의 멤버인 장원영이 최근 착용한 봉잠(鳳簪·봉황 장식이 달린 비녀)을 두고 말이 많았다. 중국 일부 누리꾼이 “중국 문화를 훔쳐갔다”고 주장하자 국내에선 “또 우리 것을 자기 것이라 우긴다”며 분노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난달 16일 프랑스 파리 패션위크에서 장원영이 봉잠을 언급하며 “한국의 멋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 건 옳은 말이다. 비녀는 한반도 고대부터 전해 내려온 전통문화이며 봉잠은 조선 왕실에서 중요한 행사가 열릴 때 애용하는 장신구였다. 조효숙 가천대 패션디자인과 석좌교수는 “봉잠은 왕비나 대비 등 내명부 최고 지위의 여성들만 착용할 수 있었던 조선 왕실의 대표적 유물”이라고 했다.
여성들이 긴 머리를 틀어 올려 고정시키는 비녀는 한국과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전역에 퍼져 있는 장신구 문화. 삼국사기에는 834년 통일신라에서 당대 신분제인 골품제에 따라 “진골 여성은 진주 장식 비녀를 사용할 수 없고, 6두품 여성은 비녀에 순금을 사용해선 안 된다”는 기록이 있다.
봉잠 역시 세 나라에서 지체 높은 여성들에게 사랑받은 아이템이었다. 하지만 조선에선 왕실의 국가적 행사에만 사용할 정도로 정통성을 부여했던 장신구다. 대표적인 문화재로 영친왕비가 혼례 때 착용한 봉잠 7점이 국립고궁박물관에 남아있다. 서정민 국립고궁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용이나 매화 모양 비녀는 궁중에서 일상적으로 썼지만 봉잠은 왕실 혼례 등 중요 행사 때만 착용한 ‘공식 의례용’으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장원영이 착용한 봉잠은 한국 고유의 전통 양식이라 보기엔 다소 무리가 있다. 왕실에서 쓰던 옛 봉잠과 생김새가 다르기 때문이다. 물론 중국이나 일본 형식도 아니다. 조 교수는 “한국 디자이너가 전통 비녀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현대적으로 새롭게 해석한 작품이라 보는 게 맞다”고 했다.
그렇다면 조선 비녀만의 특징은 뭘까. 이선희 수원대 의류학과 객원교수는 “중국과 일본 비녀는 길지 않은 세로형인 데 비해 한국 비녀는 가로로 굵고 긴 형태”라고 말했다.
한국 비녀가 독특한 생김새를 갖게 된 건 1756년 영조가 ‘얹은머리’인 가체를 금지하면서부터라는 분석이 나온다. 원래 동아시아에선 가체 위에 꽂는 세로형 비녀를 주로 썼지만, 조선에선 영조가 가체 금지령을 내린 뒤 쪽진 머리를 고정하기 위해 가로로 기다랗고 굵은 비녀가 널리 퍼졌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비녀는 쪽진 머리에서 가장 큰 변화를 줄 수 있는 패션 아이템”이라며 “이후 조선 비녀는 길이가 갈수록 가로로 더 길어졌고, 잠두(簪頭·비녀의 머리)도 더 두툼하고 입체적으로 바뀌었다”고 했다.
이소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