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년 전차영업 노선도
부산시내를 운행하던 전차는 도로의 확장과 포장, 교통량의 증가, 전차선로 및 전동차의 노후화로 인한 운행 적자 누적으로 1968년 5월 19일 마지막으로
운행되었다. 5월 20일 운행이 폐지된 이후 전차선로가 폐지되었으며, 일부 구간은 아스팔트 포장으로 묻혀 버렸다
당시 전차종점에는 시설물이 설치되어 있었으나 정차장에는 별도의 시설물이 설치되지 않고 전차표를 파는 매표소의 간이 시설물만 설치되어 있었다
西面 停車場
오늘날은 부산진구의 부전동 • 전포동 일대를 西面이라 하지만, 조선시대 동래부 서면 지역은 아주 넓었다. 일제 강점 이후 서면은 동래군의 서상면과 서하면으로 나누어졌다가, 1936년 부산부 부산진 출장소에 편입되었다.이곳에 원형로타리가 조성된 것은 1957년이었다.1963년 정부 직할시로 승격되고, 그 승격을 기념하는 뜻으로 서면 원형 로타리 한가운데높이 23m의 부산탑이12월 14일 준공되었다. 그 부산탑은 아치형으로 되어 전차가 다니는 1968년까지만 해도 그 아치형 아래로 전차가 지나다녔다. 탑의 조형이 부산이라는 한글 글자를 상징하면서 위쪽으로는 오륙도가 조각되어 부산을 상징하는 휘장 구실을 했다. 탑중앙에는 자유의 햇불을 든 남녀 동상이 발랄한 기상을 보였다. 탑을 중심한 안으로는 꽃밭이 조성되어 사계절을 따라 변화하는 미관을 나타냈다. 그러나 폭주하는 교통량의 증가로 인한 교통의 완화와 지하철 1호선 공사로 1981년 철거되어 일부분인 상징물은 부산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車庫前 停車場
서면 교차로에서 옛 태화백화점을 지나 지금은 대형 쇼핑몰인 서면 피애스타 앞 중앙로변에 정차장이 있었다. 차고 앞이라는 이름은 한국전력공사 부산본부
자리에 차고지가 있었기 때문에 붙혔진 것이다. 이 차고지는 전차의 고장 수리 및 전차의 정비를 위하여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1962년 차고로 진입할 수 있는 단선 선로가 신설되기도 하였다. 부산의 전차사업을 담당하였던 회사는
1909~1910년 부산경편궤도(주),1911~1945년 한국와사전기, 1946~1960년 남선전기(주) 였고, 1961~1968년 전차가 폐지될 때까지는 한국전력(주)에서 운영하였다.
북성극장
.1947년 1월 23일 서면로터리 전차정류소 입구에 순 부산자본으로 세워진 최초의 북성영화(北星映畵)극장이 개관되었다. 극장 소재지는 부산진구 부전동 112번지, 대지 365평, 무대 20평, 좌석수 1층 400명, 2층 38명, 허가 정원수 570석으로 규모면에서는 그리 크지 않았으나 북성영화극장은 광복 후 처음으로 세워진 단관형 극장으로 대중문화 공간이 한 곳도 없었던 서면지역 주민들에게는 매우 각별했던 곳이다.
첫댓글 북성극장을 내 집같이 들락거렸다는 부산상고 출신의 70대 노관객은
"의자가 철제여서 오래 앉아 있으면 허리가 아팠지. 하지만, 워낙 어려웠던 시절이라 시설이 그래도 그려려니 했어요. 게리 쿠퍼, 클라크 게이블, 아랑 드롱, 헨리 폰다, 커크 더글러스, 비비안 리, 엘리자베스 테일러 등 멋진 서부의 사나이들과 고혹적인 여배우들. 요즘 그런 미녀는 없어요. 내로라 하는 외화는 모두 북성에서 봤다 아이가~ '자이언트' '무기여 잘있거라' '콰이강의 다리' '황야의 무법자' 등, 어지간한 영화는 미성년자 관람가여서 수업이 끝나면 부리나케 직행했지만, 미성년자 관람불가 영화도 보고 싶은 맘이 굴뚝같아서 갖은 수단을 동원해 단속 임검과 선생님들의 눈을 교묘히 피해 몰래 들어가곤 했지요. 어두컴컴한 극장 안이었지만 선생님은 직감으로 학생들을 귀신같이 찾아냈고 적발된 학생들은 다음 날 교무실로 불려가 혼난 적이 한두 번 아니었지. 그래도 그 때 그렇게 영화를 보았던 쾌감! 우리 친구들 모두가 공감한다 아이가~."